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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회의주의에 대해

by 변리사 허성원 2026. 5. 3.

회의주의에 대해

회의주의는 '쉽게 단정하지 말라'는 인식론적 태도다. 어원 'skepsis'는 의심이 아니라 거듭된 살핌을 뜻한다. 퓌론의 판단 유보(epoché)와 평정(ataraxia), 흄의 인과 회의, 장자의 제물(齊物), 선불교의 공안이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
회의주의는 비관주의·냉소주의와 다르다. 회의주의자는 '나도 틀릴 수 있다'며 탐구를 열고, 비관주의자는 '결국 안 될 것'이라며 탐구를 덮으며, 냉소주의자는 '어차피 다 그런 것'이라며 탐구를 조롱한다.
대척점은 독단주의·절대주의·본질주의다. 데카르트는 회의를 도구로 삼아 cogito에 도달한 회의의 사용자였고,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확신과 대화편의 검증 정신을 동시에 보여준 두 얼굴의 사상가였다.
리더에게 회의는 기본기이되 전부는 아니다. 비전에는 확신, 수단에는 회의. 뜻은 산처럼 단단하게, 방법은 물처럼 유연하게. 확신을 가진 회의주의자, 이것이 리더의 인식론이다.

I.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회의주의(skepticism)는 단일한 학설이 아니라 '쉽게 단정하지 말라'는 인식론적 태도가 시대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 사상의 흐름이다. 어원은 그리스어 'skepsis'(σκέψις, 탐구·살핌)에서 왔다. 흔히 '의심'으로 번역되지만, 본래 뜻은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섣불리 단정하지 않기 위한 거듭된 살핌에 가깝다. 회의주의자는 "모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리의 인식은 감각, 언어, 관습에 매개되어 있다. 매개된 인식이 사물 그 자체와 일치한다는 보증은 없다. 따라서 모든 단정적 명제, 곧 독단(dogma)에는 유보가 필요하다.

서양 회의주의의 계보

원형은 퓌론(Pyrrhon, 기원전 4세기)에서 시작된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에 동행하며 인도 사상가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지는데, 어떤 명제든 그에 반하는 명제를 동등하게 세울 수 있다(isostheneia)고 보았다. 결론은 '판단 유보'(epoché)이며, 이를 통해 마음의 동요 없는 평정(ataraxia)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를 체계화한 인물이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 2~3세기)이며, 그의 『퓌론주의 개요』는 후대 회의주의의 원전이 된다.

근대에 이르러 몽테뉴는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물음으로 회의주의를 인문주의적 자기성찰로 전환시켰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가장 날카로운 칼날로 평가된다. 인과관계조차 반복된 경험에서 추론한 습관일 뿐 사물 자체에 내재한 필연이 아니라고 보았다. 칸트는 흄이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웠다고 고백했다. 현대에 들어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원리가 회의주의의 과학적 형태를 이룬다.

동양에서의 회의주의적 흐름

동양에는 '회의주의'라는 분과가 따로 없지만, 같은 정신은 여러 곳에 흐른다. 장자(莊子)의 「제물론」이 그 정점이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것인가(胡蝶之夢)" 주체와 객체의 경계, 인식의 확실성 자체를 흔드는 물음이다. 시비(是非)는 입장의 산물일 뿐이며, 그 너머에서 만물을 평등하게 보는 '제물'(齊物)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선불교의 공안(公案)은 논리적 단정을 깨뜨리는 장치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나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狗子佛性)" 같은 화두는 언어와 개념의 한계 앞에서 판단 유보를 강제한다. 순자(荀子)는 「해폐(解蔽)」편에서 "사람의 마음은 한 면에 가려져 큰 도리를 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인식의 편향성에 대한 명료한 통찰이다.

II. 회의주의자, 비관주의자, 냉소주의자

회의주의는 자주 비관주의나 냉소주의와 혼동된다. 그러나 셋은 그 향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회의주의자는 판단에 대한 태도다. "이 명제가 참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말한다. 대상은 명제, 인식, 주장이며, 정서는 평정에 가깝다. 흄이 친구들과 저녁을 들며 농담을 즐겼다는 일화가 상징적이다. 인식론적으로는 까다롭되, 삶에서는 오히려 가벼운 사람일 수 있다.

