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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29

[촉석루칼럼] 나는 나의 욕망을 욕망하고 싶다 _191023 나는 나의 욕망을 욕망하고 싶다 쇼핑 알레르기인가. 아내의 등살에 백화점에 끌려가면 그저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잠과 짜증이 밀려온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두어 시간은 곱다시 포로 신세다. 나와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저께 가을 재킷을 사야 한다고 끌고 가며 아내가 댄 이유는, ‘남들 앞에 자주 서는데’, ‘남들 보는 눈’, ‘마누라 체면’ 등이다. 그 말 중에 ‘나’는 없다. 쇼핑은 오로지 ‘타인’을 위한 것이다. 생각해본다. 지금 나의 삶은 내가 원한 모습인가? 집, 차 등 물건, 만나는 사람, 나가는 모임, 이끄는 조직, 이 모두가 내가 욕망한 것인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홀로 살면 굶주림과 추위만 피할 수 있으면 내 욕망은 족하리라. 필시 내 삶은 ‘타인의 욕망’이 지배하고 있다.. 2019. 10. 20.
[촉석루칼럼] 굶어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_ 191016 굶어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우리 집은 양파 농사를 많이 지었다. 아버지는 일 벌이는 손이 크셔서 남의 논을 빌려서까지 짓기도 했다. 벼농사 없는 겨울 비수기에 양파는 정말 알뜰한 환금 작물이었다. 그런데 양파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수년에 한 번은 꼭 폭락하는 것이다. 당시 정부의 시장 관리가 부실하여 농민들의 자율에 의존하다보니, 과잉 생산에 따른 폭락과 그 피해를 피하기 힘들었다. 못다 판 양파는 집으로 가져와 마당에 황태덕장처럼 널어두고 팔릴 때마다 조금씩 출하했다. 이내 한여름이 오고 일부 썩어나기 시작한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그 썩는 내가 느껴졌으니, 보통 민폐가 아니었다. 썩은 것을 골라내는 일은 누나들의 몫이었다. 수줍은 소녀 시절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양파는 끊임없이 썩고,.. 2019. 10. 20.
[촉석루칼럼] 좋은 말 3배의 법칙 _191009 '좋은 말' 3배의 법칙 찻집에서 건너편의 젊은이가 다리를 떨어댄다. 심히 거슬린다. 다리 떨면 복 나간다는데. 저리 떨면 복이 털려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거다. 이처럼 말과 행동의 겹친 뜻 때문에 억울하게 금지당한 행동들이 적지 않다. 특히 밥상에서 말아먹거나, 엎어먹거나, 덜(들)어먹거나, 털어먹으면 혼난다. 그 행위와 연결된 말의 부정적인 의미를 저어한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함부로 방정맞은 말을 내뱉지 않도록 말 습관이나 섣부른 예단을 조심해야 한다. 가끔 어설피 내뱉은 말이 기가 막히게도 현실이 되기도 하고, 죽음, 이별 등을 애절히 노래한 가수가 노랫말과 같은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말의 힘'은 늘 체험된다. 작은 좋은 말 한 마디에 가슴 가득 행복하다가, 회의 중의 김빠지는.. 2019. 10. 2.
[촉석루칼럼]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_ 191001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내가 나가는 한 모임에서 회비에 여유가 생겨 그 여유 자금을 의미 있게 쓰고자 의논을 했다. 이에 누가 금배지를 제안했다. 금배지를 달고 다니면 소속감과 자부심이 높아질 것이라 여겨, 대다수가 동의하고 시행되었다. 그런데 비싼 물건이니 분실이 우려되었다. 그래서 동일한 디자인의 모조품을 만들어 함께 나눠주었다. 좀 지나고 나니 내가 옷에 단 것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헷갈렸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진품은 소중히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회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싼 금배지는 어두운 상자 속에 갇혀지게 되고, 자부심과 소속감을 고양시켜야 하는 그 본래의 기능은 모조품이 대신하여 진짜인 양 번쩍거리며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2019.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