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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의지란 무엇인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6. 5. 20.

의지란 무엇인가

의지(will)는 고대 그리스에는 없던 개념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왜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가'를 해명하기 위해 발명했다. 이후 의지론은 세 축에서 갈라진다. 이성과의 관계(주지주의 아퀴나스 대 주의주의 스코투스·니체), 자유의 정의(데카르트의 절대적 자유, 스피노자의 환상론, 칸트의 자율, 니체의 자기극복, 아렌트의 시작 능력), 의지의 범위(개인 심리에서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의지, 루소의 정치적 일반의지까지). 동아시아의 의·지·념·욕·기는 의지를 능력이 아니라 방향으로 본다. 호명의 정확성이 곧 사유의 정확성이다.

 

들어가며: 왜 의지가 문제인가

의지(will)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늦게 정립된 핵심 개념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에는 사실상 이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비로소 발명되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결정적이다. 의지는 자연 안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 경험(앎과 행함의 분열, 자유와 책임의 문제)을 해명하기 위해 개념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의지의 정의는 시대마다 다르고, 같은 단어 아래 전혀 다른 것이 지시된다.

이 노트는 의지 개념의 갈래를 시간순이 아니라 논리축으로 정리한다. 각 입장이 답하려는 문제와 그 답의 핵심 명제를 짝으로 제시하여, 어떤 사건이나 텍스트를 만났을 때 즉시 매칭할 수 있는 사유 도구함을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I. 세 가지 논리축

의지론을 가로지르는 근본 질문은 세 개다. 모든 철학자는 이 세 축의 어딘가에 자기 좌표를 찍는다.

제1축: 의지와 이성의 관계

의지는 이성의 한 기능인가, 이성과 구별되는 별도의 능력인가, 이성보다 상위의 원리인가. 이 축의 한쪽 끝은 주지주의(intellectualism)이고 다른 쪽 끝은 주의주의(voluntarism)다.

주지주의 입장에서는 의지가 이성에 종속된다. 우리는 '선해 보이는 것'만 의지할 수 있고, 무엇이 선해 보이는지는 이성이 결정한다. 따라서 도덕적 잘못은 본질적으로 인식의 잘못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무도 자발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οὐδεὶς ἑκὼν ἁμαρτάνει)'가 이 입장의 원형이다.

주의주의 입장에서는 의지가 이성을 거스를 수 있다. 무엇이 선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을 수 있고, 무엇이 악인지 알면서도 행할 수 있다. 인간 행위의 진정한 결정자는 이성이 아니라 의지다. 둔스 스코투스, 오캄, 그리고 멀리는 니체까지 이 계보에 속한다.

제2축: 의지의 자유와 결정

의지는 자유로운가, 결정되어 있는가. 자유롭다면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가.

절대적 자유 입장은 의지가 어떤 원인에도 구속되지 않는 능력이라고 본다. 데카르트의 무한한 의지가 대표적이다.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의 강한 버전이 여기 속한다.

결정론(determinism) 입장은 의지 작용도 사건이므로 원인을 가지며, 따라서 절대적 자유는 환상이라고 본다. 스피노자가 대표적이다.

양립가능론(compatibilism)은 '결정되어 있음'과 '자유로움'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 자유의 핵심은 '원인 없음'이 아니라 '자기 본성에 따름'이다. 스피노자의 후기 입장, 칸트의 자율, 헤겔의 '필연성의 인식이 자유'가 이 계열이다.

신경과학적 회의론은 최근의 입장이다. 의식적 결정이 신경 활동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후행한다면, 자유의지의 직관 자체가 흔들린다. 리벳 실험 이후의 논쟁이다.

제3축: 의지의 범위

의지는 개인 심리의 한 능력에 불과한가, 세계의 본질인가, 정치공동체의 시작점인가.

심리학적 의지는 의지를 개인의 능력으로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칸트까지의 주류 입장이다.

형이상학적 의지는 의지를 세계의 본질로 격상한다. 쇼펜하우어의 '세계의 본질로서의 의지'와 니체의 '힘에의 의지'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의지는 의지를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루소의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 헤겔의 객관적 정신, 아렌트의 '시작 능력으로서의 의지'가 여기 속한다.