비관주의자는 결과에 대한 태도다. "이 일은 나쁘게 끝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상은 미래, 세계, 인생이며, 정서는 우울과 체념이다. 쇼펜하우어가 전형이다.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전망의 문제다. 회의주의자는 "모른다"고 하지만, 비관주의자는 "안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라고 단언한다. 흥미롭게도 비관주의는 그 단정성에서 회의주의의 반대편에 선다.

냉소주의자는 동기에 대한 태도다. "사람들의 선의는 가짜다, 결국 자기 이익이다"라고 말한다. 대상은 인간의 진정성이며, 정서는 경멸과 조소다. 모든 고결함의 가면을 벗기는 데 쾌감을 느끼되, 정작 자신의 의심에는 의심을 적용하지 않는다.

원래 그리스의 키니코스(Kynikos, 견유학파)는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사람들로, 사회적 위선을 비웃었지만 그 바닥에는 진정한 미덕은 가능하다는 신념이 있었다. 통 속에 살면서도 알렉산드로스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말한 디오게네스는 냉소가가 아니라 극단적 도덕주의자였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냉소'는 이 정신이 뒤집혀 어떤 미덕도 진짜가 아니라는 쪽으로 변질된 것이다. 슬로터다이크가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지적한 대로, 현대의 냉소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자기기만의 형식이다.

한 줄로 정렬하면 이렇다. 회의주의자는 '나도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 비관주의자는 '결국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냉소주의자는 '어차피 다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다. 회의주의자는 탐구를 열고, 비관주의자는 탐구를 덮으며, 냉소주의자는 탐구를 조롱한다.

III. 회의주의의 대척점

회의주의의 대척점에는 독단주의(dogmatism)가 있다. 사실 이 구도는 우연이 아니라, 고대 회의주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직접 만들어낸 대립항이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철학자들을 셋으로 분류했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독단주의자), 진리는 발견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아카데미아 회의주의자), 그리고 여전히 탐구 중인 사람들(퓌론주의자). 그가 보기에 셋째만이 진정한 회의주의자다. "발견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순간 그것 또한 하나의 독단이 되기 때문이다. 회의주의는 자기 자신마저 의심함으로써 독단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 한다.

독단주의의 여러 얼굴

독단주의는 형이상학적 독단과 제도적 독단으로 나뉜다. 형이상학적 독단은 "세계의 본질은 X다"라고 단언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헤겔의 절대정신, 마르크스의 역사법칙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제도적 독단은 종교의 교의(dogma), 이념의 강령, 학파의 정통(orthodoxy)에서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는 회의의 정신에서 출발한 사상도 제도화되면 독단이 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 자신은 부르주아 경제학을 회의했지만, 후대의 마르크스주의는 정통 교의가 되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도 cogito에 도달한 순간 새로운 독단의 출발점이 된다.

절대주의와 본질주의

독단주의가 방법에 관한 태도라면, 절대주의(absolutism)는 진리의 성격에 관한 태도다. 도덕적 절대주의는 "선악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고정되어 있다"고 보고, 인식론적 절대주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며 우리가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절대주의의 반대는 상대주의(relativism)다. 그래서 종종 '회의주의=상대주의'로 오해되는데, 둘은 다르다. 상대주의는 진리는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고 단정하는 적극적 주장이고, 회의주의는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다고 유보하는 소극적 태도다.

본질주의(essentialism)도 회의주의의 또 다른 대립항이다. "어떤 것에는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본질이 있다"는 입장이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가족 유사성'으로 본질주의를 흔든 것이나, 푸코가 '광기·정상·범죄'의 본질을 역사적 구성물로 해체한 것이 모두 회의주의 정신의 현대적 변형이다.

IV. 데카르트의 역설

직관적으로 의심이라 하면 데카르트가 떠오른다. 그러나 철학사에서 데카르트는 대표적 회의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회의주의를 극복하려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역설이 데카르트 사상의 묘미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방법이었다. 그가 『방법서설』과 『성찰』에서 펼친 의심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였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토대를 찾기 위해,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자는 전략적 회의였다. 이를 '방법적 회의'(methodical doubt) 또는 '과장된 회의'(hyperbolic doubt)라 부른다.

