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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90 평범의 악마성

by 변리사 허성원 2025. 3. 16.

평범의 악마성

 

얼마 전에 아까운 젊은 배우가 언론의 비난과 악플 등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고통을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저 저 아까운 사람들이 좀 더 강한 자존감과 의지를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컸었다. 그런데 최근 악플이란 것이 SNS에서 어떻게 증폭되고 확산되는지를 직접 관망할 기회가 있었다.

페이스북의 한 그룹에서의 일이다.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려고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들었는데 지금은 가입자가 근 4만 명 가까이 된다. 하지만 아이디어들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한 포스팅에 '좋아요'가 십 수 개 정도 달리고 아주 재미있는 것이면 수십 개 정도 달리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최근에 공유한 한 포스팅이 갑자기 사람들의 주목을 크게 받는 일이 생겼다. '좋아요'가 천 수백 개를 훌쩍 넘고 공유도 백 수십 회나 되며, 노출은 근 50만회에 달했다. 이런 대단한 관심을 받아본 포스팅은 처음이었다. 주제는 유머인데, 어느 수리공의 차량 뒤에 붙여놓은 시간당 비용표였다. 내용은 이러하다. "우리에게 맡기면 $100, 주인이 지켜보면 $150, 주인이 도우면 $175, 주인이 수리 방법을 말해주면 $200, 주인이 고치고 자신들이 지켜봐줄 때는 $300."

좀 유쾌하고 흥미로운 포스팅이긴 하지만 그토록 관심을 끌 줄은 몰랐다. 여하튼 내가 공유한 글이 인기가 있으면 즐거운 일이라 유심히 지켜보던 중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포스팅에 한 여성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 대댓글이 꼬리를 물고 불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분의 댓글 내용은 대충 이랬다. "무상 나눔 중고 가구를 받으러 가서 그 분에게 옮기는 거 도와 달라고 했더니, 자기가 도우면 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나보다 힘도 못 쓸거 같아서, 남편이랑 옮겼다."

별다른 내용이 아니지 않은가. 나도 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가구를 무상으로 받으러 가서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고, 주인의 입장에서도 폐기할 수고를 더는 김에 기꺼이 도와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해본 적이 있다. 그 주인이 자신이 도우면 비용을 받겠다고 했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그런 정책을 써야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여성분은 남편을 불러 처리를 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그런데 그 여성분의 댓글에 대댓글들이 좀 요상하게 붙기 시작했다. 어느 한 사람이 그 여성을 '진상'이라 지적했고, 그에 동조하는 대댓글들이 마구 늘어난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들이었다. "본인이 진상인건 모르시죠", "무료 나눔 받으러가서 도와줘요 이러는 거 진상인 거 모르세요?", "주는 거에 대한 감사는 못 느끼고 이게 한국인 표준인가 싶어서 안타깝네요.", "본인이 진상인줄 알면 이런 글 쓰겠음? 모르고 적은 거임 한심."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으니, 그 여성분은 가볍게 해명을 시도했다. ".. 오해들 마시라.. 몇 개는 돈을 주고 구입을 했고 폐기하겠다는 가구를 손봐서 쓰려고 가져오려 한 것이고.. 자신도 무료 나눔할 때 많이 도와줬고.. 주인에게 부탁하니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해서 당황했었다." 대충 그런 정도의 이야기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점잖게 대응하는 것을 보니 그녀의 착한 품성과 품위가 느껴졌다.

이 해명이 뜨자 대댓글들은 더 과격해졌다. 원래의 글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기까지 했다. "무료든 돈주고 판 거든 운임에 대한 부분에 댓가를 치른 게 아니라면.. 도와주는 게 배려인 거지 그게 당연한 건 아닙니다." "그 집에서 몇 개 구입했다로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무료라서 손 하나 까딱 안하는 게 이해 못한다는 게 진짜 놀라워 미칠 지경임." "이런 아줌마들이 이천 원짜리 커피 사마셨다고 뭐도 달라 뭐도 해 달라 이러면서 진상부리는 거구나.." "도움이 필요하면 본인이 사람을 고용해서 데리고 가야 맞는 것이지 나는 이렇게 했는데 당신은 왜 이것을 안 해주나요? 라는 것은 흠당신 가족한테만 하세요. 내 가족이 아닌 당신한테 베풀 호의는 없으니까요."

