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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능력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 _ 마이클 샌델

by 변리사 허성원 2025. 9. 26.

능력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 _ 마이클 샌델

(* 능력주의는 정의롭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성취를 “자격(desert)”으로 이해하는 윤리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과 수치를 낳아 사회의 공동선을 해친다. 마이클 센댈의 "능력의 폭정" 즉 "공정하다는 착각"에 기초하여 능력주의의 그림자 및 그 이상과 현실을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능력의 폭정'을 피할 수 있는지 그 해결책을 알아본다.)

서론: 능력주의라는 이상(理想)의 역설

마이클 샌델의 저서 《능력의 폭정》은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윤리인 능력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을 제기한다. 한국에서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공정성 논쟁이 뜨거운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1 샌델은 이 책에서 능력주의가 언뜻 보기에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폄하하며, 공공 영역을 타락시키는 일종의 '폭정'이라고 주장한다.3 이 비판은 단순히 재능과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경제적 결과가 오직 개인의 능력에 대한 완벽한 반영이며, 따라서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근본적인 전제를 문제 삼는다.3

능력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약속하며, 마치 노력과 재능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샌델은 이러한 이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그 결과 사회적 유대감을 붕괴시키는지 분석한다. 그는 능력주의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동선을 훼손한다고 진단한다. 본 보고서는 샌델의 비판 논리를 진단, 철학적 기반, 그리고 대안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제1부: 부식되는 이상의 진단

1.1 능력주의의 약속과 위험성: 허점 드러내기

샌델은 능력주의 사회가 설령 완벽하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부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3 그 이유는 능력주의가 출발선에서의 기회균등을 강조하면서도, 그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불평등을 재능, 근면함, 끈기 등 개인의 '타고난' 미덕과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3 이 논리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성공이 결정된다는 '자수성가 신화'를 조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운, 환경, 공공재'의 역할을 간과하게 만든다.3 샌델은 완벽한 능력주의는 "선물이나 은혜에 대한 모든 감각을 추방한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재능과 운이 우연적인 결과임을 깨닫는 '은혜'의 개념이 사라질 때 공동의 운명 의식과 연대감이 퇴색한다고 설명한다.3

이러한 능력주의의 위험성은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공과 실패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킨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결과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이는 심리적, 도덕적 변화를 초래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가 전적으로 노력의 산물이라고 믿으며 "과도한 자만심"을 갖게 된다.3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오직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도록 강요당하며, 깊은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2 만약 나의 성공이 오롯이 나의 노력 덕분이고, 당신의 실패가 오직 당신의 잘못 때문이라면, 우리가 왜 공동의 운명을 공유하고, 나의 부를 당신과 나누어야 할 연대 의식을 느껴야 하는가?3 이로 인해 사회는 깊은 단절 상태에 빠지게 된다.

1.2 자격증이라는 장벽과 노동의 가치절하

샌델은 현대 사회에서 고등교육, 특히 명문대학이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좋은 직업, 그리고 인맥을 얻는 주요한 '선별 기계' 역할을 한다고 본다.3 이러한 시스템은 '자격증 중심의 편견', 즉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은밀한 편견을 조장한다.4 이로 인해 "비숙련" 노동으로 분류되는 육류 가공업자, 가사 도우미, 소매업 종사자 등의 노동은 사회적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그 가치가 절하된다.3

이러한 능력주의의 위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2019년에 발생한 '바시티 블루스' 대학 입시 스캔들이다.5 이 사건은 부유한 학부모들이 뇌물과 사기를 통해 자녀들을 명문대에 부정 입학시킨 범죄 행위였다. 이 스캔들이 단순한 일탈을 넘어 능력주의의 위선을 상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능력주의가 약속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신화가 허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부유한 사람들은 뇌물과 사기라는 수단을 동원해 '능력주의적 선별 과정'을 우회했고, 이는 특권이 재능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졌음을 증명했다.5

바시티 블루스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분석해보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깊이 내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대중은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마땅한' 자격이 있는 학생들의 자리를 훔쳤다는 사실에 분노했다.11 이러한 분노는 언뜻 보기에 사기 행위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능력주의의 핵심 전제, 즉 '자격 있는' 사람과 '자격 없는' 사람이 존재하며 능력이야말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암묵적으로 강화하는 행위였다. 스캔들은 능력주의의 부패를 폭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시스템 자체의 부당함을 문제 삼기보다 "고장 난 시스템을 고쳐서 더 공정하게 만들자"는 방향으로 나아갔다.13 이는 능력이 곧 정의라는 믿음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스캔들은 일탈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능력주의라는 게임의 규칙 자체는 근본적으로 옳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1.3 정치적 후폭풍: 포퓰리즘과 분노의 정치

