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24 포스팅>
방금 문상을 다녀왔다.
돌아가신 분은 큰 누나의 시어머니이신데, 올해 95세라고 한다. 누나는 이 분의 셋째 며느리.
그 어른은 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바깥어른을 여의고, 근 65년 이상을 홀몸으로 대가족을 이끌어오시면서, 대농가에서 농사일을 도맡고 시아버지를 수발하면서 용같고 범같은 아들 다섯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덩실하게 키워내셨다. 지금 그 슬하에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부, 손녀, 손서, 증손자 증손녀 등 대충 어림 잡아도 50명의 엄청난 대식구가 있다.
내가 처음 본 인상은 정말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여장부셨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43년 전에 누나가 시집을 갔을 때, 나는 상객으로 따라가 그 분을 처음 뵈었다. 관심과 의욕으로 가득찬 눈빛과 날랜 몸움직임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가끔 생질에게 할머니 근황을 물어보면, 얼마전까지도 그 많은 손주나 증손주 이름을 하나 틀림없이 기억하시고, 명절 때면 못오는 녀석들이 누군지 일일이 챙기실 만큼 자손들에 대한 애정과 욕심은 조금도 줄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엽엽하셨던 분이 이제 그자손들을 당신의 품에서 풀어놓으셔야 한다.
상문을 하다보니 누나의 큰 동서이신 그 집안 맏며느님을 뵙게 되었다. 오래 전에 뵐 때에 비해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진다. 그 아들에게 물어보니 올해 여든이라고 한다.
여든이라.. 큰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겨우 15세 차이였네. 바깥 분보다 두세살 많으시다고 하니 당시 관행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근 60년, 즉 한 갑자를 15살 많은 홀 시어머니 아래에서 시집살이를 하신 셈이다.
이 맏며느님은 왜소한 체구에 항상 조용하고 자기 주장이 없는 성격이셨다. 그래서 뵐 때마다 여장부인 시어머니 아래에서 힘든 시집살이에 할말 다 못하고 얼마나 속으로 삭히며 인고의 세월을 사셨을까 하고 안쓰럽게 여기곤 했었다.
이 어른도 여든이 되어서야 시집살이를 벗어나시게 된다.
고부 두 분의 삶이 가슴 아리게 그려지는 문상이다.
상념에 빠져 밥을 먹는 중에 갖 돌 지난 꼬맹이 한 놈이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다 내 식탁 가까이 와서 고추를 내놓고 종이컵에 쉬야를 하고 있다. 어른 밥상에서 볼 일을 보는 요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망인의 증손인 내 생질손 녀석이다.
저 증조모의 삶과 희생이 이 꼬맹이의 미래에 기름진 거름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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