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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콘드라티에프 파동 _ 자본주의 문명의 장주기 리듬

by 변리사 허성원 2026. 4. 13.

콘드라티에프 파동(Kondratiev Wave)

_ 자본주의 문명의 장주기 리듬

(* 자본주의 경제는 40~60년을 주기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는 것이 콘드라티에프 파동(K-Wave)의 핵심 명제이다. 러시아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가 1920년대에 정립한 이 이론은, 기술혁신과 자본축적의 역동적 상호작용이 역사적 규모의 경기순환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스탈린의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한 이 경제학자의 통찰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자기갱신 능력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이론적 구조, 역사적 전개, 철학적 함의, 그리고 현대적 적용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1.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 진실을 말한 대가

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콘드라티에프(Николай Дмитриевич Кондратьев, 1892~1938)는 코스트로마 지방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투간-바라노프스키(Tugan-Baranovsky)의 지도를 받으며 경기순환론의 기초를 다졌고, 혁명 이후에는 소비에트 농업인민위원부에서 활동하며 신경제정책(NEP)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1920년에는 모스크바에 경기연구소(Institute of Conjuncture)를 설립하여 소장을 맡았다.

콘드라티에프의 학문적 업적이 그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는 독일, 영국, 캐나다, 미국을 직접 방문하여 서방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를 연구했고, 농산물 수출을 통한 점진적 산업화를 주장했다. 이는 레닌의 NEP 노선과 부합하는 것이었으나,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의 강제 집단화 및 급속 산업화 노선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결정적 문제는 그의 장주기 이론 자체에 있었다. 콘드라티에프가 자본주의 경제에 장기적 순환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은, 당시 소비에트 경제학계에서 자본주의의 궁극적 붕괴를 교리처럼 신봉하던 분위기와 양립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가 주기적 위기를 겪더라도 다시 회복한다는 명제는, 마르크스주의 교조에 대한 이단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1927년 볼셰비키 지도자 지노비예프(Zinoviev)는 콘드라티에프의 이론을 '쿨라크(부농) 당 선언문'이라 낙인찍었다.

1930년 체포된 콘드라티에프는 실재하지 않는 '노농당(Peasants Labour Party)'의 일원이라는 조작된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았다. 수즈달 감옥에서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그는 다섯 권의 저서를 구상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스탈린의 기밀 서한이 해제된 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콘드라티에프는 스탈린의 직접 지시로 고문을 당했다. 1938년 9월 17일, 대숙청(Great Purge) 와중에 재심을 받고 같은 날 모스크바 외곽의 코무나르카 처형장에서 총살되었다. 향년 46세였다. 그의 마지막 편지는 딸 엘레나에게 보낸 것이었고, 거기서 그는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적었다. 1987년에야 소비에트 당국은 그를 공식 복권시켰다.

콘드라티에프의 비극은 학문적 진실이 정치 권력과 충돌할 때 벌어지는 사태의 전형이다. 갈릴레오가 지동설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가치관에 대한 질문으로 박해받았듯, 콘드라티에프는 경험적 증거에 기반한 이론으로 이데올로기 권력에 맞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그를 죽인 체제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2. 장파동 이론의 구조

콘드라티에프가 1925년 발표한 『경기의 대순환(Большие циклы конъюнктуры)』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물가, 이자율, 임금, 무역량, 석탄 및 철 생산량 등 25개 시계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그는 9년 중심이동평균법을 적용하여 단기적 경기변동을 제거한 뒤, 그 아래에 40~60년 주기의 장기 파동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콘드라티에프가 직접 식별한 순환은 두 개 반이었다. 첫 번째 파동(1780년대~1840년대)과 두 번째 파동(1840년대~1890년대)의 완전한 주기, 그리고 세 번째 파동의 상승국면(1890년대~)이 그것이다. 이후 연구자들이 이를 확장하여 현재까지 다섯 내지 여섯 개의 파동을 식별하고 있다.

각 파동의 내부 구조는 크게 네 가지 국면으로 나뉜다. 투자이론가 이안 고든(Ian Gordon)이 체계화한 사계절 모델이 가장 직관적이다.

봄(Spring)은 불황의 바닥에서 시작되는 회복기이다. 새로운 기술혁신이 씨앗처럼 뿌려지고, 주가와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며, 사회 전반에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형성된다. 여름(Summer)은 기술혁신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생산성이 급등하는 과열기이다. 인플레이션이 가속되고, 종종 이 시기에 대규모 전쟁이 발생한다. 가을(Autumn)은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면서 자산 거품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금융적 번영이 극에 달하지만, 그 이면에서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사이의 괴리가 벌어진다. 겨울(Winter)은 자산 거품이 붕괴하고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수축기이다. 주가, 임금, 물가가 동반 하락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이 네 계절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기술-자본-제도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역학을 반영한다. 봄에 등장한 혁신 기술이 여름에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가을에 수확의 열매가 금융자산으로 축적되며, 겨울에 낡은 체제가 청산되어 다음 봄의 토양을 준비하는 것이다.

