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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경쟁자가 사라졌을 때 최대 위기가 온다 _ 유종원(柳宗元)의 敵戒

by 변리사 허성원 2025. 9. 29.

경쟁자가 사라졌을 때 최대 위기가 온다 _ 유종원(柳宗元)의 敵戒

 

다들 적()이 원수라고 알고 있지만,
적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다들 적이 해롭다고 알고 있지만,
적이 얼마나
이로운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皆知敵之仇,而不知為益之尤;皆知敵之害,而不知方利之大。

()나라는 여섯 나라와 대적했을 때에는
항상 긴장하며 강함을 유지했지만
,
여섯 나라를 제거하고 나서는 교만해져 망하고 말았다.

秦有六國,兢兢以強;六國既除 訑訑乃亡。

()나라가 언릉(鄢陵)땅에서 ()나라를 무찌르자, 범문자(范文子)는 근심하였다.
그러나 진여공(晉厲公)은 이를
경계하지 못해 온 나라에 원성이 가득하게 되었다.
맹손씨(孟孫)는 장(臧)을 미워했지만, 맹손이 죽자 장이 슬퍼하며 말했다.
"약과 침(藥石)이 없어졌으니, 우리에게 망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晉敗楚鄢, 範文為患;厲之不圖,舉國造怨。 孟孫惡臧,孟死臧恤,藥石去矣,吾亡無日。

지혜로운 이들이 이를 알고도 결국 위기에 빠지고 말았는데,
하물며 지금 사람들은 이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智能知之,猶卒以危;矧今之人,曾不是思!

적이 있으면 두려워하지만,
적이 사라지면 춤을 추고 방비를 게을리하며 자만에 빠지게 되니,
나라의 고질병을 더 키우게 된다.
그러니 적이 있으면 재앙을 막고 적이 사라지면 화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敵存而懼,敵去而舞;廢備自盈,秪益為瘉。敵存滅禍,敵去召過

이 이치를 아는 자는, 그 도가 커지고 명성이 널리 퍼질 것이다.
병을 경계하는 사람은 장수하고, 강건함만을 자부하는 자는 갑자기 죽는다.
욕망을 마음껏 부리면서 경계하지 않으면, 어리석거나 노망이 든 것이다.
(有能知此,道大名播。懲病克壽,矜壯死暴;縱慾不戒,匪愚伊耄。)

내가 이 경계의 글을 지었으니, 마음에 새겨두면 허물이 없으리라.
我作戒詩,思者無咎。

**
敵戒 柳宗元

皆知敵之仇,而不知為益之尤;皆知敵之害,而不知方利之大。秦有六國,兢兢以強;六國既除訑訑乃亡。晉敗楚鄢,範文為患;厲之不圖,舉國造怨。孟孫惡臧,孟死臧恤,藥石去矣,吾亡無日。智能知之,猶卒以危;矧今之人,曾不是思!敵存而懼,敵去而舞;廢備自盈,秪益為瘉。敵存滅禍,敵去召過;有能知此,道大名播。懲病克壽,矜壯死暴;縱慾不戒,匪愚伊耄。我作戒詩,思者無咎。(원문 출처)

 

**
< 진(秦)나라의 멸망>

진(秦)나라는 여섯 나라와 대적했을 때는 항상 긴장하며 강함을 유지했지만,
 
여섯 나라를 제거하고 나서는 교만해져 망하고 말았다.
秦有六國,兢兢以強;六國既除 訑訑乃亡。

전국시대 말기 진(秦)나라가 아직 천하를 통일하기 전(BC 3, 4세기)의 시절에, 함곡관 동쪽에 제(齊), 위(魏), 한(韓), 조(趙), 초(楚), 연(燕)의 여섯 강국이 있었다. 
이 여섯 강국이 언제든지 합종(蘇秦의 合縱策)하여 진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위협이 상존하고 있었다. 그 위기 의식 속에서 진나라는 긍긍(兢兢, 삼가고 조심하며)하며 강함을 추구하게 되었다.

상앙(商鞅)의 변법(變法) 등을 채택하여 엄격한 법치와 군공제(軍功制)를 바탕으로 경제 및 군사력 증강에 주력했다. 또한 신분을 묻지 않고 전공에 따라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국적을 초월하여 널리 인재를 등용하였다.

나라 내의 법치와 행정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외교로 육국의 동맹을 분열시키는 '연횡책(連橫策)'과 적을 하나씩 몰락시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으로 적의 결속을 와해시켰다. 

