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
_ 공화주의적 시민 윤리와 서구 정치철학의 도덕적 기원
"진정한 유익함은 항상 도덕적 선에서 나온다"
(* 기원전 44년 공화정 몰락기, 키케로가 아들에게 남긴 이 저작은 서구 시민 윤리의 초석이다. 1권은 4주덕(지혜, 정의, 용기, 절제)에 기반한 도덕적 선(Honestum)을, 2권은 리더십과 같은 현실적 유익함(Utile)을 다룬다. 핵심인 3권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결코 유익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이익과 도덕의 충돌은 착시일 뿐임을 역설한다. 정의와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이 사상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로크의 자연법 사상을 거쳐 현대 민주주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 서론: 공화국의 황혼과 철학적 유언
기원전 44년, 로마 공화국은 그 운명의 끝자락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로마는 해방의 기쁨보다는 새로운 내전의 공포에 휩싸였다. 평생을 공화정의 수호와 '법의 지배'를 위해 투쟁했던 노정객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43)에게 이 시기는 정치적 절망과 개인적 비극이 교차하는 암흑기였다. 사랑하는 딸 툴리아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그리고 안토니우스와의 목숨을 건 정치적 투쟁 속에서 키케로는 붓을 들었다.1
그의 마지막 저서이자 철학적 유언이 된 《의무론(De Officiis)》은 표면적으로는 아테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마르쿠스(Marcus Minor)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을 띠고 있다.4 당시 21세였던 마르쿠스는 철학 공부보다는 군사적 영광과 향락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로마 시민, 나아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지침을 전하고자 했다.3 그러나 이 저작의 진정한 수신자는 아들을 넘어선 로마의 젊은 세대, 그리고 무너져가는 공화국의 가치를 재건하고자 했던 미래의 시민들이었다.
본 보고서는 키케로의 《의무론》을 철학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이 저작의 구조를 따라가며, 도덕적 선(Honestum)과 현실적 이익(Utile)의 관계, 그리고 이 둘의 갈등 상황에서 요구되는 실천적 지혜를 심층적으로 규명한다. 또한, 파나이티오스(Panaetius)의 스토아 철학이 키케로를 통해 어떻게 로마화되었는지, 그리고 이 텍스트가 중세의 암브로시우스부터 르네상스의 마키아벨리, 계몽주의의 로크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성사에 어떠한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다.5
2. 사상적 배경과 방법론: 로마적 스토아주의의 탄생
2.1 파나이티오스와의 지적 대화
《의무론》의 제1권과 제2권은 기원전 2세기의 스토아 철학자 파나이티오스의 저서 《의무에 관하여(Peri Kathēkontos)》를 모델로 삼고 있다.1 파나이티오스는 초기 스토아학파의 엄격하고 비현실적인 도덕률(예: 현자만이 미덕을 소유한다)을 완화하여, 일반 시민도 수행할 수 있는 실천적 윤리를 제시했다. 키케로는 이러한 '중기 스토아학파'의 입장을 수용하여, 완벽한 현자(Sage)가 아닌 '진보하는 사람(Proficiens)'을 위한 윤리를 정립하고자 했다.4
그러나 키케로는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적 방법론을 견지하면서도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스토아적 독단(Dogma)을 유용하게 차용했다.8 특히 파나이티오스가 다루지 못한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갈등' 문제를 제3권에서 독자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을 로마의 정치적 현실에 맞게 완성해냈다.1
2.2 의무(Officium)의 이중 구조: 완전한 의무와 중간 의무
키케로는 의무를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한다. 이는 스토아학파의 개념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4
| 구분 | 그리스어 (Stoic Term) | 라틴어 (Ciceronian Term) | 정의 및 특징 |
| 완전한 의무 | 카토르토마 (Katorthoma) | Perfectum Officium | 절대적이고 완전한 도덕적 선. 오직 지혜로운 현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의무. |
| 중간 의무 | 카테콘 (Kathekon) | Medium Officium | 합당한 이유(Probabilis Ratio)를 댈 수 있는 의무. 일반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수행해야 할 실천적 의무. |
《의무론》은 주로 '중간 의무'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키케로가 철학적 사변보다는 구체적인 로마 시민의 삶, 즉 정치, 법률, 가정사에서의 올바른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데 목적을 두었음을 보여준다.4
3. 제1권: 도덕적 선(Honestum)의 해부
