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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읽은책]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by 변리사 허성원 2024. 4. 25.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책 내용 중에서 '행복'에 관련하여 통찰을 주는 말들을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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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행복을 활동 그 자체로 본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잘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잘 산다고 느끼는 까닭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요약하자면 행복은 '잘하고 있다'는 지속이다.
예를 들어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로서의 한 시기를 무사히 인고해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펼치는 순간, 즉 애벌레 시절부터 꿈꿔온 자신의 온전한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면 나비는 지금뿐만 아니라 인고의 절정이었던 번데기로서의 시기까지 '잘해온 것'으로 입증된다. 다시 말해 나비로 완성되어 형태의 극상인 비상을 이뤄낸 바로 그 시점에서, 생명체로서의 모든 시기가 행복했던 것으로 입증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고난을 겪고 실패하고, 생명이 위협받았던 것과 상관없이 그는 원했던 형태를 마침내 이뤄냈으므로 그의 모든 활동과 실존은 '행복'이다.
행복이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은 이미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는데, 잘사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나 기능의 점진적 향상이 아니다. 잘산다는 말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성이야말로 인간 행복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_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중에서.

등산의 기쁨은 정상을 정복했을 때일 것이다. 그러나 최상의 기쁨은 험준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할수록 가슴이 설렌다. 인생에서 고난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라. 그보다 삭막할 수 없으리라.
우리는 젊은 날에 산을 올라야 한다. 젊음은 그 자체가 거대한 산이기도 하다. 그 산이 평지가 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올라랴 한다. 젊은 시절에 자신의 산을 오른 자는 늙어서 산의 풍성함을 맛보게 된다.
..
돈의 힘으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으로 산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성공은 행복을 부르는 데 지불되는 한 가지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성공을 위해 그밖에 다른 요소를 희생시킨다면 성공을 제값보다 더 비싸게 구입하는 셈이다.
누구의 도전이 가장 영광스러울까?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에게는 좌절이 없다. 그래서 영광도 없다. 반면에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난 사람에게는 영광이 주어진다. 그에게는 좌절을 떨치고 일어났다는 아문 상처가 새겨져 있으며, 절망의 끝이 어디쯤인지를 알고 있는 눈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치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

인내의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인내를 벗지 않는다면 수치를 당할 일도 없으리라.
신념을 그대의 양식으로 삼아라. 육신의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게 되리라. 신념을 잃은 인간처럼 불행한 인간은 없다.
실패하고 낙오하는 자들은 대게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신념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던 사람들이다.
_ "누구나 자신의 산에 오르기를 꿈꾼다"

행복은 희생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상실 없이는 기쁨이 없고, 절망 없이는 진리에 대한 감지도 없다. 고통과 쾌락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이다. 한쪽의 고통으로 다른 한쪽의 고통이 시작되고, 고통이 더해질수록 서로의 꼬리를 무는 힘도 강해진다.
삼과 죽음도 그와 같아서 삶에 더없이 집착하는 자에게 죽음은 더 빨리 찾아오고,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자에게 삶은 더욱 긴 시간을 펼쳐놓는다.
- "인생에서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서 고통받기 때문이며, 신을 안다고 말하는 자 중에 신을 사랑하는 자가 극히 적은 이유는 형싱과 진실의 거리가 비교도 안 될 만큼 멀기 때문이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여야 한다.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유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 깃발이 꽂혀 있는 종점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그 깃발을 손에 넣기 위해 어디산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실천하고 있다면, 그의 삶은 진정한 행복으 만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_ " 우리가 사소한 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서 고통받기 때문이다"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생활수칙이다. ..
머리속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이 수칙들을 더 쉽게 지킬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속담 중에 '더 좋은 일은 정말 좋아하는 일의 적'이라는 말이 있다.
_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

음식을 절제하면 몸이 건강해지듯 사람과의 만남을 자제하면 영혼이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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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말 그대로 공동의 가치관과 동질성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인간이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햇서는 그 집단의 정신 수준을 가장 어리석은 자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성은 타인의 높은 수준에 맞춰 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장 낮은 수준에 맞춰 나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된다. 공동체를 존속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저급한 인격을 고상한 인격으로 교육하기보다는 고상한 인격이 저급한 인격을 흉내내게 만드는 것이다.
고립과 고독은 아마도 이런 사회 구성에 질려버린 인간의 영혼이 살기 위해 창안한 고급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 교통 체증을 연상하게 한다. 도로는 가장 느린 차의 속도에 따르게 된다.)
_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고통이다. 사랑은 그 고통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메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자학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이 부끄럽다.
_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말리는 것일까?"

