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군대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 단체 팀의 경기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감독의 용병 전략도 그렇고 선수들의 투지나 태도도 비난 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들을 보고 누군가가 '당나라 군대'라 한다. 우리는 기강이 약하거나 사기가 떨어진 조직, 혹은 매번 싸울 때마다 지는 군대나 스포츠 팀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그렇게 부르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그 역사가 짧지 않은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년 2월 1일의 기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정조가 경연(經筵) 중에 경연관들에게, 당나라에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음에도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해, 시독관 이재학은 왕의 질투와 의심을, 검토관 이유경은 소인이 중간에서 부린 농간을 각각 그 이유로 꼽았다. 이에 정조는 다음과 같이 그의 생각을 말한다.
"임금이 사람을 쓸 때에는 반드시 먼저 신중히 가려야 하고, 이미 임용하였다면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장수를 내보낸 뒤에 군대를 감시하고 그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것이 첫 번째 폐단이다. 성 밖의 일은 장군이 주관하게 하여야 통솔체계가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정을 경유하게 하여 완급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기세를 잃었다. 그것이 두 번째 폐단이다. 아홉 절도사로 하여금 한꺼번에 출병하게 하여 서로 생각이 달라 명령이 여러 곳에서 나오게 되니, 이것이 세 번째 폐단이다. 이러한데도 어찌 성과를 따질 수 있겠는가?”
당나라는 현종 당시 일어난 안록산의 난과 사사명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나라 군대는 반란군에게 번번이 패퇴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당나라가 전쟁에서 힘을 쓰지 못했던 원인을 정조는 세 가지 점으로 통찰한 것이다. 임금이 장수를 믿지 않은 점, 임금이 장수에게 확실히 권한을 위임을 하지 않은 점, 지휘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은 점 등이다. 이러한 정조의 지적은 조직을 이끄는 현대의 리더들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먼저, 인재에 대한 믿음이다. 정조의 말처럼, 애초 신중히 가려서 뽑아야 하고(必先愼簡), 이미 채용하여 일을 맡겼다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任之勿疑). 송사(宋史) 통속편(通俗編) 등 여러 고전에서도 '의심스러우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라(疑勿用 用勿疑)고 가르친다. 손자병법은 ‘상하의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면 이긴다’(上下同欲者勝)고 하였다. 군주가 장수를 의심하면 상하의 뜻이 이미 어긋난 상황이다. 그렇게 믿음이 잃은 장수가 어찌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하겠는가.
그리고 권한 위임이다. 전투 현장의 장수는 군사작전에 관해 전권을 가지고 전략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의 변동에 적응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의 간섭이 없으면 이긴다‘(將能而君不御者勝_손자병법)고 하였다. 그래서 장수는 상황에 따라서는 군주의 명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君命有所不受). 군주가 전쟁 중의 장수를 신임하지 못하여 그 지휘나 전략 운영에 간섭하고 그에 의해 군대를 혼란과 불신에 빠지게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어지럽혀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짓’(亂軍引勝)이 된다.
끝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는 강한 조직의 생명이다. 명령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마치 하나의 몸통에 둘 이상의 머리가 달린 것과 같다. “회(螝)라는 벌레가 있다. 몸은 하나인데 입이 둘이다. 먹이를 다투다 서로 물어뜯어 마침내 서로 죽이고 만다(_한비자).” 머리가 둘이면 어느 입이 먹든 결국 한 뱃속으로 들어갈 것인데도 눈앞의 먹이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고사는 한 조직 내에서 자신의 공명이나 이익을 탐하여 다투다 끝내 스스로와 조직을 곤경에 빠트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할 때 비유된다. 그리고 장자 달생(達生)편에는 ‘방황(彷徨)’이라는 '들판의 귀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뱀의 형상을 하고 머리가 둘이며 몸통의 무늬가 오색찬란하다고 한다. 머리가 둘이라 제각기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터이니, 제대로 바르게 나아갈 수 없다. 부득이 들판을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방황(彷徨)'은 ‘목표를 잃고 갈팡질팡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결국 ‘당나라 군대’는 의심, 불신임, 방황의 지배를 받는 조직을 이른다. 이 같은 ‘당나라 군대’를 본 적이 있는가.
** <朝鮮王朝實錄> 正祖 1年(1777) 2月 1日 丁酉 (국사편찬위위원회)
야대(夜對)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당나라 때에 군대를 거느리는 신하 가운데 적격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싸우기만 하면 패배하였으며, 아홉 절도사들도 한꺼번에 패배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하니,
시독관 이재학(李在學)이 말하기를, “그때에 장수(將帥)들을 또한 모두 가려서 보냈는데도 매양 패배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임금이 기의(忌疑, 시기와 의심)한 것에 연유되어 그런 것이었습니다.”하고,
검토관 이유경(李儒慶)은 말하기를, “소인(小人)이 중간에서 용사(用事)하여 모유(謀猷)와 조획(措劃)이 당초 군무(軍務)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를 출동시킬 때마다 공이 없는 탄식이 있게 된 것입니다.”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아무리 소인이 용사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3년 동안의 전쟁에서 어떻게 한 사람도 공을 이룬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는 반드시 그렇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등등의 일에 대해 똑바로 이회(理會)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대개 여러 해 동안 계속 전쟁을 하게 되어 싸우면 반드시 패하기 마련이었는데, 그 이유를 추구하여 보면 거기에는 세 가지 폐단이 있는 것이다.
