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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3 백락을 가졌는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0. 10. 21.

백락을 가졌는

 

천리마는 뛰어난 인재에 주로 비유된다. 국가든 기업이든 모든 조직의 생존과 번영은 인재에 달려있다. 그래서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은 그의 삼봉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백 필의 천리마를 얻음은 백락(伯樂) 한 사람을 얻음만 못하고, 백 자루의 태아(太阿)를 얻음은 구야(甌冶) 한 사람을 얻음만 못하다. 백 필의 천리마는 때로 병들고 약해지며, 백 자루의 보검도 때로는 부러지고 상하지만, 백락과 구야만 있다면 천하의 좋은 말과 좋은 칼을 골라낼 것이니 어찌 구해 얻지 못하겠는가?”

백락(伯樂)은 춘추시대 진()나라 목공(穆公) 말을 감별하는 상마가(相馬家)로서 본명은 손양(孫陽)이다. 원래 백락(伯樂)’천마(天馬)를 주관하는 별자리를 가리키는 말인데, 손양의 말 감별 능력이 워낙 탁월하였기에 그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구야(甌冶)는 춘추시대 월()나라의 명검을 만들던 장인으로서, 태아(太阿)는 그가 만든 거궐, 담로, 어장, 용연 등과 같은 많은 명검 중 하나이다.

천리마와 같은 명마나 태아와 같은 명검은 지금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소멸될 유한한 자원일 뿐이다. 하지만 천리마를 찾아내는 상마가 백락이나 명검을 만드는 대장장이인 구야만 있다면, 천리마와 명검은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까지나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유태인 속담과 상통한다. 한 마리 물고기는 한 끼 허기를 해결해줄 뿐이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터득해두면 평생의 배고픔 걱정을 잊을 수 있다. 정도전은 조선 왕조가 무궁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천리마와 같은 인재가 끊이지 않고 공급되는 시스템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내는 인재의 백락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현대 기업의 입장도 정도전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기업에게 있어 천리마는 우수한 인재일 수도 있지만,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이끄는 기술 역량으로 대치하여 볼 수도 있다. 기술 등 핵심역량의 관점에서만 생각해보자. 생존하는 모든 기업은 그 나름의 천리마와 같은 핵심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리 강한 천리마도 언젠가는 약해지거나 병들어 힘을 잃게 되듯이, 그 먹거리도 마찬가지로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기업은 그들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보장하기 위해 역참에서 갈아탈 수 있는 파발마처럼 지체 없이 적시에 보충되는 새로운 역량을 갈구한다.

가끔 경영자들의 모임에 가면 내 직업을 아는 분들로부터 자신의 회사에 채용할만한 좋은 기술이나 특허를 소개해줄 것을 요청받기도 한다. 어쩌다 그런 요청에 응하여 한두 가지 아이템을 소개해주기도 해보지만, 정작 실제로 채용되어 제품화 등으로 구현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설사 제품화가 되더라도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례는 더욱 보기 힘들다. 외부로부터 이식된 기술이 회사의 조직과 문화에 화학적으로 동화되기는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기업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존역량을 부단히 창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니 모든 기업은 정도전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백 가지 기술 역량을 얻음은 백락 한 사람 얻음만 못하다는 것을. 그러면 기업에게 있어 과연 누가 백락인가? 핵심 기술 혹은 생존 역량을 발굴하고 창출해내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새로운 기술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는 연구개발 부서가 일차적으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시장 환경 등을 관찰하여 다음 먹을거리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개발 대상을 선정하고 이를 의사결정의 테이블에 올리는 마케팅 부서나 기획부서도 훌륭한 백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진정한 백락은 최고 경영자이다. 그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조직적인 실행을 지휘하는 리더로서, 최종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최고 경영자 가진 통찰적 지혜, 시의적절한 판단력 및 추진력 있는 리더십의 조합이 진정한 백락이라 할 것이다.
귀사는 듬직한 백락을 가졌는가?

(20201023 경남매일 게재)

 

 

** 한국문집총간 삼봉집(三峯集) 卷之五 經濟文鑑

 

인재를 얻음이 한 재상을 얻음만 같지 못하다.

得人才不若得一相

백 필의 천리마(騏驥)를 얻는 것이
백락(伯樂) 한 사람을 얻음만 못하고
백 자루의 태아(太阿)를 얻는 것이
구야(甌冶)한 사람을 얻음만 못하다
得百騏驥 不若得一伯樂 得百太阿 不若得一甌冶 

백 필의 천리마는 때로 병들어 노둔해지기도 하고,
백 자루의 보검도 때로는 부러지고 이가 빠질 수 있으나,
백락, 구야가 있다면 온 천하의 좋은 말과 좋은 칼을 어찌 구해 얻지 못하겠는가?
방현령ㆍ위징 두 공(公)은 당 태종에게 있어 백락이요 구야인즉,
문황(文皇= 당 태종)의 때를 당하여 천하의 어진 사대부와 재능을 한 가지씩 가진 사람이 조정에 모두 등용된 것도 또한 두 공의 계옥(啓沃 충성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아룀.)과 천거로 위에 이끌어 임용된 것이니, 그 직분에 적합했다고 일컬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방ㆍ위 두 공을 태종의 백락이요 구야라고 한 것이다.
百騏驥有時而瘏劣。百太阿有時而毀缺。若伯樂甌冶存。則擧天下之良馬良劍。何求而不得哉。房魏二公。太宗之伯樂甌冶也。當文皇時。天下賢士大夫一才一能。畢登於朝。亦由二公啓沃薦引於上而任用之。所以能稱其職。故曰房魏二公。太宗之伯樂甌冶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