"이런 사람과 같이 사는 세상은 싫어요."와 같은 비난도 있었고, '주인이 자신보다 힘을 못쓸 것 같다'고 언급한 부분을 가지고는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공격이 등장했다. "선행을 베풀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진상이네요 저보다 힘도 못쓸 것 같다고 무시하기까지.." "ㅋㅋㅋ 니가 뭔데 남까지 판단해 ㅋㅋ 대가리에 총 맞았냐? ㅋㅋㅋ".

급기야 그 여성분의 프로필까지 찾아보고 와서는, 춧불집회에 참석했던 것 등 정치적인 공격도 나왔고, 심지어 가족사진에 대한 언급까지 있었다. 모진 말들은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 그 중 심한 것 몇 개를 관리자의 권한으로 임의 삭제하거나 가렸다. 그러다 그 분이 슬그머니 걱정되어 그 페이지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별 것 아닌 어설픈 몇 마디 댓글로 그토록 모진 공격을 받았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아마도 SNS에서의 이런 행태에 만정이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은 그 분이 강자로 여겨지는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사생활을 가볍게 올리며 포스팅을 즐기고 있으니 비교적 만만한 상대로 보였으리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만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낮아 보이니 좋은 유희거리가 된다. 그리고 그 분이 공격받은 초기에 순진한 변명으로 대응한 것도 악플러들의 취미감을 자극한 것 같다. 차라리 무시했더라면 금세 적절히 사그라졌을 지도 모른다. 아예 자신의 댓글을 자체를 삭제해버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그 공격적인 비난 대댓글에 '좋아요'가 수백 개씩이나 잔뜩 붙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마구 공격하는 그런 짓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잠재적인 동지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니, 기가 막혔다. 그 분이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이었다면 악플은 얼마나 더 많고 가혹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 수많은 악플러와 악플 동조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사회학적 혹은 심리학적으로 이들을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그들은 필경 어디서나 쉽게 보거나 부딪힐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단지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공감능력이나 배려심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고, 평소에 적잖은 도덕적 흠결을 저지르면서도 안 그런 척 적당히 위선적으로 살아가며, 누군가를 소란스레 공격하며 왁자한 분위기를 즐기는 조금 유별난 호사가들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남들의 작은 도덕적 오류에 대해 모진 비난을 거침없이 해대는 이들은 필시 그들의 비난을 받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고 있을 리가 없다.

"도둑질보다 더 나쁜 것은 '도덕질'이다"라는 말이 있다. SNS에서 난폭하게 '도덕질'해대는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의 가혹한 결과와 그 위험을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대체로 너무도 어리석고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이 집단적으로 희생자에게 저지른 연출한 상황과 그 결과는 가히 악마적이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평범의 악마성'이라 할 수 있겠다. ‘평범의 악마성SNS가 제공하는 군집화와 익명성에 의해 더욱 강하고 모질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산다.

 

우리에게 맡기면 $100, 주인이 지켜보면 $150, 주인이 도우면 $175, 주인이 수리 방법을 말해주면 $200, 주인이 직접 고치고 자신들이 지켜봐주면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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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행위에 대해 사람들의 도덕적, 인륜적 인식이 둔감해지는 현상 즉 평범의 악마성은..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우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극우적인 세계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차별, 배제, 반평등이라 할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상정하는 나름의 '규범'을 정해놓고, 그 규범에 벗어나는 소수자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이 사회에서 배제시키거나 추방하여 끝내는 절멸시키고자 한다. 나치가 유태인을 말살하려던 것처럼. 지금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악플러들의 행위는 극우주의자들의 차별과 혐오, 탄압의 전형적인 공식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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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칼럼] <우리가 '괴물'을 키웠다>

"이 나라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면 돌출 행동이 싹틀 토양이 있었다. 적대와 혐오와 폭력이라는 파시즘의 토양을 우리가 일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보복성 수사·감사는 점점 거칠어졌고 진영 간 적대감은 깊어졌다. 그 끝에 윤 정부의 검찰 정치가 있었고 되갚음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이재명은 안 된다’는 외침으로 메아리친다.