임금이 사람을 기용하는 방도는 반드시 먼저 신중히 가려야 하고 임용한 뒤에는 또 의심하지 않은 연후에야 공효를 책임지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수를 내보낸 뒤에 환시(宦侍)로 하여금 감군(監軍)하게 하여 동정(動靜)을 엿보게 한 것이 첫번째 폐단이다. 곤외(閫外)의 일은 장군이 주관한 연후에야 호령을 발하여 시행케 하는 즈음에 있어 절로 통령(統領)이 있게 되는 것인데, 반드시 조정을 경유하게 했기 때문에 완급(緩急)에 대응함에 있어서 매양 때에 뒤져 사세를 잃게 된 것이 두번째 폐단이다. 곽자의(郭子儀)·이광필(李光弼)은 모두 명장(名將)인데도 위임(委任)하지 않았고 또 아홉 절도사(節度使)로 하여금 일시에 출병하게 함으로써 서로 의심하게 만들고 명령이 여러 곳에서 나오게 된 것이 세번째 폐단인 것이다. 이런데도 공효를 책임지울 수 있겠는가? 누차 싸웠어도 공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인 것이다.”하니이재학이 말하기를, “참으로 성교(聖敎)와 같습니다.”하였다.
夜對。 上曰: “唐時將兵之臣, 非無其人, 戰輒敗績, 至於九節度之一時見敗, 其故何也?” 侍讀官李在學曰: “此時將帥, 亦皆擇送, 而每致敗績, 此由於時君之忌疑而然也。” 檢討官李儒慶曰: “小人居中用事, 謀猷措劃, 初不念及於戎務, 故每致兵出無功之歎矣。” 上曰: “小人雖用事, 三年興師, 豈無一人成功者乎? 此必有所以然之故。 此等處正合理會。 蓋曠歲連兵, 戰必敗績, 若究厥由, 則其弊有三。 人君用人之道, 必先愼簡, 而旣任之, 則又勿疑然後乃可以責效。 而出將之後, 使宦侍監軍, 覘視其動靜, 其弊一也。 閫外事, 將軍主之, 然後發號施令之際, 自有統領, 而必使關由於朝廷, 故緩急設置, 每患後時失勢, 其弊二也。 郭子儀、李光弼皆是名將, 而不能委任之, 又使九節度一時出兵, 互相携貳, 令出多門, 其弊三也。 如此而其能責成乎? 屢戰無功, 良以此也。” 在學曰: “誠如聖敎"
(閫外之事 : 곤외지사, 대궐밖의 일. 携貳 : 携(휴) 흩어지다, 떨어지다. 貳(이) 둘. 의심하다. 배신하다.)
** 亂軍引勝(난군인승) _ 모공(謀攻)
夫將者, 國之輔也, 輔周則國必强. 輔隙則國必弱.
무릇 장수는 왕을 보필하는 나라의 기둥과 같다. 장수의 보필이 적절하면 나라는 강하게 되고, 그 보필에 틈이 발생하면 나라는 약해진다.
故君之所以患於軍者三.
고로 군주가 군대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세가지 있다.
不知軍之不可以進而謂之進, 不知軍之不可以退而謂之退, 是謂縻軍.
첫째, 군대가 진격해서는 안 됨에도 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진격을 명하고, 퇴각해서는 안 되는 상황임에도 알지도 못하면서 퇴각을 명하는 경우다. 이를 일컬어 용병을 구속하는 미군(縻軍)이라 한다.
不知三軍之事, 而同三軍之政者, 則軍士惑矣.
둘째, 군의 내부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군사 행정에 간섭하는 경우이다. 그리하면 군사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不知三軍之權, 而同三軍之任, 則軍士疑矣.
셋째, 군의 통수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군의 임무에 간섭하는 경우이다. 그러면 군사들은 명령을 믿지 못하게 된다.
三軍旣惑且疑, 則諸侯之難至矣, 是謂亂軍引勝.
전군이 혼란과 불신에 빠지게 되면, 제후들이 난을 일으켜 오게 되며, 이를 난군인승(스스로를 어지럽혀 적군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라 한다.
故知勝有五(고지승유오)
승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5가지 있다.
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지가이전여부가이전자승)
첫째,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는 알면 이긴다.
識衆寡之用者勝(식중과지용자승)
둘째, 병력의 많고 적음에 따른 용병술을 알면 이긴다.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
셋째, 군주와 병사가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면 이긴다.
以虞待不虞者勝(이우대불우자승).
넷째, 예측하고 기다리면 방심하고 있는 상대를 이긴다.
將能而君不御者勝(장능이군분어자승)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의 간섭이 없으면 이긴다.
此五者, 知勝之道也(차오자 지승지도야)
이 다섯가지가 승리를 미리 아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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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命有所不受(군명유소불수)
군주의 명이라도 받아들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 있다.
_ 구변(九變)
臣旣已受命爲將 將在軍 君命有所不受 _ 史記 ‘孫子吳起列傳’
신은 이미 명령을 받고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는 진중에 있을 때 군주의 명을 받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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疑勿用, 用勿疑 (의물용, 용물의)
의심스러우면 쓰지 말고, 일단 쓰면 의심하지 말라. <송사-통속편>
**
회(螝)라는 벌레가 있다. 몸은 하나인데 입이 둘이다.
먹이를 다투다 서로 믈어뜯어 마침내 서로 죽이고 만다.
蟲有螝者(충유회자) 一身兩口(일신양구)
爭食相齕也(쟁식상흘야) 遂相殺也(수상살야)
_ 韓非子 第23篇 說林(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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