II. 핵심 입장의 압축 정리

아우구스티누스: 분열된 의지

답하려는 문제. 왜 인간은 선을 알면서도 악을 행하는가. 그리스적 주지주의로는 이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

명제. 인간 안에는 이성과 구별되는 voluntas가 있으며, 이 의지는 단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싸운다(duae voluntates).

핵심 텍스트. '고백록' 8권. 정원에서의 회심 직전, '정신이 정신에게 명령하는데 정신이 따르지 않는다'는 자기관찰.

의의. 서양 사상사에서 '내면'이라는 공간이 발명되는 순간. 의지가 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별도의 능력으로 정립.

토마스 아퀴나스: 이성에 종속된 의지

답하려는 문제. 의지의 자유와 인간 행위의 합리성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

명제. 의지는 '이성이 선으로 제시한 것을 욕구하는 능력(appetitus rationalis)'이다. 의지의 자유는 이성이 제시한 여러 선들 중 선택할 자유이지, 이성을 거스를 자유가 아니다.

위치. 제1축에서 주지주의 끝에 위치.

둔스 스코투스: 자기결정으로서의 의지

답하려는 문제. 의지가 이성에 종속된다면 진정한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명제. 의지는 이성보다 상위의 능력(voluntas superior intellectu)이다. 어떤 대상이 선이라 판단되어도 의지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의지의 본질은 자기결정이다.

의의. 주의주의의 본격 출발점. 종교개혁(특히 칼뱅의 신적 주권론)과 근대 자유의지론, 멀리는 실존주의까지 이어지는 계보의 시작.

데카르트: 무한한 의지

답하려는 문제. 신이 완전하다면 왜 인간은 오류를 범하는가.

명제. 인간의 지성은 유한하지만 의지는 무한하다. 의지의 범위가 지성의 범위를 초과할 때 오류가 발생한다. 오류는 인식의 한계가 아니라 의지의 성급함이다.

핵심 텍스트.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제4성찰.

의의. 판단(judgment)을 의지의 행위로 재정의. 키르케고르의 '믿음의 도약', 윌리엄 제임스의 'will to believe'까지 이어지는 결단주의(decisionism)의 원형.

스피노자: 환상으로서의 자유의지

답하려는 문제. 모든 사건이 원인을 가진다면 자유의지는 어떻게 가능한가.

명제. 정신 안에는 어떤 절대적이거나 자유로운 의지도 없다(에티카 2부 정리 48). 우리가 자유롭게 의지한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행위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비유. 허공에 던져진 돌이 의식을 가졌다면 자신이 자유의지로 날아간다고 믿을 것이다.

전환. 그러나 진정한 자유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결정되지 않음'이 아니라 '자기 본성에 따라 결정됨'이다. 외부 원인에 휘둘릴 때 수동적(passio)이고,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를 때 능동적(actio)이며 자유롭다.

의의. 양립가능론의 고전적 형태. 헤겔의 '필연성의 인식이 자유'로 이어지는 사유의 원형.

칸트: 자율로서의 의지

답하려는 문제. 자유와 도덕법칙을 동시에 정초하는 길은 무엇인가.

핵심 구별. Wille와 Willkür의 구별. Wille(의지)는 실천이성 그 자체이며 도덕법칙을 입법한다. Willkür(자의)는 구체적 상황에서 무엇을 행할지 선택하는 능력이며 경향성에 굴복할 수도 있다.

명제. 자유의 본질은 '하고 싶은 대로 함'이 아니라 자율(Autonomie), 즉 스스로에게 법칙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외부 법칙을 따르는 것은 타율(Heteronomie)이고, 본능과 욕망에 따르는 것 역시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이므로 타율이다.

핵심 텍스트. '실천이성비판', '도덕형이상학 정초'.

의의. 자유와 당위(Sollen)를 동일한 것의 두 얼굴로 정립. 이후 모든 의지 논쟁이 칸트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쇼펜하우어: 세계의 본질로서의 의지

답하려는 문제. 칸트가 '알 수 없다'고 한 물자체(Ding an sich)에 접근할 통로는 없는가.

논증의 발판. 우리는 자기 신체를 두 방식으로 안다. 밖에서는 표상으로, 안에서는 의지의 작용으로. 즉 신체는 객관화된 의지다. 이 발판에서 세계 전체가 의지의 객관화임을 추론.

