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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스타트업] 마크 트웨인의 발명 이야기

by 변리사 허성원 2025. 9. 20.

마크 트웨인의 발명 이야기

 

(*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대한 작가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이 보편화되기 어려웠던 19세기 미국에서 증기선 도선사, 금광 채굴공, 인쇄공,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러한 다면적 정체성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발명가로서의 삶이다. 그는 소설가로서의 뛰어난 상상력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여러 발명품에 도전했다. 기술적으로 의미있는 발명도 있고, 발명을 기초로 창업하여 크게 실패하기도 했다. 그의 발명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서론: 작가와 발명가 사이의 사나이,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본명: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대한 작가다.1 그러나 그의 삶은 단순히 문학적 성취라는 단일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이 보편화되기 어려웠던 19세기 미국에서 증기선 도선사, 금광 채굴공, 인쇄공,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2

이러한 다면적 정체성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발명가로서의 삶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상공업 발전을 경험하는 격변의 시대였다.3 기술 혁신에 대한 열기는 국가적 열망이었으며, 트웨인 역시 이러한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체화했다. 그는 소설가로서의 뛰어난 상상력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여러 발명품에 도전했으며 4, 기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그의 작품에 녹여냈다.5 그의 발명가로서의 삶은 단순한 부업이나 취미가 아니라,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이었으며, 문학적 유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부: 실용성에서 발현된 창의력 — 성공적 발명과 그 이면

1.1. 자동 풀칠 스크랩북 (The Self-Pasting Scrapbook)

마크 트웨인의 발명가로서의 삶은 그의 다양한 직업 경험에서 비롯된 실용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발명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자동 풀칠 스크랩북'이다.6 신문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신문 기사나 자료를 스크랩북에 붙일 때 일일이 풀칠을 해야 하는 비효율성과 불편함을 직접 겪었다.7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책자의 각 페이지에 우표 뒷면처럼 미리 마른 접착제를 발라두어, 사용자가 물만 바르면 바로 스크랩 자료를 붙일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했다.7 이 아이디어는 1873년에 특허로 등록되었다.8

이 스크랩북은 트웨인의 여러 발명품 중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8 1877년부터 1902년까지 생산된 이 스크랩북은 트웨인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다.9 1885년 『세인트 루이스 디스패치(Saint Louis Dispatch)』 신문은 트웨인이 그간 저술 활동으로 총 20만 달러의 이익을 올린 반면, 스크랩북만으로 5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보도했다.9 이는 그의 저서 인세 총액의 1/4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으로, 그가 '채워서 쓴' 책들이 벌어들인 수익에 비견될 만큼 '빈 책'이 큰 상업적 가치를 지녔다는 점에서 깊은 아이러니를 남긴다. 그의 가장 큰 성공이 그의 문학적 명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스크랩북의 성공은 이후 그를 파산으로 몰고 갈 거대하고 복잡한 기술 투자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기술에 대한 그의 양가적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된다.

1.2. 브래지어 후크와 기타 생활 발명품

자동 풀칠 스크랩북 외에도 마크 트웨인은 다양한 생활 속 발명품들을 고안했다. 특히 1871년에 특허를 받은 브래지어 걸쇠는 그의 사려 깊은 성격을 보여주는 발명품이다.7 당시 브래지어는 끈으로 등 뒤에서 묶는 방식이라 아내가 혼자 착용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끈 대신 금속 후크를 이용해 간단하게 걸 수 있도록 하는 걸쇠를 개발했다.4

그러나 이 발명품은 스크랩북과는 달리 상업화에 실패했다.4 이는 발명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당시 여성복의 주류가 코르셋이었고 브래지어가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4 이처럼 그의 발명가적 재능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아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례는 이 외에도 여럿 존재한다. 1885년에는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메모리 빌더(Memory Builder)'라는 교육용 보드 게임 장치를 특허 받기도 했다.7 또한, 뱃일 경험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증기 엔진을 개발하고, 딸들을 위한 유아용 침대 부속, 편리성을 높인 개량 허리띠 등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발명품들을 만들었다.4 이들 발명품들은 모두 그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실용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이 발명품들은 스크랩북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이는 작가로서의 성공이 곧 시장의 타이밍과 사업적 안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2부: 재앙이 된 발명가의 꿈 — 페이지 식자기 투자 실패기

