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의 악마성
SNS의 악플 등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뉴스를 가끔 접한다. 최근에는 한 젊은 배우에게도 그런 유형의 비극이 있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는 가늠할 수 없기에, 그저 저 아까운 사람들이 좀 더 강한 자존감이나 의지를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먼저 느꼈다.
그런데 최근 SNS에서 악플이 어떻게 확대되고 확산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관망할 기회가 있었다. 한 페이스북 그룹에서의 일이다.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려고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들었는데 지금 가입자가 4만명 가까이 된다. 아이디어들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한 포스팅에 '좋아요'가 십수 개 정도 달리고 많이 재미있으면 수십 개 정도 달리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최근의 한 포스팅이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 그 포스팅은 '좋아요'가 1400개를 훌쩍 넘고 공유도 120회나 되며, 노출은 근 50만회에 육박해간다. 이런 엄청난 관심을 받아본 포스팅은 아직 없었다. 주제는 유머인데, 어느 수리공의 차량 뒤에 붙여놓은 시간당 비용표의 내용이었다.
"우리에게 맡기면 $100,
주인이 지켜보면 $150,
주인이 도우면 $175,
주인이 수리 방법을 말해주면 $200,
주인이 고치고 자신들이 지켜봐줄 때는 $300."
좀 재미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토록 관심을 끈 것은 의외였다. 여하튼 내가 공유해온 포스팅이 인기가 있으면 별 득이 없더라도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즐기며 지켜보던 중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포스팅에 한 여성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 대댓글이 꼬리를 물고 불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성분이 단 댓글 내용은 대충 이랬다.
"무상 나눔 중고 가구를 받으러 가서, 그 분에게 옮기는 거 도와 달라고 했더니, 자기가 도우면 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나보다 힘도 못 쓸거 같아서 남편이랑 옮겼다.ㅎ"
별 내용이 아니지 않은가. 이 게 뭐 그리 대단하랴 싶을 것이다. 나도 이 글을 봤을 때 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무상으로 주는 가구를 받으러 가서 그 집 주인에게 좀 도와 달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차피 폐기해야할 귀찮음을 덜게 된 주인의 입장에서는 기꺼이 옮기는 걸 자발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버리려던 책이나 안쓰는 물건을 남에게 줄 때 차에까지 함께 들고 가서 실어주기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주인이 자신이 도우면 비용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여성분은 남편을 불러 처리를 했다. 아마 그곳에 따라간 남편이 바깥에 있었던 듯이다.
그 댓글에 대댓글들이 좀 요상하게 붙기 시작했다. 금세 '진상'임을 지적하는 대댓글들이 마구 늘어났다. 대충 이런 내용들이었다. "본인이 진상인건 모르시죠", "무료나눔 받으러가서 도와줘요 이러는 거 진상인거 모르세요?", "주는 거에 대한 감사는 못느끼고 이게 한국인 표준인가 싶어서 안타깝네요." "본인이 진상인줄 알면 이런글 쓰겠음? 모르고 적은 거임 한심."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줄을 지어 붙으니, 원 글을 올린 여성분은 가볍게 해명을 했다. .. 오해들 마시라.. 몇 개는 돈을 주고 구입을 했고 폐기하겠다는 가구를 손봐서 쓸려고 가져오려 한 것이고.. 자신도 무료나눔할 때 많이 도와줬고.. 주인에게 부탁하니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해서 당황했다는.. 그런 이야기 정도였다. 그래도 화를 내지 않고 점잖게 그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악플러들에 비해 품위가 느껴졌다.
이 해명이 뜨자 대댓글들은 좀더 과격해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는 원 포스팅의 의미를 과장 혹은 왜곡하기까지 했다.
"무료든 돈주고 판거든 운임에 대한 부분에 댓가를 치른게 아니라면 판매자는 손하나 까딱 안할 권리가 있습니다. 도와주는게 배려인거지 그게 당연한건 아닙니다." "그집에서 몇개 구입했다로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데 무료라서 손하나 까딱안하는게 이해 못한다는게 진짜 놀라워 미칠지경임 ......... ;;;;" "이런 아줌마들이 이천원짜리 커피 사마셨다고 뭐도 달라 뭐도 해달라 이러면서 진상부리는 거구나.." "도움이 필요하면 본인이 사람을 고용해서 데리고 가야 맞는 것이지 나는 이렇게 했는데 당신은 왜 이것을 안해주나요? 라는 것은 흠… 당신 가족한테만 하세요. 내 가족이 아닌 당신한테 베풀 호의는 없으니까요." "이런 사람과 같이 사는 세상은 싫어요. 이런사람들한테는 손까딱의 배려도 해주고 싶지 않아요.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했죠"
비난의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주인이 자신보다 힘을 못쓸 것 같다'고 언급한 부분을 가지고는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공격도 나왔다.
"선행을 베풀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진상이네요 저보다 힘도 못쓸꺼 같다고 무시하기까지"
"ㅋㅋㅋ니가 뭔데 남까지 판단해 ㅋㅋㅋㅋㅋㅋ대가리에 총맞앗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 여성분의 프로필까지 찾아 들어가 보고와서는, 과거 춧불집회에 참석한 것 등 정치적인 공격을 해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가족 사진에 대한 언급까지 붙었다.
