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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한로와 동곽

by 변리사 허성원 2021. 4. 15.
 

한로와 동곽(韓盧東郭)

 

한자로(韓子盧)는 천하의 가장 빠른 개이고
동곽준(東郭逡)은 나라 안에서 가장 꾀 많은 토끼이다.

한자로가 동곽준을 쫓아 달렸다.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돌고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올랐다.
토끼는 앞에서 힘을 다하였고, 개는 뒤에서 지쳐 쓰러졌다.

결국 개와 토끼는 더이상 달리지 못하고,
각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어떤 농부가 이들을 발견하여 힘들이지 않고 횡재를 하게 되었다

 

韓子盧者 天下之疾犬也. 東郭逡者 海內之狡兎也.
韓子盧逐東郭逡 環山者三 騰山者五. 兎極於前 犬廢於後 犬兎俱罷.
各死其處 田父見之 無勞倦之苦 而擅其功.
_ <戰國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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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사는
농부의 횡재라는 뜻으로 '田父之功(전부지공)',
혹은 개와 토끼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犬兎之爭(견토지쟁)'
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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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제3자를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어부지리(漁夫之利) 혹은 방휼지쟁(蚌鷸之爭)의 고사와 유사하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이야기는 종횡가 소진(蘇秦)의 동생인 소대(蘇代)가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을 설득하기 위해 든 비유이다.

조나라가 연()나라를 침공하였다. 이에 연왕은 세객으로 와있던 소대를 조나라로 보냈다.
조혜문왕을 만난 소대는 조나라로 올 때 강에서 본 일이라며 말한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는데, 긴 부리를 가진 새가 쪼아 먹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조개가 입을 오므려버려서 서로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지나가던 어부가 와서 둘다 잡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게 되면 오랫동안 공방을 벌이다 국력이 피폐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진나라가 어부지리를 보지 않을까 신은 염려됩니다(今趙且伐燕 燕趙久相攻 以弊大衆 臣恐强秦之爲漁父也/ 금조차벌연 연조구상공 이폐대중 신공강진지위어부야)“
소대의 이야기를 들은 조혜문왕은 그의 논리에 수긍하여 연나라 공격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렸다.

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있어 모두 꼼짝 못하는 상황을 방휼지지(蚌鷸之持)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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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동영상은 한자로와 동곽준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충성스럽게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사냥개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아나는 토끼의 경쟁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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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도 쫒고 쫒기는 양패구상의 이야기가 있다.

테우메소스의 여우(Teumessian Fox)는 거대한 여우이다. 테베의 사람들이 절제 없이 산과 들의 짐승을 사냥하자, 신들은 테베를 벌하기 위해 테우메소스 여우를 내려보냈다. 이 여우는 주로 어린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었기에 테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특히 테우메소스 여우에게는 사냥꾼이나 사냥개에게 '절대 잡히지 않는 운명'이 부여되어 있었다.

테베를 다스리던 크레온은 헤라클레스의 양부인 암피트리온을 보내어 그 여우를 잡게 했다.
암피트리온은 자신의 능력으로 잡을 수 없음을 알고 케팔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케팔로스는 질풍이라는 뜻의 '라엘랍스'라는 사냥개를 가지고 있었다. 라엘랍스는 케팔로스의 아내 프로크리스가 결혼할 때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라엘랍스에게는 '모든 사냥감을 따라낼 수 있는 운명'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절대 잡히지 않는 운명을 가진 여우를 모든 것을 잡을 수 있는 운명의 사냥개 라엘랍스가 쫒기 시작했다. 그 추격 상황은 너무도 모순적(Paradox)이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권능이 대립하였기에, 그들은 영원히 쫒고 쫒기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순적인 추격 광경을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머리가 아팠다. 두 동물의 운명은 모두 신의 권능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어느 하나를 부정하는 것은 신격의 부정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드디어 묘안을 생각해냈다. 그는 두 짐승을 모두 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제 두 짐승은 누구도 쫒거나 쫒기지 않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된다. 라엘랍스는 큰개자리, 테우메소스 여우는 작은개자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