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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키케로의 『발견론(De Inventione)』

by 변리사 허성원 2026. 1. 8.

키케로의 『발견론(De Inventione)』

(* 청년 키케로의 『발견론』은 수사학을 단순한 기교가 아닌 문명화의 도구로 정의하며, 지혜와 웅변의 결합을 강조한다. 이 책의 핵심인 '쟁점 이론(Stasis)'은 사실, 정의, 성질, 절차의 4단계로 논쟁을 분석하여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게 돕는다. 또한 인물과 행위의 속성에서 논거를 찾는 '토포스', 논리적 완결성을 높이는 '5단 논법', 청중 심리를 고려한 '6단계 연설 배치'는 설득의 정석을 보여준다. 미완성작임에도 서양 수사학의 뼈대를 세웠으며, 현대 법학의 IRAC 모델과 AI 논증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다.)

1. 서론: 로마 수사학의 새벽과 청년 키케로의 기획

1.1 시대적, 지적 배경의 재구성

기원전 1세기 초반의 로마 공화정은 정치적 격변과 지적 융합이 동시에 일어나는 용광로와 같았다. 내부적으로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권력 투쟁이 로마의 전통적인 공화정 질서를 위협하고 있었으며, 외부적으로는 헬레니즘 문화의 유입이 로마의 고유한 '모스 마이오룸(Mos Maiorum, 조상의 관습)'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었다.1 이 시기, 약 19세에서 20세 전후의 청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자신의 지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저술 작업에 착수한다. 그것이 바로 『발견론(De Inventione)』이다.2

이 저술은 당시 로마 상류층 자제들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오가며 수학하던 수사학적 훈련의 산물이다. 문헌학적 증거들은 이 책이 기원전 86년경에 집필되었음을 시사하며, 이는 동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수사학 교본인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Rhetorica ad Herennium)』과 매우 유사한 이론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3 두 텍스트 모두 헬레니즘 시기의 수사학자, 특히 헤르마고라스(Hermagoras of Temnos)의 '쟁점 이론(Stasis Theory)'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2

키케로는 당초 수사학의 다섯 가지 거대 강령—발견(Inventio), 배치(Dispositio), 표현(Elocutio), 기억(Memoria), 발표(Pronuntiatio)—을 모두 포괄하는 방대한 저술을 기획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첫 번째 단계인 '발견'만을 다룬 채 미완성으로 남기게 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텍스트는 로마 수사학이 그리스의 이론적 추상성을 어떻게 법정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현장으로 끌어내렸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초기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1.2 문헌의 성격과 후대의 평가

『발견론』은 청년 키케로가 로마의 법정 변론가로 데뷔하기 직전에 작성한 일종의 '학습 노트'이자 '이론적 선언서'의 성격을 띤다. 그는 훗날 자신의 성숙기 저작인 『연설가론(De Oratore)』에서 이 초기작을 "학교 교육의 미숙한 잔재(sketchbooks from my youth)"라고 칭하며 다소 평가절하하기도 했다.2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자기 비판과는 별개로, 역사적으로 『발견론』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며 수사학 교육의 절대적인 경전(Canon)으로 기능했다.

특히 12세기 르네상스와 뒤이은 인문주의 시대에 이 책은 논리학과 변증법을 잇는 가교로서 '자유 학예(Artes Liberales)' 교육과정의 핵심 텍스트로 자리 잡았다.4 이는 『발견론』이 단순히 연설의 기교를 다루는 매뉴얼을 넘어, 논리적 사고와 쟁점 분석을 위한 보편적인 '사고의 도구(Organon)'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텍스트 분석, 법적 추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원형을 담고 있는 보고(寶庫)이다.

