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의 우정론
_ 키케로의 『라일리우스: 우정에 관하여(Laelius de Amicitia)』
(* 키케로의 『우정론』은 기원전 44년 로마의 정치적 격변기에 집필된 서양 우정론의 고전이다. 그는 우정을 결핍이나 이익 교환이 아닌, '자연'과 '덕(Virtus)'에서 비롯된 선한 사람들의 영혼적 결합으로 정의했다. 특히 "친구를 위해 부도덕한 일을 행하지 말라"는 제1법칙을 통해 맹목적 의리보다 정의가 우선함을 역설했다. 또한 아첨을 경계하고 신중한 검증을 거쳐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조언하며, 진정한 우정은 고독한 인간을 구원하는 최고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1. 서론: 공화정의 황혼과 철학적 구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의 『라일리우스: 우정에 관하여』(Laelius de Amicitia, 이하 『우정론』)는 단순한 윤리적 에세이가 아니다. 이 작품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적 파국 속에서,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유대인 '우정(Amicitia)'을 재정립하려는 거대한 철학적 기획이자, 피로 얼룩진 시대에 바치는 문학적 진혼곡이다.1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직후의 혼란기라는 집필 시점은 이 텍스트에 절박한 역사적 중량감을 부여한다. 본 보고서는 키케로가 제시한 우정의 존재론적 기반, 윤리적 실천 강령, 그리고 사회적 함의를 텍스트 내적 분석과 역사적 맥락을 통해 입체적으로 규명한다.
1.1 집필의 역사적 배경과 동기
『우정론』이 집필된 기원전 44년은 로마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카이사르의 독재가 암살로 막을 내렸으나, 공화정의 자유는 회복되지 않았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의 권력 투쟁이 시작되고 있었다.3 평생을 공화국의 수호에 바쳤던 키케로는 정치적 무력감과 생명의 위협, 그리고 사랑하는 딸 툴리아(Tullia)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비극 속에서 철학 저술에 몰두했다.2
키케로는 현재의 정치적 난맥상을 타개할 윤리적 모델을 과거에서 찾았다. 그는 집필 시점에서 약 80년 전인 기원전 129년, 즉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elianus)가 급서한 직후를 대화의 배경으로 설정한다.1 이 시기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Tiberius Gracchus)의 농지 개혁으로 로마 사회가 분열되기 시작한 때로, 키케로가 살던 기원전 44년의 내전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키케로는 과거의 이상적인 정치가들인 '스키피오 서클(Scipionic Circle)'을 소환함으로써, 무너져가는 로마의 도덕적 기강(Mos Maiorum)을 우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복원하고자 했다.4
1.2 헌정 대상과 아티쿠스와의 관계
이 저작은 키케로의 평생지기인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Titus Pomponius Atticus)에게 헌정되었다.7 아티쿠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추종자이자 정치적 중립을 지킨 금융가였으나, 스토아적 공화주의자였던 키케로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키케로는 서문에서 "마치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라일리우스가 직접 말하는 것으로 여기게나"라고 당부하며,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의 전설적인 우정에 자신과 아티쿠스의 관계를 투영한다.9 이는 사적인 우정을 공적인 역사적 담론으로 승화시키려는 문학적 전략이다.
2. 드라마틱 설정(Dramatic Setting)과 인물 분석
키케로의 대화편은 단순한 문답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축된 희곡적 구조를 지닌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 시간, 인물들의 배치는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핵심 장치이다.
2.1 대화의 시공간적 배경
- 시간: 기원전 129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지 며칠 후.1 스키피오의 죽음은 로마 보수파(Optimates)에게는 공화국 수호자의 상실을, 민중파(Populares)에게는 개혁의 장애물 제거를 의미했다. 이 비극적 상실의 순간에 남겨진 친구 라일리우스의 슬픔이 대화의 정서적 기조를 형성한다.
- 장소: 라일리우스의 저택 정원(Hortus). 공적인 포룸(Forum)이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의 대화는 정치적 격식에서 벗어나 진솔한 내면을 토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10
2.2 등장인물 프로파일링(Prosopography)
2.2.1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Gaius Laelius Sapiens, 기원전 188~125년경)
- 역할: 대화의 주재자이자 키케로의 대변인(Mouthpiece).
- 특징: '현자(Sapiens)'라는 별칭을 가졌으며, 이는 그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처럼 복잡한 철학적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생활에서의 현명함과 온건한 성품, 그리고 스토아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 덕분이었다.1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스토아적 평정심(Apatheia)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스키피오의 죽음 앞에서는 인간적인 슬픔을 드러내며 철학과 인간성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다.11
2.2.2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Quintus Mucius Scaevola, 점술가)
- 역할: 대화의 청자이자 전달자. 라일리우스의 사위.
