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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25 <아테나이16> 오디세우스, 이름은 위험하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3. 8. 13.

<아테나이16> 오디세우스, 이름은 위험하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중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롭스를 만났을 때가 가장 위협적이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트로이를 떠나 몇 나라를 거치며 폭풍에 표류를 거듭하고 때로는 전투를 벌이기도 하며 키클롭스 족의 나라에 이른다. 키클롭스는 문명의 질서도 없고 자신들의 힘을 믿고서 제우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무례한 종족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호기심에는 항상 위험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오디세우스는 용감한 부하들과 함께 향기로운 포도주를 가지고, 키클롭스 족의 우두머리이자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의 동굴로 찾아갔다. 오디세우스는 정중히 인사를 하였지만, 그는 다짜고짜 부하 두 명을 패대기쳐서 잡아먹어 버렸고, 거대한 바위로 동굴 입구를 막아 달아나지도 못하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또 두 명을 먹어치우고는 바위로 막아놓고 나가 버렸다. 저녁에 폴리페모스가 돌아오자 오디세우스는 포도주를 대접하였다. 기분이 좋아진 폴리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Nobody 혹은 Nothing)라고 일러준다.

포도주를 마신 폴리페모스가 곯아떨어졌을 때, 오디세우스 일행은 준비해둔 날카로운 막대기를 불에 달구어 그의 외눈을 찔렀다. 그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하자 주변의 키클롭스들이 동굴 앞에 모여들어 무슨 일인지 물었다. 폴리페모스는 동굴 안에서 소리쳤다. '아무도 아니(Nobody)가 내 눈을 찔렀어!' 그 말은 곧 '아무도 나를 찌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료들은 어쩌다 혼자서 다쳤나보다 생각하고 빨리 낫기를 기원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할 수 없이 폴리페모스는 스스로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기 위해, 동굴을 막은 바위를 치우고 동굴 속의 양떼를 내보내면서 입구를 지켰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양들을 서로 묶은 후 그 배 밑에 매달려 다들 무사히 탈출한다.

구사일생으로 배에 올라탄 오디세우스는, 그냥 조용히 떠나지 않고, 폴리페모스를 향해 소리쳐 조롱하였다. "키클롭스여, 죽을 운명인 인간들 중에서 누가 그대의 눈을 멀게 했는지 묻거든 이타케에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멸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하라!" 화가 난 키클롭스는 큰 산봉우리를 떼어 배를 향해 던지고 바위도 집어 던졌다. 배가 위태로워져 부하들이 말렸지만 오디세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멀리 벗어나자 폴리페모스는 포세이돈에게 기도를 올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거나, 만일 돌아갈 운명이라면 온갖 고초를 겪으며 비참하게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로 인해 포세이돈의 집요한 방해를 받았으니, 오디세우스는 그 긴 고난의 귀향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라고 한 것은 무척 영리한 임기응변이었다. 그 덕분에 폴리페모스는 동료 키클롭스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하자마자 폴리페모스를 조롱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출신을 소상히 밝혔다. 굳이 왜 그랬을까? 아마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말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 부정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에게는 부끄러운 굴욕이며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래서 위기를 벗어나자마자 이내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이름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그건 필경 오만 때문이다. 절묘한 위기 탈출이라는 작은 성취가 가져다준 부작용이다. 그 성취는 자신의 기특한 재치와 행운에 대한 자부심을 일으키고, 자부심은 자만이 되며, 자만은 곧 오만으로 드러난다. 온갖 시련을 극복한 탁월한 지혜를 가진 영웅도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에 불과하였다. 인간이란 원래 자기 오만의 희생자가 되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그런 오만의 덫에 걸려, 크고 작은 성공을 이룬 많은 인간, 기업, 국가들이 가차 없이 나락으로 추락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에서 무수히 보고 겪어왔다.

오만의 진정한 실체는 이름에 있다. 사람에게 이름이란 건 존재의 이유이며 그 증명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기억되기를 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에서도 이름이 존재의 상징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자신의 이름이 남에게 불리는 것은 최소한의 인정의 욕구이며 동시에 심리적인 생존 본능이다. 그 본능의 과잉 발현을 우리는 오만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름은 위험한 것이다. 이름을 내세우거나 불리우고 싶은 마음이 강렬히 일어난다면, 그건 일생의 위기가 가까이 왔다는 경보일 수 있다. 그럴 때는 공자의 가르침을 기억하시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는가?"

 
 

The central group at&nbsp; Sperlonga , with the&nbsp; Blinding of&nbsp;Polyphemus ; cast reconstruction of the group, with at the right the original figure of the "wineskin-bearer" seen in front of the cast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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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_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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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_ 論語 學而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_ 論語 學而篇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