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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칼럼 초안] 멍게가 된 기업

by 변리사 허성원 2026. 4. 28.

 

멍게가 된 기업

 

바다멍게(sea squirt)는 어린 시절엔 올챙이를 닮은 유생(幼生)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닌다. 방향을 잡고, 먹이를 찾고, 적을 피해야 하니 작지만 어엿한 뇌와 신경계를 갖췄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적당한 바위를 발견해 거기에 자기 몸을 붙이고 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멍게는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영양분으로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므로, 뇌는 사치다. 그리고 불필요한 비용이다.

그렇게 정착한 멍게에게는 두 가지 기능만 남는다.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한 두꺼운 껍질, 그리고 흘러 들어오는 먹이를 걸러 소화하는 여과섭식 기관, 즉 자체 보호 기능과 먹이 섭식 기능, 딱 그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개인이나 기업에게도 멍게처럼 자기 뇌를 소화시키고 꼽질과 소화기간만 남는 '멍게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학 시절까지 누구보다 민첩하고, 호기심이 넘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청년이었든 사람이, 마침내 그가 원하던 안정적인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권력이 강한 조직에 안착하고 나면, 금세 멍게의 변태가 시작된다. 책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되고, 새로운 분야의 학습은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노력으로 취급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더 나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사내 정치의 어휘만이 정교해지고, 회의에서의 표정 관리, 상사의 결재 패턴 분석, 부서 간 책임 회피의 기술만 정교하게 숙련된다.

이것이 조직형 인간, 즉 껍질과 소화기관만 남은 인간의 모습이다. 변화를 막는 두꺼운 자존심(껍질), 그리고 조직에서 흘러나오는 자원과 지위를 정확히 빨아들이는 정치적 감각(소화기관)만 남았다. 바깥 바다로 다시 나갈 일이 없으니 뇌는 사치다. 그렇게 30대의 멍게, 40대의 멍게, 50대의 멍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정착한 바위 즉 회사가 흔들리면 아무 짓도 하지 못한다. 새로운 바위로 헤엄쳐 가거나 변화에 적응할 신경계와 지능은 이미 소화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멍게 비유의 진짜 살벌한 적용처는 기업이다. 스타트업이 힘든 창업의 표류기를 거쳐 마침내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 매출과 마진을 확보하고 나면, 그런 멍게화의 타이밍이 회사에도 찾아온다. 성체 멍게의 해부학을 기업에 그대로 옮겨 보면 섬뜩할 만큼 닮은 모습이 드러난다.

먼저 멍게 기업의 뇌는 소화되어 사라진다. 기업의 뇌는 어디 있는가. 시장을 읽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틀렸음을 인정하고, 방향을 틀어 새로이 도전하는 전략적 사고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멍게화된 기업에서 이것이 가장 먼저 위축된다. R&D 예산은 늘지 않고, 실패는 가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 아무도 새로운 도전을 입에 올리려 들지 않는다. 

그런 한편 껍질은 두꺼워진다. 멍게의 단단한 외피처럼, 정착한 회사도 외부 충격을 막을 두꺼운 방어 조직을 키운다. 법무팀, 대관(對官) 조직, 홍보 위기관리, 특허 소송 대응, 로비. 이 기관들이 R&D보다 빠르게 비대해진다.

소화기관(Filter feeder) — 정교해진다. 더 이상 사냥하지 않으니, 흘러 들어오는 먹이를 효율적으로 추출하는 능력만 다듬는다. 기존 고객 락인(lock-in), 가격 인상, 구독 강제 전환, 라이선싱, 부동산 자산화 — 경제학에서 이를 지대 추구(rent-seeking)라 부른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자리 잡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영양분을 더 잘 빨아들이는 일에 조직의 지능 전부가 동원된다.

이처럼 보호 기능과 섭식 기능만이 남은 멍게가 되어 버린 기업들의 사례가 있다.