제1권의 주제는 '무엇이 도덕적으로 아름답고 올바른가(Honestum)'이다. 키케로는 인간의 본성에서 도덕성의 기원을 찾는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사회를 구성하며, 질서를 사랑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성적 경향성에서 4주덕(지혜, 정의, 용기, 절제)이 파생된다.10
3.1 지혜(Sapientia): 진리 탐구와 실천의 균형
키케로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지식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순수한 사색적 삶(Vita Contemplativa)보다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을 우위에 둔다.12 "정의와 결합되지 않은 지식은 지혜라기보다 교활함에 가깝다"는 그의 주장은 지식이 반드시 공공의 이익(Res Publica)에 봉사해야 함을 강조한다.13 상아탑에 갇혀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는 학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의 철학적 이상을 로마의 공공 봉사(Public Service) 정신으로 재해석한 대목이다.
3.2 정의(Iustitia): 사회적 결속의 토대
키케로는 정의를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규정한다. 그는 정의의 원칙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12
3.2.1 정의의 두 가지 원칙과 불의의 유형
- 해악 금지: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 공공성 존중: 공공의 것은 공공의 용도로, 사유물은 개인의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키케로는 불의(Injustice)를 두 가지로 나눈다.15
- 적극적 불의: 탐욕이나 분노로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
- 소극적 불의: 타인이 부당하게 해를 입는 것을 보고도 방관하는 행위. 키케로는 자신의 일신상 안락을 위해 공공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을 비겁한 행위로 강력히 비판한다.
3.2.2 전쟁과 평화의 윤리
키케로는 전쟁조차도 법적 절차와 도덕적 원칙 하에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한 전쟁(Just War)' 이론의 선구자이다.16 전쟁은 오직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항복한 적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는 카토(Cato)의 아들이 군인으로서의 선서가 만료된 후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던 사례를 들며, 적군이라 할지라도 '신의(Fides)'와 법적 절차는 엄격히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3.2.3 재산권과 사회 정의
키케로는 사유 재산권을 자연법적 권리가 아닌, 사회적 합의와 점유에 의해 형성된 권리로 보면서도, 국가가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17 이는 그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그라쿠스 형제가 시도했던 토지 재분배나 부채 탕감 정책을 '사유 재산에 대한 침해'이자 사회 질서의 파괴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Suum cuique tribuere)"이며, 타인의 재산을 빼앗아 분배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3.3 용기(Fortitudo): 위대한 영혼의 조건
용기는 단순히 전장에서의 무모함이 아니다. 키케로는 이를 '위대한 영혼(Magnitudo Animi)'으로 격상시킨다. 진정한 용기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12
- 외적 상황에 대한 무관심: 부, 권력, 쾌락, 명예와 같은 세속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도덕적 선만을 유일한 선으로 여기는 태도.
- 공공을 위한 헌신: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난관을 돌파하는 의지.
키케로는 카이사르와 같은 독재자들의 용기를 '야만적 대담함'으로 깎아내린다. 정의가 결여된 용기는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악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기는 토가(시민복)에게 양보해야 한다(Cedant arma togae)"는 유명한 문구를 통해, 군사적 용기보다 시민적, 정치적 용기가 우월함을 천명한다.3
3.4 절제(Temperantia)와 데코룸(Decorum): 도덕의 미학
제1권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데코룸(Decorum, 적절함/어울림)'에 대한 논의다.19 데코룸은 내면의 도덕적 질서가 외면의 행동, 말, 태도로 표출될 때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3.4.1 4가지 페르소나(Personae) 이론
키케로는 인간이 네 가지 '가면(역할)'을 쓰고 살아간다는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한다.21
- 보편적 페르소나: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본성. 짐승과 구별되는 품위를 유지해야 할 의무.
