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욕망을 욕망하고 싶다
쇼핑 알레르기인가. 아내의 등살에 백화점에 끌려가면 그저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잠과 짜증이 밀려온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두어 시간은 곱다시 포로 신세다. 나와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저께 가을 재킷을 사야 한다고 끌고 가며 아내가 댄 이유는, ‘남들 앞에 자주 서는데’, ‘남들 보는 눈’, ‘마누라 체면’ 등이다. 그 말 중에 ‘나’는 없다. 쇼핑은 오로지 ‘타인’을 위한 것이다.
생각해본다. 지금 나의 삶은 내가 원한 모습인가? 집, 차 등 물건, 만나는 사람, 나가는 모임, 이끄는 조직, 이 모두가 내가 욕망한 것인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홀로 살면 굶주림과 추위만 피할 수 있으면 내 욕망은 족하리라. 필시 내 삶은 ‘타인의 욕망’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이 철학 명제처럼, 우리는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신체를 가꾸고 경제적, 정치적 힘을 키우는 한편, 가족 등 타인의 욕망을 위해 땀 흘린다. 내 욕망의 원주인인 ‘타자’는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언젠가 내가 변하거나 이룰 미래의 가상적 '나'를 욕망한다. 나는 그들이 가진 욕망을 알아내어 나의 욕망으로 삼고, 마치 원래 내 것인 양 여기며 힘껏 노력한다.
나는 ‘나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공자님은 나이 70에 이르러서야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欲不踰矩)’고 했다. 공자님조차도 70살에야 도달할 수 있던 경지이니, 우리 같은 필부에게는 언감생심인가.
그런데 실제로 수많은 타자의 욕망을 위해 사는 거룩한 삶이 있다. 그들은 ‘리더’라 불린다. 기업인 등 리더는 그를 따르는 많은 타자에게 욕망을 심어주고 그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아 스스로 구속되는 숙명을 가졌다. 그들의 외롭고 고귀한 노력과 희생으로 세상은 존속하고 번성한다.
리더들이여, 외롭고 힘들 때 이 주문을 외워보시오. 스스로를 위로하며 최면하기에 나름 효험이 있을 듯하오.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나의 욕망을 욕망한다.’
<경남신문 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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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_ 論語 爲政篇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바로 서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고, 쉰 살에 천명을 알고, 예순 살에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에 따라도 법도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26952&categoryId=51342&cid=4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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