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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여행을 하던 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 중 네 번째 별에서 만난 사람은 사업가다. 그는 너무도 바쁘게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 어린 왕자가 무엇을 계산하는 지 묻자, 그가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화가 이어진다.
"게으른 사람들을 공상에 빠지게 하는 그 황금색의 작은 것을 말이야. 하지만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 공상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 아! 별을 말씀하시는군요?
"맞아, 바로 그거야. 별."
- 근데, 오억 개의 별로 뭘 하는데요?
"아무것도 안해. 그냥 가지고 있을 뿐이야."
- 그렇다면 별을 가지는 게 뭐에 소용이 되는데요?
"부자가 되는 데 소용이 되지."
- 그럼 부자가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다른 별을 사는 데 소용이 되지."
- 그럼 아저씨는 별들로 뭘 하나요?
"나는 별들을 관리하지. 별들을 세고 또 세는 거야."
"어려운 일이란다. 하지만 나는 진지한 사람이거든."
- 만약 제가 목도리를 가지고 있다면, 저는 그 목도리를 목에 두르거나 갖고 다닐 수 있어요. 만약 제가 꽃을 소유하고 있다면 꽃을 따서 가지고 다닐 수 있죠. 하지만 아저씨는 별을 딸 수 없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별들을 은행에 넣어둘 수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별들의 개수를 작은 종이에 써서 그 종이를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가 놓는 거야."
- 그게 다예요?
"그걸로 충분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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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버지는 계산에 푹 빠져 계신다.
어떤 땐 때를 거르기도 하고 잠도 줄여가며 쉼없이 계산하신다.
한 동안 주식투자를 좀 하셨는데, 1년 여 전부터 증권회사가 제공하는 매수, 매도, 입출금 내역을 믿지 못하신다. 변경된 담당자가 좀 불친절한 듯하자 믿음을 놓으신 거다.
그러자 증권회사에서 받아온 자료를 가지고 온갖 방식으로 계산하고 또 계산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다가 여의도의 증권회사 본사에까지 모시고 가서 확인해보기도 했다.
혼자 계산하시다 뭔가 꼬투리가 보이면, 내게 전화를 하셔서 당장 달려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웬간하면 달려가야 한다. 어제도 서울에서 내려와 가서 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가서 뵙고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못이기는 척 다니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계산은 당연히 아버지가 틀리셨다. 그걸 지적해 드리면 그 자리에서는 알아듣는 듯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또 뭔가를 찾아 내미신다.
치매가 오신 거다.
그나마 94세 연세의 치매 치고는 매우 점잖은 증상이다.
그 정도라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나는 그냥 좀 더 계산을 잘 해보시라고 은근히 채근한다. 그런 일마저도 하지 않으면 노화가 더 빨라질 것 같아서다.
아버지는 계산한 내역을 두루마리처럼 감거나 책처럼 포개어 고무줄이나 끈으로 단단히 묶어 궤짝에 차곡차곡 보관하고 자물쇠로 채워두신다. 내가 손이라도 대면 행여 흐트릴 새라 귀중한 거라고 하시며 펄쩍 뛰시지만, 무슨 내용을 묶어두었는지도 금세 잊어버리신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왕자'의 사업가와 꼭 같다.
"별들의 개수를 작은 종이에 써서 그 종이를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가 놓는 거야."
아버지가 그토록 매달려 계산을 하고
숫자를 적어 궤짝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놓은..
'아버지의 그 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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