2.1. 기술 혁신의 희망, 페이지 식자기 (The Paige Compositor)

마크 트웨인의 발명가적 삶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페이지 식자기(Paige Compositor) 투자 실패 사건이다.4 이 기계는 제임스 페이지가 1872년부터 1888년까지 개발한 기계식 자동 식자기로, 활자공의 수작업을 대체하도록 설계된 당대 최고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장치였다.12 이 기계가 가져올 혁신에 매료된 트웨인은 인쇄 산업에 혁명을 일으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4 그는 이 발명품으로 부를 축적하여 글을 쓰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5

트웨인은 이 꿈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었다. 그는 대부분의 저서 인세 수익과 심지어 아내의 유산까지 쏟아부으며 페이지 식자기에 총 30만 달러를 투자했다.12 이는 현재 가치로 약 800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12 그러나 그의 야심 찬 투자는 결국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다.

2.2. 천문학적 손실과 비극적 결말

페이지 식자기는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정교했으나, 그 복잡성 때문에 잦은 고장과 조정이 필요해 상업적 생산성이 떨어졌다.12 트웨인의 투자 실패는 단순히 개인의 운이 나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투자한 페이지 식자기는 시대를 앞서가기는 했으나,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실용적인 해답을 제공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리노타입(Linotype)이라는 더 단순하고 안정적인 '핫메탈(hot metal)' 방식의 기계가 등장하여 인쇄 시장을 장악했다.12 이로 인해 페이지 식자기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트웨인은 투자금 대부분을 잃고 파산에 이르렀다.4

이 재정적 재앙은 트웨인의 삶과 작품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한때 그의 기발한 유머와 위트를 칭송받았던 트웨인은 이 실패 이후 그의 글에서 점차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있다.12 그의 발명가로서의 꿈이 좌절되면서, 인간의 탐욕, 기술의 덧없음, 그리고 진보에 대한 그의 관점은 더욱 복잡하고 어두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발명가로서의 실패가 그의 삶을 재정적 파멸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세계관까지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3부: 발명가의 열정이 남긴 문학적 유산

3.1. 발명과 문학의 상호작용

마크 트웨인의 발명가적 삶은 그의 문학적 행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페이지 식자기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된 그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글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2 그의 아내 올리비아가 "발명 같은 거 하지 말고 글이나 쓰세요"라고 조언했고 4, 트웨인은 이 말을 듣고 다시 창작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그는 『톰 소여의 모험』과 『왕자와 거지』를 집필했으며 4, 이 작품들의 성공은 그가 다시 재정적 안정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4

트웨인의 기술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그의 소설 『아더 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에서는 19세기 미국인이 중세 시대로 시간 여행을 가서 증기선, 전화기, 그리고 특허청 등 당대의 첨단 기술을 도입하려는 이야기를 다룬다.1 이 작품은 산업화와 문명의 진보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이는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그의 깊은 매료와 동시에 그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문제를 예리하게 꿰뚫어 본 그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1 또한, 『Pudd'nhead Wilson』에서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과학 수사 기법인 지문 감식(fingerprinting)을 소설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기도 했다.5

3.2. 모순과 역설의 아이콘

트웨인의 발명가적 삶은 재정적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그의 작가로서의 역량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발명가로서의 좌절은 그가 단순히 기술의 편리함과 효율성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점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 비효율성, 그리고 비극을 깊이 파고들게 만들었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발명가가 되기를 갈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은 그의 이름이 붙은 '빈 책'이었고, 그의 가장 큰 기술적 투자는 그를 파산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그의 삶은 19세기 미국 사회가 가진 모순을 그대로 담아낸 하나의 아이콘과 같다. 그는 기술에 매료된 진보의 신봉자이면서도, 기술이 인간을 획일화하고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한 비판가였다. 그의 발명가로서의 실패는 단순한 재정적 손실이 아니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고, 그의 글에 더욱 깊이 있는 성찰과 현실적 통찰을 불어넣었다. 발명가로서의 좌절은 작가로서의 성공을 가능케 한 '필요한 실패'였다고 볼 수 있다.

