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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합의의 영역, 논쟁의 영역, 일탈의 영역 _ 대니얼 할린

by 변리사 허성원 2026. 4. 14.

합의의 영역, 논쟁의 영역, 일탈의 영역

_ 대니얼 할린의 세 영역 모델: 합의, 논쟁, 일탈의 지형학

(* 미국의 미디어 학자 대니얼 할린(Daniel Hallin)이 제시한 세 영역 모델은 원래 언론이 특정 사안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틀이었다. 그러나 이 모델의 진정한 힘은 미디어 분석을 넘어, 인간 집단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관리하는가라는 보편적 문제를 드러낸다는 데 있다. 합의의 영역, 정당한 논쟁의 영역, 일탈의 영역이라는 세 동심원은 조직 내부의 권력 구조, 일상적 대인관계, 그리고 적대적 경쟁과 협상의 장면에까지 확장 적용될 수 있는 사유의 도구다.)

1. 모델의 원형: 언론과 담론의 지도

할린은 1986년 저서 The "Uncensored War"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를 분석하면서 이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핵심 관찰은, 언론이 모든 사안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언론의 태도와 보도 방식이 질적으로 달라지며, 이 차이는 세 개의 동심원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가장 안쪽의 원은 합의의 영역(Sphere of Consensus)이다. 이 영역에 속하는 사안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와 전제들이다. 언론은 이 영역의 사안에 대해 객관적 보도자가 아니라 합의의 옹호자로 기능한다. 예컨대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다", "아동학대는 나쁘다"와 같은 명제들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로 작동한다. 기자가 이런 명제에 대해 양비론적 균형 보도를 시도한다면 오히려 직업적 비난을 받게 된다.

중간의 원은 정당한 논쟁의 영역(Sphere of Legitimate Controversy)이다. 이곳은 언론이 가장 익숙하게 활동하는 공간이다. 선거, 정책 논쟁, 입법 과정 등 합리적 시민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사안들이 여기에 속한다. 언론은 이 영역에서 양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전달하는 객관적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편에 동등한 발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직업적 규범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가장 바깥의 원은 일탈의 영역(Sphere of Deviance)이다. 이 영역에 놓인 주장이나 집단은 진지한 논의의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언론은 이들을 무시하거나, 다루더라도 조롱과 비판의 대상으로만 등장시킨다. 극단주의 정치 세력, 음모론, 사회적 금기를 위반하는 주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영역의 핵심은, 배제 자체가 의식적 판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경험된다는 점이다. 기자가 일탈의 영역에 속하는 목소리를 진지하게 다루면, 그 기자 자신이 일탈자로 분류될 위험에 처한다.

2. 경계의 유동성: 영역은 고정되지 않는다

할린 모델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세 영역의 경계가 역사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어떤 시대에 합의의 영역에 속했던 사안이 논쟁의 영역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일탈의 영역에 있던 주장이 서서히 논쟁의 영역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 자체가 이 이동의 전형적 사례다. 전쟁 초기,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는 명제는 합의의 영역에 있었다. 미국 언론은 전쟁의 정당성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았으며, 전쟁 수행 방식의 효율성만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1968년 테트 공세를 기점으로 전쟁의 정당성 자체가 논쟁의 영역으로 이동했고, 언론 보도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동성 결혼의 궤적도 이 이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1990년대까지 동성 결혼은 미국 주류 담론에서 일탈의 영역에 속했다. 이를 진지하게 주장하는 것 자체가 비주류적 행위로 간주되었다. 2000년대에 이 사안은 논쟁의 영역으로 진입했고, 찬반 양론이 동등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 2015년 대법원 판결 이후, 적어도 미국 주류 담론에서 동성 결혼의 합법성은 합의의 영역에 근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동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운동, 정치적 기업가정신, 위기 상황, 세대 교체 등 다양한 힘이 경계를 밀어붙이고 당겨온 결과다. 경계의 이동 자체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3. 조직 내부의 세 영역: 기업과 관료제의 담론 지형

할린의 모델은 조직 내부의 담론 구조를 이해하는 데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적용된다. 모든 조직에는 말할 수 있는 것, 논쟁할 수 있는 것,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의 구분이 존재하며, 이 구분을 아는 것이 조직 내 생존과 영향력의 핵심이다.

