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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다산 정약용의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by 변리사 허성원 2021. 7. 26.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_ 다산 정약용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늙은이의 한 가지 즐거움(老人一快事)'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의 시집 '송파수작(松坡酬酢)’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나이 71세 때(75세에 서거)에 쓴 것으로서, 늙음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겸허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달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요 내용은..
1수에서 머리카락이 없어지니 감고 빗질하는 수고도 없고 백발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하며 민둥머리를 예찬하고,
2수에서는 치아가 다 빠져도 음식을 씹고 삼키는 데 지장이 없고 무엇보다 치통이 없어졌음을 즐거워 하고,
3수에서는 눈이 어두어지니 책 읽어야 할 부담이 없어지고 좋은 경치를 보고 즐기게 되며,
4수에서는 귀가 들리지 않아 세상의 시비 다툼을 듣지 않게 됨을 노래하고
5수에서는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써도 퇴고할 필요도 없고 남의 비평에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6수에서는 손님과 바둑을 두는 일을 꼽으며, 만만한 상대만을 골라 두며 편안히 즐김을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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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의 한 가지 즐거움들에 관한 시 여섯 수를 백향(香山, 白居易)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짓다
[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1.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
민둥머리가 참으로 유독 좋아라 / 髮鬜良獨喜
머리털은 본디 군더더기이건만 / 髮也本贅疣
처치하는 데 각각 법도가 달라 / 處置各殊軌
예문 없는 자들은 땋아 늘이고 / 無文者皆辮
귀찮게 여긴 자들은 깎아 버리는데 / 除累者多薙
상투와 총각이 조금 낫기는 하나 / 髻丱計差長
폐단이 또한 수다하게 생기었고 / 弊端亦紛起
높다랗게 어지러이 머리를 꾸미어라 / 巃嵷副編次
쪽 짓고 비녀 꽂고 비단으로 싸도다 / 雜沓笄總縰
망건은 머리의 재액이거니와 / 網巾頭之厄
고관은 어이 그리 비난을 받는고 호원(胡元)의 관이다. / 罟冠何觸訾
이제는 머리털이 하나도 없으니 / 今髮旣全無
모든 병폐가 어디에 의탁하리오 / 衆瘼將焉倚
감고 빗질하는 수고로움이 없고 / 旣無櫛沐勞
백발의 부끄러움 또한 면하여라 / 亦免衰白恥
빛나는 두개골은 박통같이 희고 / 光顱皓如瓠
둥근 두상이 모난 발에 어울리는데 / 員蓋應方趾
널따란 북쪽 창 아래 누웠노라면 / 浩蕩北窓穴
솔바람 불어라 머릿골이 시원하구려 / 松風洒腦髓
말총으로 짠 때묻은 망건일랑 / 塵垢馬尾巾
꼭꼭 접어 상자 속에 버려 두나니 / 摺疊委箱裏
평생을 풍습에 얽매이던 사람이 / 平生拘曲人
이제야 쾌활한 선비 되었네그려 / 乃今爲快士

[주-D001] 고관(罟冠) : 고고관(罟罟冠)의 준말로, 원(元) 나라 시대에 귀부인(貴婦人)들이 착용했다고 한다.