2. 수사학의 철학적 기반: 문명화의 도구로서의 언어

2.1 야만에서 문명으로: 로고스(Logos)의 힘

키케로는 『발견론』의 서문(Prooemium)을 통해 수사학에 대한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거부하고, 이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그는 인간이 신체적 능력면에서는 야수보다 약하고 열등하지만, '말할 수 있는 능력(quod loqui possunt)'을 가졌기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고 선언한다.5

서문에서 그려지는 인류의 초기 상태는 홉스(Hobbes)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유사하다. 인간들은 숲과 들판에 흩어져 살며 육체적 힘에 의존해 생존했다. 이러한 야만 상태를 종식시키고 도시(Civitas)와 법(Jus), 그리고 공동체적 신의(Fides)를 구축한 것은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라, 지혜롭고 위대한 지도자의 '설득력 있는 연설'이었다.5 키케로에게 수사학은 단순한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흩어진 개인들을 하나의 사회로 묶어내고(congregare), 야만성을 길들여 문명으로 이끄는(mollire) 정치적, 윤리적 동력이다.

2.2 지혜(Sapientia)와 웅변(Eloquentia)의 불가분성

키케로 사상의 핵심 테제인 "지혜와 웅변의 결합"은 바로 이 서문에서 싹튼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다:

"지혜 없는 웅변은 국가에 큰 해악을 끼치지만, 웅변 없는 지혜는 국가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6

이 명제는 당대 로마의 두 가지 병폐를 동시에 겨냥한다. 첫째는 철학적 사유나 도덕적 원칙 없이 대중을 선동하는 데에만 능한 포퓰리스트 정치가들(Demagogues)에 대한 경계이다. 키케로는 이들을 "국가에 재앙을 가져오는 미치광이"로 규정하며, 카틸리나와 같은 인물들을 염두에 둔다.8 둘째는 현실 정치와 격리되어 상아탑 속에 갇힌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진리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여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 지혜는 무력하다.8

따라서 키케로가 『발견론』을 통해 양성하고자 했던 '이상적 연설가(Orator Perfectus)'는 철학자의 지적 통찰과 정치가의 실천적 웅변술을 겸비한 인물이다. 이는 훗날 그의 저작 『의무론(De Officiis)』과 『국가론(De Re Publica)』에서 완성되는 '철인 정치' 사상의 초기적 형태를 보여준다.1

3. 쟁점 이론(Stasis Theory): 논쟁의 해부학

3.1 스타시스(Stasis)의 정의와 인식론적 기능

'스타시스(Stasis)'는 그리스어로 '서다(Stand)' 또는 '멈추다(Halt)'를 의미하며, 라틴어로는 'Constitutio' 또는 'Status'로 번역된다.9 키케로는 논쟁이 시작되는 지점을 양측의 주장이 충돌하여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춰 서는 곳, 즉 '교착 상태'로 파악했다. 수사학적 '발견'의 핵심은 바로 이 멈춰 선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다.

모든 논쟁은 합의되지 않은 지점에서 발생한다. 만약 모든 사실과 가치에 동의한다면 논쟁은 성립하지 않는다.11 쟁점 이론은 이 불일치의 본질을 규명하는 진단 도구이자, 논증 전략을 수립하는 나침반이다. 키케로는 헤르마고라스의 분류법을 수용하여 쟁점을 크게 네 가지 범주로 체계화한다.12

3.2 네 가지 주요 쟁점 (Quattuor Constitutiones)

쟁점 유형 (Latin) 핵심 질문 인식론적 성격 현대 법학/토론의 대응
추정적 쟁점 (Constitutio Coniecturalis) "그 일이 있었는가?" (An sit?) 사실의 존부(存否) 확인 사실심리(Fact-finding), 증거조사, 알리바이 입증
정의적 쟁점 (Constitutio Definitiva) "그것은 무엇인가?" (Quid sit?) 개념의 정의 및 범주화 법적 구성요건 해석, 죄명 변경, 용어 정의 투쟁
성질적 쟁점 (Constitutio Generalis/Qualitas) "그것은 어떠한가?" (Quale sit?) 가치 평가 및 정당성 판단 양형 부당, 정당방위, 긴급피난, 정책의 타당성
절차적 쟁점 (Constitutio Translativa) "이 절차는 옳은가?" 절차적 적법성 및 관할권 절차 위반에 따른 공소 기각, 관할 위반, 제척/기피

3.2.1 추정적 쟁점 (Coniecturalis): 사실의 재구성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사건의 발생 여부나 행위의 주체를 다툰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는가?"와 같은 질문이 여기에 해당한다.11 '추정(Conjecture)'이라는 용어가 시사하듯이, 과거의 사실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보지 않는 한 100% 확신할 수 없으며, 오직 증거와 정황을 통한 '추론'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단계의 논증은 물증, 증인, 그리고 동기와 기회에 대한 개연성(Probability) 싸움이 된다.