명제. 세계의 본질은 합리적 로고스가 아니라 맹목적이고 끝없는 의지(blinder Wille)다. 만유인력에서 식물의 생장, 동물의 욕구, 인간의 갈망까지 모두 단일한 의지의 다양한 객관화 등급이다.

귀결. 의지에는 목적도 만족도 없다. 욕망이 충족되면 권태가, 권태에서 새 욕망이 나오며, 욕망은 결핍이므로 고통이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 운동이다.

해방의 길. 예술(특히 음악, 의지의 직접적 객관화)을 통한 일시적 의지의 정지. 금욕을 통한 의지의 부정(Verneinung des Willens).

핵심 텍스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의의. 의지를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끌어올림. 베단타와 불교와의 깊은 접속.

니체: 힘에의 의지

답하려는 문제.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결핍과 고통의 원리라면, 그것이 정말 생명의 본질인가.

명제. 생명의 원리는 '생존에의 의지'가 아니라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다. 단지 살아남으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할 수 있고 더 강해지려는 것, 자기를 극복하려는 것이 모든 생명의 원리다.

오해의 교정. 여기서 '힘'은 타자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의 능력이다. 자기 자신을 더 높은 형태로 조형하는 능력.

귀결. 가치의 원천이 재정의된다. 플라톤 이래 가치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니체에게 모든 가치는 힘에의 의지가 창출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가치의 전도(Umwertung aller Werte)'가 가능하다. 노예도덕은 약자의 힘에의 의지가 무력함을 미덕으로 전환한 것이고, 주인도덕은 강자의 힘에의 의지가 자기긍정으로 표현된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입장. 자유의지 논쟁 자체가 잘못 설정된 문제다. '자유의지'도 '결정론'도 모두 형이상학적 허구다. 실제로 있는 것은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의 구별이다.

핵심 텍스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유고집 '힘에의 의지'.

프로이트: 무의식에 의한 의지의 탈중심화

명제. 의식적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믿는 것은 실은 억압된 욕동(Trieb)의 우회로다. 의지는 무의식의 표층 효과로 환원된다.

의의. 의지론에 대한 세 번의 큰 모욕(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 중 마지막. 인간이 자기 정신의 주체라는 직관이 무너진다.

앤스컴: 의도(intention)로의 해체

답하려는 문제. '의지'라는 신비한 실체가 정말 필요한가.

명제. 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의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는 방식, 즉 어떤 기술(description) 아래에서 그 행위를 의도하는가다. 의지 개념이 해체되고 의도 개념으로 대체된다.

핵심 텍스트. G.E.M. Anscombe, 'Intention'(1957).

의의. 분석철학에서 의지 개념의 형이상학적 부담을 제거한 결정적 작업.

리벳: 신경과학적 도전

답하려는 문제. 의식적 결정이 정말 행위의 시작점인가.

발견. 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이려 결정하기 약 350밀리초 전에 이미 뇌의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 Bereitschaftspotential)가 나타난다. 결정이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뇌는 이미 결정해놓았다.

논쟁. 이 결과가 자유의지의 부정을 함의하는지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리벳 자신은 '의식적 거부(veto) 능력'은 남아 있다고 보았다.

의의. 자유의지 직관이 신경과학의 도전 앞에 다시 검증대에 오름.

아렌트: 시작하는 능력으로서의 의지

답하려는 문제. 의지를 정치공동체와 인간 조건의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길은 무엇인가.

명제. 의지는 과거를 향한 사유(thinking)와 달리 미래를 향하며, 새로움을 세계에 도입하는 능력(faculty of beginning)이다. 인간이 탄생한다는 사실(natality) 자체가 새 시작의 존재론적 근거이며, 의지는 이 탄생성의 정신적 표현이다.

핵심 텍스트. 'The Life of the Mind' 2권 'Willing'.

의의. 의지를 개인 심리에서 정치적 자유의 토대로 확장. 자유를 '없는 것을 선택할 능력'이 아니라 '없던 것을 시작할 능력'으로 재정의.

III. 입장 간 비교

의지와 이성의 관계 (제1축)

주지주의 끝: 아퀴나스. 의지는 이성이 선으로 판단한 것에 종속.

중도: 칸트. 의지는 실천이성 그 자체이므로 양자가 분리되지 않음.