샌델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와 같은 포퓰리즘의 부상이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4 그는 포퓰리즘의 반란이 "능력의 폭정"에 대한 항의이며, 고학력 엘리트들이 비(非)대학 졸업자들의 노동과 삶의 방식을 경시한다는 굴욕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14

샌델은 또한 '기술관료적 정치'를 비판한다. 이는 정치를 정의나 공동선과 같은 도덕적 질문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시장 주도적' 해결책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7 이러한 접근법은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고, 현실과 동떨어진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키운다.7

능력주의는 얕잡아보는 태도와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먼저, 자신의 성공이 오롯이 능력의 결과라고 믿는 엘리트들은 무의식적으로 비(非)자격증 소지자들의 기여를 폄하한다.7 이러한 폄하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인정의 상실'과 '굴욕감'을 안겨주고, 이는 깊은 정치적 분노로 이어진다.9 마지막으로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이러한 분노를 활용하여 기득권에 도전하고 노동 계층의 존엄성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권력을 얻는다.4 결과적으로 능력주의는 서로 다른 사회 계층이 "점점 더 분리된 삶"을 살게 하고, 공통된 민주적 삶의 기반을 파괴하여 상호 존경의 악순환을 깨뜨린다.14


제2부: 철학적 기초와 대안

2.1 공동선으로의 회귀: 샌델의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

샌델은 존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에 대한 오랜 비판을 《능력의 폭정》에서도 이어간다.19 샌델은 롤스의 '무연고적 자아' 개념, 즉 개인이 사회적, 역사적 관계와 무관하게 추상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가정된다는 점을 비판한다.21 롤스는 개인이 '무지의 장막' 뒤에서 정의의 원칙을 선택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어떤 특정 신념이나 가치관에 중립적인 정의의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21

그러나 샌델은 개인의 정체성은 공동체적 유대, 전통, 그리고 역사에 의해 '구성적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공동의 운명'을 공유하는 존재라고 본다.3 그의 '공동선 정치'는 단순히 경제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민 생활의 도덕적, 윤리적 차원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공적 담론을 요구한다.16 이는 '좋은 삶'에 대한 질문에 중립을 표방하는 자유주의 국가의 입장과 정면으로 대립한다.21

샌델은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와의 유대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을 통해, 롤스의 자유주의가 현실의 인간 본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회적 원자화와 도덕적 삶의 빈곤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21 아래 표는 샌델의 철학적 입장을 롤스의 자유주의와 명확하게 대비하여 보여준다.

Sandel의 철학적 틀: 자유주의 vs. 공동체주의

철학적 접근 자아에 대한 핵심 개념 정의의 주요 초점 상대방에 대한 비판 '선(善)'에 대한 샌델의 관점
롤스적 자유주의 '무연고적 자아'(사회적 유대와 무관한 자율적 개인) 절차적 공정성과 개인의 권리 공동체적 유대와 공유 가치를 간과함; 중립성 자체가 실체적 도덕적 약속임. 정의의 원칙은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개념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함. 21
샌델의 공동체주의 '구성적으로 상황 지어진 자아'(공동체, 역사, 전통에 의해 형성된 정체성) '공동선'과 공유된 시민 생활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과 거리가 멂; 도덕적 삶의 빈곤과 사회적 원자화를 초래함. 정치철학은 좋은 인간의 삶에 대한 실체적 질문을 다루어야 함. 21

제3부: 앞으로 나아갈 길: 덜 분열된 공적 삶을 향한 샌델의 비전

3.1 재분배를 넘어선 기여적 정의

샌델은 현대 중도좌파 정당들이 '분배적 정의'(즉, 누진세와 복지 프로그램)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능력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3 그는 이러한 정책이 부의 불평등은 다룰 수 있지만, 사회적 존경과 인정의 불평등은 해소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샌델은 그 대안으로 '기여적 정의'를 제시한다.3 기여적 정의는 "타인이 필요로 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생산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 인정과 존경을 얻을 기회"를 의미한다.3 이는 경제적 불평등만큼이나 부식 효과가 큰 '존경의 불평등'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3

샌델은 모든 노동의 '존엄성'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식료품점 직원이나 배달 노동자와 같이 사회에 필수적이지만 저평가된 노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음을 강조한다.25 그는 사회가 오로지 자격증에 기반한 성공 개념을 재고하고, 필수 노동자들에게 존경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

샌델이 기여적 정의를 주장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그의 전체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한 개인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여전히 그들의 노동을 가치 없다고 여기는 한 근본적인 존경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3 이는 불평등이 단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고, 공동선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인정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정책 개혁을 넘어선 문화적, 도덕적 갱신을 요구한다.

