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과 귀게스의 반지
영화 ‘패신저스’는 동면 상태의 승객들을 태우고 120년간 항해하여 다른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서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짐은 시스템 오류로 90년이나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다. 대화상대로는 로봇 바텐더밖에 없이 지내다 동면중인 오로라를 발견하고, 갈등 끝에 그녀를 깨우고 만다. 오로라는 짐과 연인이 되지만, 결국 그가 자신을 깨웠음을 알게 되어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갈등, 위기, 감동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영화는 자신의 행위를 상대가 알지 못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전능적 권능을 가진 자가 타인의 인생에 임의로 개입한 경우의 윤리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의 최근 뉴스가 있었다. 한 영국 의사가 마취 중인 환자의 간에 아르곤 빔으로 자기 이름 첫 글자들을 새겼다. 수술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동료에게 발각되어 재판에 넘겨지고 벌금 및 5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영국의사협회가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더 엄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옛날 리디아의 목동 귀게스가 양을 돌보던 중 천둥 번개가 치고 땅이 갈라졌습니다. 땅의 틈으로 들어가 보니 문이 달린 청동 말과 그 안에 시신이 있었지요. 시신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나와 끼고 돌려보니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반지를 이용하여 왕궁으로 몰래 들어가 왕비를 겁탈하고 왕마저 죽이고는 왕이 되었습니다."
이 '귀게스의 반지'는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에게 들려준 예화이다. 글라우콘은 누구나 남다른 힘이나 권력을 가지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탐욕과 이기심을 이기지 못해 정의를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안전하게 부정을 행할 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어 결코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지'와 같은 특별한 권능에 기초한 완벽하게 나쁜 사람의 유형으로서 의사나 선장과 같은 전문가를 상정하며 말한다. "그들은 항상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즉시 바로 잡으며, 아무리 부정을 저질러도 들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잘 속여서 근거를 남기거나 꼬리도 잡히지 않으며, 착하지 않으면서 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주 나쁜 짓을 해도 잘 막아내어 항상 평판이 좋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러니 현명한 삶이란 선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선량하게 보이도록 행세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들은 매우 순탄하게 살며, 선량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국가를 다스리기도 하고, 좋은 여자와 결혼도 합니다. 불의를 즐겨 온갖 사리사욕을 취하며, 재산이 많으니 선심을 베풀어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신들에게 재물을 넉넉히 바치고 찬양할 수 있으니 선량한 사람들보다 신에게 훨씬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글라우콘은 정치 권력자를 상정하여 말하였지만, 대표적인 나쁜 사람으로 의사나 선장과 같은 전문가를 예시하였다. 그 전문가들은 현대의 의사, 변호사, 변리사 등 전문직과 실질적으로 일치한다. 전문직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능력으로 무장하여 사실상 각자 나름의 '귀게스의 반지'를 가진 셈이다. 그런 '귀게스의 반지'의 효력을 사리사욕을 위해 쓰면서 사람들의 업과 삶을 해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전문직들에게는 다른 직업에 비해 훨씬 엄격한 직업윤리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항상 글라우콘의 우려를 증명하는 일탈된 전문직들이 적잖이 존재하여 왔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어떤 기술이나 통치도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위한 것이오. 의술은 치료의 대상인 환자에게, 통치는 통치의 대상인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통치자 등의 강자라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통치나 기술을 제공받는 상대의 이익을 도모하여야 하오." 그리고 '귀게스의 반지'와 같은 절대 권능을 남용하게 되면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파멸하고 말며, 그 권능을 이성적으로 절제하도록 자신을 통제하여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전문직들이여, 그대들의 지식과 능력은 그대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대들의 운명은 그들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이타적으로 살아야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
헤로도토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귀게스는 리디아의 세번째 왕조의 창설자로서, 페르시아에 멸망한 크로이세우스의 선조이다.
귀게스는 원래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 왕의 신하였다. 왕은 왕비를 극도로 사랑하고 그녀가 세상에가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다.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왕은 귀게스에게 침실에 숨어서 그녀가 옷을 벗는 것을 엿보아 달라고 요청했다. 귀게스는 거부했지만 왕은 완강했다.
왕비는 귀게스가 숨어서 본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남편에게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귀게스를 불러 말했다. 훔쳐본 벌을 받을 것인지, 왕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후 자신과 결혼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했다.
귀게스는 왕을 암살하고 왕위에 올랐다. 풍부한 공물을 보내어 델피의 신전에 신탁을 물었다. 그의 왕조가 5대에 그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 예언대로 크로이세우스에 이르러 그의 왕조는 페르시아에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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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올바른 삶) _ '국가' 1권 중
- 소크라테스 : 의사가 의사로 불리고 선장이 선장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의술이나 항해술을 가졌기 때문이오. 의사는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의술을 써서 환자의 몸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돈벌이를 일삼는 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선장도 선장의 이익을 위해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탄 사람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면서 지휘하여야 합니다.
통치자도 이와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고, 국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지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기술이나 어떤 통치도 그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즉 기술의 대상, 통치는 통치의 대상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오. 그러니까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는 통치받고 있는 약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봐야 하오. 그리고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언제나 대상의 이익(국민의 이익)을 돌보기 마련이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도 돈이건 명예건 보수가 주어여야 하며 그 지위를 거부할 경우엔 형벌이라도 주어여야 하는 거요.
- 글라우콘 :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명예나 돈을 보수로 주는 것은 알겠지만 형벌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형벌이 어떻게 보수가 될 수 있는지요?
- 소크라테스 : 자네는 훌륭한 사람들의 성향을 잘 모른단 말인가? 야심과 탐욕이 그들에겐 명예롭지 못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훌륭한 사람에게 돈이나 명예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네. 고용된 자라는 인상을 받는 게 싫어 보수를 바라고 국가를 통치하지도 않을 뿐더로 직권을 이용해 사리를 취하지도 않네. 그것은 도적 같은 짓이니까. 또한 야심가도 아니므로 명예에도 관심이 없네.
그러므로 어떤 필연성이 주어질 때 그들을 통치자의 지위에 오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형벌로써 그덕을 강요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실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가장 고약한 형벌이란, 통치자의 자리를 거부하였을 때 겪을 수 있는 사태, 즉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에게 지배를 받는 사태를 초래했을 경우네. 그래서 어떤 국가에 뛰어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통치의 권좌에 대한 경쟁은 치열해지는 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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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전문직은 어떤 분야의 학문 내지는 과학의 이론구조에 대한 이해이며, 이런 이해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능력에 기초하여 실천되는 직업인 것이다. 이 이해와 이들의 능력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실천적 제문제에 적용된다. 전문직은 고객에 대한 이타적 서비스에 윤리적 요청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밀러슨(Millerson)은 21명의 평가자에 의해 열거된 특성을 분석하고 가장 높은 빈도의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든다. 첫째, 전문직은 이론적 지식에 기초한 기능을 필요로 한다. 둘째, 그 기능은 훈련과 교육을 필요로 한다. 셋째, 전문직 종사자는 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능력이 입증되어야 한다. 넷째, 행동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청렴성을 보여야 한다. 다섯째, 공공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해야 한다. 여섯째, 전문직은 조직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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