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늑대혐오증을 가졌냐?
"넌 왜 늑대혐오증을 가졌냐?"
"넌 왜 우리 늑대만 보면 피하려고 하냐?"
양이 늑대를 혐오하는 것은,
늑대에게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존 본능인 동시에 생명체로서의 최소한의 지혜이니,
누구도 그 혐오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
이 말을 보니,
오래전 골프장 사우나에서 있었던 해프닝이 떠오른다.
사우나에서 샤워하는 중에 내 옆 칸에 얼핏 시퍼런 사람이 들어선다.
마치 푸른 괴물과 같아서, 다시 보니 온몸에 거의 빈틈없이 문신이 새져져 있는 것이다.
문신을 한 사람을 적잖이 보와왔지만, 정말이지 이 사람만큼 심하게 한 것은 보지 못했다.
목에서부터 넥타이를 맬 정도의 폭을 따라 가랑이까지의 좁은 영역만 비워두고,
상체와 하체의 앞뒤 전면에 빈틈없이 문신이 빽빽히 새겨져 있다.
그러니 온 몸이 시퍼렇게 보이는 것이다.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자꾸 향하며 의식하게 되니 불편해져서 대충 샤워를 끝내고 탕으로 들어갔다.
탕에서 그 뜨끈한 쾌감을 좀 느긋이 즐기려하는데, 그 사람이 탕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순간 탕속에 긴장감이 확 퍼졌다.
그가 탕에 이르기도 전에, 탕 속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순식간에 모두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동작이 둔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나갈 기회를 놓치고 홀로 남았다.
이제 나마저도 나가버리면 그는 그 넓은 탕에 혼자 있게 된다.
그 사람이 물속에 들어오니 물의 색깔마저 변하는 듯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심으로 심히 갈등했다.
나도 그냥 나가버릴까..
나까지도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기피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텐데..
어찌하지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데, 다행히(?) 그가 가만히 눈을 감고 주위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 틈에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
*
예전에 어린 시절 동네에서도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있다.
동네에 못말리는 왈패가 한 사람 있었는데,
워낙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니 사람들이 다들 그를 기피했다.
해거름에 동네 사람들이 마을 가게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도, 그 양반만 나타나면 다들 자리를 접고 피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왈패는 그걸 문제삼아 시비를 걸기도 했다.
"야~ 이 새끼들아~ 왜 나만 보면 문둥이 본 것처럼 다 피하냐?"
*
동네의 왈패를 기피하는 것은 그의 행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와 가까이 있다가는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가급적이면 그와 엮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문신을 과하게 한 사람을 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정서가 지극히 불편하다. 그 불편은 위험, 불안감 혹은 혐오감에서 온다.
그들이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에게 뭐라 하는 것은..
늑대가 양에게 "넌 왜 늑대혐오증을 가졌냐?"라고 따지는 것과 같다.
왈패나 문신을 피하는 것은 정서적 불편을 회피하려는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위험이나 낭패를 슬기롭게 예방하는 지혜로운 결단이기도 하다.
젊을 때는 본능에 저항하면서 미련하게 버티다가, 불필요한 다툼이나 행패에 휘말린 적이 적잖이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보니, 적절한 기피 본능과 지혜가 비교적 잘 작동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온갖 모임에 가능한한 모두 빠짐없이 참석하려 애썼지만,
최근에는 제법 많이 그리고 적절히 정리되었다.
만나기만 하면 정치적인 이슈 등으로 고문을 해대는 사람, 남 이야기 등으로 갈등 상황을 만들거나 전파하는 등으로 즐기는 사람 혹은 그런 사람이 많은 모임은 최우선의 기피 대상이다.
한때는 그들과 논쟁을 하며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보려 했던 적이 있지만,
그게 무망하고 헛된 것임을 이제 잘 안다.
*
친구들이나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까웠거나 가까운 혈육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필요 최소한의 만남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은 바뀌지 않고, 고쳐 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찰스 부코브스키(독일 출신 미국 작가, 1920~1994)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아.
단지 그들과 떨어져 있으면,
기분이 더 나아질 뿐이야."
**
한 개인은
그가 자주 어울리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그러니 비관적이거나, 야망이 없거나, 무질서한 친구들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로 인해 당신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_ 팀 페리스
** <관련 칼럼>
https://athenae.tistory.com/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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