3.2 겸손의 정치와 공유된 시민 생활

샌델은 능력주의적 자만심에 대한 해독제로 '겸손'을 시민적 미덕으로 강조한다.4 겸손은 우리의 재능과 행운이 오롯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3 그는 부유층과 서민층이 사는 곳, 일하는 곳,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점점 분리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민주주의에 해롭다고 역설한다.14 그는 시민들이 동등한 존재로 만날 수 있는 '시민 사회 기반 시설'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4

샌델은 또한 대학교의 역할을 재고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유리한 세제 개혁을 제안하는 등 구체적인 제도적 변화를 촉구한다.6 아래 표는 바시티 블루스 스캔들을 통해 드러난 능력주의의 위선을 다시 한번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시티 블루스 스캔들: 능력주의 폭정의 상징

능력주의의 측면 공식적 내러티브 현실 (스캔들을 통해 드러난)
사회 이동성 개인의 재능, 노력, 근면에 기반한다. '가족 지위, 계층, 성별, 민족' 등 비능력적 요인에 기반한다.5
대학 입학 학업적 능력, 시험 성적, 비교과 활동에 기반한 공정하고 엄격한 과정이다. 부유함과 특권이 뇌물, 사기, 허위 운동선수 자격증을 통해 입학을 살 수 있는 조작된 시스템이다.5
성공한 사람의 태도 성공은 개인의 미덕의 결과이며, 성공한 사람들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다. 성공은 종종 불로소득의 결과다. 불법적인 수단으로도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깊은 불안과 완벽주의에서 비롯된다.2
결과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정의로운 사회. 부유층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위선적인 사회이며, 시스템 자체가 기득권을 위한 메커니즘임이 드러난다.11

결론: 겸손과 새로운 시민 생활을 향한 촉구

《능력의 폭정》은 능력주의가 지닌 도덕적 결함,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미치는 심리적 상처,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역할, 그리고 공동선을 훼손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진단한다. 샌델의 저서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구체적인 구조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노동 계층의 정치나 인종차별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지적한다.6 또한 물질적 불평등 자체보다는 '존경의 불평등'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도 있다.6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샌델의 책은 능력주의에 대한 논의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의 진정한 가치는 문제의 진단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문화적 전환을 촉구한다는 데 있다. 샌델은 덜 분열되고 더 관대한 공적 삶을 향한 길은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운명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민적 겸손이라는 미덕을 함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4 그의 메시지는 단순히 능력주의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가치를 공동체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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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그림자, 이상과 현실

서론: 능력주의, 그 이중적 얼굴

능력주의(meritocracy)는 ‘능력’ 또는 ‘업적’을 뜻하는 라틴어 merit와 ‘힘’ 또는 ‘권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cracy의 합성어로,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기초하여 사회적 지위와 보상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사회 시스템을 지향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1, 2]. 이 개념은 태생적으로 세습적 신분이나 특권, 정실주의와 뇌물 수수 같은 비합리적이고 부패한 관행에 저항하는 진보적인 원리로서 기능했다 [3, 4].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는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발표한 풍자적 디스토피아 소설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경멸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경쟁이 사회의 효율성과 정의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낙관적 이상을 담고 있었다. 마이클 영이 제시한 풍자적 공식인 'm=IQ+E" (능력 = 지능 + 노력)'는 인간의 가치를 협소하고 계량화 가능한 기술관료적 척도로 환원하는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캐리커처였다. 이 공식은 엄격한 시험을 통해 선발된 새로운 엘리트 계급이 기존의 세습 귀족 계급을 대체하는 사회를 암시했다.

