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르는 것은 도(道)의 움직임이다
(反者道之動 반자도지동)
거스르는 것은 도(道)의 움직임이요,
변화하는 것이 도(道)의 활용이다.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며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난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_ 노자도뎍경 제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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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언(도덕경 제40장)은 마치 선문답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어 놓았지만, 어느 해석도 선뜻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도올을 포함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앞부분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반자도지동(反者 道之動) 약자도지용(弱者 道之用)'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요, 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다."
나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는 무슨 뜻인지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전혀 다르게 해석해본다(如是我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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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者 道之動( 반자도지동)
'반(反)'은 '거스름'을 가리킨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거나 통념을 반하는 것이다.
도(道)는 바위와 같은 정적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고 변하는 동적인 가치이다.
현재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올바른지 여부를 끝없이 되묻고,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부단히 재해석하는 것이
도의 올바른 움직임이다.
즉, 매사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 그것이 도의 움직임 즉 도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反者道之動( 반자도지동) : 거스르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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弱者道之用(약자도지용)
'약(弱)'은 활(弓)을 휘어 구부린 상태를 상형한 글자이다.
구부러지니 약하다.
그래서 '약(弱)'은 통상적으로 약함이나 어림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약(弱)'의 의미를 '휨'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휨'은 사물을 기존 상태로부터 벗어나 다른 상태로 변형됨을 의미한다.
즉 '약(弱)'은 '변화'이다.
그리고 모든 '변화'는 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문구는 이렇게 해석한다.
弱者道之用(약자도지용) : 변화하는 것이 도의 쓰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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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문장의 전반부 해석이 매끄러워진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기존 상태에) 거스르는 것은 도(道)의 움직임이요,
(기존 상태를) 변화하는 것이 도(道)의 쓰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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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반부를 보자.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며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난다'
이 문장의 해석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말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등치시키기도 하고,
'무(無)'를 '도(道)'로 보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풀어본다.
앞 문장에서와 같이 반(反)하고 약(弱)하면, '통념에 거슬러 변화한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천하만물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 기존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하지만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그 새로운 것에 대한 누군가의 욕구 혹은 필요가 있어야 한다.
혹은 새로운 것으로부터 얻어야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새로움에 대한 욕구나 그로부터 생성되는 가치는
기존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본래 '무'였다.
그런 '무'에 기초하여 새로운 존재 즉 '유'가 창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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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릇을 예로 들어보자.
나무를 깍아 그릇을 만들면, 나무라는 존재에서 그릇이 만들어졌다.
그 그릇은 명백히 유(有)에서 창조된 것이다.
하지만, '그릇'이라는 기능과 그것을 갖고자 하는 욕구는 기존에 없었던 것이다,
나무라는 소재가 사람의 내부에서 생성된 필요와 욕구에 의해 그릇이라는 기능적 존재로 새로이 탄생하였다.
그러니 '그릇'은 존재는 현존하는 소재(有)에서 만들어졌지만,
소재가 그릇으로 구현되는 데 있어서는,
그 기능을 구하는 인간의 욕구(無)가 필연적으로 작용하였다.
그 욕구가 '무'로부터 새로이 창출되었고, 그에 의해 그릇이라는 '유'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만물은 존재하는 것에서 생성되지만,
그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의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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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는 만물의 생성과 창조 원리이니, 이에 기초하여 풀이하면 어렵지 않다.
이를 '발명'의 탄생'으로 비유해보기로 한다.
'발명' 역시 생성이나 창조의 한 모습이다.
발명이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면 발명의 요체는 문제의 발견(혹은 필요의 인식)과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있다.
문제의 발견은 발명의 첫걸음이다.
현재의 문제는 기존 상태에 대해 우호적이고도 안락한 시각을 가지고는 결코 찾을 수 없다.
현재 상태에 대해 통념에 반(反)하여 거스르는 시각과 비판적인 인식을 가져야만 문제를 찾을 수 있다.
현재 상태에 거스르는 것이 발명의 움직임 즉 그 시작이다(反者道之動).
문제를 찾으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해결책은 항상 기존 상태에 뭔가 변화를 가하는 조치이다.
변화를 가하는 것이 '약(弱)하는 것'이다.
변화시켜 얻어진 결과가 문제의 해결책이며 그것이 '발명'이다(弱者道之用).
이러한 발명은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여러가지의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성요소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어야 한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요소들을 이용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발명은 반드시 기존에 존재하는 것(有)으로부터 생겨난다(天下萬物生於有).
그런데 발명의 구성요소들은 개별적으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들의 조합된 상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無)이다. 존재하는 것(구성요소)들을 모아서 '존재하지 않는 조합'을 창출한 것이 발명이다. 그 '조합'의 가치는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았어야만 진정한 발명이 된다.
그래서 발명의 요체인 '구성요소의 조합'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변화를 통해 비로소 나타난 것이니,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이다(有生於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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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각 요소들은 개별적으로는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였을 수 있지만,
새로운 발명으로서 조합된 구성요소로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실체로서 존재는 하였으되, 새로운 발명의 구성요소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그릇의 예에서,
나무라는 소재로서는 존재하였지만
그릇이라는 기능적 존재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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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도덕경 제 40장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은 발명(道)의 움직임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발명(道)의 활용이다.
모든 발명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조합으로 생겨나지만,
새로운 발명(有)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필요나 문제(無)로부터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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