의심의 세 단계

데카르트의 의심은 정교한 계단을 밟는다. 첫째, 감각의 의심.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 둘째, 꿈의 의심.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는 보증이 있는가? 셋째, 악령의 가설. 어떤 전능한 악령이 나를 속이려고 작정했다면, 2+3=5라는 수학적 진리조차 환상일 수 있지 않은가?

이 마지막 단계가 데카르트 회의의 정점이다. 감각, 물리세계, 수학까지 모두 의심의 대상이 된다. 여기까지 보면 데카르트는 극단적 회의주의자처럼 보인다.

의심의 자기 한계

바로 그 지점에서 데카르트는 회의를 반전시킨다. 모든 것을 의심해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 의심하려면 의심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찾은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다. 회의의 칼로 모든 것을 베어낸 끝에 베어낼 수 없는 것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출발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복원하며, 마침내 확실한 지식의 체계를 다시 세운다.

데카르트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라 회의의 사용자다. 그는 회의주의의 무기를 빌려 회의주의를 무너뜨린 사람이다. 마치 도둑의 기술을 익혀 도둑을 잡는 형사처럼.

V. 플라톤의 두 얼굴

데카르트의 사례가 흥미로우면 플라톤의 사례는 더 흥미롭다. 이데아라는 절대 진리를 믿었으니 플라톤은 독단주의자인가? 답은 단순하지 않다.

형이상학적으로는 독단주의 계열

이데아론은 분명 적극적 형이상학이다. 감각 세계 너머에 영원불변의 이데아가 존재하고, 이성을 통해 우리는 그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으며, 최고선의 이데아는 모든 것의 근거다. 이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분류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을 닫힌 사회의 사상적 원조로 비판한 것도 이 지점이다. 진리를 안다고 주장하는 자가 사회를 통치해야 한다는 철인왕 사상은 정치적 독단주의의 위험한 씨앗이 될 수 있다.

방법론적으로는 회의주의의 원천

그러나 플라톤이 어떻게 철학했는가를 보면 그는 오히려 회의주의의 친척에 가깝다. 첫째, 그는 자기 사상을 논문이 아니라 대화로 썼다. 진리가 명백하다면 선언하면 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이 서로 의심하고 검증하고 반박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었다. 형식이 곧 내용이다.

둘째, 플라톤이 가장 존경한 인물 소크라테스의 핵심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였다. 이것은 회의주의의 원형이다. 셋째, 『에우티프론』, 『라케스』, 『카르미데스』 같은 초기 대화편들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끝난다. 이 아포리아(aporia)의 정신이 회의주의의 직접적 조상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후기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이 자기 이론을 스스로 비판했다는 점이다. 늙은 파르메니데스의 입을 빌려 이데아론에 대한 정밀한 반박을 펼친다. 자기 이론의 가장 강력한 적수를 자기 작품 안에 등장시킨 셈이다.

플라톤이 죽고 약 100년 뒤, 그가 세운 아카데미아는 아르케실라오스(Arcesilaus, 기원전 3세기)의 영향으로 회의주의로 기울어진다. 그는 자기가 플라톤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본질은 대화편의 검증 정신에 있지 이데아론의 도그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형이상학적 결론에서는 독단주의의 계보를 열었지만, 철학적 방법에서는 회의주의의 정신을 보여준 사상가다. 그의 결론을 받아들이면 플라톤주의자가 되고, 그의 방법을 받아들이면 회의주의자가 된다. 진정한 사상가는 결론보다 방법이 위대하다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VI. 회의주의의 더 깊은 결

지금까지의 논의 너머에 더 짚어야 할 결들이 있다.

자기 모순 문제

회의주의가 마주하는 가장 오래된 비판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가? 만약 그것마저 의심한다면 회의주의는 자기 발 밑을 무너뜨리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의 독단이 된다. 이른바 '자기 논박'(peritrope) 논증이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응답이 정교하다. 회의주의는 명제가 아니라 태도이며,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고 말할 뿐이다. 회의주의는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모순을 피해 간다.

일상의 가능성 문제

흄이 던진 자기 질문이기도 하다. 모든 인과를 의심하면 내일 해가 뜬다는 것조차 보증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회의주의자는 어떻게 식사를 하고 약속을 지키는가?