우선 코닥이 멍게 우화의 거의 완벽한 표본이다. 1990년대까지 글로벌 필름 시장의 80%를 장악한 절대 강자였고, 놀랍게도 디지털 카메라를 1975년에 자체 발명한 회사이기도 했다. 즉, 뇌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다. 바위(필름 사업)에 너무 깊이 정착한 나머지 자기 뇌를 스스로 외면한 것이다. 자체 발명한 디지털 기술이 자기들의 필름 매출을 잠식할까 두려워, 그것을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모습이 결정적이다. 2012년 파산 신청 직전, 코닥은 애플, 후지필름, HTC를 상대로 일제히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가진 마지막 무기는 더 이상 사진 기술이 아니라 과거에 쌓아둔 특허라는 껍질이었다. 결국 디지털 이미징 특허를 5억 달러 이상에 헐값 매각하며 연명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능력은 사라졌고, 방어와 추출만 남았다. 정확히 멍게의 해부도 그대로다.

노키아의 사례는 더 시리다. 2007년 — 아이폰이 등장한 그 해 — 노키아는 여전히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 이상을 쥐고 있었다. 정착할 수 있는 가장 안락한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INSEAD의 이브 도즈 교수는 노키아의 몰락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성공이 보수주의와 자만을 길러내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략적 사고 자체를 마비시킨다."

노키아 사람들은 아이폰의 의미를 몰랐던 게 아니다. 내부 보고서들은 2003년부터 이미 산업의 융합과 혁신적 파괴를 경고하고 있었다. CEO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행동하지 않았다. 왜? 기존 고객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를 *"손실 회피에서 비롯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rooted in loss aversion)"*이라 부른다. 멍게의 언어로 옮기면 — 바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새로운 바다로 헤엄쳐 가는 것보다 무서웠다.

전(前) CEO 칼라스부오의 회고가 더욱 결정적이다. "Not Invented Here(우리가 발명하지 않은 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었고, 관리자들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보다 기존의 성공을 방어하고 보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고. 뇌는 이미 소화된 후였다.

 

그러나 모든 정착이 곧 퇴화는 아니다. 1993년의 IBM은 멍게가 되기 직전이었다. 메인프레임이라는 거대한 바위에 깊이 박혀 있었고, 이사회는 회사를 여러 개의 *베이비 블루(Baby Blues)*로 쪼개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분리된 멍게 새끼들로 살아가게 만들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때 외부에서 영입된 루이스 거스너(Louis Gerstner)가 한 일은 정확히 정반대였다. *"IBM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비전이다(The last thing IBM needs right now is a vision)"*라는 유명한 발언과 함께, 그는 회사를 쪼개지 않고 통합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을 했다 — 하드웨어라는 바위에서 회사를 떼어냈다. 백 년 묵은 정체성을 버리고 서비스·솔루션 회사로 변태시켰다. 거스너 본인은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자신의 *외부인성(outsider-ness)*이었다고 회고했다. *"오랜 IBM 제품에 감정적 애착이 없었기 때문(no emotional attachment to long-suffering products)"*에 그것을 떨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가 멍게 우화의 가장 깊은 교훈을 건드린다. 바위에 정착한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새로운 사고가 아니다. 자기 정체성과 결합된 그 바위를 스스로 부수는 일이다. 거스너는 작년 말(2025년 12월) 8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남긴 자서전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코끼리는 춤출 수 없다고 누가 말했나(Who Says Elephants Can't Dance?)』였다. 정착한 거대 동물도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러면 멍게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직에도, 개인에게도 멍게화는 거의 자연 법칙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자연 법칙도 의식적 설계로 뒤집을 수 있다. 다섯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정착하더라도 떠날 때를 미리 알아두라. 정착 자체가 죄는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문제는 떠날 시점을 판단할 신경계조차 소화해 버린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정착하는 순간 떠날 신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두어야 한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자기 매출을 잠식하기 시작한 시점, 노키아는 아이폰이 등장한 2007년 — 이 신호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떠날 결심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개인에게도 같다. 연봉 상승률이 학습 곡선을 추월하는 순간, 회사 밖에서 통용될 능력은 줄고 회사 안에서만 통하는 기술이 늘어나는 순간 — 이것들이 떠날 신호다. 신호를 미리 정의해 두어야 신호가 왔을 때 알아볼 수 있다.