인생이 당신에게 축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면, 당신이 먼저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친해지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아파하고 싶지 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영혼이 바라는 나의 모습과 친해져 있어야 한다.
_ "아파하고 싶지 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간수는 채찍과 몽둥이를 들고 창살 밖에서 우리를 감시한다. 간수의 정체는 권태다.
권태는 언제나 우리 등 뒤에 서 있다. 간수의 채찍질에 우리 몸은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지루함, 무기력, 사라진 의욕으로 죄수는 석방에 대한 꿈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육체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목숨을 연명하려면 대기의 압력이 필수다. 육체에 부여되는 압력이 육체의 두발이 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
시간이 지구라면 성공에 대한 부담, 승리에 대한 압박,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대기의 압력이다. 중압감이 사라진 인생은 대기압이 사라진 지구에서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는 허망한 육신이다. 배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무게가 필요하듯 사람이 사람답게 살 죄의식, 고뇌, 가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본질이다.
만일 인간의 무지한 소원이 이루어져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고, 모두가 부유해지고, 늙지 않고, 사랑하게 되고, 병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인류의 모든 구성원은 행복의 절정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후에는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권태뿐이다.
인생은 여백만 남게 된다.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기대해도 떠오르는 것은 거대한 백지다. 하고 싶은 것일도 없고, 그리운 사람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축제가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희열도 없다. 만끽도 없다. 배부름도 없다. 포근함도 없다.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지겨울 뿐이다.
인류의 소원이 이루어진 곳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천국이다. ..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권태다.
그렇다면 권태로운 인간은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천국이 지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권태라는 간수가 내 등 뒤를 노려보는 감옥이 되는 것이다. 천국에서 권태라는 간수를 만난 인간은 자신이 죄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수답게 다툼과 분쟁을 일삼게 되고, 급기야는 죄의 끝, 즉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거룩한 천국의 토지를 피로 적시게 될 것이다.
나는 천국에서 권태를 깨달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느니 지금 사는 이곳에서 고난을 바도 싶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다. 가난과 굶ㅈ부림에 지쳐 먹고 살 궁리에 연연하고 싶다.
_ "권태는 언제나 우리 등 뒤에 서 있다"

내가 그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소유는 만족을 위함이 아니다. 소유는 의무의 시작이다. 내가 뭔가를 가졌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무가 주어졌다는 신호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나는 많은 의무로부터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인생에 대한 극복과 인생에 대한 굴복이다. 숨 쉬는 모든 존재에게 길은 이 두 가지뿐이다.

_ "소유는 만족이 아니라 의무의 시작이다."

강물은 바위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는 한,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조용히 흐른다. 인간과 동물의 수명은 강물과 같아서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살아있다는 의식조차 갖추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를 본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냥 무상한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인간이 내면에서, 혹은 정신적으로(영혼이라고 말해도 좋다) '의지'를 깨달을 때가 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외부 또는 내부의 어떤 대상과 충돌하여 파열음을 발생시켰을 때다. 이를 구속이라고 한다. 의지를 구속하는 어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의지는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의지를 가로막는 어떤 존재, 우리를 구속하는 어떤 상황, 현재 모습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욕망, 절대자를 행한 반항에서 '의지'를 확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길가의 돌부리에 발가락이 채여 고통이 밀려올 때면 돌부리에 채기 전까지 자신의 발에 이상이 없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장사도 이와 비슷하새 뜻대로 돈을 벌어 흥청망청할 때는 동전 몇 개는 잔돈푼으로 거지에게 적선도 하지만, 사업이 망하고 빚에 쪼들리는 처지가 되면 길가에 떨어진 동전 몇 닢이 하루를 살아가는 희망이 되는 것이다.

통과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을 사유하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더듬게 된다. 눈길조차 보내지 않던 길가의 돌멩이가 나의 엄지발가락을 저리게 만들고, 발을 절뚝거리게 만들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결국 약속에 늦게 만드는 특별한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당신의 오늘이 행복했다면 내일은 오늘의 행복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행복으로 오늘을 만족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재앙으로 당신의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다. 질병, 박해, 폭행, 실명,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의 오늘은 내일의 행복에 필수적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절망으로 가득 찬 당신의 하루가 홀로 도살자에게 끌려간 양 한 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_ "나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인간에게는 지식과 더불어 지성이 필요하다. 지식이 인식이라면 지성은 의지다. 인식은 객관화를 추구하고 의지는 주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식은 수동적이고 지성은 능동적이다.
지식이 알맹이라면 지성은 껍질에 비유할 수 있는데, 껍질 안에서 열매가 익어간다는 것은 농부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알고 있는 기초상식이다.