3. 여섯 개의 파동: 역사적 전개

지금까지 식별된 콘드라티에프 파동은 다음과 같다. 각 파동의 시작과 종결 시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제1파동(1780년대~1840년대)은 증기기관과 면직물 공업의 시대이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방직산업에 적용되면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었다. 공장제 대량생산이 가내수공업을 대체했고, 운하 건설이 물류 혁명을 가져왔다. 이 파동의 겨울은 1830~40년대의 장기 불황으로 나타났으며, 차티스트 운동과 1848년 유럽 혁명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수반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쓴 것이 바로 이 겨울의 한복판이었다는 사실은, 경제적 파동이 사상사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2파동(1840년대~1890년대)은 철도와 철강의 시대이다. 증기기관차가 대륙 횡단 철도망으로 확장되면서 시장의 공간적 범위가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베세머 제강법이 철강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전신 통신이 정보 전달의 시간을 혁명적으로 단축했다. 이 파동의 겨울은 1873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대불황(Long Depression)'으로, 약 20년간 디플레이션이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쟁이 격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 시장의 포화를 해외 시장 확보로 돌파하려는 구조적 압력이 작용한 것이다.

제3파동(1890년대~1940년대)은 전기와 화학공업의 시대이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기 기술이 산업과 일상생활 전반을 변혁했고, 화학 합성 기술이 비료, 의약품, 합성 염료의 대량생산을 열었다. 이 파동은 과학적 지식의 체계적 산업 응용이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등장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전 파동의 혁신이 주로 숙련 장인의 경험적 발명에 의존했다면, 제3파동부터는 대학과 기업 연구소의 조직적 R&D가 혁신의 원천이 되었다. 이 파동의 겨울이 바로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콘드라티에프 자신이 이 파동의 상승국면을 관찰하며 장주기 이론을 정립했고, 스탈린은 이 대공황을 자본주의의 종말로 해석한 반면 콘드라티에프는 주기적 수축으로 해석하여 목숨을 잃었다.

제4파동(1940년대~1970년대)은 석유화학과 자동차의 시대이다. 포드식 대량생산 체제가 자동차를 대중적 소비재로 만들었고, 석유화학 산업이 플라스틱, 합성섬유, 의약품 등 무수한 파생 산업을 창출했다.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 국제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서방 자본주의는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 불리는 장기 호황을 누렸다. 이 파동의 겨울은 1970년대 OPEC 석유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도래했다.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이 한계에 부딪혔고, 이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라는 신자유주의 전환의 배경이 되었다.

제5파동(1970년대~2000년대)은 정보기술(IT)의 시대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이 산업사회를 정보사회로 전환시켰다.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지식 및 서비스 중심 경제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고, 세계화가 가속되어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현실화되었다. 이 파동의 가을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로 나타났고, 겨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절정에 달했다.

제6파동(2010년대~)은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파동이다. 그 핵심 동력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경합하고 있다. 독일의 경제학자 레오 네피오도프(Leo Nefiodow)는 '총체적 건강(holistic health)'을 제6파동의 담지자(carrier)로 제시했다. 여기서 건강은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생태적, 영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편 스웨덴의 미래학자 니클라스 베르그만(Nicklas Bergman)은 BANG 기술(Bits, Atoms, Neurons, Genes)을, 다니엘 슈미훌라(Daniel Šmihula)는 사물인터넷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제6파동의 추진력으로 보았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 생명공학, 청정에너지의 결합이다.

4. 이론적 계보와 학파 간 논쟁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인과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 학파가 존재한다.

혁신학파(Innovation School)는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에서 출발한다. 슘페터는 1939년 저서 『경기순환론(Business Cycles)』에서 콘드라티에프의 장기 파동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콘드라티에프 파동'이라 명명하고, 기술혁신의 군집적 출현(clustering of innovations)이 장파동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혁명적 기술이 등장하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무수한 2차, 3차 혁신이 뒤따르며 경기 상승을 견인하고, 혁신의 잠재력이 소진되면 경기가 하강한다는 것이다. 이후 크리스토퍼 프리먼(Christopher Freeman)과 카를로타 페레즈(Carlota Perez)가 이를 더욱 정교화하여, 기술혁명이 금융, 제도, 사회 규범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체계화했다. '슘페터-프리먼-페레즈 패러다임'은 오늘날 장파동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자본투자학파(Capital Investment School)는 콘드라티에프 자신의 원래 관점에 가장 가깝다. 대규모 기반시설(운하, 철도, 고속도로, 항공 네트워크 등)에 대한 자본투자가 장기적으로 축적되고 감가상각되는 과정이 장파동을 만든다는 것이다. MIT의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는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링을 통해 자본재 부문의 과잉투자와 과소투자가 장기적 진동을 발생시킴을 시뮬레이션했다. 아르눌프 그뤼블러(Arnulf Grübler)의 연구는 운하, 철도, 고속도로, 항공 등 주요 인프라의 확산 곡선이 S자형을 그리며, 그 변곡점이 55년 간격의 콘드라티에프 파장과 정확히 대응함을 보여주었다.