- 개별적 페르소나: 각 개인의 고유한 신체적, 정신적 특성. 키케로는 획일적인 도덕을 강요하지 않는다. 엄격한 카토와 유연한 카이사르가 각자의 기질에 맞게 미덕을 실현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 우연적 페르소나: 시대, 가문, 재산, 지위 등 운명에 의해 주어진 환경.
- 선택적 페르소나: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나 삶의 방식(철학자, 정치가, 법률가 등).
도덕적 삶이란 이 네 가지 역할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개별적 재능(2번째 페르소나)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직업(4번째 페르소나)을 선택하여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것이 데코룸의 핵심이다.
4. 제2권: 유익함(Utile)과 정치적 성공의 기술
제2권에서 키케로는 '무엇이 유익한가(Utile)'를 다룬다. 이는 개인과 국가의 번영, 권력, 재산, 영광을 포함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미덕 이외의 것은 '무관한 것(Adiaphora)'으로 취급되지만, 키케로는 현실 정치가로서 유익함의 가치를 긍정하며, 이것이 어떻게 도덕적 선과 양립할 수 있는지 논한다.1
4.1 인간 협력의 중심성과 리더십
키케로는 "인간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것도 인간이고, 가장 큰 해를 끼치는 것도 인간"이라는 명제를 세운다.12 금이나 은, 토지와 같은 물질적 자원도 인간의 노동과 협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24 따라서 성공적인 삶의 핵심은 **"어떻게 타인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4.2 사랑 대 두려움: 마키아벨리와의 선제적 대결
키케로는 타인의 협력을 얻는 방법으로 '사랑(Caritas)'과 '두려움(Timor)'을 대조한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두려움은 나쁜 스승이며, 호의는 영원한 수호자이다." 12
공포에 기반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붕괴한다. 독재자는 만인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그 자신도 만인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옥 속에 산다. 이는 훗날 마키아벨리가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안전하다"고 주장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키케로는 공화정이라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동체에서는 오직 신뢰와 존경에 기반한 리더십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았다.26
4.3 영광(Gloria)의 3요소
키케로에게 영광은 허영이 아니라, 미덕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이다. 진정한 영광을 얻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3:
- 호의(Benevolentia): 대중이 지도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이는 온화함과 관용을 통해 얻어진다.
- 신뢰(Fides): 지도자가 지혜롭고 정의롭다는 믿음. 특히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인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 존경(Admiratio): 지도자가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위대한 용기와 절제를 보여줄 때 생기는 경외심.
4.4 관용의 경제학: 재정과 봉사
키케로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관용(Liberalitas)을 두 가지로 나눈다.29
- 재물에 의한 관용: 돈을 나누어 주거나 연회를 베푸는 것. 이는 자원을 고갈시키고,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큰 욕심을 부리게 만든다. 키케로는 이를 "재산의 탕진"이라며 경계한다.
- 봉사에 의한 관용: 자신의 지혜와 법률적 지식으로 타인을 변호하고 돕는 것. 이는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으며, 수혜자와의 인격적 유대를 강화하고, 그 혜택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키케로는 아들에게 "지갑을 여는 관용보다 마음과 능력을 쓰는 관용을 베풀라"고 조언한다. 이는 정치적 후원 관계(Clientela)가 중요했던 로마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5. 제3권: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충돌과 해결
제3권은 《의무론》의 절정이자 키케로의 독자적인 철학적 기여가 빛나는 부분이다. 그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결코 유익할 수 없다"는 대원칙을 천명하며, 겉보기에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도덕한 행위들이 왜 본질적으로 행위자에게 해로운지를 논증한다.30
5.1 갈등의 해결 공식: 스토아적 일원론
키케로는 유익함과 도덕적 선이 충돌하는 상황은 '착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그르다면, 그것이 아무리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져다준다 해도, 인간 본성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훼손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유익'하다.32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것을 빼앗는 것은 죽음이나 가난, 고통보다 더 자연(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17
5.2 사례 연구(Case Studies): 고대의 비즈니스 윤리와 딜레마
키케로는 이 원칙을 증명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생생한 딜레마 상황들을 제시한다. 이 사례들은 현대 윤리학과 경제학에서도 여전히 인용되는 고전적인 문제들이다.
