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 하마가 있다
아프리카의 사파리 가이드들이 사자나 코끼리보다 더 두려워하는 동물이 있다. 그건 하마다. 하마는 덩치가 크고 굼떠 보여 온순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 덩치에 걸맞게 힘이 엄청나고 시속 50km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거기다 성격이 급하고 별 이유 없이 공격하기도 하여, 매년 하마에게 희생되는 사람의 수가 약 500명 정도에 이른다. 이는 사자 피해의 5배에 달한다고 하니 가히 두려워해할 맹수라 할 것이다.
‘하마’는 회의실에도 존재한다. 여기서의 ‘하마’ 즉 'HIPPO(Highest Paid Person's Opinion)'는 '최고 연봉을 받는 사람의 의견'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구글 부사장 출신으로서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책을 쓴 조나단 로젠버그가 처음 사용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CEO 등 리더의 존재 혹은 그의 주장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정글의 하마와 같이 위험하다는 말이다.
조직에서 한두 소수의 독단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이 명백하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집단의 지혜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그 조직문화에 있다. 직원들이 리더의 의견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묵하여 결국 독단을 허용한다면 그 조직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조직원의 침묵은 반대의견에 대한 무언의 억압, 즉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특정의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다.
그런 문화에서는 애빌린 패러독스와 같은 불합리한 결정과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에빌린 패러독스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의사를 묵시적으로 배려하여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에 동의하는 모순이다. 혹은 ‘악의 평범성’으로 널리 알려진 홀로코스트 실행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에서처럼, 명령이 내려지면 아무런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성실하게 따르는 무개념의 조직원들이 득실거리는 조직일 수도 있다.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그런 기미를 숨기고,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잘하는 척 꾸미게 된다. 군주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면 그것을 바탕으로 신하들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취하게 된다.” 한비자의 말이다. 그래서 “군주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거호거오去好去惡). 그러면 신하들이 본 마음을 드러낼 것이니, 군주가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군주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야만 신하들이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한비자의 가르침이다. 회의장에서 ‘하마’를 없애어 직원들이 자유로이 의사표현을 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더를 대면하고 있는 현장에서는 그 영향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하마 방지의 효과적인 방법은, 회의를 열기 전에 이슈 사항을 미리 배포하고, 사전에 참석자들이 비대면 상태에서 각자의 의사를 자유로이 개진하고 첨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하마'의 영향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효과와 함께 회의의 생산성과 경제성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하마' 대책은 아예 만장일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만장일치는 공동묘지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말처럼, 만장일치의 집단사고가 가져올 치명적인 위험에 대해 역사는 이미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서는 오로지 반대의견만을 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두고 있다. 만장일치를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모방하여 많은 기업에서도 반대만을 전담하는 레드팀(Red Team) 혹은 블로커(Blocker)라는 특이한 직무를 두기도 한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라는 좀비 영화에도 이스라엘의 '열번째 사람(The 10th Man)‘이 등장한다. 그는 말한다. "나의 임무는 9명이 동일한 의견을 내더라도 어떤 이유를 찾아내어서든 그것이 틀렸다고 말해야 합니다. 9명 모두가 틀렸을 경우도 대비해야 하니까요."
회의실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이미 ‘하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의견 불일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일체의 결정을 중지하라”고 하였다. ‘하마’가 감지되면 일단 모든 결정을 멈추고 ‘하마’를 축출하는 데 집중하라. 그런데 혹 본인이 '하마'의 주인공은 아닌가.
** 애빌린의 역설
** 악의 평범성
** 악마의 변호인(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
'어떤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
데블스 에드버킷은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악마의 변호인」이라고도 한다. 가톨릭 성인(sainthood) 추대 심사에서 추천 후보의 불가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악마(devil)’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개념이다. 이들은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을 활성화시키거나 또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군주는 좋고 싫음을 드러내지 마라
거호거오(去好去惡)
군주에게는 두 가지 근심이 있다. 똑똑한 자를 쓰면, 그 신하는 장차 똑똑함을 이용하여 군주를 겁박할 것이고, 아무 사람이나 쓰면 일이 막혀 견뎌내지를 못한다.