하도 모진 말들이라서,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 중 심한 것 몇 개는 관리자의 권한으로 임의 삭제하거나 가려버렸다.
그러다 슬그머니 그 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분의 페이지를 들어가보니 다행히 아직 이상 징후(?)는 느껴지지 않았다.
SNS의 이런 행태에 만정이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별 것 아닌 몇 마디의 글로 인해, 그 분은 왜 그토록 모진 공격을 받게 된 것일까?
우선은 그 분이 약자로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
일단 그 글을 보면 강자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격하기에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좋은 유희거리가 되는 법이다.
게다가 그 분의 성격이 부드러워보였다. 그러면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낮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초기 공격을 받았을 때 어슬픈 변명으로 대응한 것도 악플러들의 취미감을 자극한 것 같다.
차라리 완전히 무시했더라면 금세 적절히 사그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고 또 놀란 것이 있다.
공격적인 대댓글들에 '좋아요'가 잔뜻 붙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3백 수십 개가 붙은 것도 있다.
누군가를 마구 공격하는 그런 짓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잠재적인 동지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 수십 명의 악플러와 수백 명의 악플동조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필시 어디서나 쉽게 보거나 부딪힐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단지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공감능력이나 배려심은 좀 떨어지겠지만,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소란스런 분위기를 즐기는 약간 유별난 호사가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이 집단을 이루어 연출한 악마성은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공포스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위험을 애초부터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위험이 있을지조차 예감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만큼, 그들은 과도하게 평범하다.
가히 '평범의 악마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어찌 다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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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행위에 대해 사람들의 도덕적, 인륜적 인식이 둔감해지는 현상 즉 평범의 악마성은..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우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극우적인 세계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차별, 배제, 반평등이라 할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상정하는 나름의 '규범'을 정해놓고, 그 규범에 벗어나는 소수자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이 사회에서 배제시키거나 추방하여 끝내는 절멸시키고자 한다. 나치가 유태인을 말살하려던 것처럼. 지금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악플러들의 행위는 극우주의자들의 차별과 혐오, 탄압의 전형적인 공식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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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칼럼] <우리가 '괴물'을 키웠다>
"이 나라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면 돌출 행동이 싹틀 토양이 있었다. 적대와 혐오와 폭력이라는 파시즘의 토양을 우리가 일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보복성 수사·감사는 점점 거칠어졌고 진영 간 적대감은 깊어졌다. 그 끝에 윤 정부의 검찰 정치가 있었고 되갚음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이재명은 안 된다’는 외침으로 메아리친다.
증오의 정치는 유권자의 분노를 먹고 자랐다. 지지자들은 상대 진영 정치인은 물론 당내의 다른 목소리마저 ‘수박’으로 찍어 절멸시키려 하지 않았던가. ‘깨어 있는 행동’이라 여겼던 문자폭탄과 판사 겁박은 본질적으로 다를까. 저쪽의 부정선거론을 비웃으면서 우리 편의 부정선거론은 성찰한 적이 있던가.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난민 등 약자의 권리 요구를 비문명, 언더도그마라고 비난하는 건 얼마나 거침없었으며 연예인들의 흠결에 쏟아낸 조롱은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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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와 관련하여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씨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습니다. 검은 상의를 입고 찍은 셀카 한 장에 파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긴, 지난 1월에 올린 게시물이 최상단에 떴습니다. 그가 올린 셀카는 별다른 감상을 남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말 평범한 사진이었습니다.
반성없는 김새론, 셀프 결혼설 후 근황 (<뉴시스>)
김새론 음주운전 후 3년…이젠 얼굴로 무력 시위, 반성 없는 자숙 (<OSEN>)
SNS 못 끊는 김새론, 반성 따위 없다..댓글창 막고 '얼빡샷' 박제 (<헤럴드POP>)
놀랍게도 셀카 한 장을 두고 쓴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이밖에 다른 언론들도 김새론씨가 올린 사진을 기사화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인스타그램 댓글 창을 닫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동시에, 자숙을 해야 할 기간인데 왜 SNS를 하느냐며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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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어려운 그에겐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틈이 필요했습니다. 숨 쉴 수 있는 틈, 고립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틈, 어둠 속에서 잠깐이나마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틈, 그밖에 '다음의 삶'을 꿈꾸게 하는 수많은 틈, 틈, 틈. 하지만 우리 사회는 김씨에게 그 틈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막말 보도를 하는 언론, 사이버 레커, 유튜브의 짜깁기 영상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즐기고 퍼트리는 것은 평범한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고립시키고 숨 막히게 하는 '죽음의 말'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연예인, 유명인들에게 가닿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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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들, 사람 죽어야 멈춰… 스트레스 푸는 샌드백 삼아”> _ 동아일보
“죽든 말든 알 게 뭐야. 음주운전 한 X 죽은 게 뭐 난리라고.”
배우 김새론 씨(25)가 16일 숨진 채 발견된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악성 댓글(악플)이다. 이 같은 악플은 김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등 본인의 잘못과는 별개로 유명인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샌드백’처럼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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