합의의 영역은 조직의 공식적 사명, 핵심 가치, 창업자의 비전 등으로 구성된다. "고객 중심"을 표방하는 기업에서 "고객은 실제로 우리의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은 단순한 이견 표명이 아니라 조직적 이단이 된다. 이런 명제들은 토론의 전제이지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신입 직원이 조직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체득하는 것이 바로 이 합의의 영역의 윤곽이다.

논쟁의 영역은 예산 배분, 전략 방향, 인사 결정, 프로젝트 우선순위 등 합리적 이견이 허용되는 사안들이다. 이 영역에서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권장되기도 하며, 건설적 갈등이 조직 학습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다만 논쟁의 방식에는 암묵적 규범이 있다. 데이터에 근거한 반론은 환영되지만, 감정적 대립이나 인신공격은 허용되지 않는 식이다.

일탈의 영역은 조직 내에서 가장 미묘하고 위험한 지대다. CEO의 리더십 능력에 대한 근본적 의문, 조직의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회의, 내부 권력 구조에 대한 공개적 비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주제를 공식 석상에서 꺼내는 사람은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 "팀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흥미로운 것은, 일탈의 영역에 속하는 이야기가 비공식 통로(복도 대화, 점심 자리, 퇴사자 인터뷰)에서는 활발하게 유통된다는 점이다. 공식 담론에서의 배제가 해당 생각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 영역의 경계가 급격히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적이 급락하면 CEO의 역량이라는 기존의 일탈적 주제가 논쟁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엔론(Enron) 사태나 노키아(Nokia)의 몰락 과정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위기 이전에 일탈의 영역에 있던 근본적 질문들이 사후적으로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곤 한다. 이것은 조직 내 일탈의 영역이 단순한 비합리성의 저장소가 아니라, 억압된 진실의 창고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4. 일상의 대인관계와 세 영역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세 영역의 구조는 작동한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합의의 영역이 넓고 일탈의 영역이 좁으며, 피상적 관계일수록 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부부 관계를 예로 들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합의의 영역에 놓인다. 자녀 교육 방침이나 재정 관리 방식은 논쟁의 영역에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이 결혼이 실수였다"거나 "당신의 가족이 문제다"와 같은 발언은 일탈의 영역에 속하며, 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관계의 근본 전제가 흔들린다. 부부 상담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일탈의 영역에 억압되어 있던 것을 논쟁의 영역으로 안전하게 옮기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 모임에서의 담론 지형도 이 틀로 설명된다. 한국 사회의 명절 가족 모임에서 "어른께 인사를 잘 드려야 한다"는 합의의 영역이고, 자녀의 진로 선택은 (세대에 따라 불편하지만) 논쟁의 영역이다. 그러나 가문의 재산 분배 문제나 특정 친척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일탈의 영역에 해당하며, 이를 어기는 사람은 "가족의 화목을 해치는" 존재로 규정된다.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 "우리 우정은 소중하다"는 합의의 영역이고, 정치적 견해 차이는 (관계에 따라) 논쟁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너는 성공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불행해 보인다"와 같은 발언은 일탈의 영역에 속한다. 진실일 수도 있지만, 이를 말하는 순간 관계의 전제가 재검토 대상이 된다.

5. 전략적 공간으로서의 세 영역: 적, 경쟁자, 협상 상대

할린의 모델이 가장 흥미로운 전략적 함의를 갖는 것은 적대적 혹은 경쟁적 관계에 적용될 때다. 상대의 세 영역 구조를 읽는 것, 그리고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고도의 전략적 행위가 된다.