군주가 똑똑한 자를 좋아하면, 신하들은 거짓으로 꾸며 행동하여 군주가 바라는 것에 맞추려 할 것이니, 신하들의 속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신하들의 속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군주는 신하들을 분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월왕이 용맹함을 좋아하니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백성이 많았고,
초 영왕이 허리 가는 사람을 좋아하니 나라에 굶어 죽는 자가 많았다.
제 환공이 투기심이 있고 여색을 밝히니 수조가 스스로 거세하여 내시가 되었고
환공이 맛난 음식을 좋아하자 역아는 맏아들의 머리를 쪄서 진상하였다.
연 자쾌가 어진 이를 좋아하니 자지는 나라를 넘겨받지 않으려는 척했다.
그래서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그런 기미를 숨기고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잘하는 척 꾸미게 된다.
군주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면 그것을 바탕으로 신하들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지(子之)는 어짐을 빌어 그 군주의 자리를 빼앗았고
수조와 역아는 군주가 원하는 것을 이용하여 그 군주를 버렸으니,
결국 자쾌는 반란으로 죽고, 환공은 구더기가 문밖으로 기어나올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다.
이 모두는 무엇 때문인가? 군주의 속 마음을 신하에게 보여준 데서 일어난 재앙이다.
신하의 마음은 본시 그 군주를 반드시 사랑하지는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군주가 그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기미를 숨기지 않으면
이는 신하로 하여금 군주를 해칠 빌미를 주는 것이니
신하들이 자지(子之)나 전상(田常)과 같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신하들은 본 마음을 드러낼 것이니, 군주에게 숨겨진 것(군주가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人主有二患 任賢 則臣將乘於賢 以劫其君 妄舉 則事沮不勝 故人主好賢 則群臣飾行以要君欲 則是群臣之情不效 群臣之情不效 則人主無以異其臣矣. 故越王好勇 而民多輕死 楚靈王好細腰 而國中多餓人 齊桓公妬而好內 故豎刁自宮以治內 桓公好味 易牙蒸其首子而進之 燕子噲好賢 故子之明不受國. 故君見惡 則群臣匿端 君見好 則群臣誣能 人主欲見 則群臣之情態得其資矣 故子之託於賢以奪其君者也 豎刁 易牙因君之欲以侵其君者也 其卒子噲以亂死 桓公蟲流出戶而不葬. 此其故何也 人君以情借臣之患也 人臣之情非必能愛其君也 為重利之故也 今人主不掩其情 不匿其端 而使人臣有緣以侵其主 則群臣為子之 田常不難矣 故曰 去好去惡 群臣見素 群臣見素 則大君不蔽矣. _ 한비자(韓非子) 이병(二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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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문제해결의 비결은 異見(dissent) 한 스푼>
"리더의 역할은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리더는 그런 탁월한 아이디어들이 도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경영 저술가 Simon Sinek은 리더의 역할을 이렇게 단언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단숨에 해결책을 제안하는 게 리더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리더는 문제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바에 주력한다. 혼란스럽고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막막한 상황에서 직원들이 느끼는 당혹감을 공감한다. 그리고 직원과 리더가 한 마음이며, 현재 상황을 모두가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제 모두가 한 뜻으로 최선의 답을 찾아가기 시작하면 된다."
"어떤 회사는 의도적으로 조직내 취약한 점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선의의 비판 조직(red team)을 운영한다. 또는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 있는 이유를 미리 점검하는 사전부검(premortem) 팀을 활용한다. 의사결정 전에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이 계획이 망했다는 가정 하에 실패 원인을 찾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반대 의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자칫 편향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직사고를 방지한다. 결국은 조직내 모든 생각들을 끄집어 냄으로써 민첩성과 회복력(resilience)을 높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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