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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58 특허통수권⑧ 슬기로운 변리사 활용법

by 변리사 허성원 2024. 4. 17.

특허통수권⑧ 슬기로운 변리사 활용법

 

친한 변리사가 한 사람쯤 있는가? 특히 기술 기반 기업이라면 다른 어느 전문가보다 변리사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때가 많다. 언제라도 편히 전화할 수 있고 가끔 소주라도 한잔 마시며 애로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변리사가 있다면 든든한 경영 조력자를 친구로 가진 셈이다. 변리사의 경험과 지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특허전략을 최적화하려면, 다소 불편한 질문이나 껄끄러운 요청도 불사해야 있다. 이럴 때 변리사와의 친분은 큰 도움이 된다.

여하튼 변리사의 조력을 제대로 받으려면 좋은 질문 요령이 필요하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변리사의 조언이나 대응의 품질이 결정되기에 그렇다. 변리사를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는 질문 비결 몇 가지를 예시해본다.

"이 기술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

변리사의 업무가 특허 출원이나 특허 분쟁 해결 정도에 한정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특허 출원의 이전인 연구개발 단계에서도 변리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연구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앞선 기술을 잘 파악하여 그것으로부터 가르침을 얻고. 필요한 경우 그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여야 한다. 그런 기술들은 거의 모두 특허자료로서 공개되어 있으니, 연구 단계에서 변리사의 조력을 구하면 연구 효율을 높이고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신제품을 론칭하거나 기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변리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시라. "이 신제품에 대한 제조를 검토 중인데 자네 의견은 어떤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무게, 내구성, 가격, 성능, 디자인 등)가 있네.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좀 부탁하네" 혹은 "이런 아이디어를 제품에 적용해볼까 하는데 어떨 것 같은가?"

변리사들은 대부분 엔지니어로서 이공계 배경을 가지고 있고, 경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 분야의 기술을 다양하게 다루어보았을 것이기에, 그들은 생각 이상으로 여러 기술에 해박하다. 기술적인 문제를 넌지시 언급하기만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술술 말해준다. 그 조언 속에는 귀한 기술 지식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라면 국내외 특허자료를 검색하여 참고자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 조언이나 자료가 어두운 밤길을 훤히 밝혀주는 탐조등이 되어줄 수도 있다.

"이 제품을 모방해서 만들고 싶은데 문제는 없겠는가?"

기업 활동에서 모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남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경쟁사의 제품을 배워야 할 때는 특허리스크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런 고민은 역시 친한 변리사에게 간단히 물어보면 의외로 가볍게 해결될 수도 있다.

변리사는 그 관련 특허를 두루 조사하고, 그것을 모방할 경우의 특허 위험을 알려줄 것이다. 특허 침해의 우려가 없다는 답을 들으면 더없이 좋은 일이고, 혹 특허 침해의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피해나갈 방안 즉 회피설계의 길도 그들에게서 들어야 한다. 이런 조언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친분이 없으면 변리사는 신중하고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혹 특허 침해를 도저히 피할 수 없다면 그 특허의 유효성까지 분석해두는 것이 좋다. 멀쩡히 존속하는 특허라 하더라도, 출원 당시에 특허요건의 미비로 무효 사유를 안고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해마다 수백 건의 특허가 무효로 되고 있다. 회피설계의 근거나 특허의 무효가능성 등에 대한 분석 내용은 잘 정리해두면, 어느 날 특허권자가 시비를 걸어오는 등의 유사시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여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발명이 특허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될 것 같은가?"

특허출원을 의뢰하면 변리사가 그 발명의 특허가능성을 나름대로 평가한다. 대부분 선행기술조사를 해보고 판단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없는 법이다. 그래서 변리사의 긍정적인 의견을 듣고 덜렁 출원을 의뢰하고서 종종 실망스런 결과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출원을 위임하기 전에 위와 같은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변리사는 관점을 달리 하여 검토하게 된다. 처음엔 출원인 혹은 변리사의 관점에서만 특허 가능성을 평가하였다면, 이제는 심사관의 관점에서 거절하여야 할 이유를 확인하게 될 것이니, 훨씬 폭넓은 검토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특허 가능성과 거절 가능성은 필경 차이가 있다. 변리사는 적어도 자신이 미리 예측한 거절 가능성에 대해 그 대비를 놓치지 않을 것이니 특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어떤 경우에 내 특허를 벗어나게 되는가?"

특허권자는 대부분 자신의 특허가 어떤 힘을 가지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변리사가 특허출원을 위한출원 명세서를 작성하여 초안을 보여주면, 반드시 변리사에게 이런 취지의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이 출원이 특허되었을 때 잠재적인 침해자들은 어떻게 하면 내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요소를 무엇으로 치환하거나, 어느 요소를 빼고 쓰거나, 수치를 어떻게 변경하면 특허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변리사의 설명이 수긍이 가고 그런 잠재적인 회피를 허용할 수 있다면 그대로 출원을 하라고 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그런 회피 실시를 용납할 수 없다면, 그 회피 실시를 배제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출원 명세서가 수정되어야 한다.

이 질문은 타인이 내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여 단순히 언어의 보완을 통해 특허를 더욱 강한 권리로 만들 수 있고, 특허권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권리가 미치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출해 내거나 그 개발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 대단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은 질문들을 익숙하게 할 수 있다면 가히 특허 경영의 고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요청에 기꺼이 응해주는 변리사에게는 수시로 소주를 한잔씩 사줘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슬기로운 변리사 활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