마르크스주의 학파는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이 대표한다. 만델은 1964년 논문에서 전후 장기 호황의 종언을 5년 내에 예측하며 주목받았다. 그에게 장파동은 내재적 경제 메커니즘이 아니라, 계급투쟁, 전쟁, 식민지 확대 같은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이윤율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만델은 엄밀한 의미의 '순환'은 존재하지 않으며, 20~25년 단위의 빠른 성장기와 느린 성장기가 교대할 뿐이라고 보았다.

전쟁-헤게모니 학파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과 조지 모델스키(George Modelski)가 대표한다. 이들은 콘드라티에프 파동을 세계체제의 패권 교체 주기와 연결시킨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장파동의 상승기 직전에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는 경향이 있으며, 전쟁은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의 등장과 함께 다음 상승기의 조건을 형성한다. 모델스키와 윌리엄 톰슨(William Thompson)은 이 장파동의 기원을 930년 중국 송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학파의 관계에 대해, 골드스타인(Joshua Goldstein)의 실증 연구가 시사적이다. 그는 생산, 투자, 혁신, 물가, 임금 등 주요 경제변수에서 장파동의 존재가 잠정적으로 확인된다고 결론지으며, 각 학파의 핵심 가설이 상호 모순되기보다 단일한 프레임워크 안에서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생산, 투자, 혁신, 물가, 임금은 파동 내에서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이며, 이 순서가 각 학파의 중심 가설을 각각 지지한다는 것이다.

5. 비판과 한계

콘드라티에프 파동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첫째, 통계적 실재성에 대한 의문이다.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장파동 이론을 대체로 수용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200여 년의 데이터에서 네다섯 개의 주기를 식별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패턴인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패턴을 보는 아포페니아(apophenia)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슬루츠키(Eugen Slutsky)는 1927년 논문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시계열도 이동평균 처리를 하면 규칙적 파동처럼 보일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콘드라티에프의 방법론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이다.

둘째, 주기의 시점 확정 문제이다. 장파동 이론을 수용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개별 파동의 시작점과 종결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떤 국가에서 정점으로 보이는 시기가 다른 국가에서는 상승기일 수 있으며, 이는 '세계경제'라는 단일 단위의 순환을 상정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셋째, 인과 메커니즘의 불확정성이다. 네 학파가 각기 다른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장파동의 인과구조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기술혁신이 원인인가, 자본투자가 원인인가, 전쟁과 정치가 원인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과정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확정적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판자들조차 인정하는 점이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말했듯, 콘드라티에프 파동에 기반하여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경제학에서 흔하지 않은 성취이며, 많은 역사학자와 일부 경제학자를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6. 철학적 함의: 역사의 리듬과 인간 조건

콘드라티에프 파동은 단순한 경제이론을 넘어 역사철학적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순환적 역사관과 직선적 역사관의 긴장이다. 계몽주의 이래 서구 근대사상의 기조는 진보(progress), 즉 역사의 직선적 상승이었다. 헤겔의 세계정신,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콩도르세의 진보 서사 모두 역사를 최종 목적을 향한 전진으로 파악했다. 콘드라티에프 파동은 이 직선적 서사에 순환의 차원을 도입한다. 그렇다고 해서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ehr)처럼 동일한 것의 반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파동은 반복되지만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기술적 기반 위에서 일어나므로, 이는 '나선형 상승(ascending spiral)'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동양 사상에서는 이를 역(易)의 순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역의 64괘가 보여주는 것처럼, 변화는 일정한 구조 안에서 일어나되 그 매 순간은 독특하다. 비태(否泰)의 교체, 즉 막힘과 통함의 교대가 세상의 기본 리듬이라는 통찰은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동아시아적 선취라 할 수 있다.