영이 그린 미래의 영국(2034년 배경)은 실패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극도로 효율적인 사회다. 그러나 이 효율성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우월한 지위를 획득했다고 확신하는 새로운 엘리트 계급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해지고 사회로부터 유리된다. 반면, 하층 계급은 자신들의 낮은 지위가 불운이나 불공정한 체제 탓이라는 위안마저 박탈당한 채, 모든 것을 자신의 열등함이 낳은 정당한 결과로 받아들이며 좌절하고 체념하게 된다.2 이러한 심리적 동학은 영이 경고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의 의도와는 달리, 능력주의는 오늘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4, 6].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은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7]. 본 보고서는 능력주의의 본질적 모순을 해부하고, 그 이상이 현실에서 왜 좌절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능력주의의 병폐를 조명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들을 모색함으로써, 능력주의 담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제1부: 능력주의의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

1.1.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해부: 능력, 노력, 그리고 착각

능력주의는 종종 '지능(IQ) + 노력(Effort) = 능력(Merit)'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제시된다 [4, 8]. 이 공식은 개인이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하며, 성공을 이룬 자들에게는 그들이 보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정당한 자격'을 부여한다 [9, 10]. 그러나 이 공식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인 '타고난 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4, 9].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재능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작위로 분포되는 특성이다 [4].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이거나 우연한 환경에서 길러진 잠재력일 뿐이며, 이를 오롯이 자신의 공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4, 11].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완벽하게 공정한 제도라 할지라도 개인의 성공에 있어 운이 가지는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심지어는 인생에서 운의 역할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9]. 이처럼 능력주의의 이상은 '운'이라는 치명적인 맹점을 간과함으로써,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을 은폐하는 착각을 낳는다 [12, 13].

또한, 능력주의는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14]. 현실에서 능력은 주로 시험 점수, 학력, 시장의 평가 등 획일적이고 정량화된 지표로 환원되곤 한다 [9, 15]. 이러한 대리 지표가 마치 능력 그 자체인 것처럼 절대화되는 순간, 능력주의의 이상은 붕괴하고 획일적인 시험주의(testocracy)로 변질된다 [16]. 이 과정에서 사회는 시험 성적이나 시장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재능과 가치, 예를 들어 예술적 재능, 돌봄 노동, 사회적 기술 등을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무시하는 구조적 문제를 낳는다 [15]. 이는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특정 분야의 재능에만 보상이 편중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1.2. 능력주의의 '폭정'이 초래하는 사회적 균열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의 원제인 ‘능력주의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을 통해 능력주의가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심리적, 도덕적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경고한다 [17, 18].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들은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고 믿는 오만함에 빠지기 쉽다 [9, 10]. 반면,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은 자신의 실패를 오직 자신의 무능함과 나태함 탓으로 돌리며 자존감과 존엄성을 잃고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9, 19]. 이러한 심리적 폭정은 개인의 정신 건강과 정서적 안녕에 심각한 해를 끼치며, 심지어 극심한 경쟁 압박은 정상에 오른 엘리트들조차 탈진과 불행에 빠지게 만드는 병폐를 낳는다 [20, 21].

능력주의는 또한 사회적 연대와 공동선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9, 20].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능력 덕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덜 느끼게 되고, 이는 조세 제도나 재분배 정책과 같은 구조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든다 [9, 19]. 이는 단순히 경제적 불만을 넘어, 성공이 미덕의 결과이고 실패가 도덕적 결함의 결과로 간주되는 도덕적 불평등을 야기한다 [22]. 이로 인해 사회적 지위는 더 이상 단순한 경제적 지표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와 결부되며, 이는 대중으로 하여금 엘리트 계층에 대해 단순히 경제적 불만 이상의 깊은 분노와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20, 23]. 이러한 도덕적 분노는 결국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포퓰리즘적 정치 세력이 이 불만을 이용하는 원인이 되며 사회적 분열을 가속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17, 21].

능력주의는 이처럼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인 문제에서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부유층과 빈곤층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분리된 삶을 살게 만들어 사회적 연대와 공유된 삶의 공간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17, 20].

