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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

존재와 행위

by 변리사 허성원 2019. 7. 15.
존재와 행위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참과 거짓 혹은 평등과 차별의 문제도 아니다.
'존재'와 '행위'의 문제이다.
그리고 공감능력이나 상상력이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문제이다.

#장면1
어제 저녁 아들과 동네 팥빙수 가게에서 팥빙수를 먹었다.
열심히 일하는 가게 주인을 얼핏 보니 매우 예쁘장하게 생겼다. 하지만 분명히 남자다. 성별을 쉽게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제법 눈에 띄게 치렁거리는 귀걸이에다 상당히 공들여서 화장도 한 듯하다.
가게 주인의 꼴(?)에 속이 좀 불편하다. 그래서 내가 아들에게 뭐라 한 마디를 했는데, 나의 불편한 속내가 그 말에 뭍어나왔나 보다.
아들이 상당히 강력하게 지적을 한다. 자유로운 자기 표현이니까, 누구도 그 자유를 가지고 뭐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따끔한 훈시(?)이다. 나도 질 수가 없다.
"야 임마~ 아무리 자기 표현이라고 해도그렇지, 주변 사람들의 평범하고 건강한 정서를 심히 불편하게 하는 것까지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다 용서된다고 할 수 없지. 짜식아~"
"불편하면 안 보면 되는 겁니다. 그걸 굳이 보고 느끼고 평가하고 지적하는 게 옳지 않은 거예요."
그러다 옛날 골프장 사우나에서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이 탕으로 들어올 때 목욕탕의 모든 사람이 탕에서 모두 나가버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표현이 모두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계속 주장하며 뻗댔다.
아무래도 내가 그놈 빡센 논리에 적잖이 밀렸던 것 같았지만, 더 논쟁을 끄는 것은 체면 유지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 쓴 입맛을 다시며 중단했다.

#장면2
오늘 아침에 아들과 함께 출근했다.
방학 기간 동안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에,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에는 함께 출근을 한다.
월요일 아침 러시아워라서 지하철이 무척 붐볐다. 한 대를 보내고 다음 차를 탔다. 사람들 틈에 끼여서 잠깐 몸의 자리를 잡았는데, 묘한 냄새가 난다. 그 출처는 내 바로 앞에 비대한 체구의 서양 여성였다. 땀을 비오듯이 흘린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티셔츠에는 군데군데 젖은 자국이 드러난다. 그 냄새는 그녀의 체취였던 것이다. 백인들의 체취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느낄 기회는 없었는데.. 이렇게 움쩍할 수 없이 밀착해서 제대로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고통스럽다. 옆으로 좀 피했더니, 그 빈틈으로 밀려들어와 더 가까워진다.
옆에 있는 아들을 보았다. 나보다 더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거나 하늘을 보기도 하고, 그러다 나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다행히 이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15분 정도에 불과하다.

#장면3
환승을 위해 걸어가면서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아들은 사람에 대해 그토록 살의에 가까운 증오심이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고, 그 상황의 끔찍한 고통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이런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안된다고 비난한다.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 그 사람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다닐 권리가 있고, 어딘가로 출근하여야 한다면 그걸 말릴 수 없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겪을 불편이나 고통을 제대로 모를 것이다.
남의 고통에 대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고, 동시에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았다면, 그 사람을 어찌 비난할 수 있는가'
아들은 다행히 쉽게 동감한다고 말해준다.

#장면4
지하철을 내려 사무실로 가면서, 오늘 아침의 경험을 어제 저녁의 '자기 표현의 자유'와 함께 논의하면서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행위'는 비난받을 수 있다. 행위는 행위자의 자유 의지에 기초한 것이기에, 적극적으로 타인의 신체나 정서를 해치는 행위는 용서되기 어렵다. 그것이 설사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기 표현이라 하더라도.
-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 모든 인간은 그 존재, 피부색, 모습, 출신, 종교 등의 이유로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 존재 등이 비록 다른 인간들에게 호불호나 불편의 이유는 될 수 있을지라도, 박해나 배척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 이유로 인해 보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 이 문제를 생각하는 매우 좋은 잣대는 공감 상상력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 자신 혹은 내 자식이나 가족일 때를 상상해보면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느낀 감정에 따라 상대를 재단하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불편한 체취를 발산하는 사람은 제거대상인 악이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상상해볼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생각으로 귀결될 수 있다. 생각해보자. 만약 내 피붙이 중 누군가가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체취로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하는 체질이라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야 할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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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t und sein

https://brunch.co.kr/@lkj2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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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thenae.tistory.com/1954

 

[허성원 변리사 칼럼]#109 존재인가 행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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