2.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
치아 없는 게 또한 그 다음이라 / 齒豁抑其次
절반만 빠지면 참으로 고통스럽고 / 半落誠可苦
완전히 없어야 마음이 편안하네 / 全空乃得意
한창 움직여 흔들릴 적에는 / 方其動搖時
가시로 찌른 듯 매우 시고 아파서 / 酸痛劇芒刺
침 놓고 뜸질해도 끝내 효험은 없고 / 鍼灸意無靈
쑤시다가는 때로 눈물이 났었는데 / 鑽鑿時出淚
이제는 걱정거리 전혀 없어 / 如今百不憂
밤새도록 잠을 편안히 잔다네 / 穩帖終宵睡
다만 가시와 뼈만 제거하면은 / 但去鯁與骨
어육도 꺼릴 것 없이 잘 먹는데 / 魚肉無攸忌
잘게 썬 것만 삼킬 뿐 아니라 / 不唯呑細聶
큰 고깃점도 능란히 삼키거니와 / 兼能吸大胾
위아래 잇몸 이미 굳은 지 오래라 / 兩齶久已堅
제법 고기를 부드럽게 끊을 수 있으니 / 頗能截柔膩
그리하여 치아가 없는 것 때문에 / 不以無齒故
쓸쓸히 먹고픈 걸 끊지 않는다오 / 悄然絶所嗜
다만 턱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여 / 山雷乃兩動
씹는 모양이 약간 부끄러울 뿐일세 / 嗑嗑差可愧
이제부터는 사람의 질병 이름이 / 自今人病名
사백 네 가지가 다 안 되리니 / 不滿四百四
유쾌하도다 의서 가운데에서 / 快哉醫書中
치통이란 글자는 빼 버려야겠네 / 句去齒痛字

3.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
눈 어두운 것 또한 그것이라 / 眼昏亦一快
다시는 예경 주소 따질 것 없고 / 不復訟禮疏
다시는 주역 괘사 연구할 것도 없어 / 不得硏易卦
평생 동안 문자에 대한 거리낌을 / 平生文字累
하루아침에 깨끗이 벗을 수 있네 / 一朝能脫灑
급고각 판본은 가증스럽기도 해라 / 生憎汲古板
자디잔 글자를 티끌처럼 새겼는데 / 蠅頭刻纖芥
육경은 교외로 나갔거니와 / 六卿郊外去
재윤은 어느 때에 걸 것인고 / 再閏何時掛
슬프다, 경문의 주석을 엿보건대 / 嗟哉望經注
후인들은 옛사람 본만 따라서 / 後人依樣畫
송 나라 이학 반박할 줄만 알고 / 唯知駁宋理
한대의 오류 답습함은 수치로 안 여기네 / 不恥承漢註
이젠 안개 속의 꽃처럼 눈이 흐리니 / 如今霧中花
눈초리를 번거롭게 할 것 없고 / 無煩雙決眥
옳고 그름도 이미 다 잊었는지라 / 是非旣兩忘
변난하는 일 또한 게을러졌으나 / 辨難隨亦懈
강호의 풍광과 청산의 빛으로도 / 湖光與山色
또한 안계를 채우기에 충분하다오 / 亦足充眼界

4.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
귀먹은 것이 또 그 다음이로세 / 耳聾又次之
세상 소리는 좋은 소리가 없고 / 世聲無好音
모두가 다 시비 다툼뿐이나니 / 大都皆是非
헛 칭찬은 하늘에까지 추어올리고 / 浮讚騰雲霄
헛 무함은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며 / 虛誣落汚池
예악은 황무한 지 이미 오래이어라 / 禮樂久已荒
아, 약고 경박한 뭇 아이들이여 / 儇薄嗟群兒
개미가 떼지어 교룡을 침범하고 / 譻譻螘侵蛟
생쥐가 사자를 밟아 뭉개도다 / 喞喞鼷穿獅
그러나 귀막이 솜을 달지 않고도 / 不待纊塞耳
천둥소리조차 점점 가늘게 들리고 / 霹靂聲漸微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 自餘皆寂寞
낙엽을 보고야 바람이 분 줄을 아니 / 黃落知風吹
파리가 윙윙대거나 지렁이가 울어 / 蠅鳴與蚓叫
난동을 부린들 누가 다시 알리오 / 亂動誰復知
겸하여 가장 노릇도 잘할 수 있고 / 兼能作家翁
귀먹고 말 못해 대치가 되었으니 / 塞黙成大癡
비록 자석탕 같은 약이 있더라도 / 雖有磁石湯
크게 웃고 의원을 한번 꾸짖으리 / 浩笑一罵醫