흄의 답은 솔직하다. 철학을 떠나면 회의는 사라진다. 서재에서는 회의주의자이되, 당구장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철학과 일상의 분리는 회의주의의 미덕이자 한계다.

회의주의의 윤리

회의는 단순한 인식 태도가 아니라 윤리적 책무이기도 하다. W. K. 클리퍼드는 1877년의 유명한 논문 「믿음의 윤리」에서 단언했다. "충분한 증거 없이 무엇이든 믿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잘못이다." 이 명제는 회의를 지적 의무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음모론에 휩쓸리거나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행위가 단순히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비윤리적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반대편에 윌리엄 제임스의 「믿을 의지」가 있다. 모든 결정을 증거가 충분해질 때까지 미룰 수는 없으며, 어떤 영역에서는 불확실한 채로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의 윤리와 결단의 윤리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회의주의

지금 시점에서 빠뜨릴 수 없는 영역이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앞에서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물음이 일상화되고 있다. 회의주의는 더 이상 철학자의 직업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기본 소양이 되어가고 있다. AI가 그럴듯한 거짓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회의는 더 이상 사변적 사치가 아니라 생존적 필수가 되었다.

회의주의의 그림자

회의가 건강한 인식 태도를 넘어 병리가 될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의 호의를 음모로 의심하는 편집증,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검증해도 확신에 이르지 못하는 강박적 회의,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인식이 행동을 정지시키는 허무주의적 마비.

회의주의의 정신적 풍요로움은 평정에 있다. 의심하되 동요하지 않고, 모르되 불안하지 않은 상태다. 이 평정을 잃은 회의는 회의가 아니라 신경증이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ataraxia를 강조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회의주의의 임상적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VII. 리더의 인식론, 확신을 가진 회의주의자

이제 본 주제로 들어선다. 모든 전문직과 리더는 회의주의적 사고를 가져야 하는가?

답은 조건부 예다. 무조건 그렇다고 하면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독단이 된다.

회의가 리더의 자질인 이유

리더는 결정하는 사람이다. 결정의 질은 얼마나 좋은 정보에 근거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리더에게 올라오는 정보는 거의 언제나 걸러진 정보다. 부하가 듣기 좋은 말만 추리고, 이해관계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데이터만 가져오며, 외부 자문이 자기 분야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회의의 근육이 없는 리더는 이 편향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 결정하게 된다.

한비자가 세(勢)와 함께 술(術)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하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교차 검증하라는 것, 이것이 군주술의 핵심이었다.

회의가 병이 되는 지점

문제는 회의가 과잉이 되면 리더십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첫째, 결단의 마비. 모든 정보를 의심하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햄릿이 그렇다. 클라우디우스를 향한 의심이 명료해진 뒤에도 그는 결단하지 못한다. 과잉 회의가 행동을 잠식한 전형이다.

둘째, 신뢰의 파괴. 리더가 모든 부하를 의심하면 조직은 작동하지 않는다. 위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비자조차 법을 통한 객관적 신뢰 시스템을 세움으로써 개인적 의심을 제도적 검증으로 대체했다. 회의는 시스템에 내장되어야지 리더의 인격에 들러붙으면 폭군이 된다.

셋째, 비전의 상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비전은 본질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적극적 단정이기 때문이다. 비전은 회의의 반대편에 있는 확신의 영역이다.

영역별 분할의 원리

훌륭한 리더는 회의와 확신을 영역별로 분할한다.

회의를 강하게 적용해야 할 영역은 데이터와 보고서의 신뢰성, 자기 자신의 판단과 편향, 외부 자문의 이해관계, 기존 관행의 정당성, 그리고 성공의 원인 분석이다. 특히 마지막이 중요하다. '왜 잘됐는가'는 '왜 안됐는가'보다 더 의심해야 한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함정이 여기에 있다.

확신을 가져야 할 영역은 조직의 가치관과 윤리 기준, 장기 비전의 방향, 신뢰할 만한 사람에 대한 위임, 결정한 것에 대한 실행력이다.

이 비대칭이 리더십의 정수다. 사실에는 회의적이고, 가치에는 단단하며, 사람에는 신뢰를 주되, 시스템에는 검증을 내장하는 것, 이것이 성숙한 리더의 사고 구조다.