증오의 정치는 유권자의 분노를 먹고 자랐다. 지지자들은 상대 진영 정치인은 물론 당내의 다른 목소리마저 ‘수박’으로 찍어 절멸시키려 하지 않았던가. ‘깨어 있는 행동’이라 여겼던 문자폭탄과 판사 겁박은 본질적으로 다를까. 저쪽의 부정선거론을 비웃으면서 우리 편의 부정선거론은 성찰한 적이 있던가.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난민 등 약자의 권리 요구를 비문명, 언더도그마라고 비난하는 건 얼마나 거침없었으며 연예인들의 흠결에 쏟아낸 조롱은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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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론씨 사망 전후로 관련 기사를 낸 언론사들과 보도건수 _ 민언련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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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와 관련하여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 사회가 김새론에게 유독 잔인했던 이유>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씨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습니다. 검은 상의를 입고 찍은 셀카 한 장에 파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긴, 지난 1월에 올린 게시물이 최상단에 떴습니다. 그가 올린 셀카는 별다른 감상을 남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말 평범한 사진이었습니다.

반성없는 김새론, 셀프 결혼설 후 근황 (<뉴시스>)
김새론 음주운전 후 3년…이젠 얼굴로 무력 시위, 반성 없는 자숙 (<OSEN>)
SNS 못 끊는 김새론, 반성 따위 없다..댓글창 막고 '얼빡샷' 박제 (<헤럴드POP>)

놀랍게도 셀카 한 장을 두고 쓴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이밖에 다른 언론들도 김새론씨가 올린 사진을 기사화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인스타그램 댓글 창을 닫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동시에, 자숙을 해야 할 기간인데 왜 SNS를 하느냐며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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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어려운 그에겐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틈이 필요했습니다. 숨 쉴 수 있는 틈, 고립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틈, 어둠 속에서 잠깐이나마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틈, 그밖에 '다음의 삶'을 꿈꾸게 하는 수많은 틈, 틈, 틈. 하지만 우리 사회는 김씨에게 그 틈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막말 보도를 하는 언론, 사이버 레커, 유튜브의 짜깁기 영상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즐기고 퍼트리는 것은 평범한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고립시키고 숨 막히게 하는 '죽음의 말'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연예인, 유명인들에게 가닿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그 틈이 있기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법이다." (There ia a crack in everything. That is how the ligh gets in.) _ Leonard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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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플러들, 사람 죽어야 멈춰… 스트레스 푸는 샌드백 삼아”> _ 동아일보

죽든 말든 알 게 뭐야. 음주운전 한 X 죽은 게 뭐 난리라고.”
배우 김새론 씨(25)가 16일 숨진 채 발견된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악성 댓글(악플)이다. 이 같은 악플은 김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등 본인의 잘못과는 별개로 유명인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샌드백’처럼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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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명망 높은 덴마크도 소셜미디어(SNS)상 혐오 발언과 악플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역대 최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0.2% 밖에 안 되는 소수 악플러가 전체 악플 중 30%를 쏟아내며 온라인에 혐오와 차별을 부추겼습니다. 모든 악플을 써내는 악플러는 전체 페이스북 사용자 중 1.5%에 불과했고요.
정치인과 언론사 페이스북 페이지 댓글 20개 중 1개(4.5%)는 악플이었습니다.
혐오 표현 중 35%는 외국인, 22%는 성소수자, 21%는 장애인 비하 발언이었습니다. 악플러 중 남성은 68%, 여성은 32%였으며 40세 이상이 80%으로 온라인 혐오발언에는 남녀노소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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