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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화왕계(花王戒) _ 설총(薛聰)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2. 22.

화왕계(花王戒) _ 설총(薛聰)

 

- 신라의 학자 설총(薛聰)이 외사촌 형인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을 위해 지은 때의 설총이 지은 우화적인 설화 단편 산문으로, 삼국사기 설총 열전에 실려 있다.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설총의 글이며, 한국 최초의 창작 설화로 알려져 있다.

- 『동문선』 권52에는 우언(寓言)적인 ‘풍왕서(諷王書, 왕에게 풍간 즉 에둘러 간하는 글)’라고 표기되어 있다. 원래는 『삼국사기』 열전에 설총을 다루면서 제목 없이 언급되어 있으나,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화왕계(花王戒)’라 부른 것이다. 

- 꽃을 의인화한 풍자로 왕에게 충고하는 내용이다. 화왕(모란), 간신(장미), 충신(백두옹, 할미꽃)이 등장하며, 이 풍자를 통해 간신을 멀리하고 충신을 가까이 하라는 가르침이다.

- 고려의 가전체(假傳體)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가전체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전기() 형식으로 서술하는 문학 양식. 고려 중기 이후에 성행하였다. 임춘(椿) <국순전>, <공방전>이나 이규보() <국선생전>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 이야기의 발단은 신문왕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설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것을 청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설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꽃나라를 다스리는 화왕(花王=모란꽃)이 나타나매 장미꽃이 미인으로 분장하고 등장하여 화왕의 수청(守廳)을 앙청한다. 한편 백두옹(白頭翁=할미꽃)은 장부(丈夫)로 분장하고 등장, 신하되기를 원한다. 이에 화왕이 장미를 취할지 백두옹을 취할지 고민하자 백두옹이 충언을 하고 화왕이 깨우친다는 이야기이다.이 이야기를 들은 신문왕은 큰 교훈을 얻고 설총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삼국사기>권 46 설총 열전은 기록하고 있다. _ 화왕계(花王戒) 지식백과   

 

** <삼국사기 제46권 열전 제6(三國史記 卷第四十六 列傳 第六)>    

설총(薛聰)의 자는 총지(聰智)이다.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처음에 중이 되어 불서(佛書)에 통달하였으나 얼마 후에 속인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불렀다.

총은 본성이 총명하고 예리하며 태어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다. 그는 우리말로 9경을 해독하여 후학들을 가르쳤으니, 지금도 배우는 자들이 그를 종주(宗主)로 삼고 있다. 그는 또한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지금 남쪽 지방에 총이 지은 비명이 간혹 있으나 글자가 이지러지고 떨어져서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것이 어떠한 내용인지 알 수 없다.

薛聰 字聰智 祖談捺奈麻 父元曉 初爲桑門 掩該佛書 旣而返本 自號小性居士 聰性明銳 生知道術 以方言讀九經 訓導後生 至今學者宗之 又能屬文 而世無傳者 但今南地 或有聰所製碑銘 文字缺落不可讀 竟不知其何如也 

신문대왕()이 한여름 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은 오래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개고, 훈훈한 바람이 조금 서늘하니 비록 좋은 음식과 애절한 음악이 있다 해도 고상한 담론과 재미있는 해학으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대는 필시 색다른 이야기도 알고 있을 터이니 어디 한번 나를 위하여 말해주지 않겠는가?”

    宿      

설총이 말했다.
“제가 들은 것은 옛날 화왕(, 모란)이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철이 되자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빼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디고운 아름다운 꽃의 정령들이 바삐 달려와 화왕을 알현하고자 하며 오로지 뒤쳐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聰曰 唯 臣聞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於是 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唯恐不及

홀연히 한 미인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맵시있게 차려입고는 간들간들 오더니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저는 눈처럼 흰 물가의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薔薇)라고 합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들은지라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온대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忽有一佳人 朱顔玉齒 鮮粧靚服 伶俜而來 綽約而前曰 妾履雪白之沙汀 對鏡淸之海而沐春雨以去垢 快淸風而自適 其名曰薔薇 聞王之令德 期薦枕於香帷 王其容我乎

또한 한 장부가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와서 말하기를 ‘저는 서울 밖의 큰길가에 거처하여, 아래로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빛에 의지하고 있사온대, 이름은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비록 주위에서 받들어 올리는 것들이 넉넉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하고 의복이 장롱 속에 쌓여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약으로 기운을 돋우고 독한 침으로 병독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명주실과 삼실같은 귀한 것이 있다 해도 왕골과 띠풀 같은 천한 물건을 버리지 않아, 무릇 모든 군자들은 모자람에 대비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또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又有一丈夫 布衣韋帶 戴白持杖 龍鍾而步 傴僂而來曰 僕在京城之外 居大道之旁 下臨蒼茫之野景 上倚嵯峨之山色 其名曰白頭翁 竊謂左右供給雖足 膏梁以充腸 茶酒以淸神 巾衍儲藏 須有良藥以補氣 惡石以蠲毒 故曰 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 不識王亦有意乎

어떤 이가 ‘두 사람이 왔는데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시겠습니까?’하니, 화왕이 ‘장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아름다운 여인은 얻기가 어려운 것이니 이 일을 어찌 할꼬?’라고 말했습니다. 장부가 나아와서 말하기를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이치를 잘 알 것이라 생각하여 왔던 것인데,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릇 임금된 사람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이 때문에 맹가(, 맹자)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풍당()은 낭서(, 숙위관으로 낮은 관직임)에 머물러 백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였으니 전들 어찌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화왕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했답니다.”

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 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聰明識理義 故來焉耳 今則非也 凡爲君者 鮮不親近邪侫 疎遠正直 是以 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郞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奈何 花王曰 吾過矣 吾過矣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이 안색을 바로 하며 말했다.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있다. 글로 써서 왕 된 이들의 경계로 삼기 바란다.”
그리고는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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