키케로는 여기서 단순한 과거 사실뿐만 아니라, "이 정책이 미래에 효과가 있을 것인가?"와 같은 미래 예측이나 인과관계(Causality)의 문제도 추정적 쟁점의 영역에 포함시킨다.11

3.2.2 정의적 쟁점 (Definitiva): 언어의 정치학

사실 관계가 확정된 후, 논쟁은 그 행위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A가 B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검사는 이를 '절도'라 부르고 변호인은 '사용대차'라 주장하는 경우다.11 또는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대가성이 없는 선물이었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정치 스캔들도 전형적인 정의적 쟁점 싸움이다.

이 단계에서 연설가는 법률 조문의 자구(Letter of Law)와 입법 취지(Spirit of Law), 그리고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통상적 용례를 무기로 싸운다.13 정의(Definition)는 단순한 어휘 선택이 아니라, 상황을 프레이밍하고 대중의 인식을 지배하는 권력이다.

3.2.3 성질적 쟁점 (Qualitas/Generalis): 가치와 윤리의 충돌

행위의 이름까지 합의되었으나, 그 행위의 도덕적, 법적 성격을 문제 삼는 단계다. "살인(Murder)은 맞지만, 정당방위(Self-defense)였다"거나 "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행위였다"는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11 키케로는 이 쟁점을 다시 세분화하여 논의의 깊이를 더한다.

  • 법률적 성질 (Legal Quality): 실정법에 근거하여 행위의 위법성을 조각할 수 있는가?
  • 절대적 성질 (Absolute Quality): 행위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옳은가? (예: 폭군 살해는 살인이지만 정의로운가?)
  • 가정적 성질 (Assumptive Quality): 행위 자체는 나쁘지만,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는가? 여기에는 네 가지 하위 전략이 있다14:
  1. 자백과 회피 (Concessio): 죄를 인정하되 용서를 구함 (Purgatio) 또는 선처 호소 (Deprecatio).
  2. 책임 전가 (Remotio Criminis):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강요나 상황 탓으로 돌림.
  3. 반격 (Relatio Criminis): 피해자가 당할 만한 짓을 했다고 주장.
  4. 비교 (Comparatio):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했다고 주장.

3.2.4 절차적 쟁점 (Translativa): 게임의 규칙

사건의 내용(Merits of the case)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판의 형식적 요건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이 재판관은 편파적이다", "이 법정은 관할권이 없다", "공소 시효가 만료되었다" 등의 주장이 해당된다.9 고대 로마에서는 이를 주로 민사 소송의 초기 단계에서 피고가 방어 수단으로 사용했으나, 현대 법체계에서는 절차적 정의(Due Process)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4. 논거의 발견 (Inventio Argumentorum): 토포스(Loci)의 체계

쟁점이 파악되었다면, 그 쟁점을 돌파할 구체적인 '총알', 즉 논거(Argument)를 찾아내야 한다. 키케로는 논거가 숨겨져 있는 장소를 '토포스(Topos)', 라틴어로 '로키(Loci)'라고 불렀다. 그는 논거의 원천을 크게 '인물(Person)'과 '행위(Act)'로 이원화하여 촘촘한 그물망을 제시한다.15

4.1 인물의 속성 (Attributa Personis): 프로파일링의 원형

법정에서 피고인이나 증인의 신뢰성을 공격하거나 방어할 때 사용되는 11가지 분석 틀이다. 이는 현대 범죄심리학의 프로파일링 기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16