5.2.1 로도스의 곡물 상인 (The Grain Merchant): 정보 비대칭의 윤리
상황: 기근이 든 로도스 섬에 한 상인이 곡물을 싣고 도착했다. 그는 뒤따라오고 있는 수많은 곡물선들이 곧 도착하여 곡물 가격이 폭락할 것임을 알고 있다.
질문: 상인은 이 정보를 숨기고 현재의 높은 가격에 곡물을 팔아야 하는가, 아니면 정보를 공개하고 적정 가격에 팔아야 하는가?.31
키케로는 두 스토아 철학자의 가상 논쟁을 통해 이를 분석한다.
| 입장 | 대변자 | 주장 논리 |
| 정보 비공개 (판매 허용) | 디오게네스 (Diogenes) | "나는 침묵했을 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며, 구매자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Caveat Emptor). 상인도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
| 정보 공개 (도덕적 의무) | 안티파테르 (Antipater) | "당신은 사회적 존재다. 공동체의 이익이 곧 당신의 이익이다. 이익을 위해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것(Concealment)'은 기만이자 사기이며 자연법 위반이다." |
키케로의 판결: 키케로는 안티파테르의 손을 들어준다. 그는 "침묵하는 것이 모두 은폐는 아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 알아야 할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은 사기"라고 규정한다.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신의(Fides)를 저버린 상인은 단기적 이익을 얻을지 모르나,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판과 자기 존중감을 잃기 때문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32
5.2.2 결함 있는 집 판매 (The House Seller)
상황: 위생이 나쁘고 해충이 나오는 집을, 그 사실을 모르는 구매자에게 '좋은 집'이라고 광고하지는 않았지만 결함을 알리지 않고 파는 경우.
결론: 이 역시 사기이다. 로마 민법(Civil Law)에서도 매도인의 고지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예로 들며, 키케로는 시민 간의 거래에서 투명성과 선의가 유지되어야 함을 역설한다.32
5.2.3 기게스의 반지 (The Ring of Gyges): 익명성과 도덕
상황: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전설. 투명해질 수 있는 반지를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왕이 되고 거부를 쌓을 수 있다면, 그리고 절대 들키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가?
결론: 쾌락주의자나 공리주의자는 "들키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익"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키케로는 "도덕적 수치심(Turpitudo) 자체가 가장 큰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현자라면 목격자가 없어도 양심의 법정에 서기 때문에 결코 부도덕한 짓을 하지 않는다. 이익과 도덕을 분리하려는 시도 자체가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30
5.2.4 레굴루스의 맹세 (Regulus): 신의와 고문
상황: 1차 포에니 전쟁 중 카르타고에 포로로 잡힌 로마 장군 레굴루스는 포로 교환 협상을 위해 로마로 보내진다. 그는 협상이 실패하면 돌아오겠다고 맹세했다. 로마 원로원에서 그는 "포로 교환은 국익에 반한다"며 협상 거부를 주장했다. 그리고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끔찍한 고문과 죽음이 기다리는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분석: 공리주의적 관점(그리고 당시 일부 변론가들)에서는 맹세를 어기고 로마에 남는 것이 생명을 보존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유익한' 길처럼 보였다. 적에게 한 강요된 맹세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있었다.
결론: 키케로는 레굴루스의 선택이야말로 진정으로 유익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비겁한 맹세 파기자'로 사는 것은 영혼의 타락이라는 가장 큰 악(Summum Malum)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레굴루스는 육체의 파멸을 감수함으로써 정신의 위대함과 로마인의 신의(Fides)를 영원히 지켰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선이 유익함을 압도하는, 혹은 진정한 유익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이다.35
5.2.5 테미스토클레스의 제안: 국가 이성(Raison d'État)의 한계
상황: 아테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가 "스파르타 함대를 몰래 불태우면 아테네가 패권을 잡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아리스티데스는 "유익하지만 정의롭지 않다"고 평가했고, 아테네 시민들은 이를 거부했다.
