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특허는 있다
“뱁새가 깊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해도 그 배만 채우면 족하다”(_장자 소요유).
뱁새의 집은 나뭇가지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그저 생기던가. 생장하는 나무가 있어야 하고, 뱁새가 살 수 있는 숲의 생태계도 있어야 한다. 목마른 두더지 한 마리에게는 물 한 줌이면 족하다. 그러나 두더지는 또 물을 마셔야하고 그 종족이 이어져야하니, 물은 마르지 않고 흘러야한다. 그러니 당장의 나뭇가지 하나와 물 한 줌에 족할 수 없다.
지난주에 실은 ‘장롱특허는 없다’라는 칼럼에 대해 반론 등 의견이 많았다. 반론들은 내 생각과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다른 옳음’들로서 전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쓸모없이 장롱에 쟁여 둔 장롱특허의 비효율 비경제성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유용한 혁신기술만을 개발하여 특허로 확보하려는 것은 분명 옳은 특허전략이다.
그런데 축구경기를 생각해보자. 선수들의 지상 목표는 골 득점이다.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슛은 골로 이어지지 못하니, 경기 내내 거의 쓸데없는 헛발질만 해대는 셈이다. 그런 쓸데없는 짓은 집어치우고 오로지 득점 가능한 슛만 날리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유효특허만을 추구하는 특허전략과 같다. 곧 ‘뱁새나 두더지의 만족’만을 구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장롱특허' 논의의 핵심은 '양'과 '질'의 관계에 있다. 그러면 특허의 '질'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특허의 '질'은 그 가치사슬을 따라 여러 곳에서 작동한다. 연구개발, 특허명세서 작성, 특허관리, 특허 심사 심판, 법원 등이다. 이 다양한 분야의 '질'은 각 분야에 속한 ‘사람의 질'이기도 하다. '질'은 잘 숙련된 사람이 만든다. ’숙련'은 시간과 양의 함수이니, 결국 '질'은 풍부한 ‘양’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수많은 헛발질 슛을 해보지 않은 축구선수가 어찌 드라마틱한 득점 골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우리 기업들은 9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특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당시로서는 과도하다 여길 정도로 특허출원의 양적 성장에 집중하였다. 무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결과로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특허 강국으로서 특허선진국 G5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특허기술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맞서는 기술경쟁력을 갖추었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변리사들의 특허 실무역량, 특허청의 심사능력 등은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양’이 있었기에 비로소 ‘질’을 누리고 있다.
또 하나의 논점은 ‘쓸모’이다. 쓸모없는 특허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쓸모’라는 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보는가에 달라진다. 세상을 바꾼 혁명적인 기술 중에는 한 때 ‘쓸모’를 찾지 못하여 장롱 속에 있던 것들이 적지 않다. 반도체의 기초가 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발명,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컴퓨팅 환경이 된 마우스를 이용한 명령 실행 기술인 팔로알토 연구소의 GUI 등이 그렇다. 트랜지스터 발명은 소니에 의해 꽃을 피워 지금의 반도체로 발전하였고, GUI는 우연히 방문한 스티브 잡스에게 발견되어 세상의 표준이 되었다. 팔로알토 연구소는 그 외에도 레이저프린터, 이더넷, 위지위그 등 다른 다양한 혁신 기술을 장롱에 쟁여 두고 많은 기업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였다.
‘쓸모’는 비전의 영역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나뭇가지 하나의 만족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더 크고 더 멀고 더 불확실한 영역을 본다. 우주, 해양, 생명 등의 빅사이언스와 같은 큰 비전의 영역은 아무래도 당장의 이익 추구에 급한 기업보다는 공공 연구기관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그처럼 공공 연구기관의 사명은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큰 비전의 기술을 양산하여 불확실한 언젠가의 쓸모를 위해 장롱에 쌓아두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에게 장롱특허를 적극 권장하라!
여하튼 장롱특허는 비효율적인 것이니 가능한 한 줄여야 함은 옳다. 하지만 비난과 핍박만이 능사는 아니다. 꼴찌들을 가혹하게 벌준다고 해서 학급의 우등생이 늘어나진 않는다. 격려와 좋은 학습 분위기 조성이 전체 성적 향상과 우등생 증가에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 현장에서도 인정과 격려가 필요한 장롱특허라는 존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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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당초 거칠게 작성된 초벌 글을 신문 칼럼용으로 재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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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가 깊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해도 그 배만 채우면 족하다.
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偃鼠飮河,不過滿腹 _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 鷦鷯(초료, 뱁새 초, 굴뚝새 료), 偃鼠(언서, 누울 언, 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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