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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허성원 변리사 칼럼] #127 발명과 필요, 누가 누구의 어머니인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6. 4. 12.

발명과 필요, 누가 누구의 어머니인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이 유명한 격언은 플라톤의 '국가(Republic)'에서 유래한다. 소크라테스는 도시의 기원을 논하며 이런 취지로 말했다. '인간은 누구도 자족하지 못하고, 먹고 입고 쉬어야 하는 필요가 사람들을 모이게 하며, 그 필요야말로 진정한 창조자이다.'

여기서의 '필요'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부족함' 혹은 '결핍(needs)'에 가까운 말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1894년 벤저민 조웻(Benjamin Jowett)의 영역본을 거치면서 'necessity(필요)'로 변경되고, 또 원문의 '창조자'가 '발명의 어머니(mother of invention)'라는 표현으로 변하여 오늘날의 격언으로 정착되었다. 소크라테스의 구체적 통찰이 슬쩍 각색되어 보편적 잠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단어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본래의 뜻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핍'이든 '필요'든, 인간의 내면에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라는 절박함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솟아오를 때 창조가 시작된다는 통찰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역사는 필요가 발명을 낳은 사례들로 가득하다. 우리 주변의 대다수 물품들이 필요의 산물이다. 추위에 귀마개, 어둠에 전등, 먼 거리에 전화, 온갖 질병에 대한 백신, 심지어는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 원자폭탄 등이 그러하다.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한 이상 기후의 영향으로 사육되는 말들이 대폭 줄어들자 칼 폰 드라이스는 동물에 의존하지 않는 이동 수단인 라우프마시네 즉 오늘날 자전거의 원형을 발명하였다.

문제가 분명하고 강렬할수록 해결책도 선명하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수요 견인(Demand-Pull)' 모델이라 부른다. 이처럼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한 괴짜 경제학자가 이 너무도 자명한 명제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제도주의 경제학의 선구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바로 그다. 그는 '작업 본능론'(1914)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여기 그리고 지금, 언제나 어디서나,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다(Here and now, as always and everywhere, invention is the mother of necessity.)"

발명이 필요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발명으로 인해 필요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기술이 먼저 등장하고, 그것이 사회 구조를 재편하면서 새로운 필요를 사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기술 추격(Technology-Push)' 모델이라 부른다. 마르코니(Marconi)가 1890년대에 무선전신을 개발했을 때, 그것은 선박 간 통신을 위한 것이었다. 대중이 전파로 음악을 듣고 싶다고 요청한 적은 없었지만, 기술이 존재하게 되자 1920년대에 라디오 방송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필요가 탄생하였다.

베블런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은 세 단계를 거쳐 '인공적 필연성'으로 제도화된다고 하였다. 첫째, 혁신 제품이 비싸고 희소하여 부유층의 지위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지위 상징). 둘째, 지위 경쟁을 통해 중산층으로 퍼지면서 비소유자가 뒤처지기 시작한다(사회적 확산). 셋째, 사회 인프라 자체가 그 기술을 전제로 재편되어 비소유자에게 강제된다(제도적 강제).

자동차가 이 경로를 처음 보여주었다. 마차의 불편을 해소하려 태어난 자동차가 보급되자, 도시는 넓은 도로와 교외 주거지 중심으로 재설계되었고,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도 장보기도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발명이 기존의 필요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책 자체가 더 크고 구조적인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 패턴을 극단적으로 압축하였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 명확한 수요는 없었다. 초기의 높은 가격은 아이폰을 지위 상징으로 만들었고, 앱 생태계의 확산은 비소유자를 배제하기 시작하였으며, 모바일 뱅킹과 디지털 신분증과 QR 결제가 일상 인프라로 편입되면서 스마트폰은 제도적 필연성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자동차가 수십 년에 걸쳐 이룬 것을 스마트폰은 채 십여 년 만에 완성하였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가.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가,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다. 다만 각각이 초래하는 국면이 다를 뿐이다.

드라이스의 자전거와 그린우드의 귀마개는 필요가 발명을 낳은 사례이다. 마르코니의 라디오와 잡스의 스마트폰은 발명이 필요를 낳은 사례이다. 그리고 자동차는 필요에서 출발한 발명이었지만, 그 발명이 다시 더 큰 필요를 만들어낸 사례이다. 사실상 모든 위대한 혁신은 이 두 동인이 교대로 작동하는 순환의 산물이다.

이와 유사한 순환을 경제학에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 부른다. 어느 기업가가 기술 혁신으로 기존 질서를 교란하면, 시장 참가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또 다른 혁신을 수행해야 한다. 이 적응이 일시적 안정을 만들지만, 곧 다음 파괴적 혁신이 그 안정을 깨뜨리며, 발명과 필요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세상의 혁신을 이끈다.

이 구조는 DNA의 이중 나선과 닮았다. 두 가닥이 각각 독립적으로는 유전 정보를 온전히 담지 못하듯, 수요 견인과 기술 추격도 홀로서는 혁신의 전모를 설명하지 못한다. 두 가닥이 상보적으로 결합하여 서로를 감아 올릴 때 비로소 복제와 진화가 가능해지듯, 필요와 발명도 한 바퀴 돌 때마다 사회를 한 단계 변형시킨다.

이 이중 구조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테슬라의 전기차나 애플의 아이폰이 증명하듯, 성공적인 혁신은 두 가닥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의 산물이다. 그리고 자동차가 비소유자를 소외시켰듯, AI가 어떤 새로운 사회적 강제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이중 나선이 빨라질수록 한 바퀴의 주기는 짧아진다. 주기가 짧아질수록 그 한 바퀴 안에서 만들어지는 창작적 성과, 즉 발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고 빠르게 증식하는 타인의 특허와의 마찰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특허 제도는 바로 이 두 가닥의 나선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을 부여함으로써 기술 추격의 동기를 만들어내고, 공개를 조건으로 하여 다음 혁신의 재료를 사회에 환원한다. 나선의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일수록, 이 보호와 공유의 균형을 잡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소크라테스는 2,400년 전에 배고픔이라는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하였다. 베블런은 과시라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둘이 본 것은 같았다. 인간은 필요를 해소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필요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냐가 아니라, 이 나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