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24 특허의 적극적 힘과 소극적 힘, 뭐가 더 중한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3. 8. 13.

특허의 적극적 힘과 소극적 힘, 뭐가 더 중한가

 

통영항에 가면 거북선이 있다. 관광용 전시물이라 항해를 떠나거나 왜적을 만나 싸울 일이 없다. 그러니 그 소재와 관리가 미치는 한 그 정박 상태로 안전하게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 안전한 팔자는 거북선이 원하는 것일까? 거북선이란 원래 전투함이다. 거센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면서 적과 싸워 그들을 물리치는 것이 본래의 운명이다. 그런데 이제는 구경꺼리가 되어 움직이지도 싸우지도 못하니, 왜적이든 누구든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주지 못한다. 안전한 거북선은 종이호랑이다.

"특허 그거 아무 소용없어요. 정작 필요할 때는 아무 힘을 못 쓰던데요." 어느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은 분이 내 명함을 보고는 자신의 쓰린 경험을 말한다. 특허 침해를 이유로 특허소송을 벌였는데, 상대가 특허에 대해 무효심판을 걸어왔고 그 심판에서 특허가 무효로 되어버린 것이다. 소득 없이 애꿎은 특허만 허무하게 날려버린 셈이다. "특허라는 게 그렇게 허약해서야 어디 기술보호가 제대로 되겠습니까?"라며 분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취약한 특허는 동물원 우리에 갇혀 사냥능력이 거세된 사자와 같다.

특허는 강해야 한다. 기업의 전쟁 무기이니 그 미덕은 강함에 있다. 그래서 '강한 특허'는 특허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다. 그런데 특허의 강함은 입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다소 다르게 이해되기도 한다. 통상의 상식으로는 특허 침해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힘 즉 시장에서의 기술 지배력 혹은 공격력을 가리킨다. 특허의 권리범위가 충분히 넓고 기술적으로도 그 기술을 회피하기가 쉽지 않으면서, 침해를 적발하기도 용이하다면, 그 특허는 분명 강하다. 이는 특허의 '적극적 힘'이다.

그런데 이 '적극적 힘'의 이면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소극적 힘'이 존재한다. '소극적 힘'은 특허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타인의 공격에 견디는 힘이다. 바로 맷집이다. 특허 공격이 있으면 공격을 당한 쪽도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가능한 모든 방어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우선은 특허권자의 침해 주장이 과연 옳은지를 확인하고, 이어서 그 특허에 하자가 없는지를 확인한다. 특허의 근원적 하자를 찾아내면 특허 자체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으니, 침해자의 입장에서 매우 적극적이고도 효과적인 대응이다. 실제로 매년 수백 건의 특허가 무효로 되고 있다. 이들은 소극적 힘이 약한 특허들인 것이다.

'소극적 힘' 즉 맷집이 강하면 그 특허는 안전하다. 이런 '안전한 특허'야 말로 강한 특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허청 관계자들이 주로 그렇다. 특허청은 특허출원을 심사하여 등록 여부를 결정하기에, 특허가 무효 공격에 쉽게 쓰러진다면 자신들의 심사 부실을 반증하는 것이니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한 무효 공격에 안전한 특허를 추구하는 심사 실무를 운영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 힘과 소극적 힘은 특허에 있어 모두 중요하다. 공격력 즉 기술지배력이 강하면서도, 든든한 방어력으로 그 안전도 보장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도 무효 공격에 쉽게 무력화되는 특허도 허무하지만, 통영항의 거북선처럼 어떤 외부 공격에도 안전하지만 적을 제압할 힘이 형편없는 특허도 장식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격력만 강하거나 방어력만 강한 특허는 둘 다 실전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발끝으로 서는 자 서있지 못하고, 다리 벌려 걷는 자 나아가지 못하는 것(企者不立 跨者不行 _ 도덕경)'과 같은 이치다. 적극적 힘과 소극적 힘이 모두 완비되어야만 실질적으로 강한 특허가 된다.

하지만 적극적 힘과 소극적 힘은 안타깝게도 대체로 양립하기 힘들다. 특허의 적극적 힘은 그 권리범위가 충분히 넓을 때 강하게 발휘된다. 그물이 충분히 크고 튼튼해야만 큰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권리범위가 넓을수록 그 특허는 무효의 위험도 커진다. 땅이 넓으면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이웃도 늘어나듯이, 특허도 그 기술의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위협하는 주변 기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강한 공격력은 안전에 취약하고, 강력한 안전은 공격력을 약화시키는 셈이다. ~ 그러면, 부득이 '공격력''안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어야 할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덕의 도둑이다'(鄕原德之賊也 _ 논어). 좋은 사람에겐 좋고 나쁜 사람에게 나빠야만 그 덕이 올바로 실현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거북선이든 특허든, 우군에겐 우호적이되 적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아야 한다. 그것이 그들 본연의 덕이다. 전투력이 거세된 안전한 거북선 혹은 특허는 구경꺼리로밖에 존재할 의미가 없다. 전쟁터에 나가 적을 공포로 몰아세우며 싸우다 차라리 장렬히 산화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공격력이 확보되어야 하고, 그 연후에 안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 그럼, 특허의 적극적 힘과 소극적 힘, 과연 뭐가 더 중한가.