둘째, 기술 결정론과 인간 주체성의 문제이다. 장파동 이론, 특히 혁신학파의 설명은 기술혁신을 역사 변동의 핵심 동인으로 위치시킨다. 이는 하이데거가 「기술에 관한 물음(Die Frage nach der Technik)」에서 제기한 경고와 공명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근대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자 전체를 '부품(Bestand)'으로 환원하는 존재 방식, 즉 '닦아세움(Ge-stell)'이다. 콘드라티에프 파동에서 기술혁신이 경제와 사회 전체의 리듬을 규정한다면, 이는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어 있다는 하이데거적 진단의 경제학적 표현일 수 있다. 반면 칼 마르크스는 기술을 생산력의 핵심 구성 요소로 보면서도, 생산관계의 변혁이 없으면 기술 발전만으로는 인간 해방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두 관점 모두 기술이 자율적으로 역사를 추동한다는 단순한 기술 결정론을 넘어선다.

셋째, 창조적 파괴(schöpferische Zerstörung)의 문제이다. 슘페터가 정식화한 이 개념은, 혁신이 낡은 산업과 제도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적 사유에서 노자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즉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라는 명제와 상통한다. 쇠퇴와 회복, 파괴와 창조가 하나의 운동의 두 측면이라는 통찰이다. 불교의 성주괴공(成住壞空), 즉 생성, 존속, 파괴, 공(空)의 네 단계도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사계절 모델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봄의 생성, 여름의 존속, 가을의 파괴의 시작, 겨울의 공(空)이 다시 봄으로 이행하는 순환은 우주적 규모에서도, 경제적 규모에서도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넷째, 세대론적 차원이다. 포르투갈 물리학자 테살레노 데베자스(Tessaleno Devezas)는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약 60년 주기가 두 세대의 길이와 정확히 일치함을 발견하고, 세대 학습 모델(generation-learning model)을 제시했다. 한 세대가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확산시키며, 그 다음 세대가 새로운 혁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주기성을 기술이나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적 시간 단위로 설명하는 시도이다.

7. 현대적 적용: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시점에서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면, 세계경제는 제5파동의 겨울에서 제6파동의 봄으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5파동(정보기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겨울에 진입했다. 닷컴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정보기술 파동의 가을과 겨울에 해당하는 금융적 과잉과 붕괴의 전형적 양상이었다. 이후 양적 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은 겨울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유예했지만,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완결하지는 못했다.

제6파동의 봄을 알리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인공지능, 특히 2022년 이후 생성형 AI의 급속한 발전은 슘페터적 의미에서 혁명적 기본혁신(Basisinnovation)에 해당한다. 대화형 챗봇만으로도 2026년까지 약 800억 달러의 노동비용 절감이 예상되며, 약물 개발의 가속, AI 에이전트의 자율적 과제 수행 등은 이전 파동에서의 혁신과 비교해도 파괴력이 막강하다. 여기에 청정에너지 전환, 유전체학과 정밀의료, 양자컴퓨팅이 결합되면서 다중적 혁신의 군집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카를로타 페레즈의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기술혁명이 봄의 번영으로 이어지려면 기술 시스템과 사회-제도적 프레임워크가 정합성을 이루어야 한다. 현재의 규제 공백, 디지털 격차, AI 윤리 문제, 지정학적 갈등은 이 정합성이 아직 달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이나 대규모 정치적 변동이 이 정합성을 강제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의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8. 파동을 넘어서: 순환의 의미

콘드라티에프 파동의 진정한 가치는 예측 도구로서의 정확성에 있지 않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그리고 더 넓게는 인간 문명이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과 수축의 리듬 속에서 움직인다는 겸허한 인식에 있다. 호황기에 영원한 번영을 믿고 불황기에 영원한 쇠퇴를 두려워하는 것은 파동의 한 국면만을 절대화하는 오류이다.

콘드라티에프 자신이 명확히 했듯, "경제의 역동성이 오직 일정 수준 주위의 변동으로만 구성된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장파동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경제 현실의 전부는 아니다. 순환 속에서도 비가역적 변화가 누적되고, 각 파동은 이전 파동과 질적으로 다른 문명적 기반 위에서 전개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콘드라티에프 파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봄은 반복되지만, 같은 봄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증기기관의 봄과 인공지능의 봄은 구조적으로 유사하되 내용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연다. 이 순환 속의 비가역성, 반복 속의 독특성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콘드라티에프 파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심원한 교훈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교훈을 목숨으로 증명한 콘드라티에프 자신의 운명이야말로 장파동 이론의 가장 비극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제3파동의 겨울이었고, 그 겨울의 정치적 표현이 전체주의였으며, 전체주의는 순환을 인정하지 않고 직선적 유토피아만을 허용했다. 파동을 보는 자는 파동에 의해 삼켜졌지만, 파동은 그를 삼킨 체제보다 오래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