- 특징: 젊은 시절의 키케로에게 법률을 가르친 스승이다. 키케로는 서문에서 자신이 소년 시절 스카이볼라의 곁에서 이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었다고 서술함으로써, 텍스트에 '구술된 역사(Oral History)'로서의 권위와 생생함을 부여한다.2 그는 법률적 엄격함과 전통에 대한 존중을 상징한다.
2.2.3 가이우스 판니우스 (Gaius Fannius)
- 역할: 또 다른 사위이자 질문자.
- 특징: 스카이볼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지만, 때때로 에피쿠로스적이거나 회의적인 질문을 던져 라일리우스가 우정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들도록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1 그는 당대 지식인들의 통념을 대변하며, 라일리우스의 고차원적인 우정론과 대비되는 현실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2.2.4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Scipio Aemelianus Africanus Minor)
- 역할: 부재하는 주인공(Absent Protagonist).
- 특징: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의 영웅이자, 그리스 문화를 로마에 도입한 지성인. 그는 대화 내내 라일리우스의 회상을 통해 현존하는 인물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의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과 고결한 인격은 『우정론』의 윤리적 기준점이 된다.2
3. 우정의 존재론: 정의, 기원, 그리고 본질
키케로는 라일리우스의 입을 통해 우정을 사회적 계약이나 유용성의 교환이 아닌,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둔 존재론적 결합으로 정의한다.
3.1 우정의 정의(Definitio Amicitiae)
라일리우스는 우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 정의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이다.
"Est enim amicitia nihil aliud nisi omnium divinarum humanarumque rerum cum benevolentia et caritate consensio."
(우정이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모든 일에 대한 호의와 애정을 동반한 완벽한 합의이다.) 9
이 정의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다:
- 합의(Consensio): 단순한 의견 일치를 넘어선다. 이는 가치관, 세계관, 정치적 신념, 종교적 태도 등 삶의 근본적인 지향점에서의 공명(Resonance)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자인 키케로에게 있어, 친구가 국가의 적이 되거나 부도덕한 길을 간다면 '합의'는 깨진 것이며 우정은 성립할 수 없다.15
- 호의(Benevolentia): 문자 그대로 '좋은 의지(Bene-volens)'이다. 상대방의 이익을 나의 이익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바라는 순수한 이타심이다. 혈연관계는 호의가 없어도 지속될 수 있지만(친척이라는 이름은 남으므로), 우정에서 호의가 사라지면 우정이라는 이름 자체가 소멸한다.9
- 애정(Caritas): 이는 이성적인 합의나 의지적인 호의를 넘어선 정서적인 따뜻함과 사랑이다. 키케로는 우정(Amicitia)이라는 단어가 사랑(Amor)에서 유래했음을 언어학적으로 상기시키며, 감정적 유대 없는 차가운 동맹은 우정이 아님을 강조한다.8
3.2 우정의 기원: 결핍(Indigentia) 대 자연(Natura)
키케로는 당대 유행하던 에피쿠로스 학파의 우정관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즉 상호 부조와 안전을 위해 친구를 사귄다고 보았다(유용성 기반의 우정).
- 자연발생설(Nature over Need): 라일리우스는 우정이 '결핍(Indigentia)'이나 '필요(Utilitas)'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Natura)'**과 **'덕(Virtus)'**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다.1
- 풍요의 역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에 덕이 충만하고 자족적인 사람일수록 진정한 우정을 맺을 수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덕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며, 자석처럼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 이익의 후행성: "이익이 우정을 낳는 것이 아니라, 우정이 이익을 낳는다." 나무를 심는 목적이 그늘이 아니지만 나무가 자라면 그늘이 생기듯, 우정의 목적은 유용성이 아니지만 진정한 우정에는 반드시 유무상통의 유익함이 뒤따른다는 논리이다.15
3.3 덕(Virtus): 우정의 필수불가결한 전제
보고서의 핵심 테제 중 하나는 **"우정은 오직 선한 사람들(Bonis)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3
- 선한 사람의 기준: 키케로는 스토아 학파의 이상적인 '현자'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는 로마의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실(Fides), 고결(Integritas), 공정(Aequitas), 관대(Liberalitas)를 갖춘 시민들을 '선한 사람'으로 규정한다.7 탐욕(Cupiditas)과 방종(Libido), 뻔뻔함(Audacia)에 지배당하는 자들은 진정한 우정을 맺을 수 없다.
