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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28 천리마에게 쥐를 잡게 하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1. 6. 21.

천리마에게 쥐를 잡게 하다

 

가끔 상식 이하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대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기초 상식 시험이라도 치르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푸념을 하곤 했다. 비록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거나 그게 실현될 거라고 믿은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주장이 최근 한 정당의 대표 경선 과정에서 실제로 공약으로 제시되었다. ‘공천 자격시험제’라는 것이다. 당의 공천 후보들에 대해서는 자료해석 능력, 독해 능력, 표현력, 엑셀을 포함한 컴퓨터 활용능력 등에 관련하여 한 해에 몇 차례 시험을 보아 일정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 필요를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정부의 업무나 활동을 감사하고 평가하려면 최소한의 자료 이해 능력 등 기초적인 문해력은 갖추어야 함이 지당하다. 그는 또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였다. 그의 공정은 남녀노소를 떠나 능력에 따라 경쟁하고 대우받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마음 편치 않게 하는 점들이 있다. 그는 특목고 출신으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을 나왔다. 교육 등 남다른 혜택을 누린 사람에게서 나온 주장이라는 점이 그렇고, 거기다 시험을 통해 서열을 매기고자 하는 획일주의, 능력주의, 엘리트주의의 음울한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에게 있어 정작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가. 그건 구체적인 실무 재능이 아니라, 수치로 잴 수 없는 추상적이고 대범하며 더 상위의 더 넓은 영역에 걸쳐 있는 가치관일 것이라고 믿는다. 여하튼 그런 공약을 내세운 사람이 당대표로 되었다. 그 공약이 어떻게 구현될지 그리고 우리 정치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정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논의에서 언급된 능력, 시험, 공정 등의 키워드를 보니 장자(莊子) 추수편에 나오는 ‘사기포서(使驥捕鼠, 천리마에게 쥐를 잡게 하다)’의 고사가 떠오른다.
"기기(騏驥)나 화류(驊騮)와 같은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너구리나 살쾡이만 못하다. 그것은 재주(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와 부엉이는 밤중에도 벼룩을 골라내고 터럭 끝까지도 살필 수 있지만 낮에 나오면 부릅뜬 눈으로도 언덕과 산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본성(性)이 다르기 때문이다."
토정 이지함 선생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이 포천 군수로 있을 때 임금에게 올린 만언소(萬言疏)라는 상소문에 언급된 말이다.
"해동청(海東靑, 사냥매)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도 못할 것이고, 한혈구(汗血駒, 천리마)에게 쥐 잡는 일을 시킨다면 늙은 고양이만도 못할 것입니다."

천리마의 재능을 쥐 잡는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고양이보다 무능하고, 해동청의 능력을 새벽을 알리는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늙은 닭보다도 무능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훨씬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여러 덕목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누구나 각기 나름의 고유한 특기나 특성 혹은 그 조합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어느 한두 가지 능력만으로 서로 비교 평가하여 판단할 수는 없다.

'시험'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평등'한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항상 공정하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천리마와 고양이를 쥐 잡는 능력으로 비교하는 시험은 평등하지만 결코 공정하지는 못하다. '공정'은 반드시 각자의 성장 환경, 개성, 특기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고려될 때 성립된다. 아인슈타인도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가 천재적 재능은 가지고 있다.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멍청이라 믿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시험의 결과가 학력, 자격 등의 모습으로 한 인간을 규정하고, 배울 기회나 일할 기회를 결정하는 라벨이 되어,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는 차별이나 불평등의 이유가 될 수도 있기에, 시험만능주의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평등한 시험’은 개인의 개성과 재능을 도외시한 획일화, 표준화된 인재상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러면 우수한 인재가 제 재능에 맞는 일을 하지 못하여,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끄는 안타까운 상황’(驥服鹽車 _ 전국책)을 연출하거나,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 _ 논어)는 한탄이 나오게 될 것이다. 천리마에게 쥐를 잡게 할 것인가.

 

 

공정한 선발을 위해 모두에게 동일한 시험을 부여한다. 모두 나무에 오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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騏驥驊騮(기기화류) 一日而馳千里(일일이치천리) 捕鼠不如狸狌(포서불여리성) 言殊技也(언수기야) 鴟鵂夜撮蚤察毫末(치휴야촬조찰호말) 晝出瞋目而不見丘山(주출진목이불견구산) 言殊性也(언수성야) - 莊子(장자) 秋水篇(추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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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 선생의 만언소(萬言疏)

海東靑使之司晨(해동청사지사신) 則曾老鷄之不若(즉증노계지불약)
汗血駒使之捕鼠(한혈구사지포서) 則曾老猫之不若(즉증노묘지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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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가 천재적 재능은 가지고 있지 .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멍청이라 믿고 살아가야 할거다 ." _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