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임에 대해
업무상 미팅을 가져 보면 저쪽 조직의 문화가 보인다. 최근의 한 회의에서는 상대방 팀원들이 매우 소극적이었다. 의사 표명이 분명하지 않고 작은 사안에서조차 결정을 미뤘다. 아마도 일일이 최고결정권자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 듯하다.
이런 소극적인 조직 분위기는 드물지 않다. 대체로 윗사람이 카리스마가 강하고 머리가 좋으며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이다.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 뛰어난 윗사람 아래에서 일하는 부하들은 모든 게 너무나 조심스럽다. 엄정한 질책을 지속적으로 경험한 조직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능력 부족과 오류투성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오직 전능한 윗사람의 판단과 지시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조직 내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영화 ‘가스등’(1944년)에서 유래한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좀 답답할 정도로 멍청해 보이는 백치미 연기가 돋보였던 흑백영화다. 아내의 재산을 노린 남편이 거짓말 등으로 교묘하게 생각을 조종하여 멀쩡한 아내를 정신병자로 만들려한다. 당시의 조명수단인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해두고 아내가 어둡다고 하면 오히려 당신이 잘못 보았다고 하며 핀잔을 주는 등의 일이 반복된다. 그러면 아내는 현실감을 잃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자책하며 가해자인 남편에게 더욱 의지하게 된다. 이처럼 자존감과 판단능력을 잃고 가해자의 통제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 상황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가스등 효과' 혹은 가스라이팅이라 한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에게는 개인의 자존감을 잃게 하는 가혹한 처사이지만,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상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단히 효과적인 ‘길들이기’이다. ‘길들이기’에 관련하여서는 장자(莊子) 마제(馬蹄)편에 나오는 고사를 참고할만하다.
"말은 발굽으로 서리와 눈을 밟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으며,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발을 들어 뛰기도 한다. 이것이 말의 참된 본성이다. 그러니 비록 높은 누각이나 멋진 잠자리가 있어도 쓸모가 없다. 그런데 백락이라는 사람이 나와, ‘나는 말을 잘 다룬다’고 하면서, 낙인을 지지고, 털을 깎고, 발굽을 다듬고, 굴레를 씌우고, 고삐와 띠로 엮어, 마구간에 몰아넣었다. 그러자 말들 가운데 열에 두셋이 죽어버렸다. 거기다 굶기고, 목마르게 하고, 뛰게 하고, 몰아 부치고, 바르게 걷게 하고, 줄맞춰 걷게 하기도 하였다. 앞에는 재갈과 장식물이 있어 거추장스럽고, 뒤에는 채찍의 위협이 있었다. 그러자 말들은 반 넘어 죽어버렸다."
동물을 길들인다는 것은 그들의 참된 본성을 없애고 그곳에 새로운 복종의 질서를 주입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가스라이팅도 그런 길들이기와 다르지 않다. 상대의 본성을 억제하고 행동과 생각을 조종하는 것은 결국 그 삶을 훔치고 망가뜨리는 짓이다. 조종되어 순종하는 삶은 그 본성에 내재되어 있던 자신감, 창의력, 도전정신을 상실한다. 그러면 조직의 리더는 그 부하들에게 자신감, 창의력 등이 부족하다고 더욱 질책하고 압박한다. 나쁜 길들이기의 악순환이다. 이에 반해 '좋은 길들임'도 있다.
'좋은 길들임'에 대해서는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하며, 지금은 서로에게 그저 많은 소년과 많은 여우 중 하나일 뿐이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년이 되고, 나는 너에게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여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우는 강조한다. “하지만 너는 절대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그래서 친구를 진정으로 원할 때 비로소 길들이기를 시작하여야 한다고 말해준다.
이처럼 '좋은 길들임'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일이다. ‘만약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그런 행복을 공유하는 관계이다. 그 관계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며, 반드시 사랑으로 엮여지고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함께 행복을 나눌 진정한 친구가 필요한가. 그러면 기다림과 인내의 길들임을 시작하라. 그리고 제대로 길들여졌다면 그는 진정한 친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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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마제(馬蹄) 편
말은 발굽으로 서리와 눈을 밟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으며,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발을 들어 뛰기도 한다. 이것이 말의 참된 본성이다. 그러니 비록 높은 누각이나 멋진 잠자리가 있어도 쓸모가 없다. 그런데 백락이라는 사람이 나와, “나는 말을 잘 다룬다.”고 하면서, 낙인을 지지고, 털을 깎고, 발굽을 다듬고, 굴레를 씌우고, 고삐와 띠로 엮어, 마구간에 몰아넣었다. 그러자 말들 가운데 열에 두셋이 죽어버렸다. 거기다 굶기고, 목마르게 하고, 뛰게 하고, 몰아 부치고, 바르게 걷게 하고, 줄맞춰 걸리기도 하였다. 앞에는 재갈과 장식물이 있어 거추장스럽고, 뒤에는 채찍의 위협이 있었다. 그러자 말들은 반 넘어 죽었다.
馬, 蹄可以踐霜雪, 毛可以禦風寒. 齕草飮水, 翹足而陸. 此馬之眞性也. 雖有義臺路寢, 無所用之. 及至伯樂, 曰 ; 我善治馬, 燒之, 剔之, 刻之, 雒之, 連之以羈馽, 編之以皁棧. 馬之死者, 十二三矣. 饑之, 渴之, 馳之, 驟之, 整之, 齊之. 前有橛飾之患, 後有鞭策之威, 而馬之死者, 已過半矣.
무릇 말이란 뛰고 머무르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기쁠 때에는 서로 목을 맞대어 비비고, 성이 나면 등을 돌려 서로 걷어찬다. 말의 지혜란 그뿐이다. 그런데 멍에를 씌우고 굴레로 얽어매어 구속하게 되자, 수레채를 피하고, 멍에를 피하고, 장막을 찟고, 재갈을 뱉고, 고삐를 물어뜯을 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말의 지혜를 도적과 같이 만든 것은 백락의 죄인 것이다.
夫馬, 陸居則食草飮水, 喜則交頸相靡, 怒則分背相踶, 馬知已此矣. 加之以衡扼, 齊之以月題, 而馬知介倪, 闉扼, 驇曼, 詭銜, 竊轡. 故馬之知而能至盜者, 伯樂之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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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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