5.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씀일세 / 縱筆寫狂詞
경병을 굳이 구애할 것이 없고 / 競病不必拘
퇴고도 꼭 오래 할 것이 없어라 / 推敲不必遲
흥이 나면 곧 이리저리 생각하고 / 興到卽運意
생각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가되 / 意到卽寫之
나는 바로 조선 사람인지라 / 我是朝鮮人
조선시 짓기를 달게 여길 뿐일세 / 甘作朝鮮詩
누구나 자기 법을 쓰는 것인데 / 卿當用卿法
오활하다 비난할 자 그 누구리오 / 迂哉議者誰
그 구구한 시격이며 시율을 / 區區格與律
먼 데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랴 / 遠人何得知
능가하기 좋아하는 이반룡은 / 凌凌李攀龍
우리를 동이라고 조롱했는데 / 嘲我爲東夷
원굉도는 오히려 설루를 쳤으나 / 袁尤槌雪樓
천하에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네 / 海內無異辭
등 뒤에 활을 가진 자가 있거늘 / 背有挾彈子
어느 겨를에 매미를 엿보리오
 / 奚暇枯蟬窺
나는 산석의 시구를 사모하노니 / 我慕山石句
여랑의 비웃음을 받을까 염려로세
 / 恐受女郞嗤
어찌 비통한 말을 꾸미기 위해 / 焉能飾悽黯
고통스레 애를 끊일 수 있으랴 / 辛苦斷腸爲
배와 귤은 맛이 각각 다르나니 / 梨橘各殊味
오직 자신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 / 嗜好唯其宜

[주-D001] 경병(競病) : 험운(險韻)을 가지고 시를 짓는 것을 말함. 양(梁) 나라 조경종(曹景宗)이 개선(凱還)할 때에 양 무제(梁武帝)가 잔치를 베풀고 연구(聯句)를 시험했던바, 험운인 경병 두 자만 남았을 때 조경종이 최후로 참여하여 바로 지어 쓰기를, “떠날 땐 아녀들이 슬퍼하더니, 돌아오매 피리와 북 다투어 울리네. 길가는 사람에게 묻노니, 곽거병 그 사람과 과연 어떤고?[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 한 데서 온 말이다.《南史 曹景宗傳》
[주-D002] 원굉도(袁宏道)는 …… 쳤으나 : 원굉도는 바로 명(明) 나라 때의 시인이고, 설루(雪樓)는 역시 명나라 때의 시인 이반룡(李攀龍)의 서실(書室) 이름인 백설루(白雪樓)의 준말이다. 원굉도는 본디 시문에 뛰어난 사람으로서 그의 형인 종도(宗道), 아우인 중도(中道)와 함께 모두 당대에 명성이 높았는데, 그는 특히 왕세정(往世貞)과 이반룡의 시체(詩體)를 매우 강력히 배격하고 홀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당대에 많은 학자들이 왕세정ㆍ이반룡을 배제하고 그를 따르면서 그의 시체를 공안체(公安體 : 공안은 원굉도의 자)라 지목했던 데서 온 말이다.《明史 卷二百八十八》
[주-D003] 등 …… 엿보리오 :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비유한 말. 장자(莊子)가 밤나무 숲에서 이상한 까치를 발견하고 그를 잡기 위해 활에 화살을 끼우고 있었는데, 이때 보니 사마귀[螳蜋]는 신이 나게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이상한 까치가 그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 그 뒤에서는 장자 자신이 그 이상한 까치를 노리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莊子 山木》[주-D004] 산석(山石)의 …… 염려로세 : 이 고사는 앞의 주 292)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6.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
때로 손들과 바둑 두는 일인데 / 時與賓朋奕
반드시 가장 하수와 대국을 하고 / 必求最拙手
강한 상대는 기필코 피하노니 / 掉頭避强敵
힘들지 않는 일을 하다 보면 / 行其所無事
얼마든지 남은 힘이 있기 때문일세 / 恢恢有餘力
도를 닦자면 어진 스승을 구하고 / 業道求賢師
산을 배우자면 교력에게 가야 하며 / 學算就巧曆
실다운 일은 성취하는 게 타당하나 / 實事宜躋攀
헛놀이는 한적함을 귀히 여기거늘 / 虛嬉貴閑適
뭐하러 고통스레 강적을 마주하여 / 何苦對勍寇
스스로 곤액을 당한단 말인가 / 自取遭困阨
한편으론 다른 생각을 가지어 / 一念射蜚鴻
오히려 상대에게 패하지 않고 / 猶然不敗績
항상 안일로써 괴로움을 상대하니 / 恒以逸待勞
순조롭기만 하고 거슬림이 없어라 / 怡然順無逆
자못 괴이해라 세상 사람들은 / 頗怪世上人
그 지취가 어그러지고 편벽하여 / 志趣乃乖僻
덕에 있어선 낮고 아첨함을 좋아해 / 於德悅卑諛
어리석은 자를 상객으로 앉히고 / 庸愚充上客
놀이에 있어선 제 힘을 못 헤아려 / 於戲不自量
국수와 서로 대국하기를 생각하네 / 國手思對席
이것으로 소일이나 하면 그만이지 / 聊以送炎曦
정진한들 끝내 어디에 유익하랴 / 精進竟何益