이처럼 상존하는 외부의 위협이 오히려 진나라로 하여금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체제를 혁신하며,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마침내 6국을 모두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로서 외부의 거대한 적과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자, 더 이상 경쟁할 상대가 없다고 생각하며, 국가를 다스리는 '생존의 기술'마저 잃어버렸다.

환관 **조고(趙高)** 같은 측근 정치와 암투가 권력의 주를 이루게 되고, 인재 정책의 퇴행하였다. 개방적 '객경' 정책이 쇠퇴하고, '객출주령(客逐周令)'과 같은 배타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방궁, 만리장성 등 *대형 토목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며 국력을 소모했고, 분서갱유로 사상 통제를 강화하며 지식인 계층의 원성을 샀으며, 가혹한 법과 무거운 세금, 부역으로 백성들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그리하여 통일 후 불과 15년 만인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이 터졌고, 이내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기원전 206년 진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 '객출주령』(客逐周令)' 기원전 237년 발표, 정국(鄭國)의 수리 사건을 구실로 "모든 타국 출신 객경들을 추방하라". 이사의 간곡한 간언(『간축객서』)으로 취소되었으나, 이미 배타적인 기운이 확산되었음.)

결론적으로, 진나라의 흥망은 '외부의 적(六國)이 존재했는지 여부'가 그들의 '인재 등용의 개방성' 등 국가 체제를 결정했고, 그것이 바로 국가 운명을 갈랐다. 이는 '적의 이로움'이 단지 군사적 경계심을 넘어, '국가 시스템의 건강함까지 유지시킨다'는 〈적계敵戒〉의 교훈을 더욱 입체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사례라 하겠다.

**
<범문자(范文子)의 근심과 경고>

()나라가 언릉(鄢陵)땅에서 ()나라를 무찌르자, 범문자(范文子)는 근심하였다.
그러나 진여공(晉厲公)은 이를 
경계하지 못해 온 나라에 원성이 가득하게 되었다
.
晉敗楚鄢, 範文為患;厲之不圖,舉國造怨。

*제1단계: 전쟁 전* 

성인이 아닌 이상
외부의 걱정이 없으면, 반드시 내부의 근심이 생기기 마련이오.
러니 어찌 저 적들(초나라와 정나라)을 잠시 놓아두어
외부의 경계대상으로 삼지 않으시겠소!
그렇게 해야만 여러 신하들이 내부적으로 서로 화합하고 반드시 화목하게 될 것이오.
 諸臣之內相與,必將輯睦。 _  《國語·晉語六》  

*제2단계: 승리 직후 경계*

"진나라 군대가 초군을 공격하여 사흘 동안 그 군량을 먹었다(진나라가 초군을 크게 무찌르고, 그들이 남긴 군량으로 사흘 동안이나 넉넉히 지낼 수 있을 만큼 많은 전리품을 획득했다는 뜻). 범문자가 군주의 병거 앞에 서서 말하였다. "군왕께서는 어리시고, 여러 신하들은 재능이 뛰어나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겠습니까?(실력이 아닌 행운이 뒷받침 된 것이다.) 군왕께서는 이를 경계하소서! 《주서》에 이르기를 '하늘의 명은 항상 한쪽에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으니, 이는 덕이 있는 자에게로 간다는 말입니다."
晉人楚師,三日穀。范文子立於戎馬之前,曰:「君幼,諸臣不佞,何以及此?君其戒之!《周書》曰:『惟命不于常。』有德之謂。」 _ 《左傳·成公十六年》 

*제3단계: 귀국 후 우려*

"晉侯使郤至獻楚捷于周,與單襄公語,驟稱其伐。單子語諸大夫曰:「溫季其亡乎!位於七人之下,而求掩其上。怨之所聚,亂之本也。多怨而階亂,何以在位?"
"晉至反,以語范文子。文子曰:「余懼不免,夫郤子其傲故?君子不傲,不忌,不念舊惡,然後怨忌不至。今夫子傲,取禍之道也。」" _ 《左傳·成公十七年》

> "진여공이 극지(郤至)를 주나라에 보내어 초나라에 대한 승전보를 바치게 하였다. 극지는 단양공(單襄公)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공적을 여러번 자랑했다. 단양공이 대부들에게 말하였다. "온계(극지의 자)는 파멸할 것이다. 일곱 사람의 아래에 있으면서 그 윗사람들을 덮으려 한다. 원한이 모이는 곳이 바로 재앙의 근원이 되는 법이다. 원한이 많아져 재앙이 커지면 어찌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 **극지가 돌아와 그 말을 범문자에게 했다. 범문자가 말했다. "나는 화를 면하지 못할까 두렵다. 저 극씨가 오만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오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옛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아야 원한과 시기에 당하지 않는다. 지금 그는 오만하니, 재앙이 오는 길에 있다."