둘째, 뇌와 껍질, 소화기관의 비율을 면밀히 감시하라. 조직이든 개인이든 정기적으로 자문해야 한다. 지난 1년간 나(우리)는 무엇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썼는가? 새로운 가설의 검증과 학습(뇌)인가, 기존 자산의 방어(껍질)인가, 기존 자원의 추출(소화기관)인가. 비율이 후자 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멍게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뇌의 위축은 가장 늦게 자각되는 신경 손상이다. 그래서 비율 자체를 측정 가능한 지표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회사라면 R&D 대비 법무 비용, 신사업 매출 비중, 신규 채용자의 평균 근속, 폐기되는 사업안의 수. 개인이라면 한 해 동안 처음 해 본 일의 수, 틀렸다고 인정한 판단의 수.

셋째, 의도적으로 외부의 바닷물을 끌어들여라. 멍게는 한 번 정착하면 자기가 붙은 바위 주변의 물밖에 만나지 못한다. 회사도 그렇다. 같은 산업, 같은 컨퍼런스, 같은 컨설팅 펌, 같은 출신의 임원진. 거스너가 IBM을 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자질이 외부인성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정착한 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낯선 물이다. 조직은 외부 영입 인사의 비율, 다른 산업과의 정기적 교류, 경쟁사가 아닌 전혀 다른 업종의 벤치마킹으로 신선한 해류를 의도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개인은 자기 전공·업계 바깥의 책 한 권, 한 달에 한 번 자기 분야 밖 사람과의 진지한 대화 — 이런 작은 낯선 해류가 뇌의 소화를 막는다.

넷째, "잃을 것"이 결정을 지배하게 두지 말라. 노키아의 마비는 무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손실 회피에서 왔다. 변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두려움이 변하지 않는 결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더 많이 잃는다는 사실은 보통 너무 늦게 깨닫는다. 리더가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물어야 할 가장 잔인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이 자리를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만 옳은 결정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가?" 망설인다면, 당신은 이미 바위와 한 몸이 되어 있다. 개인에게도 동일하다. 지금의 안정을 잃을 각오 없이 내릴 수 있는 결정만 내리고 있다면, 그것은 결정이 아니라 관성의 추인이다.

다섯째, 양손잡이가 되어라 — 정착하면서도 헤엄칠 수 있도록. 경영학에는 *양손잡이 경영(ambidexter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존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exploitation) 동시에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exploration) 능력. 멍게의 언어로 옮기면 — 바위에 붙어 있으면서도 뇌를 유지하는 기술이다. 어렵다. 두 가지 모드는 서로 다른 문화, 다른 사람, 다른 평가지표를 요구한다. 그래서 의도적인 조직 분리가 필요하다. 기존 사업의 안정 조직과, 그것과 단절된 새로운 탐색 조직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 개인에게는 더 단순하다. 본업과 별도로 항상 한 가지 새로운 분야를 학습 중이어야 한다. 한 다리는 바위에, 다른 다리는 늘 바닷물 속에.

『주역』은 변화의 이치를 한 줄로 정리해 두었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막히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정착이 곧 안정이라 믿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막힘의 시작이다.

멍게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자기 뇌를 소화한다. 무념(無念)의 행복 속에 평생을 바위에 붙어 있다가, 환경이 변해도 헤엄쳐 갈 신경계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자연의 한 종(種)으로서는 이것도 성공한 진화일지 모른다 — 안정적 환경에서는 뇌가 비용이 맞으니까. 그러나 환경이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정착하더라도 뇌만은 지켜야 한다. 의심하고, 묻고, 틀렸음을 인정하고, 방향을 트는 능력 — 이것이 뇌다. 자기 뇌를 소화한 자는 다음 바다를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