결론: 국가 단위의 집단적 이익 추구에서도 정의는 타협될 수 없다. 부도덕한 제국주의는 결국 동맹의 반발과 내부의 타락을 불러와 국가를 파멸로 이끈다.8
6. 역사적 영향과 현대적 의의: 서구 지성사의 척추
키케로의 《의무론》은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아 서구 문명의 윤리적 근간을 형성했다.
6.1 초기 기독교와 중세: 이교도 성인(Saint Cicero)
초기 교회 교부들은 키케로의 사상에서 기독교 윤리와의 접점을 찾았다. 특히 성 암브로시우스(St. Ambrose)는 389년경 《성직자의 의무론(De Officiis Ministrorum)》을 집필하며 키케로의 책을 거의 그대로 모방했다. 그는 키케로의 4주덕에 기독교적 겸손과 은총을 덧입혔고, 이를 통해 스토아 철학은 기독교 신학의 일부로 흡수되어 중세 천 년을 지배하는 도덕 교과서가 되었다.28
6.2 르네상스 인문주의: 시민적 삶의 부활
1345년 페트라르카(Petrarch)가 베로나에서 키케로의 편지들을 재발견하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문이 열렸다.37 페트라르카에게 키케로는 중세의 은둔적·명상적 삶(Monastic Life)에 대항하여, 세속 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의 모델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의무론》을 "기독교도가 읽어야 할 필독서"로 꼽았으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책 중 하나가 되었다.5
6.3 근대 정치철학: 자연법과 권리 혁명
《의무론》은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산실이 되었다.
- 존 로크(John Locke): 키케로의 "국가는 사유 재산의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상과 자연법 이론은 로크의 《통치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는 "생명, 자유, 재산"의 권리를 천명한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17
-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등은 키케로를 탐독했다. "폭군에 대한 저항권"과 "공화국 시민의 덕성"에 대한 키케로의 논의는 미국 독립 혁명과 헌법 제정에 깊은 영감을 불어넣었다.42 볼테르는 "이보다 더 현명하고, 더 진실하며, 더 유용한 책은 쓰일 수 없다"고 찬사했다.43
6.4 결론: 영원한 현재성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의무론》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다. 이 책은 "이익을 위해 도덕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에 대해, "도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이익"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웅변한다.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이윤 추구, 권력을 위한 포퓰리즘, 국가 이익을 명분으로 한 불의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키케로는 여전히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인 조언을 건네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반지를 꼈을 때도 여전히 정의로울 수 있는가?"
부록: 주요 개념 비교표
표 1: 도덕적 판단의 기준 (디오게네스 vs 안티파테르)
| 구분 | 디오게네스 (Diogenes of Babylon) | 안티파테르 (Antipater of Tarsus) | 키케로의 입장 |
| 핵심 가치 | 사적 자치, 법적 무결성, 상업적 자유 | 사회적 연대, 자연법적 의무, 신의(Fides) | 안티파테르 지지 |
| 정보 공개 | 의무 없음. (단, 허위 사실 유포는 금지) | 의무 있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무) | 의무 있음. (은폐는 기만이다) |
| 구매자 책임 | Caveat Emptor (구매자가 주의해야 함) | 상호 이익 (판매자는 구매자를 도울 의무가 있음) | 상호 신뢰와 투명성 강조 |
| 논리적 근거 | 실정법(Civil Law) 준수 여부 | 자연법(Natural Law) 및 인간 본성 | 도덕적 선(Honestum)의 절대성 |
표 2: 4주덕과 인간 본성의 관계
| 덕목 (Virtue) | 기원 (Human Instinct) | 주요 실천 내용 (Duties) | 타락한 형태 (Vices) |
| 지혜 (Sapientia) | 진리 탐구의 욕구 | 진리와 거짓 구별, 실천적 지혜 추구 | 교활함(Cunning), 상아탑의 은둔 |
| 정의 (Iustitia) | 사회적 결속 본능 | 해악 금지, 공공/사유 재산 구분, 신의 | 적극적 가해, 소극적 방관, 탐욕 |
| 용기 (Fortitudo) | 독립성과 지배 욕구 | 외적 상황 초월, 공공을 위한 헌신 | 야만적 대담함, 개인적 야망을 위한 투쟁 |
| 절제 (Temperantia) | 질서와 조화에 대한 감각 | 육체적 충동 통제, 데코룸(품위) 유지 | 무절제, 방탕, 부적절한 언행 |
참고 자료
- De Officiis - Wikipedia,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De_Officiis
- Cicero's On Duties: A Guideline to Morality by Pete Fagella | Modern Stoicism,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modernstoicism.com/ciceros-on-duties-a-guideline-to-morality-by-pete-fagella/
- A Father's Advice – Cicero De Officiis (On Duties) – Lucius'€™ Romans - Blogs at Ken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blogs.kent.ac.uk/lucius-romans/2017/08/13/a-fathers-advice-cicero-de-officiis-on-duties/
- Introduction - Cicero's 'De Officii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ciceros-de-officiis/introduction/3623BD03E9DAD3C6A632FE1A13A64372
