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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78 <특허통수권⑭> 특허권자의 패착, '자기 공지'

by 변리사 허성원 2024. 9. 1.

<특허통수권⑭>    특허권자의 패착, '자기 공지'

 

'패착(敗着)'이란 바둑 용어가 있다. 자신이 놓은 돌이 패배 원인이 된 치명적인 악수(惡手)를 가리킨다. 그런 패착은 특허분쟁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특허권자가 자신의 실수나 오류로 인해 통한의 분루를 삼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그 상대방 즉 특허 공격을 받은 침해자에게는 축복이 될 것이다. 특허 분쟁의 결정적인 공격 혹은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는 '특허권자의 패착'은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장 흔히 일어나는 '자기 공지(公知)'에 대해 알아보자.

'지팡이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이 있다. 한쪽 끝이 굽어진 'J'형상 막대로 된 속빈 옥수수 뻥튀기 내에 아이스크림을 채워져 있다. 재미있는 형상과 식감으로 서울의 인사동 골목의 명물이 되었고, 그 인기에 편승한 유사 제품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원 개발자는 미리 특허를 등록받아 두었기에 모방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호기롭게 특허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스럽게도 모방자들을 응징하지 못했다. 그 특허가 무효로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특허공격을 받은 침해자들은 통상,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특허무효심판과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제기한다. 특허무효심판은 특허가 당초 특허요건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특허를 무효로 처분해달라는 요구이고, 권리범위확인심판은 특허권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아 침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절차이다. 무엇보다 특허무효심판에서 원 개발자의 특허가 무효로 되어 버리면, 모방자들에 대한 제재는 차치하고 그 이후 누구든지 그와 동일한 제품을 자유로이 만들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팡이 아이스크림 특허의 무효 사유는 '신규성 상실'이었다. 특허출원 전에 그 기술이 이미 공개된 기술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규성 상실의 증거는, 허무하게도 다름 아닌 그 제품이 죽 걸려 있는 특허권자 자신의 가게 사진이었다. 한 고객이 그 경험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그 날짜가 특허출원일보다 앞섰던 것이다. 명백한 '자기 공지'의 증거였다. 특허심판원은 그 사진에 기초하여 제조방법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그 특허를 무효라고 심결하였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국적 제약업체인 노바티스의 글리벡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서,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마법의 약이다. 이 글리벡이 백혈병 외에도 위암을 유발하는 위장관 기저 종양(GIST)에도 약효가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고, 노바티스는 기존의 글리벡 물질특허에 더하여, GIST 치료를 위한 용도 특허도 추가로 취득하였다. 글리벡의 물질특허는 만료된 후에도 GIST 용도 특허가 존속하고 있었기에, 국내의 여러 제약사들은 그 제네릭 약품을 제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약사들은 그 용도 특허에 대해 무효심판을 청구하였고, 대법원에까지 가는 치열한 공방 끝에 GIST 용도 특허는 결국 무효로 확정되었다.

GIST 용도 특허의 무효 사유는, 기가 막히게도 그 특허의 발명자가 발표한 논문에 기재된 내용 때문이었다. 그 논문에는 글리벡으로 ‘GIST에 대해 선택적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의 시험이 .. 막 시작되었고 초기 결과는 매우 흥미로워 보인다(very early results look exciting)’라는 기재가 있었다. 이에 기초하여 판결은 "이 사건 의약물질의 GIST 치료용도에 대한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며 발명의 진보성을 부정하였다.

지팡이 아이스크림 특허가 자신의 제품 사진으로 인해 무효로 되고, 글리벡 용도 특허가 그 발명자의 논문 내용으로 인해 무효로 되었으니, 특허권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할 것인가. 차라리 타인의 앞선 기술 때문에 특허를 받지 못하거나 무효로 되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쉽게 승복을 할 수 있고 마음이 좀 덜 상할지 모른다. 이러한 '자기 공지' 즉 자신의 기술 공개로 인한 특허 무효는,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특허 법리에 어두웠던 과거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런 '자기 공지'의 패착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반드시 제품 출시 혹은 기술 공개 전에 특허출원을 신속히 해두는 것이다. 대부분의 출원인들은 그렇게 잘 하고 있다. 그러나 특허요건을 제대로 몰라서 혹은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출원 전에 발명 혹은 제품이 공개되거나 실시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자기 공지'에 대해서는 특허법이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 등이 발명자나 그 승계인과 같은 권리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경우뿐만 아니라, 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경우에도, 1년 동안은 신규성이 상실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권리자에 의한 공개는 특허 출원을 하지 않고 제품을 출시한 경우가 일반적이겠지만, 논문 발표, 박람회 출품, 광고, 카탈로그 배포 등의 형태로도 발생한다. 권리자의 의사에 반한 공개는 직원 등 관계자의 부당한 유출, 기술 탈취 등이 원인이 된다. 이런 경우 신규성 상실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그 기술의 공개가 발생한 된 날로부터 1년 내에 특허출원을 하여야 하고, 필요한 경우 그 취지를 기재하고 증명하는 서류도 첨부하여야 한다.

신규성 상실 예외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조속히 출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출원 이전에, 다른 사람이 동일한 기술을 공개하거나 특허출원해버리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 먼저 기술을 공개하였다면 '자기 공지'가 아닌 '타인 공지'가 되어 그 발명은 제대로 신규성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특허법의 선출원주의로 인해 동일 기술에 대해서는 먼저 출원한 사람이 특허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기에, 자칫 타인의 특허출원에 의해 추월당할 위험도 있다.

망설임이나 미룸과 같은 머뭇거림은 대개의 패착을 낳는 원인이 된다. 특허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특허 강자가 되려면 이 말을 기억해두시라. "약자는 믿음을 가져야만 결단을 하고, 강자는 결단을 하고 나서 믿음을 구한다."

 

약자는  믿음을 가져야만 결정을 하고 강자는 결정을 하고 나서 믿음을 구한다. _ 카를 크라우스(오스트리아 작가)
망설임과 미룸은 패착의 부모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잠자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지팡이아이스크림_무효심결문.pdf 

지팡이아이스크림_권리심결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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