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是非)이니,
즉 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하나는 이해(利害)이니,
곧 이로움과 해로움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고,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 들이는 것이다.
_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시문집 제21권 <答淵兒>편에 있는 글
天下有兩大衡, 一是非之衡, 一利害之衡也. 於此兩大衡, 生出四大級, 凡守是而獲利者太上也. 其次守是而取害也, 其次趨非而獲利也, 最下者趨非而取害也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저술을 정리한 문집으로 154권 76책으로 구성
* 여유당(與猶堂)
정약용의 생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소재.
* 답연아(答淵兒)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큰아들 정학연丁學淵(1783-1859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에게 먼저 편지하여 사죄해서라도 유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큰아들에게 이는 결코 좋은 계책이 될 수 없으며 도리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임을 설명하고, 자신은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천명을 기다릴 것이니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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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준 편지 자세히 보았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이 두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이제 너는 내가 필천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항복을 빌고, 또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번째 등급을 대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짓을 해야겠느냐.
조장령의 대계(臺啓)는내게 불행한 것이었다. 하루 사이에 나에 대한 계는 정지시켜버리고 그들의 죄를 밝혔다. (장령 조장한이 갑오년 봄에 이기경이 다산에 관해 상소하는 것을 정지시키고 이기경이 권유의 죄를 비호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역주) 이 일로 그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일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역시 고즈넉이 받아들일 뿐이지 애걸한다고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강준흠이 작년에 나의 일로 올린 상소는 그에게 있어서는 이제 쏘아버린 화살인지라 지금부터는 죽는 날까지 입을 다물지 않고 나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는 태도를 취하겠는가? 이기경 역시 강준흠과 한통속인데, 그가 강준흠을 배반하고 나에게 너그럽게 대할리가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애걸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강준흠 이기경이 다시 뜻을 얻어 요직을 차지한다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죽이려 한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오직 고즈넉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해배의 관문을 막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절조를 잃어버려서야 되겠느냐. 비록 내가 절조를 지키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세번째 등급도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하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애걸한다면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웃으며 말할 것이다. "저 작자는 참으로 간사한 사람이다. 지금은 애처로운 소리로 우리를 속이지만 다시 올라오게 되면 해치려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우리를 반드시멸족시킬 것이니, 아아! 두려운지고." 그러면서 겉으로는 풀어주어야 한다고 빈말을 하고 뒷구멍으로는 빗장을 걸어 위기에 처하면 돌멩이라도 던질 것이니, 바야흐로 나는 독수리에게 잡힌 새꼴이 되어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꼭두각시가 아닌데 너는 나로 하여금 무엇 때문에 그들의 장단에 춤추게 혀려느냐.
필천 홍의호와 나는 원래 털끝만큼의 원한도 없는 사이인데 갑인년(1794) 이후로 까닭없이 허물을 내 몸에 뒤잡어씌우더니, 을묘년(1795) 봄에 이르러 원태가 스스로 잘못 시기하였음을 알기에 명확하게 설명해주자 지난날의 구설수는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걷히듯 죄다 씻어버렸다. 하지만 신유년(1801) 이래 편지 한장 왕래가 없었으니 그 사람이 먼저 편지를 보냐야 옳겠느냐, 내가 먼저 해야 옳겠느냐? 그 사람은 내게 안부편지 한장 보내지 않고 오히려 나보고 편지가 없다고 허물하니 이는 그 기세를 세워 나를 지렁이처럼 업신여기는 처사가 아니냐? 그런데 너는 누가 먼저 편지를 보내는 것이 옳은가 생각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조아려 그 사람 하는 소리에만 예 예 하면서 지나왔으니 너 또한 부귀영화에 현혹되어 부형을 업신여기고 있는 것 같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그는 나를 폐족의 더러운 사람이라 해서 먼저 편지를 보내지 않는데 내가 이제 머리를 치켜올리고 얼굴을 우러르며 먼저 간청하는 편지를 내야 한다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내가 귀양이 풀려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 하는 일은 참으로 큰일은 큰일이니,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극히 잗다란 일이다. 사람이란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만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는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질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내가 살아서 고향땅을 밟는 것도 운명이고,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것도 운명일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고 천명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이치에 합당하지 않지만, 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했으니 이러고도 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운명일 뿐이다. 강씨 집안의 그 사람이 어찌 나를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느냐? 마음을 크게 먹고 걱정 말고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지니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거라. (122~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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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SWOT 분석
"이에 대해 다산은 천하의 두 기준과 네 등급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옳음과 그름’이라는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득과 손해’라는 기준이다. 여기서 네 가지 등급이 생긴다. 옳음을 지켜 이득을 얻는 것이 최상이다. 그 다음은 옳음을 지키다 손해를 입는 것이다. …”
다산은 아들의 제안이 그름을 좇아 이득을 얻는 3등급을 구하려는 것인데, 필경은 그름을 좇다가 손해를 입는 4등급이 되고 말 것이라며, 아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여기서 두 개의 기준으로 네 개의 구분을 만드는 것이 좀 낯익지 않은가. 가령 SWOT이 그것이다. 주체와 환경의 두 요소로 나누고, 주체의 강점(S)과 약점(W), 환경의 기회요소(O)와 위협요소(T)로 나누어 분석하는 유용한 틀이다. 다산은 이러한 2*2의 분석틀을 필요한 상황에서 활용했던 것이다."
http://www.edasan.org/sub03/board08_list.html?bid=b38&page=&ptype=view&idx=18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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