주의주의 끝: 스코투스, 오캄, 쇼펜하우어, 니체. 의지가 이성을 능가하거나 이성의 토대.

자유와 결정 (제2축)

절대적 자유: 데카르트, 스코투스.

엄격한 결정론: 스피노자(전기 해석), 일부 신경과학적 해석.

양립가능론: 스피노자(후기 해석), 칸트, 헤겔.

논쟁의 해체: 니체(잘못 설정된 문제), 앤스컴(다른 어휘로 이동).

의지의 범위 (제3축)

심리학적 의지: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스코투스, 데카르트, 칸트.

형이상학적 의지: 쇼펜하우어, 니체.

정치적·존재론적 의지: 루소, 헤겔, 아렌트.

자유의 정의

'원인 없음'으로서의 자유: 데카르트, 스코투스 계열.

'자기 본성에 따름'으로서의 자유: 스피노자.

'자기입법'으로서의 자유: 칸트.

'자기극복'으로서의 자유: 니체.

'시작'으로서의 자유: 아렌트.

IV. 의지와 인접 개념의 구별

의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비슷해 보이는 인접 개념과의 차이를 짚어야 한다.

욕망(desire)과의 차이

욕망은 대상을 향한 끌림이고, 의지는 결단의 능력이다. 욕망은 여러 개일 수 있고 서로 충돌할 수 있지만, 의지는 그 충돌을 결정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를 발명했을 때 욕망의 다층성을 그 발명의 근거로 삼았다.

다만 쇼펜하우어 이후 의지와 욕망의 경계가 흐려진다. 쇼펜하우어의 Wille는 사실상 거대한 욕망의 흐름에 가깝다. 이때 의지는 더 이상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된다.

의도(intention)와의 차이

의도는 행위에 부여된 의미이고, 의지는 그 행위를 일으키는 힘이다. 의도는 항상 어떤 기술 아래의 의도(intention under a description)이며 언어적 차원에 속한다. 의지는 비언어적 충동 또는 능력으로 상정된다.

분석철학은 의지의 형이상학적 부담을 덜기 위해 의지를 의도로 환원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이것은 의지 개념의 풍부함(특히 형이상학적 차원)을 잃는 대가를 치른다.

동기(motive)와의 차이

동기는 행위의 이유이고, 의지는 그 이유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능력이다. 동기는 복수일 수 있지만, 의지는 단일한 결단에 이른다.

칸트는 동기를 두 종류로 나누었다. 경향성(Neigung)에서 나오는 동기와 의무(Pflicht)에서 나오는 동기. 진정한 도덕적 의지는 의무에서 나온 동기에 따른다.

결단(decision)과의 차이

결단은 의지의 순간적 행위이고, 의지는 그 행위를 가능케 하는 능력이다. 결단은 시간 안의 한 점이지만, 의지는 그 결단을 산출하는 지속적 구조다.

키르케고르와 사르트르는 결단을 의지의 본질로 본다. 반면 동아시아의 지(志) 개념은 결단보다 지속(念念不忘)에 무게를 둔다.

자유(freedom)와의 차이

자유는 의지의 한 양태이지 의지 그 자체가 아니다. 의지가 외부 강제 없이 작동할 때 자유롭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 '외부 강제'인지에 대한 답이 자유의 정의를 결정한다.

V. 동아시아 비교 부록

서양 will을 한국어로 옮길 때 '의지'라고 단순히 적지만, 한자문화권에는 의지를 가리키는 말이 최소 다섯 개가 있다. 이 다섯 글자의 미세한 차이가 동아시아적 의지론의 결을 보여준다.

의(意)

마음의 움직임 일반. 아직 결정에 이르지 않은 마음의 떨림. '誠意正心(성의정심)'의 의. 대학(大學)에서 의는 '마음이 발한 것(心之所發)'으로 규정된다.

가장 가까운 서양 개념. 후설의 지향성(intentionality). 무엇을 향한 마음의 방향 자체이지, 그것을 실현하려는 결단은 아직 아니다.

지(志)

방향이 정해진 의지. 글자 자체가 士(선비) + 心(마음)으로, 선비의 마음, 즉 가리키는 바가 분명한 마음이다. 논어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의 지. 입지(立志), 지학(志學), 지절(志節)의 지.