직업별 회의의 결

전문직마다 회의의 결이 다르다. 변리사의 회의는 대상을 향한다. 발명의 신규성, 선행기술의 적용 범위, 청구항의 무효 가능성, 외부 대상에 대한 정밀한 의심이다. 법관의 회의는 증거를 향한다. 무죄추정 원칙은 피고인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검사의 입증을 의심하라는 것이다. 과학자의 회의는 자기 가설을 향한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회의다. 자기가 세운 가설을 자기가 무너뜨리려 시도하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기업 리더의 회의는 성공 신화를 향해야 한다. 어제의 성공 공식이 내일도 통한다는 가정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독단이다. 노키아, 코닥, 블랙베리가 무너진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머튼이 과학 사회학에서 말한 '조직된 회의주의'(organized skepticism)가 이 통찰의 정수다.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직업들은 모두 개인의 회의가 아니라 제도화된 회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신뢰받는다.

결론, 확신을 가진 회의주의자

리더는 자신의 비전과 미션에 확신을 가진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 한 문장에는 어디에 무엇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분할 원리가 들어 있다. 비전과 미션은 확신의 영역, 그 외 모든 것은 회의의 영역이다. 방향에는 단단하고, 경로에는 유연하다. 목적은 흔들리지 않되, 수단은 끊임없이 검증한다. 이것이 진짜 리더십의 골격이다.

확신과 회의는 경쟁하는 태도가 아니라 분업하는 태도다. 비전까지 회의의 대상이 되면 조직은 방향을 잃고, 수단까지 확신의 대상이 되면 조직은 경직된다. 노키아가 세계 1위 휴대폰 회사일 때 '우리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 너무 강했던 것이 몰락의 원인이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명확한 사례다.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라는 미션은 30년간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끝없이 회의했다. "당신의 마진은 나의 기회"라는 유명한 말도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정당성을 의심하라는 회의 정신의 표현이다.

스티브 잡스도 같은 구조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라는 비전에는 광신적 확신을 가졌지만, 제품의 구체적 형태에 대해서는 출시 직전까지 의심하고 뒤엎었다. 첫 아이폰의 화면을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바꾼 것이 출시 6주 전이었다.

이순신의 필사즉생(必死則生)은 비전 차원의 확신이다. 그러나 전술 차원에서는 정찰병을 풀고, 지형을 살피고, 적의 움직임을 의심하며 끝없이 검증했다. 명량에서 13척으로 330척을 상대할 때, 조류와 지형에 대한 그의 회의적 검토는 거의 편집증적이었다. 확신은 사명에, 회의는 실행에. 이순신 리더십의 정수다.

VIII. 맺으며

이 구조는 동양 사상에서도 표현 가능하다.

志不可奪, 術不可固.<br> 지불가탈 술불가고.<br> 뜻은 빼앗길 수 없고, 방법은 굳어질 수 없다.

뜻(志)은 비전과 미션이고, 술(術)은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뜻은 단단하되, 방법은 유연해야 한다. 뜻은 산처럼, 방법은 물처럼.

『논어』에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는 구절이 있다. 흔히 "마흔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풀이하지만, 이는 의심이 사라진 경지가 아니라 의심에 휘둘리지 않는 경지에 가깝다. 젊은 시절의 의심은 자주 불안과 한 몸이 된다. 모르기에 흔들린다. 그러나 충분히 의심해 본 사람은 의심하면서도 동요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ataraxia와 통하는 동양적 표현이다.

리더의 회의는 이 결을 닮아야 한다. 의심하되 마비되지 않는 회의, 살피되 흔들리지 않는 회의. 이것이 성숙한 리더십의 인식론적 토대다.

회의를 목적으로 삼는 리더는 우유부단해지고, 회의를 수단으로만 삼는 리더는 교활해지며, 회의를 습관으로 삼는 리더는 신중해진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피하고 세 번째를 길러내는 것, 그것이 리더가 평생 다듬어야 할 인식의 자세다.

플라톤은 어쩌면 이 명제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다. 이데아라는 비전에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졌지만, 그 비전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평생 묻고 또 물었다. 확신을 가진 회의주의자, 그 두 얼굴의 사상가가 서양 철학의 출발점에 서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