구분 이상적 능력주의 (이론) 현실적 능력주의 (현실)
기회 모두에게 동일한 '출발선' 제공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출발선' 불평등 심화 [12, 13]
평가기준 지능, 노력, 성실성 등 오직 '능력' 학력, 학벌, 시험점수 등 획일적 지표에 편중 [15, 16]
결과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는 '정당한' 보상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존엄성을 잃음 [9, 10]
사회적 효과 활발한 계층 이동으로 인한 사회 활력 증진 엘리트 계층의 세습화로 인한 사회 이동성 감소 [24, 25]

1.3. 능력주의의 주요 문제점 정리

- 불평등의 심화와 고착화

능력주의는 표면적으로는 "기회의 평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능력의 세습 현상이 핵심 문제이다. 부유한 엘리트 가정의 자녀들은 엘리트 교육과 문화적 자본을 상속받아 능력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의 경우 인서울 대학교의 절반 이상이 소득 9-10분위 출신이며, SKY 대학은 70%가 최상위 소득층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능력주의가 계층 이동성을 줄이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보여주며, 학계에서는 이를 '능력주의 신화(Myth of meritocracy)'라고 부른다.brunch+3

- 엘리트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만들어내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지적했다:

엘리트의 오만(Meritocratic Hubris):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가 순수히 개인의 노력과 능력 때문이라고 믿게 되어, 실패한 사람들에게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태도를 보입니다.khan+1

패자의 굴욕과 절망: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개인적 결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무력감과 자책에 빠지며, 이는 사회 전체의 화합과 결속을 파괴합니다.worldtoday.tistory+1youtube

- 과열 경쟁과 사회적 폐해

능력주의는 극심한 경쟁 사회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 승리자들: 신경증과 정신적 장애, 자기착취에 시달리며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자만심을 갖게 된다brunch+1
  • 패배자들: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억울함과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적대심을 갖게 된다namu
  • 사회 전체: 저출산, 자살, 테러 등의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발생한다namu

- 능력 평가의 허구성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능력 평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marx21+1

개인의 능력은 태생적 환경, 부모의 경제력, 사회적 배경 등에 크게 좌우되며, 무엇이 "가치 있는 능력"인지 자체도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미국 엘리트 사립학교에서 강조하는 "편안함(ease)"이라는 능력은 실제로는 피상적 지식에 불과하지만 엘리트 네트워크 접근권이 없는 외부인이 습득하기 어려운 특권적 자본입이.

- 민주주의의 위기

능력주의는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훼손한다. 엘리트와 중산층 간의 문화적 격차가 벌어지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계층 전쟁과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진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같은 현상도 능력주의 경쟁에서 소외된 계층의 분노가 표출된 결과로 분석된다.unipress+2

- 차별의 정당화

능력주의는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문제로 전환시켜 차별을 정당화한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명분 하에 사회적으로 실패한 이들을 무능한 자로 낙인찍고, 이들에 대한 재분배를 "불공정한 혜택"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2020년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사건에서 나타난 갈등도 이러한 능력주의적 차별 의식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culture.kookmin+1

제2부: 한국 사회 능력주의의 특수성과 병폐

2.1. 한국형 능력주의의 지배적 특징: '시험주의'와 '학벌주의'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시험'과 '학벌'이라는 두 가지 특수한 형태로 극단적으로 발현된다 [15, 16]. 한국의 능력주의는 특정 자격증이나 명문대 입학을 통해 평생의 특권을 보장받는 '지대(rent) 추구적 시험 문화'가 강하게 나타난다 [15]. 이는 시험 한 번으로 과도한 보상과 지배가 허용되는 구조를 강화하며, 극소수의 승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는 폐해를 낳는다 [15].

이러한 시험주의는 결국 학력과 학벌이 능력의 획일적 잣대로 절대화되는 '학벌주의'를 낳았다 [15, 26]. 학벌은 단순히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을 넘어, '신분제'처럼 고착화된 사회적 지위로 기능하고 있다 [27]. 특히 서울대를 비롯한 소수의 명문대 출신이 공직이나 사회 요직을 독점하는 구조가 제도화되어 있으며 [26], 이는 부유층 자녀들이 고가의 사교육을 통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다시 그들의 지위를 자녀에게 세습하는 현대판 '엘리트 세습'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21, 25]. 이처럼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는 능력주의가 본래 타파하고자 했던 세습적 불평등을 새로운 형태로 재현함으로써, 능력주의가 계층 이동성을 보장한다는 통념을 현실에서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24, 28].

2.2. '공정'에 대한 민감성과 '불평등'에 대한 둔감성

한국 사회 능력주의의 핵심적 병폐는 '불공정'에 대한 민감성과 '불평등'에 대한 둔감성이라는 이중성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1, 16].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례는 이러한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16].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이 '무임승차'이자 '역차별'이라며 격렬하게 분노했다 [16, 29, 30].

