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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35 리더의 책사와 리더의 낭패

by 변리사 허성원 2021. 8. 5.

리더의 책사와 리더의 낭패

 

'준마는 언제나 어리석은 사내를 태워 달리고, 현명한 아내는 모두 졸장부와 짝이 되어 산다네(駿馬每馱痴漢走, 巧妻常伴拙夫眠).' 명(明)나라 때의 시인이자 화가인 당백호(唐伯虎)의 시다. 선비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공평함을 읊고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어를 살짝 바꾸어 달리 표현해보자. '어리석은 사내는 준마를 타고 달리고, 졸장부는 지혜로운 아내와 짝이 되어 산다'가 된다. 그러면 어리석은 사내라 하더라도 준마에 올라타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고, 졸장부도 현명한 아내가 바르게 이끌어주면 큰일을 이룰 재목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은가.

역사상 위대한 군주들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천리마처럼 출중한 책사가 있었다. 주나라를 건국한 주무왕에게는 강태공이 있었고, 춘추시대 첫 패자였던 제환공에게는 관중(管仲)이,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에게는 이사(李斯)가, 한고조 유방에게는 장자방이, 당태종 이세민에게는 그의 거울이라 불린 위징(魏徵)이 있었다. 삼국지에서도 유비의 제갈공명, 조조의 순욱, 손권의 노숙이 서로 지략을 다투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책사 정도전은 500년 조선왕조를 설계하였다. 그리고 위대한 리더의 뒤에는 위대한 아내가 있기 마련이다. 온달의 평강공주를 비롯해서, 제갈공명의 황씨 부인, 명 태조 주원장의 마태후, 초장왕의 번희 등이 그러하다.

‘낭(狼)’과 ‘패(狽)’는 이리의 일종인 전설의 동물이다. 낭(狼)은 용맹하고 흉폭하지만 꾀가 모자라고, 패(狽)는 꾀는 많지만 겁쟁이다. 거기다 낭은 뒷다리가 짧고, 패는 앞다리가 짧다. 그래서 패가 낭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고 한 몸처럼 붙어 다녀야 한다. 낭은 패가 없으면 서지 못하고, 패는 낭이 없으면 걷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협조하여 온전히 서고 걸으면서, 낭의 용맹과 패의 꾀로 효율적으로 사냥하며 공생한다. 그런데 이 둘이 사이가 틀어져 헤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둘 다 곱다시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낭패'라고 한다.

군주와 책사의 관계는 낭(狼)과 패(狽)의 관계와 같다. 아무리 강력한 군주라 하더라도 책사를 잃으면 '낭패'를 당한다. 항우는 지략가 범증(范增)을 아부(亜父)라고 부르며 신뢰하여 한때 그의 조력으로 중원의 패권을 잡기도 하였지만, 유방 측의 반간계에 빠져 의심하며 내치고 나서 끝내 해하 전투에서 패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충신 오자서의 도움으로 강력한 패자국이 되었던 오나라의 왕 부차는 그의 충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를 멀리하다가 끝내 죽이게 되고, 결국 오자서의 예언대로 월나라의 공격을 받아 부차는 자결하고 나라는 멸망한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왕 구천도 그를 도와 나라를 부흥시킨 책사들인 범려와 문종을 떠나보내거나 죽이고, 월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 시대의 기업인 등 리더들은 '낭'과 같은 용기와 리더십을 가지고 조직을 이끈다. 그들이 성공하려면 '패'와 같은 지혜로운 책사의 조력이 필요하다. 적절한 책사를 제때 만나지 못하면 낭패에 처한다. 큰 소송에 휘말리거나, 잘못된 계약으로 큰 손해를 입거나, 기껏 개발한 제품이 특허 침해의 다툼을 일으켰거나, 기타 세무, 노무, 관세 등의 온갖 복잡한 분야에서 곤혹을 치른다. 이런 리더들을 돕는 현대의 책사는 다양한 전문분야의 전문직이다. 세상이 복잡하니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존재하여, 리더에게 해당 분야에서 각기 나름의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성공한 리더들은 평소에 전문가들과 친분을 잘 유지하며 그들의 조언을 적절히 활용한다. 그것은 마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병원을 자주 다니며 예방하는 것과 같다. 실패한 리더에게는 책사 즉 전문가가 없다. 그들은 웬만히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미련하게 버티다 건강을 놓치는 사람처럼, 적절한 때에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대체로 리더의 게으름이나 자만 혹은 오판에 기인한다. 지혜로운 책사가 그를 알아주는 리더를 만나지 못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큰 뜻을 가진 도전적인 리더가 적절한 책사를 만나지 못하여 뜻이 좌절되거나 포부를 더 크게 펼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리더들이여, 그대는 지금 지혜로운 책사와 함께 하고 있는가, 혹은 '낭패'에 처해 있는가.

 

 

링크된 사이트에서 옮겨온 것임.

 

** 駿馬每馱痴漢走(준마매태치한주)

당인은 명()나라 때의 시인이자 화가이며, 자는 백호()이다. 29살에 향시()에 장원을 하였으나, 이듬해의 회시()에서 다른 응시자의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이후로 관직에 나갈 뜻을 접고 풍류를 즐기며 시와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다. 명나라 때 사조제가 지은 수필집 《오잡조》에 그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근래에 당백호()도 시를 지어 '준마는 항상 어리석은 사내를 태우고 달리며, 현명한 아내는 항상 졸장부와 짝이 되어 산다네. 세간에 많고 적은 불공평한 일들을 하늘이 한 일인 줄 모르고 하늘이 한 일이라 하지 말지어다(駿, . , )'라고 읊었는데, 농담이지만 격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이 시에서 보듯이 이 말은 교처상반졸부면()과 쌍을 이루며, 줄여서 준마치한(駿) 교처졸부()라고도 한다. 이 말은 《수호지()》에도 보인다. 서문경(西)이 반금련()을 마음에 두고 왕노파에게 그녀에 관하여 물었다. 왕노파는 반금련이 능력도 없고 볼품없는 무대랑()의 아내라고 하면서, "자고로 준마는 항상 어리석은 사내를 태우고, 현명한 아내는 졸장부와 산다고 하지 않던가요"라고 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준마매태치한주 [駿馬每馱痴漢走]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