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_ 추사 김정희
'나'라고 해도 좋고
'나'가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나가 아니라고 해도 나다.
나인가 아닌가를 두고 나라고 우길 일도 없다.
제석천에는 구슬이 많고도 많고,
누가 큰 마니주 속에 비친 모습을 잡아낼 수 있겠는가?
하하.. 과천 노인이 스스로 짓다.
謂是我亦可 謂非我亦可 是我亦我 非我亦我
是非之間 無以謂我 宰珠重重 誰能執相於大摩尼中
呵呵 果老自題
**
아래의 초상화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선생은 다른 종이에 짧은 시로 된 찬(讚)을 써서 이 그림 위에 오려 붙였다.
그 찬의 내용이 자뭇 심오하다.
몇 번을 읽고 다른 분들의 해석들을 참고해보아도 그 뜻이 충분히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재(宰)'가 제석천(帝釋天)을 의미한다는 한 스님(석현장)의 글을 보고 유추해보니, 의문의 대부분이 해소되었다.
제석천은 원래 사람이었으나 부처님을 영접하여 사바 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수호신이다.
제석천의 궁전 위에는 그가 사용하던 무기인 인다라망(因陀羅網)이 펼쳐져 있는데,
인다라망은 수많은 구슬로 이루어져 있고,
이 구슬들은 각자의 빛을 다른 구슬들에게 비추고, 빛을 받은 구슬들은 다시 자신의 빛을 모두에게 내보낸다.
그렇게 서로의 빛을 비추어 교류하고 융합하며 끝없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구슬들이 이루는 불가분의 연관 관계는
인간 세상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이 추사가 위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르침이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과거와 현재의 다른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존재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홀로 우뚝하니 생겨나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추사의 시는 이렇게 쉽게 해석된다.
나라는 존재가 엄연히 존재하니,
나를 나라고 하는 것도 맞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나를 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맞다.
그러니 나라고 해도 나가 맞고, 나가 아니라고 해도 나가 맞다.
그래서 나가 나인지 아닌지를 우길 필요가 없다.
제석천의 수많은 구슬들이 남의 빛을 받아
다들 제 것인처럼 제 나름으로 빛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라는 존재는 마니주 속에 비친 모습일 수도 있거늘,
누가 과연 그 진정한 모습을 잡아낼 수 있겠는가.
**
이 말은 붓다의 깨달음과 상통한다.
추사가 생전에 초의스님과 깊은 교류가 있었으니 붓다의 가르침을 체화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겨나니 저것이 생기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에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도 사라진다(此滅故彼滅)"
_ 잡아함경
이것은 붓다가 출가하여 수행을 통해 비로소 깨달은 연기법(緣起法) 즉 인연생기 혹은 인과론이다.
이 깨달음처럼 모든 존재는 인과의 관계에 기반해 있다. 서로 인연에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여 존재하고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 의존성, 상대성, 연관성을 피할 수 없으니, 어떤 것도 다른 존재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불변적으로,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 <제석천의 구슬>
"인다라망 (因陀羅網)은 제석천의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진 그물이다.
이 그물에는 수많은 보배 구슬이 달려 있고, 한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면서, 서로 다른 모든 구슬에 거듭 비춰지는 관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화엄교학에서는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추어 끝이 없는 것처럼 법계의 일체 현상도 끝없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연기한 것이어서 서로 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설명한다. 인다라망의 비유는 법계의 일체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융합하는 세계임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비유이다."
** <제석천(帝釋天)>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
자연에서 그 어느 것도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고,
태양은 자신을 위해 빛나지 않고,
꽃의 향기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 아닌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 다른 해석1
<추사가 자기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쓴 시 _ 양승국>
自題小照(자제소조)
是我亦我 (시아역아) 여기 있는 나도 나요
非我亦我 (비아역아) 그림 속의 나도 나다
是我亦可 (시아역가) 여기 있는 나도 좋고
非我亦可 (비아역가) 그림 속의 나도 좋다.
是非之間 (시비지간) 이 나와 저 나 사이
無以爲我 (무이위아) 진정한 나는 없네.
帝珠重重 (제주중중) 조화 구슬 겹겹이니
誰能執相於大摩尼中 (수능집상어대마니중) 그 뉘라 큰 마니 구슬 속에서 나의 실상을 잡아내리.
呵呵 (아아) 껄껄껄!
** 다른 해석2
이 사람을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내가 아니라 해도 나다.
나고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제석의 여의주가 주렁주렁한 데
누가 큰 마니주 앞에서 모습에 집착하는가.
하하. 과천 노인이 스스로 짓다.
'學而 > 토피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성원 변리사 칼럼]#185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는 일본인들 (4) | 2024.12.28 |
---|---|
카프카와 소녀와 인형 (1) | 2024.12.24 |
<필패지가(必敗之家)> 반드시 망하게 되는 집안 (0) | 2024.12.24 |
화왕계(花王戒) _ 설총(薛聰) (1) | 2024.12.22 |
길가메시 서사시 중 '길가메시의 죽음' (1) | 2024.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