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이관과 증조할아버지의 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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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병신년)에 모든 제사를 서울로 이관했다. 이관을 고하는 절차는 설날 차례를 지내면서 간략히 그 취지를 언급한 축문을 독축하는 것으로 이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장남으로써의 유기된 직무를 드디어 넘겨가져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근 20년 가까이를 동생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제사를 맡아왔다. 제수씨의 수고를 더는 만큼 우리 부부의 심적 부담도 많이 가벼워졌다. 지차 입장에서 어른들 수발하며 4대 봉제사에 정성을 다하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제수씨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와 그동안의 노고는 내 평생의 고마운 마음의 빚이 될 것이다.
제사를 이관하고 나니 매 기일마다 아버지는 서울 나들이를 하셔야 했다. 동생 가족은 아무래도 업이 있으니 부득이 윗대 제사는 참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아버지는 거의 빠지지 않고 혼자서 올라오신다.
첫 해에는 매 제사날이 오면 아침 일찍 그 제사의 어른을 모신 산소에 들렀다 오셨다. 여쭈어보니 제사가 서울로 옮겼졌음을 산소에서 다시 고하고, 조상님들께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린다고 하신다. 보통 정성스런 마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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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다음 날 집에 있던 제사 용품들을 모두 챙겨서 서울로 옮겼다. 그 중에는 대를 이어 내려온 낡은 궤짝도 함께 가져왔다. 그 궤짝 안에는 별 게 다 들어 있었다. 대부분은 내 한문 실력으로는 읽어내기가 어렵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증조부님이 쓰시던 필갑이었다.
필갑의 뒷면을 보니 임인년에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임인년은 1902년과 1962년이 해당하는데, 일제 때의 호적등본도 들어있는 걸 보면, 적어도 1902년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1902년이라면 무려 117년이나 된 것이다.
그 속에는 소화7년 작은 아버지의 국민학교 졸업장도 있고, 소화11년에 할아버지가 매입한 선산의 매도증서도 있다.
그리고 나의 대학 1학년 때 성적표도 있다. 행정우편으로 보내온 것을 아버지가 귀한 서류라고 생각하고 넣어두신 모양이다. 성적 내용은 내가 필기로 기입한 것이다. 세월은 이토록 흘렀지만 부끄러운 성적은 조금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
가락국기 필사본도 들어 있다. 신유년이라 표시된 걸 보니.. 1921년이나 1861년의 것인 듯하다.
틈이 날 때마다 필갑 속의 자료들을 하나씩 해독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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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의미있는 책자가 들어있다.
혼례 서간문 서식, 상례나 제사의 서식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책자는 내가 어릴 때부터 축문을 쓸 때 항상 참고해왔는데, 이번에 내용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니 약 100페이지에 이르는 매우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대부분 지금은 쓰일 일이 없는 내용들이지만, 나름 격식을 차려 서신을 써야 할 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책 내용 중에는 구황장생법도 들어있다.
어려웠던 시절에 식량을 부족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지혜를 담은 내용이다. 찬찬히 공부해볼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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