- Cicero's legacy in medieval western Europe | Europeana,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europeana.eu/stories/ciceros-legacy-in-medieval-western-europe
- The Influence of Marcus Tullius Cicero on Modern Legal and Political Ideas - UB Law's Institutional Repository,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scholarworks.law.ubalt.edu/cgi/viewcontent.cgi?article=2156&context=all_fac&utm_
- Oikeiōsis and the Origin of Virtue (Chapter 3) - Cicero's 'De Officii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ciceros-de-officiis/oikeiosis-and-the-origin-of-virtue/243EE4FF5A219941D849CE18F21DF200
- Cicero, de Officiis (On Duties) (Cic.+Off.) - ToposTex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topostext.org/work/616
- Is Cicero's De Officiis worth reading? : r/Stoicism - Reddi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reddit.com/r/Stoicism/comments/8wcetz/is_ciceros_de_officiis_worth_reading/
-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De_Officiis#:~:text=his%20own%20ideas.-,Book%20I,the%20right%20perception%20of%20these.
- Book I - CICERO, De Officiis | Loeb Classical Library,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loebclassics.com/view/marcus_tullius_cicero-de_officiis/1913/pb_LCL030.17.xml?amp;readMode=recto&readMode=recto
- De Officiis - World History Encyclopedia,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worldhistory.org/De_Officiis/
- LacusCurtius • Cicero — De Officiis I.61‑91,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de_Officiis/1D*.html
- LacusCurtius • Cicero — De Officiis I.152‑161,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de_Officiis/1F*.html
- Book I - CICERO, De Officiis | Loeb Classical Library,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loebclassics.com/view/marcus_tullius_cicero-de_officiis/1913/pb_LCL030.45.xml?amp;readMode=recto&readMode=recto&print
- Cicero on Just War - Satyagraha - WordPress.com,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satyagraha.wordpress.com/2012/04/19/cicero-on-just-war-theory/
- There's No "I" in Team: Individualism, Private Property, and Propriety in Cicero's De Officiis - Bemidji State University,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bemidjistate.edu/academics/honors/wp-content/uploads/sites/73/2022/11/Theres-No-I-in-Team.-Individualism-Private-Property-and-Propriety-in-Ciceros-De-Officiis-Parrish-Alex.pdf
- Cicero on decorum and the morality of rhetoric - ResearchGat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54090614_Cicero_on_decorum_and_the_morality_of_rhetoric
- Cicero and the Cynics (Chapter 9)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ciceros-de-officiis/cicero-and-the-cynics/446D830B2EB1E3105487A006916F6CCF
- Self and Society (Part IV) - Cicero's 'De Officii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ciceros-de-officiis/self-and-society/D2EC7EC3FDBFEC206D0D79EA92706EB0
- The Four Stoic Personae - IDEAL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ideals.illinois.edu/items/11704/bitstreams/42716/data.pdf
- Auctor Personae Meae Cicero on Personhood and Self-Authorship - Dialne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dialnet.unirioja.es/descarga/articulo/9807393.pdf
- Cicero's Project in Book 2 of De Officiis (Chapter 4)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ciceros-de-officiis/ciceros-project-in-book-2-of-de-officiis/3A041372B31203CE8B11E2CF877C9EBB
- LacusCurtius • Cicero — De Officiis II.1‑43,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de_Officiis/2A*.html