  1. 이름 (Nomen): 이름이 가진 사회적 함의나 별명을 통한 성격 유추.
  2. 본성 (Natura): 선천적 특성. 성별, 인종, 가족 배경, 나이, 신체적 강약 등. (예: "그는 노인이라서 힘으로 제압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생활 방식 (Victus): 후천적 환경. 직업, 교우 관계, 평소의 생활 태도, 교육 수준. (예: "그는 평소 도박을 즐기는 생활 방식을 가졌다.")
  4. 운 (Fortuna): 사회경제적 지위. 부유함/가난함, 권력 유무, 노예/자유민 신분.
  5. 습관 (Habitus): 몸에 밴 기질이나 태도. (예: 근면성, 게으름.)
  6. 감정 (Affectio): 사건 당시의 일시적인 심리 상태. 분노, 질투, 공포 등.
  7. 관심사 (Studium): 평소 열정을 쏟는 분야나 취미.
  8. 의도 (Consilium): 계획성 유무. 우발적인가, 계획적인가?
  9. 행적 (Facta): 과거의 전과나 업적. 평판의 근거.
  10. 우발적 사건 (Casus):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겪은 불행이나 행운.
  11. 언행 (Orationes): 과거의 발언, 저술, 위증 여부.

이러한 속성들은 개별적으로 쓰이기보다 상호 결합하여 논증의 그물을 짠다. 예를 들어, "가난한 운(Fortuna)을 가진 자가 사치스런 생활 방식(Victus)을 유지했다면, 불법적인 의도(Consilium)를 의심해볼 만하다"는 식이다.

4.2 행위의 속성 (Attributa Negotiis): 범죄의 재구성

사건 자체를 시간적, 물리적으로 해부하여 증거를 찾아내는 방법론이다. 키케로는 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한다.15

4.2.1 사건 이전 (Ante Rem)

범죄의 예비 단계와 동기를 추적한다.

  • 범행 도구 준비, 공범 모의, 기회 포착, 알리바이 조작 시도 등.
  • 예: "사건 전날 피고인이 독약을 구입한 정황."

4.2.2 사건 당시 (In Re)

범죄 실행의 구체적 정황을 분석한다. 여기서 현대 수사학의 '육하원칙'의 원형이 등장한다.

  • 장소 (Locus): 범행 현장의 특성 (밀폐성, 인적 드문 곳).
  • 시간 (Tempus): 밤/낮, 특정 계절이나 시기.
  • 기회 (Occasio): 범행을 실행하기에 적절한 순간이었는가?
  • 방식 (Modus): 잔혹성, 우발성, 치밀함의 정도.
  • 수단 (Facultas): 범행을 수행할 물리적, 지적 능력이 있었는가?

4.2.3 사건 이후 (Post Rem)

범행 후의 정황을 통해 범인을 역추적한다.

  • 도주, 증거 인멸, 장물 소지, 심경의 변화(후회, 불안), 자백 또는 침묵.

이러한 분석 틀은 검사에게는 유죄 입증의 체크리스트가 되고, 변호인에게는 무죄 추정의 틈새를 찾아내는 지도가 된다.

5. 논증의 논리적 구조: 귀납과 연역의 수사학적 변용

키케로는 논거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이를 논리적으로 타당한 형식(Form)에 담아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수용하되, 이를 대중 연설과 법정 상황에 맞게 실용적으로 변형시켰다.

5.1 귀납법 (Inductio): 소크라테스적 문답의 힘

개별적인 사례들로부터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했던 문답법을 귀납법의 전형으로 제시한다.20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상대방이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유사 사례들을 제시하여 동의를 얻어낸다.
  2. 상대방의 동의(Assent)를 바탕으로, 논쟁 중인 사안도 앞선 사례들과 유사함을 보여준다.
  3. 결국 상대방은 자신의 입으로 화자가 원하는 결론을 시인하게 된다.