- 악인들의 결탁: 악인들 사이의 관계는 우정이 아니라 '공모(Conspiracy)'에 불과하다. 그들의 관계는 이익을 목적으로 하기에 이익이 사라지면 즉시 와해된다.
4. 우정의 윤리적 딜레마와 법률: 블로수스와 그라쿠스
『우정론』이 단순한 도덕 교과서를 넘어 정치철학적 깊이를 가지는 지점은 바로 '우정과 정의의 충돌' 문제를 다룰 때이다. 키케로는 개인적 의리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4.1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블로수스 일화
이 에피소드는 텍스트의 백미이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로마의 농지 개혁을 시도하다가 원로원 보수파에 의해 '왕이 되려 한다'는 혐의를 쓰고 살해당했다. 그의 친구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가이우스 블로수스(Gaius Blossius)는 그라쿠스 사후 재판정에 섰다.4
심문관들이 그에게 그라쿠스를 얼마나 따랐는지 묻자, 블로수스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심문관: "만약 그라쿠스가 자네에게 카피톨리움 신전에 불을 지르라고 했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블로수스: "그가 그런 일을 명령했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로 원했다면, 나는 순종했을 것입니다." 16
4.2 키케로의 비판과 코리올라누스/테미스토클레스의 예
키케로(라일리우스)는 블로수스의 이 답변을 "가증스러운 변명"이라며 격렬히 비난한다. 친구에 대한 충성심이 국가에 대한 반역(Perduellio)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반면교사들을 소환한다.
- 코리올라누스(Coriolanus): 로마에서 추방당한 뒤 적국인 볼스키족을 이끌고 로마를 침공하려 했던 장군.
-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아테네를 구한 영웅이었으나 조국에서 버림받고 페르시아로 망명하여 아테네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던 인물.20
키케로는 이들이 친구들에게 동참을 요구했을 때, 친구들이 그들을 버린 것은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친구가 조국을 배신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때 그를 돕는 것은 우정이 아니라 범죄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4.3 우정의 제1법칙(Prima Lex Amicitiae)
블로수스의 사례를 통해 키케로는 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 즉 '제1법칙'을 선포한다.
"Haec igitur lex in amicitia sanciatur, ut neque rogemus res turpes nec faciamus rogati."
(그러므로 우정에는 다음과 같은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수치스러운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되며, 요구받았다고 해서 행해서도 안 된다.) 9
- 해석: 이 법칙은 우정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한다. 우정은 '덕(Virtus)'이라는 상위 가치 아래에 종속된다. 친구가 부도덕한 행위를 요구할 때 거절하는 것은 우정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정의 근간인 덕을 지키기 위한 진정한 우정의 발로이다.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그를 꾸짖고(Admonitio)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친구의 의무이다.15
- 현대적/비판적 수용: 16세기의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그의 에세이에서 이 대목을 비판했다. 그는 블로수스와 그라쿠스의 관계야말로 "의지의 완전한 융합"을 이룬 최고의 우정이며, 만약 그라쿠스가 불을 지르라고 했다면 그것은 불을 지르는 것이 옳은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논리로 키케로의 '계산적 윤리'를 반박했다.18 이는 근대적 개인주의와 고대 로마의 공화주의적 윤리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5. 우정의 현상학: 선택, 관리, 그리고 소멸의 기술
키케로는 철학적 원칙뿐만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 우정을 어떻게 맺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Praecepta)을 제공한다. 이는 로마인 특유의 실용주의적 성격이 반영된 부분이다.
5.1 친구의 선택(De Eligendo): 검증과 신중함
- 선(先) 판단, 후(後) 애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나서 나중에 후회한다. 키케로는 "판단하고 나서 사랑해야지, 사랑하고 나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1
- 검증의 시간: "우정은 소금을 여러 섬(Many Modii of Salt) 함께 먹어야 완성된다"는 속담처럼, 오랜 시간과 다양한 시련을 겪으며 검증된 관계만이 참된 우정이다.16
- 기질의 중요성: 변덕스럽거나(Changeable), 교활하거나, 남을 비방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굳건함(Constantia), 성실함, 솔직함, 그리고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9
5.2 우정의 유지: 진실(Veritas)과 아첨(Adulatio)의 투쟁
우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시련이 아니라 내부의 기만, 즉 아첨이다.