(* 단양공(單襄公)은 춘추 시대 주 왕실의 원로 정치가이자,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인물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꿰뚫어 보던 '예언자' 같은 현인(賢人). 그가 예언한 대로 기원전 574년에 극지 일족은 몰살 당했다.)

*범문자의 걱정이 적중한 내용 *

범문자의 우려는 언릉대전 승리 후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대로 실현되었다.

1) 극씨(郤氏) 가문의 멸족

범문자가 "오만하다"고 지적한 극지(郤至)와 그의 일족은 진여공의 외척이자 정적인 다른 대부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그 결과 기원전 574년, 진 여공은 극씨 일족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다른 경대부(卿大夫)들의 지원을 받아 극씨 일족을 모조리 주멸(誅滅)해 버렸다. 

2) 군주의 오만과 국가의 분열 _ 진 여공(厲公)의 몰락

언릉전투에서 승리한 후 스스로를 '패자'라 여긴 진 여공은 극씨를 제거한 후, 마음 놓고 권력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도와 극씨를 제거한 난서(欒書) 등 다른 세력의 위험을 간과했다. 그 결과 극씨를 제거한 지 불과 1년 후인 기원전 573년, 진 여공은 난서(欒書)와 중행염(中行偃) 등에게 의해 폐위되고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진나라 내에서 군주의 권위가 실추되고, 경대부(卿大夫)들의 세력이 절대적으로 강해지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이 내분의 씨앗은 150여 년 후 '삼가 분진(三家分晉)' 으로 이어져 진나라는 한, 위, 조 세 나라로 분열되고 만다.

결론적으로,
범문자의 선견지명은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승리한 국가는 내부의 모순과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는 통찰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의 논리는 "외부 위협(초·정) 제거 → 군주의 오만 증대 → 내부 착취 심화 → 귀족 세력과의 갈등 → 국가 내분"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그는 "적을 없애지 말고, 오히려 경쟁의 동력으로 활용하라"고 강력히 역설하였다. 이처럼 범문자와 진나라의 에피소드는 "敵存滅禍,敵去召過"(적이 있으면 재앙을 막고, 적이 사라지면 화를 블러들인다)라는 명제를 역사적으로 생생히 입증한 사례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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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문자의 전쟁 전 우려, 전문 번역>

<! 諸臣之內相與,必將輯睦。>

성인이 아닌 이상
외부의 걱정이 없으면, 반드시 내부의 근심이 생기기 마련이오.
그러니 어찌 저 적들(초나라와 정나라)을 잠시 놓아두어
외부의 경계대상으로 삼지 않으시겠소! 
그렇게 해야만 여러 신하들이 내부적으로 서로 화합하고 반드시 화목하게 될 것이오.

退」 _ 《국어(國語)》'진어(晉語)'편 

언릉 전투에서 진(晉)나라가 정(鄭)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러 나섰다. 상군을 지휘하는 난무자(欒武子)는 싸우려 하였으나, 하군을 지휘하는 범문자(范文子)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오직 덕이 두터운 자만이 많은 복을 받을 수 있고, 덕이 없으면서 많은 이를 복종시키려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해를 입는다고 했소. 진(晉)나라의 덕을 헤아려보건대, 제후들이 모두 등을 돌린다면 나라가 조금이라도 안정될 수 있소. 그런 제후들이 존재하기에 분분하게 시끄러운 것이니, 무릇 제후는 외란의 근원이 되는 법이오. 게다가 오직 성인만이 외부의 걱정도 없고 내부의 근심도 없을 수 있소. 

성인이 아닌 이상 외부의 걱정이 없으면 반드시 내부의 근심이 생기기 마련이오. 그러니 어찌 잠시 초나라와 정나라를 놓아두어 외부의 경계대상으로 삼지 않으시겠소! 그렇게 해야 여러 신하들이 내부적으로 서로 화합하고 반드시 화목하게 될 것이오.

지금 우리가 싸워서 초나라와 정나라를 또 이긴다면, 우리 군주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자랑하면서, 가르침을 게을리하며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며, 자신의 측근 세력을 키우고 후궁들의 토지를 늘릴 것이오. 여러 대부들의 토지를 빼앗지 않고서야 어디에서 가져다가 그들에게 보태 주겠소? 여러 신하들 중에 직위를 내놓고 물러나야 하는 자가 몇 명이나 되겠소?