가장 가까운 서양 개념. 칸트의 Wille. 단, 결정적 차이가 있다. 칸트의 자율은 개인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법칙이지만, 동아시아의 지는 스승, 전통, 고전을 통해 형성된다. 자율과 사숙(私淑)의 차이.

념(念)

지속하는 마음.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그 결단을 매 순간 갱신하는 능력. '念念不忘(염염불망)'의 념. 불교 용어로 들어오면서 마음의 순간적 단위(찰나의 마음)로도 쓰이지만, 유가적 맥락에서는 지속의 의미가 강하다.

서양 의지론의 결손 지점. 서양 의지론은 결단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강하나, 결단을 매 순간 갱신하는 시간적 차원을 잘 다루지 못한다. 념은 이 결손을 메우는 개념이다.

욕(欲)

욕망. 그러나 유가는 욕을 의지의 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從心所欲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 -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 70세 공자의 경지.

이것은 칸트의 자율을 동양식으로 표현한 것에 가장 가깝다. 욕과 의지가 분열되지 않고 합치한 상태. 칸트가 자율을 의무(Sollen)와 경향성(Neigung)의 긴장으로 그렸다면, 공자는 그 긴장이 해소된 경지를 그렸다.

기(氣)

마음의 동력. 의지의 에너지적 차원. 맹자의 '夫志, 氣之帥也(부지 기지수야)' - 지는 기의 장수다. 지가 방향을 정하면 기가 그 방향으로 흐른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의롭게 길러진 기의 충만한 상태.

서양 의지론에는 정확한 대응 개념이 없다.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일종의 우주적 에너지로 그려질 때 가장 가깝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맹목적이고 기는 도덕적 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핵심 대조

서양 의지론은 의지를 '능력(faculty)'으로 본다. 무엇을 할 수 있는 힘. 동아시아는 의지를 '방향(orientation)'으로 본다.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그래서 서양은 '의지의 강약'을 묻고, 동아시아는 '뜻의 고하(高下)'를 묻는다. 서양의 강한 의지는 어떤 방향이든 관철해내는 힘이지만, 동아시아의 높은 뜻은 그 방향 자체의 격을 가리킨다. 같은 강도의 의지라도 가리키는 바가 낮으면 동아시아적으로는 평가받지 못한다.

양명학의 치양지(致良知)는 두 전통을 절묘하게 매개한다. 양지는 칸트의 실천이성처럼 보편적 도덕능력이지만, 동시에 매 순간 '치(致)'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의 입법이 아니라 지속적 갱신. 칸트의 자율에 동아시아의 념(念)이 결합된 형태로 읽을 수 있다.

VI. 정리: 사유 도구함으로서의 의지 개념

어떤 사건이나 텍스트에서 의지가 호명될 때, 다음 질문들로 그 의지의 정체를 식별할 수 있다.

첫째, 그 의지는 이성에 종속되는가, 이성을 거스를 수 있는가, 이성 자체인가. 이 답이 그 입장을 주지주의/주의주의/칸트적 종합 중 하나에 위치시킨다.

둘째, 그 의지의 자유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원인 없음', '자기 본성에 따름', '자기입법', '자기극복', '시작' 중 어느 것인가.

셋째, 그 의지는 개인의 능력인가, 세계의 본질인가, 공동체의 시작점인가.

넷째, 그 의지는 결단의 순간을 가리키는가, 지속의 시간을 가리키는가.

다섯째, 그 의지는 무엇을 척도로 삼는가. 외부의 객관적 기준인가, 스스로 부여한 법칙인가, 자기 자신의 과거인가.

이 다섯 질문을 통과시키면 같은 단어 '의지' 아래 작동하는 전혀 다른 개념들을 식별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주인의식', 자기계발서의 '강한 의지', 종교적 결단, 정치적 결의, 예술가의 창조 의지가 같은 이름 아래 부르고 있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의지 개념의 다층성을 알지 못하면 그 모든 호명이 하나의 의지를 가리키는 것처럼 들린다. 다층성을 알면 호명마다 그것이 어떤 의지인지, 그 의지가 어떤 문제 아래 발명된 것인지,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를 함께 본다. 호명의 정확성이 곧 사유의 정확성이고, 사유의 정확성이 곧 행위의 정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