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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55 곡성(哭聲) 예찬

by 변리사 허성원 2024. 4. 4.

곡성(哭聲) 예찬

 

지인의 상가(喪家)에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데 이웃 상가에서 곡성(哭聲)이 들려온다. 요즘 곡(哭)하는 모습은 보기도 듣기도 힘든 일이라 소리를 따라 가보니 제법 번성한 집안인 듯 상가가 번잡하다. 저 안쪽에 상주들이 굴건을 쓰고 제복을 입은 채 지팡이를 짚고 곡을 하고 있다. 나이든 상주들은 제법 운율을 맞췄는데 어린 상주들은 소리가 입안으로 말려들어가듯 웅얼거린다. 그 소리에 맞춰 나도 곡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잠시 일었지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십수 년 전 어머니 상 때 우리도 굴건제복을 하고 곡을 했었다. 아버지의 엄한 지시가 있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가끔 볼 수 있는 풍습이었기에 별 거부감 없이 따랐다. 그저 '아이고~' 소리를 길게 늘려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데도, 미리 예행연습을 해봤을 턱이 없으니 처음에는 소리가 잘 나오지도 않고 리듬과 박자, 음높이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몇 번 지나면서 자연스레 공조현상이 일어나 그럴 듯하게 화음이 맞춰지고, 시작과 끝도 눈치껏 맞아 들어갔다.  

곡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슬퍼서 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곡을 하니 실제로 마음 속에서 진한 슬픔이 정말 일어난다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진다는 말과 똑같다. 인과 전도의 묘한 현상을 체험한 것이다. 입으로 곡을 하면 희한하게도 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정말 우러나왔다.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니 표정과 몸짓까지도 성실한 상주의 모습으로 연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곡소리가 우리 장례의 리츄얼로서 자리 잡은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곡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다. 조문객이 쉴 틈 없이 몰려와 다소 지친다는 느낌이 들 때, 희한하게도 곡소리만 읊조리면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주어진 루틴을 리드미컬하게 한 단계씩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마치 노동요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조문객이 분향을 하고 절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 상주들이 조문객의 행동을 뻘쭘히 지켜보는 단절감이나 어색함도 곡소리가 메워준다. 이처럼 곡은 상가를 차분한 슬픔의 분위기로 연출해주고 행동들 사이의 여백을 채워주는 잔잔한 음악과 같고, 때론 상주들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유도하는 구호나 가이드 역할도 한다. 

그리고 곡은 상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주가 '아이고~ 아이고~'를 외면, 상문객은 '어이~ 어이~'를 외어 추임새처럼 호응한다. 이게 잘 맞아 떨어지면 듣기 좋은 앙상블이 연출된다. 상주와 상문객의 곡이 잠시나마 한바탕 어우러져 함께 진한 카타르시스를 나누는 것이다. 집안 아재가 조문을 왔을 때 마침 혼자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곡을 하니, 그 아재가 적절히 끼어들어 '어이~ 어이~'를 외어주는데, 마치 합창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을 쓰다듬으며 공감이나 위로를 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곡을 하면 상문 인사가 단출해져 불필요한 말을 줄일 수 있다. 젊을 때 조문을 간다고 하니 아버지는 상주에게 하는 조문 인사는 매우 절제해야 한다고 힘주어 일러주셨다. "상사에 드릴 말씀 없습니다",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등 정형화된 언어만 쓰고 가능한 한 말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함께 간 사람들이 가끔 이상한 인사를 하여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상황을 보고서 그 가르침의 의미를 절감하였다. 그런데 곡을 하면, 상주와 조문객이 이미 함께 마음을 공유했으니 굳이 다른 인사가 필요치 않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도면 충분하게 된다. 

곡을 특히 맛깔나게 잘 하시는 분들이 있다. 첫째와 둘째 외숙모가 그러셨다. 어머니 상 때에는 내가 경황이 없어 기억나지 않지만, 셋째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이 두 분의 실력을 제대로 시청할 수 있었다. 정말 그토록 애절한 단장의 곡소리가 잘 어우러져 절묘하게 앙상블을 이뤘다. 손아래 시동생의 상이라 더 애석하신가 보다라고 여겼다. 많은 조문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여 상가의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하시는 것이다. 그걸 보고 옛날에는 곡소리를 대신 내주는 곡비(哭婢)를 부르기도 했다는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연세도 많으신 두 외숙모님이 한참을 그렇게 애닯게 곡을 하시길래 혹 건강이 염려되어 지켜보고 있었는데, 곡을 끝마치고는 셋째 외숙모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누시고 내가 있는 자리로 오셨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히 내가 하는 일과 가족들의 안부를 일상처럼 물어보시면서, 보는 사람이 뻘쭘할 정도로 다부지게 식사를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때 속으로 잠시 실소하긴 했지만, 곡이 의례의 한 형태이기에 그런 드라마틱한 연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을 하면 눈물도 흘려야 하는 줄 알았다. 실제로 곡을 시작하니 눈물이 많이 흘러 내렸다. 그걸 보신 아버지께서 상주의 곡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행사를 주관하는 상주가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야 어찌 이 큰 일을 제대로 수습하겠냐는 말씀이었다. 큰일의 책임을 진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땅히 냉정하게 처리해야 할 본분이 있으니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셨다. 

아버지 상 때에는 굴건제복도 곡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나 조문객들에게 너무 드러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저어했고, 무엇보다 누나와 여동생의 종교적인 차이도 배려했어야 했다. 곡소리가 없어서인지 애통한 마음이나 몸가짐이 뜻대로 잘 우러나지 않아 은근히 마음은 무거웠다. 특히 입관이나 하관을 할 때 다들 울음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울음이란 게 그다지 근기가 없는 것이라 금세 힘을 잃고 소리가 잦아들었다. 곡이라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제 상주가 될 일도 곡을 할 일도 없다. 하지만 곡소리는 실컷 목놓아 내지르고 싶다. 살아오면서 그때그때 시원히 털어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쌓아둔 울분, 후회, 분노 혹은 미움 같은 응어리나 찌꺼기 감정들을 그 곡소리에 실어 시원히 토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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