 

** (뱀발)
이 칼럼은 수년 전 한 특허청장의 칼럼을 보고 써놨던 것이다.
그 특허청장은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심사 품질을 높여 특허의 무효가능성을 낮추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 특허청장의 인식이 심히 우려되었다. 그 말은 졸장부 특허를 양산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집안의 가장이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키우면, 그 집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 바깥에 나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다. 특허도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안전만을 생각한 엄격한 심사는 수줍음 많은 아이와 같은 쫄장부 특허를 만드는 짓이다.

무엇보다 특허 심사를 너무 까다로우면 우수한 발명이 심사과정에서 특허를 받지 못하고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려면 출원인은 부득이 권리범위를 충분히 좁혀야 한다. 심하게 표현하면 심사 절차라는 게 특허를 쥐어짜서 쫄장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권리범위가 좁아지면 그 발명의 주변에서 모방품이 늘어나며 결국 그 특허는 해당 발명의 보호에 실패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특허 심사를 허술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무턱대고 무효가능성이 낮은 특허 즉 소극적 힘이 강한 특허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심사과정에 이 발명이 제대로 권리 보호받을 수 있는지의 관점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특허의 소극적 힘에 집착하기에 앞서 적극적 힘의 중요성을 제대로 잘 인식하고 심사에 임하는 것이 심사 품질을 제대로 지키는 태도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요한 것은 특허 심사의 균형감각이라 할 것이다. 

통영항의 거북선

 

**

발끝으로 서는 자 서있지 못하고
다리 벌려 걷는 자 걷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자 밝게 보이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는 자 돋보이지 못하고
스스로 내세우는 자 공을 잃게 되고
스스로 뽐내는 자 앞서지 못한다.

이들을 도에 있어서는 먹다 남은 음식이요 군더더기 짓이라 한다.
모두 그런 것을 싫어하니 도를 가진 자라면 그러하지 않는다.

企者不立(기자불립) 跨者不行(과자불행)
自見者不明(자현자불명) 自是者不彰(자시자불창)
自伐者無功(자벌자부공) 自矜者不長(자긍자불장)
其在道也(기재도야) 曰餘食贅行(왈여식췌행)
物或惡之(물혹악지) 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 
_ 도덕경 제24장

**
* 공자가 말했다. "향원(鄕原)은 덕의 도둑이다."
: "也." _ 論語 陽貨篇 13

향원(鄕原)은 '온 고을 사람들에게서 두루 칭송을 받는 두루뭉술한 사람'을 가리킨다. 선악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하였다.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착한 사람은 좋아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_ 論語 子路篇 24

**
2016년 당시 특허청장의 칼럼 내용

**

이 대표는 "한국은 대기업이 강해 기업을 시작하는 데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소송의 예측성이 떨어진다. 불확실성이 크다. 판사는 2년 마다 바뀐다. 심리 진행 중에도 바뀐다. 소송의 지연이 자주 발생한다. 소송 중에도 특허 보정을 계속하고, 무효 소송에서 유효하다는 판결이 내려진 특허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나라다. 다른 나라는 무효소송에서 한 번 살아난 특허는 다시 무효가 되는 일이 없다. 소승과정에서 특허의 절반 이상이 무효가 된다."며, 대한민국 특허시스템의 문제를 나열했다.

 

[취재파일] "대한민국은 특허침해 소송이 어려운 나라"…'원정 소송' 가는 이유는?

이런 무적 특허군단 서울반도체가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2022년 24만 건의 특허를 출원해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대 특허 강

news.sbs.co.kr

 

**
<특허 무효되면 등록료를 반환한다?> _ 171102 페이스북 포스팅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이런 정책을 내놓은 특허청장이 있다.
 
심사의 무결성을 추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데,
심사관이 '무효로 되지 않는 특허'에 집착하면, 진보성에 대한 평가기준은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거절율은 점점 높아지게 되고, 특허의 권리범위는 좁아지게 된다.
높은 거절율은 발명의 보호라는 특허제도의 기본적 취지에 반하고, 좁은 권리범위는 허약한 종이호랑이 특허로 귀결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특허심사가 과도히 까다로워 발명자와 변리사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했는데, 그 추세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말이다.
어쩌다 특허청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 모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는지.. 참 기가 찬다.
(** 이 '특허등록료 과거분 반납' 정책은 시행된 바가 없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2865656?sid=100

 

특허 무효되면 등록료 전액 돌려준다

[서울신문] 특허청이 등록 결정한 특허가 무효가 되면 납부한 등록료 전액을 반환해 주는 등 책임행정을 강화한다.성윤모 특허청장은 1일 이 같은 내용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식재산 정책

n.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