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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

[3박4일 입원기] _ 220728~220731

by 변리사 허성원 2022. 7. 31.

[입원기] #1


3박4일 동안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오늘 퇴원한다.
퇴원 지시를 기다리면서.. 입원기를 써본다.


삶이 정말 죽도록 힘들다 여겨지면..
시장을 가보라는 사람도 있고, 화장터에 가보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병으로 한 번 입원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왕 입원할 거면 이런 큰 병원에 여러 환자가 함께 있는 방이면 더 좋다.
이번에 내가 입원한 방은 5인실이다.
입원 수속할 때 예약 담당자가 뭐라 질문을 했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예라고 대답했더니.. 이런 여러 명이 들어가는 큰 방으로 배정되었다. 여기서 간병인까지 10명이 생활해야 한다.

들어와보니 나의 대충대충이 덜컹 후회된다.
아내가 간병을 위해 여기 함께 지내야 하는데 보통 미안스럽지 않다.

하룻밤 지내보니 다양한 남자 환자들에게서 나는 소음들이 보통 고역이 아니다.
제각기 나름의 신음소리, 처치소리, 기계소리도 괴롭지만, 전화 통화와 티비 소음에다 간병인이 코골며 자는 소리까지..
옆 자리 환자는 아들과 한참을 다툰다. 제발 퇴원하자고..


부득이 며칠 참고 지내보니..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박한 삶을 지켜보면서 나름 깨닫는 바도 적지 않다.
아내도 동의한다.