- 테렌티우스의 역설: 키케로는 극작가 테렌티우스(Terence)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Obsequium amicos, veritas odium parit."
(비위를 맞추면 친구가 생기고, 진실을 말하면 미움이 생긴다.) - 키케로의 해법: 이 현실적인 역설에도 불구하고, 키케로는 "진실이 없는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아첨은 친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파멸로 이끈다. 진정한 친구는 듣기 싫은 소리(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친구라면 이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3
- 아첨꾼 식별: 카멜레온처럼 친구의 표정과 기분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자, 항상 "Yes"라고 말하는 자는 친구가 아니라 기생충이다.
5.3 우정의 소멸: 바느질을 뜯듯이
모든 우정이 영원할 수는 없다. 친구의 덕성이 타락하거나, 가치관이 돌이킬 수 없이 달라졌을 때 이별은 불가피하다.
- 우아한 이별법: 키케로는 우정을 끝낼 때 "옷을 찢듯이 갑자기 끊어내지 말고, 바느질을 한 땀 한 땀 풀듯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Dissuendae)"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3
- 적대감 방지: 한때 친구였던 사람과 원수가 되어 서로의 비밀을 폭로하고 싸우는 것보다 더 추한 모습은 없다. 우정은 끝나더라도 품위는 지켜야 한다.1
6. 심층 분석: 우정의 위상과 문명사적 의의
이 장에서는 수집된 연구 자료들을 종합하여 『우정론』이 갖는 다층적인 의미를 분석한다.
6.1 세 가지 잘못된 견해에 대한 반박
라일리우스는 당시 통용되던 우정의 한계에 대한 세 가지 세속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1
-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만 친구를 사랑하라": 이는 이기주의적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하지 않을 희생도 친구를 위해서는 기꺼이 한다.
- "친구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만 친구를 사랑하라": 이는 우정을 정밀한 계산과 거래(대차대조표)로 전락시킨다. 진정한 우정은 더 많이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친구가 자신을 평가하는 대로 친구를 평가하라": 친구가 우울감에 빠져 자신을 비하할 때, 그 기준에 맞추는 것은 친구의 도리가 아니다. 친구는 친구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북돋아 주어야 한다.
6.2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서의 친구
키케로에게 친구는 **"또 다른 나(Alter Idem)"**이다.17
- 존재의 확장: 고립된 개인은 불완전하다. 친구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키케로는 수사학적으로 화려한 대구법을 사용하여 이를 묘사한다."친구 덕분에 부재하는 자가 현존하게 되고(Absentes adsunt), 가난한 자가 풍요로워지며(Egentes abundant), 약한 자가 강해지고, 죽은 자조차 산 자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쉰다(Mortui vivunt)." 9
- 고독의 극복: "어떤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 우주의 장엄한 광경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 경이로움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면 그 기쁨은 고통으로 변할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우정은 그 사회성의 최정점이다.1
6.3 수용의 역사(Reception History)
- 기독교적 변용: 중세의 아엘레드(Aelred of Rievaulx)는 키케로의 텍스트를 깊이 탐독하고 『영적 우정(De Spiritali Amicitia)』을 저술했다. 그는 키케로가 말한 '덕'을 '그리스도'로 치환하여 "하나님은 우정이시다"라는 대담한 신학적 명제를 도출했다. 이는 이교도의 텍스트가 기독교적 영성의 도구로 승화된 대표적 사례이다.3
-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페트라르카는 키케로의 편지를 발견하고 그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인문주의(Humanism)를 열었다. 몽테뉴는 키케로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근대적 자아 탐구의 기초를 닦았다.