의지뿐인 인생은 야만이다. 그러나 의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인식은 인간이 가장 자랑할 만한 지적 활동이지만, 의지라는 토대에서 발생하지 않은 인식은 조건 없는 수용에 불과하다. 그 같은 인식에 '자아'가 깃들 리 없다.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고집불통으로 변하는 까닭은 강제로 수용된 인식보다 개인의 야만적인 의지가 생의 욕구에 더욱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인생은 옷감과 같아서 처음에는 그 위에 수 놓인 무늬를 보고 가격을 흥정하지만, 막상 입고 다니다 보면 내 몸에 맞는 옷인지가 더 중요하다. 내 몸에 맞지 않는 화려한 무늬의 겉옷은 비싼 값을 주고 산만큼 쉽게 내다 버리지는 못하는 대신 서랍에 놓고 보관만 할 뿐이다. 마치 이 시대의 훌륭한 교육의 수혜자들이 그들 자신의 생애에 별다른 발전돠 만족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과 다.

_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장이 아닌 '개조'에 있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봐여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덜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_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어떤 남자가 아침마다 옷장에서 자신의 군복을 꺼내놓고 자랑스럽게 훈장을 쓰다듬었다. '난 용감한 사아니다'라고 혼자 만족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군복에 달려있는 훈장이 다른 사람의 가슴에도 달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자신의 훈장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훈장은 용기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어떤 특수한 기능에 대한 인증임을 알게 된 것이다.

_ 단순하고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머나먼 항해를 떠난 배는 바다에서 풍파를 만난다. 풍파 없이 배가 항구에 닿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련은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절망에서 생의 기쁨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처럼 지루한 것이 또 있을까.

번민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번민은 욕심에서 태어난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욕심보다 강한 무기가 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욕심보다 약해졌을 때 우리는 정의의 길에서 멀어진다. 아니, 정의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청춘은 내일을 준비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나그네의 길임을 그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그대의 곤한 육신을 편히 쉬게 해줄 수 있는 안식의 땅이 없음을 그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안과 안식은 그대에게서 삶의 의지를 빼앗는 적이다. 그대의 삶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그대의 삶은 사육사의 의지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의 삶이 거대한 우리가 됨을 명심하라.

_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아픔을 모르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배와 좌절 없이 행복은 우리를 방문하지 않는다. 시련의 눈물 없이 웃음에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아픔을 통해 배우지 않은 모든 것이 거짓이다. 적어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러하다. 그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이 아픔이다.

너는 이제 아픔으로 인하여 남보다 성숙해지리라. 나무는 빗물을 마시며 자라며, 인간은 자기가 흘린 눈물로 갈증을 해소한다. 후회하지 말고 눈물을 거둬라. 네가 스스로 진실을 선택하게 될 때까지 씨앗을 뿌리고 삶의 밭을 일궈라.

아름다움은 상처 입은 가슴만이 발견할 수 있다. 그 벅찬 기쁨을 위해 아름다움은 저렇듯 신비한 모습으로 나의 이마 위를 떠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동요를 느낄 때가 있다. 항구를 떠난 배는 필연적으로 파도를 거슬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남은 동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의심이 가지 않는다면 신앙이 아니다.

_ 그다지 불행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가난은 원석과도 같다. 이 돌 속에 어떤 보석이 숨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인산은 더 이상 원석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 돌이 무거운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멀리 던져버릴 기회만 찾고 있다. 이 돌을 깍고 다듬어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볼 생각은 하지 않거 아무런 수고도 없이 타인이 깎아놓은 수고를 빼앗는 것만 계획하고 있다.

_ 승리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외톨이가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군주와 같다. 그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의 성을 지켜내고, 독립된 지위를 누리고, 그에게 명령하는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삶은 스스로 판단한다.

군주가 법을 정하고 백성에게 공표하듯 그는 자신에 주어진 시간 속에서 절대 권력을 쟁취한다. 그에게 용기와 자신감, 지혜를 주는 원천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에게는 세상을  이해하고 조립하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_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군주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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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책]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231022 구입)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1788년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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