만일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나라의 복이 될 것이오. 만일 전쟁에서 이긴다면, 그것은 땅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니, 그 결과는 장래 나라에 큰 해로움을 끼키게 될 것이오. 어찌 잠시 싸움을 멈추는 것이 좋지 않겠소!'"

(* 盍 (합): "어찌 ~하지 않겠는가?" (何不의 합성), 姑 (고): "잠시", "일단", 釋 (석): "놓아주다", "풀어주다")

> "이 초나라와 정나라를 그냥 두어야 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 진나라가 방심하지 않도록 늘 경계심을 갖게 해주는 '살아있는 경고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까지 없애버린다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경계할 어떤 이유도 없게 되어 결국 내부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다."

**
<맹손씨가 죽자 장손씨는 슬퍼하다>

"맹손씨는 장손씨를 미워했으나, 
맹손씨가 죽자 장손씨는 슬퍼하며 말하길, 
'약과 침이 떠나갔으니, 내 죽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孟孫惡臧,孟死臧恤,藥石去矣,吾亡無日"

*춘추좌씨전 양공 23년*

노(魯)나라의 "맹손씨는 장손씨를 미워했으나, 계손씨는 그를 좋아했다. ... 맹손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손씨가 조문하며 매우 슬피 울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밖으로 나와 그의 마부가 말했다.

"맹손씨가 당신을 그렇게 미워했는데도, 이렇게까지 슬퍼하시는군요! 계손씨가 만일 돌아가신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장손씨가 말했다. 

"계손씨가 나를 좋아해준 것은 '달콤한 병(疾疢)'과 같고, 맹손씨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약침과 같다네. '아름다운 병(美疢)'은 '나쁜 돌(惡石)'만 못한 법이지. 돌은 오히려 나를 살려주지만, 병은 아름다울수록 그 독이 더욱 많은 법이라네. "맹손씨가 돌아가셨으니, 내가 망할 날이 머지않았구나.""

"孟孫惡臧孫,季孫愛之。... 孟孫卒,臧孫入哭,甚哀多涕。出,其御曰:『孟孫之惡子也,而哀如是!季孫若死,其若之何?』臧孫曰:『季孫之愛我,疾疢也;孟孫之惡我,藥石也。美疢不如惡石。夫石猶生我,疢之美其毒滋多。孟孫死,吾亡無日矣。』" _ 《春秋左氏傳·襄公二十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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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가 사라졌을 때 가장 큰 위기가 온다>

8세기 중국의 문인 유종원은 '적계'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적이 있으면 두려워하고, 적이 없으면 춤춘다. 방비를 게을리하고 스스로 만족하면, 오히려 병만 깊어진다."

이 말은 1,200년이 지난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다.

1. 적을 '파트너'로 재인식하라
- 건강한 반대 세력 혹은 경쟁자는 오히려 조직의 '면역 체계' 역할을 한다
- 경쟁사를 제거 대상이 아닌 **산업 생태계의 공동 구성원**으로 인식
"나를 미워하는 자는 나를 단련시키는 약이다."
"나를 공격하는 자는 나를 살리는 의사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항상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들"

2. '가상의 적'을 만들라
- 실제 경쟁사가 없다면 '자기 자신과의 경쟁' 시스템 구축
- 구글의 "20% 법칙": 안주하지 않도록 내부 혁신 유도

3. 승리 후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
> "이 성공이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 "만약 지금 당장 **완전히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 지금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위기다. 강력한 경쟁자를 만들어라!
> "우리의 **현재 강점**이 바로 우리의 **미래 약점**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결론: 적과 함께 성장하는 지혜

유종원의 '적계'는 단순한 경고가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철학'이다.

최고의 리더는 기억해야 할 점들:
- 적이 없는 평화는 '가장 위험한 환상'이다.
- 건강한 경쟁은 '최고의 성장 호르몬'이다.
- 진정한 강자는 '적의 가치'를 아는 자이다.

"적의 이로움과 고마움을 기억하라!"
그들이 바로 생존의 은인인 동시에 가장 값진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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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柳宗元)은 누구인가>

- 적계(敵戒)을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중국 당(唐) 중기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일인 (한유·구양수 등과 함께)
- 하동(河東) 출신이라 '유하동'으로 불림, 유주(柳州)에서 유배 생활을 해서 '유류주'라고도 함
- 《적계》에서 전하려 한 핵심은: "승리와 평화가 오히려 가장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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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사라졌을 때 최대의 위기가 온다

적이 사라졌을 때 최대의 위기가 온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화에 패배하다 진정한 리더십은적을 모두 물리치고 정상에 도달하여 깃발을 꽂는 것이 아니다.눈에 보이는 도전자가 없는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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