결론: 마크 트웨인, 발명과 예술의 연금술사

마크 트웨인의 발명 이야기는 성공과 실패가 뚜렷하게 교차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의 자동 풀칠 스크랩북은 기자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큰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반면, 페이지 식자기 투자는 거대한 기술의 꿈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실패와 좌절은 그의 작가로서의 역량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급변하는 산업화 시대에 기술에 매료된 발명가이자, 그 기술의 단점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풍자한 작가였다. 그의 삶은 19세기 미국 사회의 모순과 역설을 그대로 담아낸 하나의 아이콘과 같다. 그의 발명가적 삶은 단순히 부자가 되려는 꿈을 넘어, 당시 시대의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자, 결국 그의 위대한 문학적 유산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그의 발명 이야기는 결국 그의 삶과 작품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재확인시켜준다.

마크 트웨인의 주요 발명품 및 특허 목록

발명품명 특허 번호 특허 연도 주요 내용 상업적 결과
브래지어 걸쇠 No. 119,776 1871 등 뒤에서 끈을 묶는 대신 금속 핀으로 간단히 연결하는 방식 상업화 실패, 당시 코르셋이 주류였기 때문
자동 풀칠 스크랩북 No. 132,604 1873 페이지에 미리 마른 접착제를 발라 물만 묻히면 스크랩 자료를 붙일 수 있는 방식 유일한 상업적 성공작, 큰 수익을 창출
메모리 빌더 게임 No. 324,535 1885 역사적 날짜와 사실을 암기하기 위한 교육용 보드 게임 장치 상업적 성공 여부는 불분명하나,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함

마크 트웨인의 발명 관련 주요 연보

연도 주요 발명/투자 활동 주요 작품 출간
1871년 브래지어 걸쇠 특허 취득  
1872년 페이지 식자기 투자 시작  
1873년 자동 풀칠 스크랩북 특허 취득  
1876년   『톰 소여의 모험』 출간
1881년   『왕자와 거지』 출간
1884년   『허클베리 핀의 모험』 출간
1885년 메모리 빌더 게임 특허 취득  
1894년 페이지 식자기 투자 실패로 파산  

 

 

< 초기의 브래지어는 모두 끈으로 등 뒤를 거쳐 매는 방식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아내가 외출할 때마다 브래지어 끈을 묶느라 불편을 겪는 것을 보고 걸쇠를 이용해서 등뒤로 간단히 걸 수 있도록 발명을 하여, 그것을 1871년에 특허를 받았다. 그 간단한 아이디어가 현대에 이토록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을 줄은 본인도 잘 몰랐을 것이다.>

옛날에는 신문기사나 메모 등을 모아 스크랩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었다. 이는 지식과 정보를 모으는 가징 기본적인 작업이었다. 스크랩한 자료는 일일이 풀칠을 하여 스크랩북에 붙여야 했지만, 마크 트웨인은 책자에 미리 우표의 뒷면처럼 마른 풀칠을 해두고, 스크랩을 붙일 때 물만 바르면 접착이 가능하게 하였다. 이 스크랩북은 상당히 많이 팔렸던 것 같습니다.아래와 같은 광고도 있었다.   

메모리 빌더라는 이름의 게임장치도 특허를 받은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shorts/1KfwjnBgM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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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의 기원>

그의 본명은 사무엘 랭그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이다. Mark Twain이라는 필명은 1863년부터 썼다.
그가 젊은 시절 증기선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증기선이 항구로 도착할 때 물 속 깊이를 재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물 깊이는 패덤(fathom; 1패덤 = 2야드 = 182.88 cm) 단위로 측정하는데, 패덤에 따라 "By the mark~~"로 말한다. 만약 2패덤이면 "By the mark two"라고 하지 않고 "By the mark twain."이라고 말한다. 2패덤(약 3.66m) 즉 마크 트웨인은 배가 강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소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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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해도 그의 최대 발명품은 그의 언어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멋진 경구는 이런 것들이다. 

"제정신과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

"항상 진실을 말하라. 그러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아침에 첫 식사로 삼아 먹어보게.
그러면 그 하루 동안에는 적어도 그보다 더 나쁜 일을 결코 생기지 않을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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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https://dlink.podbbang.com/1ad80085

 

[스타트업] 마크 트웨인의 발명 이야기

마크 트웨인의 발명 이야기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대한 작가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이 보편화되기 어려웠던 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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