키케로는 귀납법을 사용할 때 "질문의 의도를 숨겨라"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게 해야 방어기제를 작동시키지 않고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5.2 연역법 (Ratiocinatio)과 5단 논법 (Epicheireme)

키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Syllogism)이 법정에서는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청중은 철학자가 아니기에, 전제 하나하나를 의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각 전제를 증명하는 과정을 포함한 **5단 논법(Epicheireme)**을 제안한다.7

5단 논법의 구조:

단계 라틴어 명칭 기능 및 내용 예시
1. 대전제 Propositio 일반적인 원칙이나 법칙 제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국가도 잘 다스린다."
2. 대전제 증명 Approbatio Propositionis 대전제가 왜 참인지 근거 제시 (통념, 격언 등) "왜냐하면 국가는 가정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3. 소전제 Assumptio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건 적용 "그러나 피고인은 자신의 가정도 파탄 냈다."
4. 소전제 증명 Approbatio Assumptionis 소전제가 사실임을 증거로 입증 "증인들의 증언과 빚더미에 앉은 가계부가 이를 증명한다."
5. 결론 Complexio 앞선 전제들로부터 필연적 결론 도출 "따라서 피고인은 국가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

이 구조는 '증명(Approbatio)' 단계를 통해 논리의 완결성을 높이고, 청중의 반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강력한 설득 도구이다. 현대의 법률 의견서나 학술 논문도 본질적으로 이 5단 논법의 확장된 형태를 띤다.

6. 연설의 배치 (Dispositio): 청중을 지배하는 시퀀스

발견된 논거들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설득의 효과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키케로는 인간의 심리 변화에 맞춘 6단계의 표준 연설 구조를 제시한다.23

6.1 서론 (Exordium): 심리적 예열

연설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단계다. 키케로는 서론의 3대 목표로 **호의(Benevolum), 주의(Attentum), 이해 가능성(Docilem)**을 제시한다.25

  • 직접적 서론 (Principium): 청중이 이미 우호적이거나 사안이 평이할 때 사용한다. 곧바로 본론의 예고로 들어간다.
  • 암시적 서론 (Insinuatio): 청중이 적대적이거나, 연설가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사용하는 고도의 기법이다. 주제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 보편적인 이야기나 유머, 혹은 상대방에 대한 은근한 공격으로 시작하여 청중의 경계심을 허물고 서서히 논제로 진입한다.25

6.2 사실 진술 (Narratio): 스토리텔링의 기술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단계다. 키케로는 훌륭한 진술의 3요소로 **간결성(Brevis), 명료성(Aperta), 개연성(Probabilis)**을 든다.26

  • 특히 개연성이 중요하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믿기지 않게 말하면 실패한 진술이다. 반면 거짓이라도 그럴듯하게(Verisimile) 구성하면 성공한다. 이를 위해 인물의 성격(Character)과 행위가 일치해야 하며, 시간과 장소의 정황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6.3 분할 (Partitio): 논의의 로드맵

청중에게 연설의 전개 방향을 예고한다.11

  1. 동의와 이견: "검사와 저는 피고인이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가 살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2. 순서 예고: "저는 첫째로 동기를, 둘째로 알리바이를, 셋째로 증거의 오염을 다루겠습니다."
    이는 청중의 인지적 부담을 줄여주고, 연설가를 논리 정연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6.4 확증 (Confirmatio): 논증의 적층

준비한 논거들을 쏟아부어 주장을 입증하는 핵심 단계다. 키케로는 논거 배치에 있어서 '샌드위치 기법'을 선호했다.16

  • 최초: 가장 강력한 논거를 배치하여 기선을 제압한다.
  • 중간: 다소 약한 논거들을 모아서 배치한다. (약한 논거도 뭉치면 힘이 된다.)
  • 최후: 두 번째로 강력한 논거, 혹은 감동적인 논거를 배치하여 강한 여운을 남긴다.

6.5 반박 (Reprehensio): 방어와 역공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공격한다. 키케로는 단순히 상대방의 증거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 논리의 전제 자체를 무너뜨리거나(연역법 공격), 예외 사례를 들어 일반화를 깨뜨리는(귀납법 공격) 논리적 반박을 중시했다.

6.6 결론 (Peroratio): 이성과 감정의 통합

연설을 마무리하며 결정타를 날리는 단계다. 키케로는 결론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27

  1. 요약 (Enumeratio): 복잡한 논의를 핵심 요점으로 정리하여 기억을 돕는다.
  2. 분개 (Indignatio): 상대방의 악행이나 사건의 잔혹성을 부각하여 청중의 정의감과 분노를 자극한다.
  3. 동정 (Conquestio):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불행한 처지를 호소하여 연민(Pity)을 이끌어낸다.
    키케로는 "논리로 설득하고, 감정으로 움직여라(Movere)"고 강조했다. 결론부는 바로 이 '움직임'을 위한 공간이다.