이러한 반응은 한국 사회가 '과정의 공정성'에는 극도로 민감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비정규직이라는 '구조적 불평등'에는 무관심하거나 이를 당연시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1, 16].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이라는 사회 구조적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16]. 이로 인해 사람들은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불평등이 재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4].

또한, 능력주의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은 게으른 이들'로 낙인찍는 결과를 낳으며, 경제적 지위를 기반으로 한 노골적인 혐오 표현('빌거', '휴거' 등)이 만연하는 사회적 병폐로 이어진다 [15]. 이처럼 '공정'이라는 가치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과정만 공정하면 결과의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명제로 수렴되어 불평등을 은폐하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활용된다 [31]. 이 논리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들을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데 사용되며 [15], 결국 대중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그 질서를 강화하는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15].

문제점 유형 세부 문제 주요 사례 및 근거
교육적 병폐 학력/학벌주의 고착화 명문대 입학이 특권으로 작동 [26, 27], 과도한 사교육 경쟁 [25, 26]
사회적 병폐 불평등 정당화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 등 '공정성' 논리로 불평등 은폐 [16, 29]
노동 시장의 문제 지대 추구적 시험 문화 특정 자격증에 지나치게 큰 보상 부여 [15], 높은 직능불일치율 [32]
심리적/문화적 문제 혐오 표현의 만연 경제적 지위를 기반으로 한 혐오 표현 확산 [15]

제3부: 능력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모색

3.1. 교육 시스템의 재설계: 선발에서 성장으로

능력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설계에서 시작된다. 현재의 획일적인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능력을 함양하고 숙련할 수 있는 사회적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33]. 이는 단순히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잠재력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학력 격차를 완화하는 정책을 포함해야 한다 [33].

마이클 샌델이 제시한 '자격 갖춘 자 추첨제'와 같은 제안은 대학 입시를 순전히 운에 맡기자는 허황된 대안이 아니다 [9, 14]. 이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의 배경에 따라 능력이 불평등하게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 삶에서 운이 가지는 역할을 상기시키는 철학적 도구로 이해되어야 한다 [9]. 또한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고등 교육 체계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필수적이다 [33]. 서울대를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전국 국립대학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방안 등은 명문대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지방대학의 위상을 높여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실질적인 길을 제시한다 [33].

능력주의의 대안은 능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정의를 확장하고 평가 기준을 다원화하는 것에 있다. 능력주의 비판자들은 사회가 특정 종류의 능력만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능력들을 평가절하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15]. 따라서 진정한 대안은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능력을 숙련할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획일적 점수가 아닌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능력주의가 약속했으나 이루지 못한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실천적 과제이다 [33].

3.2. 노동의 존엄성 회복과 시장의 재조정

능력주의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특정 직업에만 과도한 보상을 부여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많은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20]. 능력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존엄성을 재확인하고, 어떤 일을 하든 누구나 존중받고 안전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노동 규범과 조직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33].

능력주의는 보상과 분배의 정당성을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서 찾기 때문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재분배 정책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약화시킨다 [4]. 그러나 공동체의 성공이 개별 능력자의 기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기여적 정의'를 넘어서는 재분배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6, 20]. 모든 성공은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기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6].

3.3. 공동선을 향한 사회적 대화와 정치의 역할

능력주의는 불평등 문제를 개인의 실패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를 다시 사회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33]. 이를 위해 시민 교육을 강화하고 사회의 다양한 주체(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의 역사를 조명함으로써 능력주의의 외부를 관심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33].

능력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에 달려 있다 [15]. 이는 단순히 제도적 개혁을 넘어, 모든 사람을 아우르고 보이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15]. 능력주의가 야기한 사회적 분열을 치유하고 공동선을 향한 새로운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이다 [20].

결론: 능력주의 사회를 넘어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능력주의는 세습적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이상적 원리였으나, 현실에서는 '능력'에 대한 협소한 정의와 '개인의 책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키는 병폐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시험주의'와 '학벌주의'라는 특수한 형태로 이 문제가 극단적으로 발현되었으며, 이는 불공정에는 민감하지만 불평등에는 둔감한 사회적 특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능력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단순히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노동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능력의 정의를 확장하고 노동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능력주의라는 마음의 화석 연료'를 버리고 [15], 개인의 성공에 대한 오만과 패자의 굴욕을 넘어,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는 더 관대한 공적 삶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한다 [15, 20]. 이는 개인의 태도 변화와 구조적 개혁이 함께 맞물려야만 가능한 지난한 여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