군사 전략에서 심리전(PSYOP)의 핵심은 적의 합의 영역을 공격하는 것이다. 적국 국민들 사이에 "우리 전쟁은 정의롭다"는 합의가 존재한다면, 이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심리전의 목표다. 냉전 시기 미국의 소련 대상 라디오 방송(자유유럽방송 등)은 소련 체제의 합의 영역에 속하는 명제들("소련 체제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을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기업 경쟁에서도 이 원리가 작동한다. 경쟁사의 합의 영역을 공격하는 것은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애플이 2006년 "Get a Mac" 광고 캠페인에서 시도한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당시 PC 사용자들 사이에는 "컴퓨터란 윈도우로 작동하는 것이다"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애플은 이 합의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냄으로써 시장 판도의 변화를 이끌었다.

협상에서 세 영역의 활용은 더욱 정교하다. 숙련된 협상가는 상대방의 세 영역 지도를 먼저 파악한다. 상대가 합의의 영역에 놓아둔 전제가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논쟁 가능하다고 보는지, 무엇을 아예 테이블에 올리지 않으려 하는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노동 협상의 예를 들면, 사측이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를 합의의 영역에 놓고 협상에 임한다면, 노동측의 전략적 선택지가 생긴다. 이 전제를 수용하고 논쟁의 영역(구조조정의 규모, 보상 수준)에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구조조정이 정말 불가피한가?" 자체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후자는 더 근본적인 도전이지만, 성공할 경우 협상의 프레임 자체를 바꿀 수 있다.

외교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비핵화는 최종 목표다"가 합의의 영역에 있느냐, 논쟁의 영역에 있느냐에 따라 협상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각 당사자가 어떤 전제를 합의의 영역에 놓으려 하는지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협상의 실질적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6. 영역 이동의 기술: 프레이밍과 오버톤 창

할린의 세 영역 모델은 조지프 오버톤(Joseph Overton)의 '오버톤 창(Overton Window)'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오버톤 창은 특정 시점에서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책의 범위를 지칭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할린의 논쟁 영역에 해당한다.

영역 이동의 핵심 기제는 프레이밍(framing)이다. 동일한 사안도 어떤 프레임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다른 영역에 배치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게으름을 조장하는 무상 배분"으로 프레이밍하면 일탈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소비 기반 확충"으로 프레이밍하면 논쟁의 영역에 안착할 수 있다. 밀턴 프리드먼이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개념으로 유사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자유시장 경제학의 언어로 프레이밍함으로써 보수적 담론 내에서도 논쟁의 영역에 진입시킬 수 있었다.

의도적 영역 이동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탈의 영역에서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논쟁의 영역에 있는 것을 합의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전자의 전형적 사례가 사회운동이다. 여성 참정권, 인종 평등, 환경 보호 등의 가치는 모두 한때 일탈의 영역에 있었으나, 활동가들의 지속적 노력으로 논쟁의 영역을 거쳐 합의의 영역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 활동가들은 필연적으로 일탈자로 취급받는 대가를 치렀다.

후자의 사례로는 정치적 수사가 있다. "테러와의 전쟁" 프레이밍은 특정 군사 행동을 논쟁의 대상에서 합의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려는 시도였다. "테러에 반대한다"는 합의와 "특정 군사 작전을 지지한다"는 정책적 선택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후자에 대한 비판이 전자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7. 세 영역의 철학적 함의: 푸코, 그람시, 그리고 진리의 정치

할린의 모델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한 '담론의 질서(l'ordre du discours)'와 깊은 공명을 이룬다. 푸코는 모든 사회에 "진리로 간주되는 담론의 유형"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할린의 합의 영역은 푸코적 의미에서 '진리 체제(regime de verite)'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합의는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가 아니라, 담론적 권력이 특정 명제를 논쟁 이전의 것으로 만들어놓은 결과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 역시 이 맥락에서 읽힌다.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란, 지배 집단의 세계관이 피지배 집단에 의해서도 '상식(senso comune)'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태다. 이것은 정확히 할린의 합의 영역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합의의 영역에 놓인 명제는 권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상식으로, 당연한 것으로 경험된다. 그람시에게 진정한 정치적 투쟁은 바로 이 합의의 영역의 내용을 바꾸는 것, 즉 '상식'의 재구성이었다.

