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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43 온고이지신,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1. 9. 22.

온고이지신,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

 

임금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라고 하니, 이유경이 “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초학자는 그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정조 1년 2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논어 위정편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에 관해 대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유경의 말처럼 ‘옛 것과 새것을 고루 익혀 신구 지식에 대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남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배웠었다. 이에 대해 정조는, 그런 해석은 초보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옛것을 익히다 보면 그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로 '온고지신'을 해석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해석이든 썩 공감이 가지 않는다. 스승 노릇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옛것과 새것을 두루 익혔을 것이고, 그 과정에 어찌 새로운 앎이나 깨달음이 없었겠는가. 왜 굳이 공자께서 그 점을 스승의 조건으로 엄히 규정해두셨을까 싶다.

‘온고이지신’ 중의 ‘고(故)’ 자는 공자 이후 근 2500년간 일관되게 '옛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이 글자는 본래 ‘까닭 고(故)’이다. 그러니 그 본래의 뜻으로 해석해보자. 그러면 전체 문장은 이렇게 풀어진다.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만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결과의 원인이고 이유이며, 나타난 현상의 원리이고, 문제의 근원이다. 원인, 원리 등은 현상의 파악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되니, 노자가 말하는 '도(道)'가 그것이고, 이기론(理氣論)에서의 '이(理)'가 바로 그것이다. ‘까닭’은 또한 ‘Why(왜)’이다. 'Why'는 ’How(어떻게)'나 ‘What(무엇)’에 대응한다. 'Why'(이유)의 규명은 존재나 행위의 근원적 의미를 파악하는 의미 중심적 접근방법으로서, 과정(How)이나 결과(What)를 중시하는 시각에 비해 훨씬 통찰적인 상위의 사고방법이다.

'까닭' 즉 ’왜‘를 추구하는 근원적 사고는 모든 창의력의 출발점이다. ‘왜’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존 지식의 권위에 도전한다. 하달식, 주입식 지식 전달을 거부하고 상향적, 파괴적 지식을 창조한다. 그래서 ‘왜’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 미국 제퍼슨 기념관이나 도요타가 다섯 번의 질문(5Why)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왜’는 존재나 행위의 이유 혹은 의미다. 개인이나 조직의 존재이유 즉 가치관 즉 비전에 연결된다. 강한 조직일수록 조직원들에게 선명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강력한 비전을 갖추고 있다. 스티븐 코비는 "이유(Why)를 가진 자는 어떤 목표(What)나 어떤 수단(How)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왜(Why)'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바티칸 교황청에는 '서명의 방‘이 있다. 그 네 벽면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신학, 법학, 철학, 예술에 관한 주제의 작품들로 각각 장식되어 있다. 철학을 주제로 한 동쪽 벽면에는 소크라테스 등 여러 고대 철학자들의 초상을 그린 '아테네 학당'이 배치되어 있고, 그 위의 천장화에는 여신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어린 천사가 서 있다. 두 천사가 메고 있는 글자판에는 'CAUSARUM'(인과, 원인)과 'COGNITIO'(인식, 지식)가 씌어 있다. 그 뜻은 '인과의 인식’이니, 즉 ‘까닭에 대한 깨달음'이라 고쳐 쓸 수 있다. 이는 곧 ‘온고이지신(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이 아닌가.

거기다 가운데의 여신은 'NATURALIS'(자연)와 'MORALIS'(도덕)라는 책을 들고 있다. 결국 철학 벽면의 이 천장화는 ‘철학이란 것은 까닭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자연과 도덕에 대한 가르침을 널리 베푸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동서양의 철학이 이처럼 우렁차게 공명하고 있다.

이렇게 두루 살펴보니 결국 ‘온고이지신 기이위사의’는, 까닭의 탐구를 통해 원리 혹은 의미 중심적인 사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며, 그런 경지에 이른 자만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라고 이 후학이 발칙하게 우겨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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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어릴 때 한문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 볼촉스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옛 고(古)' 자가 버젓이 있는데 왜 ‘까닭 고(故)’ 자를 썼을까요?"
그 때 선생님은 약간 난감해 하시는 듯하다가, "‘까닭 고(故)’를 옛 것으로 널리 쓰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외우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10살도 되기 전이라, 위의 칼럼과 같은 나름의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겠지만, 어쩐지 '까닭'으로 해석하면 훨씬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을 근 50년 넘게 마음 속에 품고 있다가 드디어 이 궤변을 제대로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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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교황청 서명의 방. 오른쪽 벽화가 동쪽 벽면 '아테네학당'
각 벽면에는 알레고리 천장화들이 부속되어 있다
동쪽 벽면의 천장화. 철학의 알레고리. ' CAUSARUM COGNITIO'(까닭에 대한 깨달음)

 

** 조선왕조실록 정조 1년 2월1일 기록

임금이 말하기를,“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하니,
이유경이 말하기를,“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초학자(初學者)는 이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 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上曰: “溫故知新, 何謂也?”
儒慶曰: “溫故書而知新書之謂也。”
上曰: “不然。 初學之人, 多如此看得, 而蓋謂溫故書, 則知新味於其中, 益知其所不知之謂也。”
_ <朝鮮王朝實錄> 正祖 1年(1777) 2月 1日 丁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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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hy 분석법

문제해결의 한 방법이다.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연속적으로 5회 이상 질문해 나가다 보면, 문제의 근원에 이르게 되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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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Why)'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Simon Sinek의 강의 동영상.

"모든 위대한 지도자의 공통점은 'WHY'를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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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Why'와 관한 매우 재미있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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