- 단테의 향연: 단테는 『향연』에서 "키케로의 우정론을 읽고 철학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7. 주요 데이터 및 비교 분석 도표
[표 1] 우정의 유형 비교: 에피쿠로스 학파 vs. 키케로(스토아)
| 비교 항목 | 에피쿠로스 학파 (쾌락/유용성) | 키케로/스토아 학파 (덕/자연) |
| 기원 (Origin) | 결핍 (Indigentia), 약함, 필요 | 자연 (Natura), 풍요, 끌림 |
| 목적 (Goal) | 쾌락 (Voluptas), 안전, 이익 | 덕 (Virtus)의 실현, 영혼의 합일 |
| 지속성 (Duration) | 이익이 사라지면 소멸 (일시적) | 덕이 유지되는 한 영원함 (지속적) |
| 관계의 성격 | 도구적 관계 (Means) | 목적적 관계 (End in itself) |
| 핵심 가치 | 유용성 (Utilitas) | 선함 (Bonitas), 신의 (Fides) |
[표 2] 『우정론』의 주요 등장인물 관계도
| 인물 | 관계 | 역할 및 상징성 |
| 라일리우스 | 화자 (Speaker) | '현자', 키케로의 페르소나, 중용과 지혜 |
| 스키피오 | 부재하는 중심 | 이상적 영웅, 불멸의 영혼, 우정의 대상 |
| 스카이볼라 | 사위/청자 | 법률적 권위, 키케로와 과거를 잇는 고리 |
| 판니우스 | 사위/청자 | 회의적 질문자, 통념의 대변인 |
| 아티쿠스 | 헌정 대상 | 현실의 친구, 텍스트 밖의 청자 |
8. 결론: 21세기에 다시 읽는 『우정론』
키케로의 『우정론』은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관계의 깊이에 대한 성찰이다.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와 '팔로우'로 대변되는 현대의 가볍고 휘발성 강한 관계들 속에서, 키케로는 "덕에 기반하지 않은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진정한 연결은 서로의 인격을 신뢰하고, 오랜 시간 검증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성립한다는 그의 통찰은 디지털 시대의 피상성을 경계하는 죽비소리와 같다.8
둘째, 공적 정의와 사적 의리의 균형이다. 블로수스의 일화가 보여주듯, "우리가 남이가" 식의 맹목적인 패거리 문화나 정실주의(Cronyism)는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독소이다. 친구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라는 키케로의 가르침은 현대 민주사회 시민윤리의 기초가 된다.
마지막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긍정이다. 키케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독하지만, 동시에 그 고독을 타인과의 결합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우정은 신이 인간에게 준, 지혜 다음으로 고귀한 선물이다. "태양을 세상에서 없애는 것과 인생에서 우정을 없애는 것은 같다"는 그의 말은,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위로이자 희망이다.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그리고 라일리우스가 사위들에게 남긴 이 대화는 결국 **"덕이 우정을 낳고 지킨다(Virtus amicitiam et gignit et continet)"**는 하나의 진리로 귀결된다. 우리가 좋은 친구를 얻지 못하는 것은 세상 탓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덕 있는 사람(Vir Bonus)'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성자: 시니어 고전 문헌학 연구원
작성일: 2026년 1월 7일
참고 문헌 ID: 1 ~ 27 통합 분석 및 인용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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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cero, Laelius on Friendship (Part I: The Greatness of ... - Siri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branemrys.blogspot.com/2015/01/cicero-laelius-on-friendship-part-i.html
- How To Be A Friend A personal summary of Cicero's "De Amicitia" - Alberto Sadd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albertosadde.com/blog/how-to-be-a-friend
- Cicero, Laelius De Amicitia, selections,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www.ldysinger.com/@texts/00_cicero/04_de_amicitia-sel.htm
- De Amicitia (On Friendship) - UNCW,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ople.uncw.edu/deagona/lit/De%20Amicitia%20guide.pdf
- LacusCurtius • Cicero — De Amicitia,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icero/Laelius_de_Amicitia/text*.html
- De Amicitia 1: Laelius Speaks – The Wisdom of Friendship - Discover Latin,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discoverlatin.com/de-amicitia-1-laelius-speaks---the-wisdom-of-friendship/
- Cicero/Quotes from Cicero's de Amicitia - Wikiversity,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en.wikiversity.org/wiki/Cicero/Quotes_from_Cicero%27s_de_Amicitia
- Reading Cicero's De Amicitia at 17 (1) | by Frank Breslin | Medium,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medium.com/@frankbreslin41/reading-ciceros-de-amicitia-at-17-1-eb25b5f45215
- On Friendship by Cicero (44 BC) | Books & Boots - WordPress.com,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astrofella.wordpress.com/2022/07/04/on-friendship-ci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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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영웅들] 그라쿠스 형제 - 조선일보,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chosun.com/kid/kid_history/2022/11/21/YT7ACKWZIDG4SYHQ5JOIDCFE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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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중모의 라틴어 강독 1 키케로의 <우정론> - 지난강좌 - 푸른역사아카데미 - Daum 카페,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cafe.daum.net/purunacademy/5Da0/305
- (PDF) Cicero on friendship - ResearchGat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91916285_Cicero_on_friend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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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 amicitia Definition - Elementary Latin Key Term - Fiveable,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fiveable.me/key-terms/elementary-latin/de-amicitia
- 우정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월 7, 2026에 액세스, 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C%A0%95%EB%A1%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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