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멈추는 곳에서 신뢰가 시작된다
영화 '친구(2001년)' 속 준석(유오성)은 법정에서 동수(장동건)를 죽이라는 명령을 자신이 내렸다고 담담히 자백한다. 물증이 없었기에 혐의를 부인했더라면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형수가 된 준석을 면회한 친구 상택이 그 이유를 묻자, 그의 한마디로 답한다. "쪽팔려서."
이 대사는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뜻은 명료했다. 비록 건달이긴 하지만, 명색이 조직의 두목이라는 자가 비겁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쪽 팔리는 짓'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단순한 수치심을 넘어, 나름의 패거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리이자 자존감에 관련한 것이었다.
큰 실패나 이해관계가 걸린 책임 문제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인하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변명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어기제다. 하지만 리더의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리더가 책임 회피의 태도를 보인다면, 문제 해결은 그 동력을 잃고 비생산적인 혼란에 빠지게 될 뿐만 아니라, 관계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려 리더십은 붕괴되고 만다. 그래서 솔직하고 간명한 잘못 인정과 책임 수용 태도는 리더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자, 언제나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가치다.
‘아소 변론(Asoh Defense)’의 교훈
1968년 11월 22일, 일본항공 제2편 시가호는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14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 아소 고헤이(浅穂浩平) 기장이 조종간을 잡았고, 총 10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비행은 고도계 문제로 출발이 지연되었고,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의 짙은 안개는 상황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 당시 최신 계기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소 기장은 결국 항법 오류를 일으켜 활주로 2.5마일 못 미친 샌프란시스코만의 얕은 바다 위에 불시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노련했던 그의 착륙 기술 덕분에 탑승객 107명 전원이 단 한 명의 부상자 없이 생존했다. 그는 질서정연한 대피를 완료시킨 후, 마지막으로 기체에서 내렸다. 비행기 역시 구조적 손상도 미미하여 수리를 거친 후 다시 운항에 투입될 수 있는 정도였다.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을 묻기 위해 NTSB(미국 연방 교통안전위원회)가 청문회를 열었다. 첫 번째 증인으로 나선 아소 기장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모두가 기장이 여러 변명이나 기술적인 문제를 설명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는 역사에 남을 한 문장을 내뱉었다.
"당신들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망쳐버렸어요!'(As you Americans say, I fucked up!)."
이 발언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의 거침없는 '급진적 책임 인정'은 위원들이 예상한 각본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례 없는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으니, 청문회는 신속하게 마무리되었다.
급진적 솔직함의 무장해제 효과
아소 기장의 발언이 그토록 강력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우선 '효과적인 사과의 심리학적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사과는 '책임 인정', '후회 표현', '반성 선언' 등 여러 핵심 요소들을 포괄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물론 '책임 인정'이다.
아소의 발언은 가장 중요한 요소를 극도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를 '급진적 솔직함 (Radical Candor)'이라 부른다. 이 사례는 리더십 교육에서 '아소 변론(Asoh Defense)'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다.
'급진적 솔직함'의 진정한 힘은 '선제적 책임 수용의 무장해제 효과'에 있다. 책임을 피하고자 변명을 하기 시작하면, 리더는 그를 추궁하는 이들의 서사에 휘말려 궁지에 몰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소는 자신에게 향할 비난의 칼날을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를 겨누던 모든 법적 공격과 조사 과정의 공세를 무력화시켰다. 그는 추궁의 서사와 싸우는 대신, 진실에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항복하여 역설적으로 서사를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급진적인 책임 수용'은 갈등을 중화하고 해결을 가속화하며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진실성을 보존하는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 되었던 셈이다.
리더의 취약성은 용기의 척도
'아소 변론'에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가르침이 있다. 바로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 교수가 말하는 '리더의 취약성(Vulnerability in Leadership)'이다. 브라운은 '리더의 취약성'은 약점이 아니라 '용기의 척도'라고 정의한다. 리더가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인정하는 '취약성'을 숨기려 들지 않고 용기 있게 드러내면, 이는 오히려 조직 내 신뢰를 구축하고 팀의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강력한 리더십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아소 기장의 책임 인정이야말로 진정한 리더가 취할 수 있는 용기의 궁극적인 발현이었다. 리더가 취약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조직원의 취약성까지도 포용할 때, 조직 내 신뢰와 심리적 안정감이 구축되며, 다른 구성원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건강한 환경이 조성된다. '아소 변론'은 '리더의 취약성'이 어떻게 조직의 신뢰라는 기둥을 세우는지를 선명히 증명한 사례다.
책임이 멈추는 곳
아소 기장의 대응은 예방 가능한 실수에 대한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개인적인 책임 수용으로 요약된다. 그 결과, 그는 비록 직책은 강등되었지만 은퇴할 때까지 비행을 계속하며 개인의 명예와 진실을 지켰고, 고용주의 평판을 보호했으며, 책임감에 대한 전설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그의 책상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경구를 항상 놓아두었다고 한다. 이 경구는 리더의 존재 이유가 그에게 주어진 책임에 있음을 엄중히 이르는 말이다. 리더가 책임을 회피하면, 이는 단순한 개인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원들의 신뢰와 용기를 무너뜨리고, 결국 공동체를 치명적으로 약화시키는 가장 해로운 독소가 된다.
'쪽팔려서'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건달 준석의 자존심이나, '내가 망쳐버렸다'는 한마디로 위기를 단칼에 정리했던 아소 기장의 급진적 솔직함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리더의 용기이다. 이것은 단순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리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지능적인 전략적 대응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역설 속에 있다.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책임을 수용할 용기가 있는 리더만이 신뢰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고, 조직을 가장 건강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가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 앞에 책임을 멈추게 하는 그곳에서 조직원들의 신뢰가 비로소 시작된다. 이렇게 외쳐보시라. "내가 망쳐버렸다. 책임은 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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