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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허성원 변리사 칼럼]#189 특허 프라이버티어링

by 변리사 허성원 2025. 3. 2.

특허 프라이버티어링

 

지난해에 특허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은 특허 관련 분쟁 기사가 하나 있었다. 퇴직한 전직 연구원이 회사를 상대로 직무발명 보상금을 청구한 소송이었는데, 그 보상금 청구 금액이 근 3조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액수에다 인지대만 해도 150억 원에 달한다고 하여 놀라게 만들었다. 그 보상액의 기초가 되는 손해액이 무려 약 85조 원이었는데, 그 손실 발생의 주된 이유가 그 발명자의 발명을 회사가 세계적으로 특허 등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여, 그 논리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소송 청구의 타당성이야 소송에서 구체적으로 다투어지겠지만, 전문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따로 있다. 먼저 그 엄청난 소송비용을 외부로부터 펀딩을 통해 조달한다는 것이었다. 매우 참신한 소송 제기 방법이 아닌가. 그런데 그 펀딩이 성공하려면 투자자들에게 승소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니, 그러려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 혹은 로펌이 승소에 관한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역시 사건을 맡은 로펌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펀딩과 설득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로펌은 그 소송의 실질적인 설계자이면서 사실상의 주체였던 셈이다.

이처럼 제3자의 힘을 빌려 공격적인 소송을 벌이는 소송 전략을 '프라이버티어링(privateering)' 혹은 ‘사나포선(私拿捕船) 전략’이라 부른다. '프라이버티어(privateer)' 혹은 사나포선(私拿捕船)은 포획사선(捕獲私船) 혹은 사략선(私掠船)이라고도 하며, 원래 전쟁 중에 국가로부터 적국의 상선 등 선박을 나포하고 약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선박을 가리킨다. 이러한 민간 선박의 활용 즉 국가가 허락한 해적행위는 16세기에서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해상 전쟁에서 중요한 전술로 널리 활용되었다. 국가는 민간의 자발적인 활동을 유도하여 부족한 해군력을 보충하고, 적국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동시에 나포한 화물 물자를 함께 나누었기에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였다.

'프라이버티어링'은 현대의 소송이나 기업 분쟁에서 아직도 전략적으로 알게 모르게 적잖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특허 분쟁 분야에서 그 활용의 사례가 두드러진다. '특허 프라이버티어링'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서두의 사례에서와 같이, 소송의 원고 자격을 가진 사람이 그 소송을 추진할 경제력이나 적극적인 의지가 약한 경우에, 그를 대신하여 자본과 추진력과 가진 주체가 대리 소송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게 소송을 대리 수행한 주체는 승소하였을 때 얻은 이익으로부터 자기 몫을 가져가게 된다. 불확실성이 큰 만큼 그들의 몫도 필시 커질 것이다.

그렇게 특허 분쟁을 대행 집행하는 주체를 PAE(Patent Assertion Entity) 즉 특허권 행사 회사 혹은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부른다. 위 사례에서는 변호사 혹은 로펌이 PAE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예는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 비교적 흔하다. 이 경우 변호사에게는 '성공 조건불 소송 사건(Contigency Case)'이 된다.

'특허권 행사 회사' 즉 PAE는 통상 타인의 특허에 대한 소송권을 위임 받아 소송을 진행하지만, 때론 특허를 양도 받아 스스로 보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특허를 보유하면서 그 특허 기술을 직접 실시하지는 않는 회사나 기관을 NPE(Non-Practicing Entity, 특허 관리 회사)라 부른다. NPE는 특허를 활용한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한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대학이나 연구소와 같은 기관이 운영하기도 하고, 기업들이 효율적인 특허 관리를 위해 위장된 형태로 운영하기도 한다. NPE가 특허 활용을 공격적으로 수행하면 PAE 혹은 특허괴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특허괴물은 NPE인 동시에 PAE이지만, NPE라 하여 모두 특허괴물이나 PAE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특허 프라이버티어링의 형태는, 기술 기업들이 자신의 특허를 특허권 행사 회사(PAE)에 매각하고, PAE는 그 특허를 가지고 특허 침해 기업들을 찾아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때 특허를 매각한 기업과 PAE 간에는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내부 약정을 맺을 것이다. 완전히 독립된 의사 결정이나 이익 공유의 형태도 있을 것이고, 소송 등을 통한 부가적인 수입원의 창출, 혹은 번잡한 소송 업무의 외주화가 목적인 경우도 있다. 약정 내용에는 자기 혹은 특정 그룹의 안전한 실시를 보장하거나 특정 경쟁자에 대한 의무 공격 조항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허 프라이버티어링'은 무엇보다 '깨끗한 손(Clean Hand) 전략'에 최적의 선택이다. 대기업 등이 경쟁 기업을 직접 공격하면 기업 이미지가 공격적으로 비치게 되기 때문에 자신들을 노출시키지 않는 우회적인 공격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종종 특허권의 남용하여 시장의 경쟁 질서를 부당히 해친다는 '깨끗하지 못한 손(Unclean Hand)'으로 인정되어 권리행사가 제한될 경우도 있다. 그래서 프라이버티어링은 자신의 손을 깨끗하게 유지한 채로 제3자의 손을 빌려 경쟁자를 응징하는 데에 매우 가장 유용한 전략이 된다.

이러한 프라이버티어링도 그 유용성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프라이버티어링을 수행하는 PAE는 태생적으로 공격성이 강하다. 자신들의 수익이 소송에서 창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PAE는 제품을 제조하지 않기 때문에 맞소송을 당할 우려가 없으므로,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당연히 소송 리스크가 증대하고, 막대한 소송비용을 부담하여야 하며, 합의에 이르더라도 크로스 라이센스 카드를 활용할 수 없으므로 과도한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특히 혁신기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무척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다.

이처럼 특허 프라이버티어링은 PAE나 특허괴물과 마찬가지로, 기술 창작의 보호라는 특허제도의 본질적 이념이 자본주의와 야합하여 생겨난 사생아이다. 이들은 지식재산권의 경제적 혹은 효율적 활용의 한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특허시스템을 심대히 왜곡하여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들을 특허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 존재를 부정하면 특허제도 자체의 존재이유가 뿌리 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NPE 등의 권리 행사를 제한하고 특허권 남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하여, 산업 환경에서 경쟁을 방해하거나 혁신을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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