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效嚬)
(얼굴 찡그림을 흉내내다)
서시(西施)가 가슴에 병을 앓아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 마을의 추녀가 그녀를 보고 얼굴 찡그림이 아름답다고 여겨,
돌아가 자신도 가슴을 손으로 받치며 찡그리고 다녔다.
그것을 보고
마을의 돈 많은 사람은 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은 아내와 자식을 이끌고 마을을 떠났다.
그 여자는 찡그린 것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을 뿐
찡그린 것이 아름답게 보인 까닭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西施病心而嚬其里(서시병심이빈기리)
其里之醜人(기리지추인) 見之而美之(견이미지)
歸亦捧心而嚬其里(귀역봉심이빈)
其里之富人見之(기리지부인견지) 堅閉門而不出(견폐문이불출)
貧人見之(빈인견지) 挈妻子而去之(설처자이거지)
彼知嚬美而不知嚬之所以美(피지미빈이부지빈지소이미)
_ 장자(莊子) 천운편(天運篇)
* 效 : 본받을 효, 嚬 : 찡그릴 빈, 挈 : 손으로 끌 설.
<西施浣紗圖, 서시가 빨래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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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유머
추녀의 찡그린 모습이 아무리 보기 불편하기로서니, 문을 걸어잠그고 출입을 삼가하고 심지어는 가족들을 이끌고 마을을 떠나다니..
장자(莊子) 내에서 가장 유머감각이 뛰어난 고사로 여겨진다.
장자(莊子)는 이 고사를 들어 공자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빈정대고 있다.
공자가 옛날 주(周)나라 시대의 이상정치를 난세인 춘추시대 말기에 위(衛)나라와 노(魯)나라에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노력에 대해, 성인이 한 일이라고 무작정 흉내를 내는 것은 시대 변화를 망각한 상고주의(尙古主義)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제도나 도덕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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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西施)
서시(西施)는 고대 4대 미녀를 의미하는 침어 낙안 폐월 수화(浸魚 落雁 閉月 羞花) 중 침어(浸魚)로 상징되는 미녀이다. 침어(浸魚)는 서시가 빨래를 할 때 물고기도 그 미모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다.
이 서시는 오왕(吴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범려(范蠡)의 미인계 책략을 받아들여 부차에게 바친 미인이다. 결국 서시의 활약으로 구천는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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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축(嚬蹙)
'
효빈(效嚬)'은 '서시빈목(西施嚬目)'(서시가 눈을 찡그리다) 혹은 흉내를 낸 추녀를 서시(西施)에 대응시켜 동시(東施)라 지칭하면서 '동시효빈(東施效嚬)'(동시가 '눈 찡그림'을 흉내낸다)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시빈축(東施嚬蹙)' 혹은 그냥 '빈축(嚬蹙)'이라고도 한다. 빈축(嚬蹙) 역시 얼굴을 찡그린다는 뜻으로, 우리가 타인의 비난을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빈축을 사다'라는 표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서시는 본래 대단한 미인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파 찡그리고 다니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동시(東施)는 그저 그 찡그림만을 주목했던 것이다.
이처럼 '효빈(效嚬)'은 겉모습만 보고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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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캣(Copycat)과 창의적 모방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효빈(效嚬)은 카피캣(Copycat)이라 불린다.
남의 기술이나 아이디어 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모방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때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추격하는 삼성전자를 그렇게 부른 적이 있다.
하지만 모방은 인간의 태생적 본능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 동작과 언어, 지식은 누구가로부터 모방을 통해 습득한 것이다. 그러니 기업활동도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피카소는 "유능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맹목적 모방이라면 세인의 빈축(嚬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세인의 빈축이 아닌 칭송을 받을 수 있는 모방은 있는가? 존경받는 모방을 창조적 모방이라 한다. 모든 창의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예외없이 기존의 존재를 모방하는 것에 기초하지만 세인의 존중을 받는다.
그러한 창의력을 스티브 잡스는 '연결'이라고 하였다. "창의력이란 그저 사물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 연결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애플의 스마트폰이 서로 다른 디지털 기기들을 하나로 통합하였고, 정주영의 새만금 물박이 공사는 폐선박을 끌어왔다. 휴롬의 원액기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기술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한 '연결'에 의해 새로이 부여되거나 창출된 창의적 가치는
기존의 존재하던 각각의 가치를 현저하게 능가하게 되고,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들을 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창의력의 궁극적인 비결은
"사람들이 부가된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여 기존의 가치를 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의 비밀은 그 출처를 숨기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그 숨기는 수단은 새로운 창의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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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지보(邯鄲之步)
장자(莊子)는 효빈(效嚬)과 유사한 개념으로 추수편(秋水篇)에서 '한단지보(邯鄲之步)'의 고사를 소개하고 있다.
어슬프게 남의 흉내를 내다가 주체성 마저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가르치는 고사이다.
"그대는 수릉(壽陵, 燕의 수도)의 젊은이가
한단(邯鄲, 趙의 수도)에서 걸음걸이를 배웠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그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미처 터득하기 전에
옛 걸음걸이를 잊어버리고 말았다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갈 때 엎드려 기어서 겨우 갈 수 있었다네."
且子獨不聞 壽陵餘子之學行於邯鄲與(차자독불문수릉여자지학행어한단여)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미득국능 우실기고행의 직포복이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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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빈가(效嚬歌)
조선 중기 이현보(李賢輔)의 문집 『농암문집(聾巖文集)』에 수록된 시조이다.
작자가 긴 관직 생활에서 은퇴한 후 전별하는 자리에서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를 읊다가 흥이 더하여져 이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歸去來 歸去來(귀거래 귀거래) 말이오 가리업싀
田園(전원)이 將蕪(장무)니 아니가고 엇델고
草堂(초당)에 淸風明月(청풍명월)이 나명들명 기리니.
이 내용의 일부는 소식(蘇軾)의 '적벽부'와 상통하다고 하니,
작가는 아마도, 그의 뜻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를 따르고 그 내용은 소식(蘇軾)의 '적벽부'를 모방하였지만,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여겼기에 '효빈가(效嚬歌)'라 이름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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