[주-D001] 교력(巧曆) : 수술(數術) 또는 역법(曆法)에 정통한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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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훨씬 더 팍팍했을 조선시대, 참으로 유쾌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일쾌사(一快事)’라고 표현하곤 했다. 박사호는 힘겨운 사행 길에 청심환 하나로 중국인 아이의 마음을 사서 잠시 빠른 말로 바꿔 타고는, 고삐를 당겨 광활한 요동 벌판을 전속력으로 마음껏 달려 본 일을 ‘일쾌사’라고 적었다. 이덕무는 농부가 봄비 내리는 새벽에 왼손으로 쟁기 잡고 오른손으로 고삐를 쥐고서 검은 소의 등을 때리며 산이 무너지듯, 물이 소용돌이치듯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자 검은 소가 발굽을 날리며 부드러운 흙을 구름 덩이처럼, 물고기 비늘처럼 가볍게 착착 갈아 제치는 장면을 두고, 세상에 둘도 없을 일쾌사라고 했다.

 욕심 없는 맑은 마음으로 즐기는 일쾌사

정약용이 71세 되던 해에 지은 ‘노인일쾌사’라는 연작시는 요즘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늙어서 대머리가 되니 감고 빗질할 일 없어 일쾌사고, 이가 다 빠지니 평생 괴롭히던 치통이 없어져서 일쾌사며, 눈이 어두워지니 잔글씨 주석에 얽매일 필요 없어 일쾌사고, 귀가 안 들리니 헛된 시비와 평판에 신경 쓸 일 없어 일쾌사라는 등의 내용이다. 노쇠한 신체를 해학으로 받아들이는 시를 읽으며, 꼭 유쾌하고 기쁜 일이 있어야만 유쾌하고 기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조경에게 준 글에서 이규상은 세 가지 일쾌사를 말했다. 조경처럼 좋은 친구를 만나 봄날 햇살 드는 창가 아래나 맑은 밤 깊은 서재에 단둘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시를 주고받는 그 시간이야말로 일쾌사가 아닐 수 없다.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합격하고 관료로서 공을 세워 역사에 나란히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당연히 일쾌사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깊은 산골 서로 가까운 곳에 초가를 짓고 살며 꽃피는 아침, 달 뜨는 저녁마다 대지팡이에 짚신 끌고 오가며 술 한 잔의 풍류를 즐기는 것, 그 또한 일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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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쾌사, 참으로 유쾌하고 기쁜 일

갖고 싶은 장난감을 손에 쥐기만 해도, 가고 싶던 놀이공원에 발을 들이기만 해도 더없이 즐겁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살아온 연수가 더해지고 걸쳐진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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