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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8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찾는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1. 1. 24.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찾는가

 

천리마 감정가인 백락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의 상마경(相馬經)을 보고 말 감정법을 공부하던 그 아들이 어느 날 큰 두꺼비를 잡아와서 아버지께 보이며 말했다. "좋은 말을 한 마리 찾았습니다. 이마가 도드라지고 눈이 툭 튀어나왔으며 등이 미끈하게 잘 빠졌습니다. 다만 발굽이 누룩을 쌓아 올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백락은 기가 차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진정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잘 뛰기는 하겠지만 수레를 잘 끌지는 못하겠구나."

‘안도색기(按圖索驥,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찾다)‘라는 고사로서, 명(明)나라 때 양신(楊愼) 등이 쓴 예림벌산(藝林伐山)에 실린 이야기이다. 현장 경험이 없이 그림에만 의지한 어리석음을 은유한 우화이다. 이로부터 ‘백락의 아들(백락자伯樂子)’은 아비의 명성에 비해 아둔한 아들을 비유하는 데 쓰인다.

유사한 고사가 또 하나 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조괄(趙括)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조사(趙奢)는 걸출한 명장이었고, 그 덕에 어릴 때부터 많은 병법서를 읽어 병법에 능통하였다. 하지만 조사는 아들을 믿지 않았다. 병법을 잘 안다는 자만에 차서,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조사가 죽고 나서 진(秦)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왕은 조사의 유언을 무시하고 조괄을 대장으로 삼았다. 결과는 너무도 처참하였다. 40만 명이 넘는 대군이 모두 포로가 되었고, 그 많은 포로를 먹일 군량이 부족한 진나라는 모두 파묻어 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장평대전이다.

이로부터 ‘종이 위에서 전쟁을 논하다’라는 뜻의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성어가 유래하였다. 안도색기(按圖索驥)와 마찬가지로 실전 경험 없이 책을 통해서만 배운 지식의 위험을 가르치고 있다.

두 고사는 모두 뛰어난 아버지를 두었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한 아들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한다. 다만 백락의 아들은 다소 아둔하고, 조괄은 그 반대로 자신감이 지나칠 정도로 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회사들을 다녀보면 오너 경영자의 아들(혹은 딸, ‘그들’이라 부르자)이 출근하고 있는 곳이 많다. 그렇게 경영자 훈련을 시키는 모습을 보면 든든하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회사의 상속자로서의 권리와 함께 그 지속성을 보장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회사의 미래가 그들의 손에 달려 있으니 회사 내외의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그들의 모습에서 회사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예단해보기도 한다.

그들은 대체로 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배웠고 똑똑하다. 그들 대부분이 실력과 열정에다 겸손과 사명감까지 겸비하여 손색없는 훌륭한 후계자감이다. 언젠가 그들이 회사를 경영할 때에는 선대의 업적을 능가하는 괄목할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이와 달리 역량이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백락자(伯樂子)’와 같은 아쉬운 모습도 드물게 본다. 이런 경우에는 권한분배 등 의사결정 시스템을 미리 적절히 정비해두면, 회사는 대체로 큰 위태로움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우려되는 회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조괄’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경우이다. 그들은 유학까지 다녀오거나 MBA를 수료하는 등 학력이 높고 똑똑하며, 자신감이 넘치고 그에 걸맞게 다소 교만하다. 아버지의 기대와 신뢰를 등에 업고 나이에 비해 높은 직위를 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비싼 학식을 발휘하기에는 회사는 작고 전근대적이다. 회사의 시스템은 온통 고루하고 비효율투성이이며, 함께 일하는 기존 임직원은 비즈니스 협상의 기초 지식도 부족하고 간단한 서류 작성조차 서툴다. 마음은 급하고 갈 길은 멀다. 젊은 패기로 좌충우돌 부딪히는 모습이 안타깝고 위태롭기 그지없다.

강의실에서 많이 배웠다는 것은 현장 경험이 일천함을 반증한다. 책으로만 세상을 배운 사람이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가장 무지하다. 그 무지의 위험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똑똑한 그들은 책이라는 망치를 들고 모든 회사의 문제를 못으로 여기고 두들겨서 해결하고자 덤벼든다. 그런 위태로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겸허한 마음으로 현장의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익히는 충분한 체험의 시간이다.

사자의 사냥법은 책이나 동물원에서 배울 수는 없다. 사자의 사냥법을 배우고 싶으면 정글 현장으로 가야 한다.

(* 경남매일신문 2021.01.28. 게재)

 

 

 

** 참고1
안도색기(按圖索驥)

"得一馬 隆顱跌目 脊鬱縮 但蹄不如累麴" 但轉怒爲笑曰 "此馬好跳, 不堪御也"
((, ) 높다,  이마 상,  땅강아지 철,  누룩 국,  등마루 척 아름다울 울.  줄으들 축, 곧을 축)
()나라 때 양신(楊愼등이 쓴 예림벌산(藝林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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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리더십 칼럼 목록 

[허성원 변리사 칼럼]#1 인류의 위대한 발명, 천리마
[허성원 변리사 칼럼]#2 천리마를 가졌는가
[허성원 변리사 칼럼]#3 백락을 가졌는가
[허성원 변리사 칼럼]#4 백락을 만났는가
[허성원 변리사 칼럼]#5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있다
[허성원 변리사 칼럼]#6 소금수레를 끄는 천리마를 보았는가
[허성원 변리사 캄럼]#7 천리마 감정법과 노마 감정법
[허성원 변리사 칼럼] #8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찾는가
[허성원 변리사 칼럼] #9 천리마가 거름을 나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