7. 『발견론』에서 『연설가론』으로: 수사학의 진화

키케로의 수사학은 『발견론』에 머무르지 않았다. 중년의 키케로는 『연설가론(De Oratore)』을 통해 청년기의 도식적인 이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한다.3

  • 기계적 규칙에서 유기적 통합으로: 『발견론』이 수사학을 쪼개고 분석하는 해부학이었다면, 『연설가론』은 그 모든 요소가 살아 숨 쉬는 생물학이다. 그는 "규칙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Humanitas)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4
  • 철학적 깊이의 심화: 『발견론』에서도 지혜를 강조했지만, 『연설가론』에서는 연설가가 곧 철학자가 되어야 함을 더욱 강력하게 설파한다.

그러나 『발견론』이 제공한 엄밀한 분류 체계와 용어 정의(Terminology)가 없었다면, 『연설가론』의 고차원적인 논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발견론』은 로마 수사학의 '뼈대'를 세웠고, 후기 저작들은 그 위에 '살'과 '영혼'을 입힌 것이다.

8. 현대적 함의: 법, 인공지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8.1 현대 법학과 IRAC 모델

키케로의 쟁점 이론과 5단 논법은 현대 영미법 교육의 표준인 IRAC (Issue, Rule, Application, Conclusion) 모델의 직접적인 조상이다.28

  • Issue = Stasis: 무엇이 문제인가?
  • Rule = Propositio: 적용할 법리는 무엇인가?
  • Application = Assumptio & Approbatio: 사실 관계에 법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 Conclusion = Complexio: 결론은 무엇인가?
    법학도들이 판례를 분석하고 소장을 작성할 때 사용하는 사고 과정은 2천 년 전 키케로가 고안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8.2 인공지능(AI)과 계산적 수사학 (Computational Rhetoric)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발견론』은 의외의 장소에서 부활하고 있다. 자연어 처리(NLP)와 '논증 마이닝(Argumentation Mining)' 분야에서 쟁점 이론(Stasis Theory)은 AI가 인간의 복잡한 논쟁 구조를 이해하고 분류하는 데 유용한 알고리즘 모델을 제공한다.29

  • 분쟁의 자동 분류: AI는 쟁점 이론의 4단계(사실-정의-가치-정책)를 의사결정 트리(Decision Tree)로 활용하여, 인터넷상의 댓글이나 토론이 현재 어떤 단계에서 충돌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31
  • 설득적 텍스트 생성: 챗봇(Chatbot)이 논리적인 글을 생성할 때, 키케로의 6단계 연설 배치(Dispositio)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설득력 있는 구조의 텍스트를 산출할 수 있다.30

8.3 협업과 갈등 해결의 도구

현대의 비즈니스 미팅이나 공공 갈등 상황에서도 쟁점 이론은 강력한 진단 도구다. 회의가 공전할 때, "우리가 지금 사실 관계를 다투는가, 아니면 가치관의 차이를 다투는가?"를 묻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32 이는 '스타시스'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합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임을 보여준다.

9. 결론: 2천 년을 관통하는 설득의 원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발견론』은 비록 미완의 청년기 습작이지만, 서양 지성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미숙하지 않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수사학을 단순한 '말재주'의 영역에서 체계적인 '학문(Scientia)'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그가 정립한 쟁점 분석(Stasis), 논거 발견(Topoi), 논리 구성(Epicheireme), **연설 배치(Dispositio)**의 원리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유효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보편 문법이다.

정보가 범람하고 진실(Fact)과 의견(Opinion)의 경계가 흐려지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에, "무엇이 쟁점인가?"를 집요하게 묻고, "근거는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따지는 키케로의 방법론은 우리에게 냉철한 이성적 사유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발견론』은 고대의 유물이 아니라, 혼란한 현대 사회를 항해하는 데 필수적인 '지적 나침반'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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