- Cicero and Machiavelli on Fear and Love - Abandoned Footnote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abandonedfootnotes.blogspot.com/2010/07/cicero-and-machiavelli-on-fear-and-love.html
- To Be Loved or Feared: Which is Better? - 6 Group Ltd,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6-group.com/insights/to-be-loved-or-feared-which-is-better/
- (PDF) Cicero and Machiavelli: Two visions of statesmanship and two educational projects compared - ResearchGat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90321978_Cicero_and_Machiavelli_Two_visions_of_statesmanship_and_two_educational_projects_compared
- Cicero: De Officiis - Notre Dame Philosophical Review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ndpr.nd.edu/reviews/cicero-de-officiis/
- LacusCurtius • Cicero — De Officiis II.44‑89,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de_Officiis/2B*.html
- LacusCurtius • Cicero — De Officiis III.35‑95,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de_Officiis/3B*.html
- Book III - CICERO, De Officiis | Loeb Classical Library,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loebclassics.com/view/marcus_tullius_cicero-de_officiis/1913/pb_LCL030.319.xml?readMode=recto
- De Officiis. Cicero 44BC - Studylib,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studylib.net/doc/28066568/de-officiis.-cicero-44bc
- Cicero - de Officiis III - Salv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salve.runnymede-college.com/Cicero%20(b)%20house%20introduction.pdf
- The Ethics of Business - Farnam Stree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fs.blog/the-ethics-of-business/
- LacusCurtius • Cicero — De Officiis III.96‑121,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de_Officiis/3C*.html
- Cicero and Natural Law - Tulliana,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tulliana.eu/bibliografia/cicero-and-natural-law/
- Cicero in the Renaissance (Chapter 16)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cambridge-companion-to-cicero/cicero-in-the-renaissance/03CFD8C28A35ED338DF85F6AD7F37520
- Petrarch's Cicero, Dante's Virgil, and the Historiography of the Renaissance - DukeSpac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dukespace.lib.duke.edu/bitstreams/f876521e-21aa-4d39-985c-32f3f195c1d9/download
- How Cicero's Letters Changed History: From Republic's Fall to Renaissance and Beyond,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gertitashkomd.com/how-ciceros-letters-changed-history-from-republics-fall-to-renaissance-and-beyond/
- Cicero's Moral Philosophy: Backbone of Renaissance Humanism - Dr. Tashko,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gertitashkomd.com/ciceros-moral-philosophy-backbone-of-renaissance-humanism/
- Cicero Was Locke's Greatest Inspiration | Libertarianism.org,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libertarianism.org/columns/cicero-was-lockes-greatest-inspiration
- Certain and Inalienable: Cicero's Political Philosophy, 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and Thomas Jefferson's Democratic,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cdn5.f-cdn.com/files/download/134224890/TJandCiceroFINAL.pdf
- Exploring the Life and Legacy of Cicero: An Introduction - Philosopho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philosophos.org/ancient-philosophers-cicero

'學而 > 토피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플로티누스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1) | 2026.01.08 |
|---|---|
| 키케로의 『발견론(De Inventione)』 (0) | 2026.01.08 |
| 키케로의 우정론 (2) | 2026.01.07 |
| 키케로 수사학 (0) | 2026.01.07 |
| 키케로의 『노년론』 (1) | 202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