특히.. 그저 그렇고 그렇던 평소의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귀한 것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일상의 행복을 가르치는 탈무드의 이야기 하나 옮겨왔다.

~~~
유태인의 한 마을에서 가난한 남자가 랍비를 찿아와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랍비님!
저의 집은 비좁은 데다가 아이들은 많고 거기다 악처 마누라까지 있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제게 좋은 해결책을 알려주십시요

남자의 불평을 들은 랍비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집에 염소를 기르고 있소?
예. 두 마리 기르고 있습죠.
그렇다면 오늘부터 그 염소들을 방안에 들여놓고 함께 지내십시요
랍비의 말에 그 남자는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찿아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랍비님!
이젠 정말 견딜수가 없습니다. 못된 여편네에 두 마리 염소까지 한 방에 있으니, 어찌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랍비가 이렇게 다시 물었다.
집에 닭도 기르고 있소?
예 열 마리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닭도 방안으로 모두 들여다 놓으시오.
남자는 다시 돌아갔으나, 다음날 동도 트기 전에 일찍 찿아와 이렇게 하소연 했다.

랍비님 !
이젠 정말 미치고 말 지경입니다
악처 마누라는 둘째 치고라도 두 마리 염소와 열 마리 닭이 방 안에서 온통 난장판이고 거기다 배설물까지 가득해서 정말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렇게도 못 견디겠단 말이오?
아이고 랍비님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그렇다면 이제 염소와 닭을 다시 밖으로 내 보내고 내일 다시 나를 찿아오시오.

이튿날 그남자가 랍비를 찿아왔을 때, 그는 마치 천국에서 내려오는 천사같은 표정으로 기쁘게 말하는 것이였다.

랍비님!
염소와 닭이 밖으로 나가니 이제 저의 집은 천국이 되었습니다.

 

[입원기] #2

나는 어릴 때부터 오른쪽 귀에 중이염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 겨우 걸을 수 있을 때 걸렸다고 한다. 아마 감기 후유증이었겠지.
그 옛날 당시 시골 상황에서 무슨 다부진 치료가 가능했겠나. 진물이 나면 동네 약국에서 마이신이나 한 알 사먹고 넘기곤 했었다.
자라면서 동네나 학교에서 보니 나같이 귀에 진물이 나는 친구들이 드물지 않았다. 그시절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이 병을 두고 어머니는 평생 내게 죄스러워 하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풀지못한 한으로 여기셨다.
나 역시도 이 병이 부끄러웠다. 내 평생의 핸디캡이었고 열등감이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커서 대학, 군대, 직장, 결혼 생활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다만 오른쪽에서 오는 소리를 잘 못들으니 누군가가 내 오른쪽에 앉으면 다소 불편했을 뿐이다.

어쨌든 이걸 치료해야지 하는 강박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오기도 했고.. 그보다 사실 속으로는 겁이 많이 났다. 귀는 뇌와 가까운데.. 그것을 건드린다는 건 엄청 무서운 일이지.. 그 두려움이 이 병을 지금까지 미련하게 끌고 온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명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한번은 어지럼증이 생겨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더니.. 의사가 귀 수술부터 하고 보잔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마음 먹으라는 말씀에.. 못이기는 척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수술 예약을 하고 입원 당일까지 망설여졌지만.. 독한 마음 먹고 수술을 받았다.
발병하고나서 근 60년이 지나고서야 제대로 치료를 받은 셈이다.

청력은 중요한 정보 입력의 통로다. 청력의 손실은 정보 입력의 감소를 초래한다.
얼마 전 읽은 '심리조작의 비밀'에서도
인간의 두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보의 입력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청력감퇴나 이명은 치매나 사고력 저하의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수술을 하고 보니.. 모든 병이 그렇지만 좀더 일찍 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말을 듣는다.
청력을 제대로 되살리려면.. 동일한 수술을 한번 더해야 할 거라고 하니.. 미련하게 오래 끌어온 게 후회된다.

어쨌든 이번 수술은.. 내게 맡겨진 오랜 숙제들을 푸는 일이다. 우선은 어머니의 묵은 한을 풀어드리는 숙제다. 그 다음은 내 핸디캡 내 열등감을 떨쳐내는 숙제다. 어머니~ 이제 제 귀는 깔끔히 잊어버리고 편히 쉬시소~ 그리고 이 못난 아들도 그 바보스런 핸디캡을 이제 훌훌 벗어던지겠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글 '모든 것이 기적'에 이런 말이 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이다."

[입원기] #3

(**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 상쾌한 마음으로 입원기를 더 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런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어보니.. 환자들 모습 역시 정말 너무도 다양하다.
톨스토이의 말을 패러디하여 다시 써본다.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아픈 사람들은 아픈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한 방에 있는 5명의 환자는 모두 다른 병으로 들어와있다.
오른쪽에 누워있는 85세의 노인은 설암으로 혀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밤낮 없이 끙끙 앓으시고, 틈만 나면 퇴원하자고 불확실한 말로 아들을 조른다.
건너편의 72세 농부는 기관지 관련 수술을 받았는듯 한데.. 이 양반도 밤낮없이 가래를 배출해야 한다. 때론 기계를 쓰기도 한다. 수시로 간호사를 불러 이런저런 일을 시킨다. 나머지 두 양반은 나와 비슷한 60대인데 무척 노인 스럽다. 한 사람은 코 수술을 한 것 것 같고, 다른 한 사람은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조용하다.

첫날 딱 들어서는 순간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왔어다. 중증 노인 환자가 두 분이나 있고, 소리가 시끄럽고, 하나 남은 내 침대 자리는 너무 좁다. 나는 어찌 견딘다 하더라도 이 남자들 사이에서 며칠 함께 지내야 할 아내가 걱정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나이롱 환자다. 온몸이 자유롭고, 통증도 거의 없다. 간호사를 부를 일도 없고 그저 조용히 지낸다.