동양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이 흥미로운 대응점을 제공한다. 공자가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고 했을 때, 이것은 담론의 질서가 사회적 질서의 전제라는 인식이다. 어떤 것에 어떤 이름을 부여하느냐가 그것이 합의, 논쟁, 일탈 중 어디에 배치되느냐를 결정한다. "민주화 운동"과 "폭동"이라는 이름 붙이기의 차이가 동일한 사건을 완전히 다른 영역에 위치시키는 것과 같다.

노자(老子)의 관점에서는 더 급진적인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도가 말해지면 이미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는 도덕경 첫 구절은, 합의의 영역 자체가 본래적 진리가 아니라 언어적 구성물임을 암시한다. 사회가 합의로 간주하는 모든 것은 이미 도(道)의 전체성에서 이탈한, 부분적이고 편향된 언어적 절단이다. 노자적 사유는 세 영역 모두를 인간의 언어적 구축물로 보고, 그 너머를 가리킨다.

8. 실천적 지혜: 세 영역 읽기의 기술

할린의 모델을 실천적 지혜로 전환하려면, 자신이 속한 환경의 세 영역 지도를 의식적으로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첫째, 합의의 영역을 식별하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의문 없이 전제되는 명제들이 있다. 회의에서 아무도 근거를 요구하지 않는 주장, 질문 자체가 불편함을 유발하는 주제, "당연히 그렇지 않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영역이 이것이다. 합의의 영역을 식별하는 것은 그 집단의 무의식적 전제를 파악하는 것이며, 이것이 조직이나 사회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둘째, 논쟁의 영역의 실질적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열린 토론"을 표방하는 조직이라도, 실제로 논쟁이 허용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허용된 논쟁의 양극단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한 정당 내에서 "세율을 5% 올릴 것인가 3% 올릴 것인가"는 논쟁의 영역이지만, "세금이라는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일탈의 영역일 수 있다.

셋째, 일탈의 영역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하다. 일탈의 영역에 놓인 것들은 명시적으로 금지되기보다는 침묵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말하면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 회의록에서 삭제되는 것이 일탈의 영역을 구성한다. 역설적이게도, 조직의 진정한 약점이나 숨겨진 기회는 종종 이 영역에 존재한다.

넷째, 영역 이동의 타이밍을 포착하는 것이다. 위기, 리더십 교체, 외부 충격 등은 영역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만든다. 평소에는 일탈로 취급될 주장이, 위기 상황에서는 논쟁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창이 열린다. 이 창을 포착하는 것이 변화를 이끄는 리더십의 핵심이다.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대독 강경론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뮌헨 협정의 실패가 유화 정책이라는 합의를 논쟁의 영역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다섯째, 자기 자신의 세 영역을 성찰하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합의의 영역(자신이 의심 없이 전제하는 신념), 논쟁의 영역(스스로 고민하는 문제), 일탈의 영역(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가능성)이 있다. 자기 내면의 일탈 영역을 의식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적 의미에서의 자기 검토이며, 지적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내가 절대로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기 합의 영역의 경계를 드러낸다.

9. 결어: 담론의 지도와 자유의 조건

할린의 세 영역 모델은 단순한 미디어 이론을 넘어, 인간 집단이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논쟁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것, "말도 안 된다"고 배척하는 것의 구분은 현실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변동하는 담론적 구조물이다.

이 모델이 제공하는 가장 깊은 교훈은, 진정한 비판적 사유란 합의의 영역을 의식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바로 그 전제가 가장 강력한 권력의 산물일 수 있다. 물고기가 물을 모르듯, 우리는 자신이 속한 합의의 영역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담론의 지도가 드러나고, 비로소 자유로운 사유의 가능성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