가장 힘든 것은 그들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첫날은 그런 속에서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그들을 탓하고 원망할 수 있겠는가. 신음이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내부로부터 튀어나오는 그들의 통제불가한 언어인 것을.

명(明)나라의 학자인 여곤은 그의 저서 '신음어(呻吟語)'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음이란 병자의 앓는 소리다. 신음어란 병이 들었을 때의 아파하는 말이다. 병중의 아픔은 병자만이 알고 남은 몰라준다. 그 아픔은 병들었을 때에만 느끼고 병이 나으면 곧 잊어버린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약질(弱質)이어서 병에 잘 걸렸다. 앓고 있을 때 앓는 소리를 하게 되면, 그 괴로움을 기록하여 후회하고 조심하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병에 걸리고, 또 그 괴로움을 겪는다.”

여하튼 늙으면 누구나 아프다. 아플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실손보험 등을 들어둬야 하고, 무엇보다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두어야 한다. 병실에서 보면 가족관계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인다.

[입원기] #4

병원 생활은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통제사회다.
환자는 그곳의 질서를 엄격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병원은 나름의 원칙을 정해놓고 여러 절차를 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따르게 한다.

식사, 주사, 투약, 혈압측정 등은 환자의 상황을 시간을 정해놓고 엄격히 시행한다.

예를 들어 금식이 끝나는 11시반에 밥을 먹으라고 하면서, 식사는 6시에 가져다준다. 밤 11시와 새벽 5시에는 꼭 혈압측정을 한다.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겨우 잠이 막들려면 깨워서 혈압측정하고, 다시 사투를 벌여 겨우 잠이 들면 또 깨운다.

그들의 원칙주의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나같이 적당히 멀쩡한 환자는 그저 괴로울 따름이다.

원칙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한다.

~~
옛날에 한소후(韓昭侯)가 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전관(典冠, 모자 담당)이 군주가 추워하는 것을 보고 군주에게 옷을 덮어 주었다.
한소후가 잠에서 깨어나 기뻐하며 좌우에 물어 말했다.
"누가 옷을 덮어 주었느냐?"
좌우에서 대답했다.
"전관입니다."
그러자 한소후는 전관(典冠, 모자 담당)과 전의(典衣, 옷 담당) 모두를 벌하였다.
전의의 죄는 자신의 일을 놓친 것이고
전관의 죄는 그 직분을 월권한 것이다.
추운 것을 싫어하지 않음이 아니라
직분을 침범한 폐해가 추위보다 심대하기 때문이다.
_ 한비자 이병(二柄)

~~
페르시아 대제국을 완성한 다리우스 황제도 지나친 원칙주의자였다. 다리우스가 스키타이 원정길에 막 출발하려 할 때 측근 신하가 다리우스에게 간청을 드렸다.
“폐하, 이번 원정에 신의 세 아들이 한꺼번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한 명 만이라도 빼주실 수 없겠습니까.”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세 아들 모두 남게 하겠소”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신하는 세 아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세 아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모두 목이 잘린 시신이었다.
다리우스는 평소 국가 통합과 솔선수범을 자신의 생명처럼 중히 여겼다. 세 아들의 참수는 자신의 솔선수범을 어겼다는 데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_ 헤로도토스의 역사

 

[입원기] #5

중이염 수술은 대학병원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수술이다.
수술 시간도 길지 않고, 회복도 빠르며, 환자의 투병도 까다롭지 않다.

산책을 나와보면 정말 다양한 환자들을 본다. 산책 모습에서 환자에게도 계급이 있음을 알게 된다.

움직일 수 없어 누워있는 환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걸어다니는 환자들의 등급은 휴대하고 다니는 수액제만으로도 상당 부분 가늠할 수 있다.

롤러폴대(롤러로 밀고 다니는 수액제 걸이)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나같이 수액제가 간단히 하나 정도만 매달려 있으면 급수가 낮다. 서너 개쯤 달고 거기다 때로는 수변통까지 얹혀 있으면 고수다. 어떤 이는 대용량의 뿌연 수액제를 달고 있다. 그것은 식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의 영양제라고 한다. 

어떤 행태든 저 모습들은 모두 강렬한 저항이다. 질병이나 죽음에 대해 결코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겠다는 결의의 시위다. 그걸 생명의 저항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사실 신은 인간의 수명을 미리 설정해두고 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염색체의 양 끝부분에 텔로미어 (Telomere)란 것을 붙여두었다. 2000개의 염기쌍이 반복적으로 배열되어있는데, 1회 세포분열 시마다 DNA가 복제될 때 텔로미어의 16개 염기쌍이 소실된다. 그러니까 125회 세포분열이 있으면 텔로미어는 완전히 소멸된다. 세포의 수명이 이미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포 분열이 멈추는 것을 '계획된 세포 죽음'(Programmed cell Death) 즉 아폽토시스(Apoptosis)라 하며, 이에 의해 인간은 노화하고, 노화가 진전되면 인간의 수명은 끝나게 된다.

수액제를 달고 산책하는 모습은 신의 안배에 대한 무모한 저항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생명의 유한함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존엄한 가치를 확인하고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본다면, 그건 신들도 누리지 못하는 지극히 아름다운 노력의 장면이다.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하고 있어. 인간에게는 죽음이 있거든. 우리는 늘 마지막 순간을 사는 거야. 그래서 모든 게 더욱 아름다운거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지금 이 순간의 네가 가장 사랑스러워 우리에게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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