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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경영 리더십

뷰자데(vuja de)

by 변리사 허성원 2017. 1. 16.

 

뷰자데(vuja de)

 

데자뷰(deja vu)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aleady seen' 즉 '이미 본'이라는 뜻에 해당하는 불어이다.

데자뷰는 분명 처음 본 장면이나 처음 가본 장소임에도
언젠가 보거나 경험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
즉 기시감(旣視感)을 의미하는 심리학적 용어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데자뷰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초현실이나 초능력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지만,
우리 뇌는 스스로 자각할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간 정보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자데(vuja d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데자뷰를 뒤집어서 만든 조어다.
그 의미는 당연히 데자뷰와 반대다.

즉, "늘 접하는 익숙한 것이 갑자기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느낌"을 가리킨다.
이런 느낌 역시 우리가 가끔 경험하게 된다.
내가 항상 생활하는 곳에 있는 데도,
문득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이고 왜 여기 있는가를 묻게 되는 황망한 상황이다.

이 '뷰자데(vuja de)'라는 말은 스탠포드대의 유명한 작가이자 교수인 밥 스톤(Bob Sutton)이 그의 저서 'Weird Ideas That Work'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그는 매일 일상적으로 겪고 보는 똑같은 것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 능력이 혁신과 변화를 위한 창의력과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새로 이민온 사람이나 어쩌다 방문한 손님처럼, 낯설고 생소한 시각에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보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항상 기존의 검증된 방식을 답습하며 일을 처리한다.
이는 안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급변하는 시대 변동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하여 도태될 위험이 있다.

혁신적 변화는 다소 실패의 위험은 커지만 큰 성과와 큰 생존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High risk High Return'이다..
현재에 안주하거나 관습적 방법을 따르면서 혁신적 변화를 얻을 수는 없다.
혁신적 변화는 익숙한 일상을 완전히 낯설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뷰자데'적인 접근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뷰자데(vuja de)~~

 

 

**
'창의력'을 도출하는 메커니즘은 '데자뷰적 관점'와 '뷰자데적 관점'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 데자뷰적 관점 :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는 창의력
로이 만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익숙한 것처럼 기존의 것에 가져다 연결한다.
- 뷰자데적 관점 :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창의력
고정관념을 뒤집어 본다. 파괴적 사고(
DisruptiveThinking).

창의적 성과를 두고 그것이 위 두 가지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굳이 구분하여 보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만 사고의 출발이 어떠한가가 중요할 뿐이다.
낯선 것을 만났을 때 그것을 익숙한 것처럼 자신이 가진 문제에 접목할 수 있다면, 데자뷰적 창의력이라 할 수 있고.
항상 익숙한 것을 생소하고 낯선 것처럼 보고 그로부터 해결하여야 할 새로운 문제를 찾거나 다른 통찰을 이끌어낸다면 그것은 뷰자데적인 창의력이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주영의 새만금 물막이 공사는 데자뷰와 뷰자데의 두 가지 관점이 모두 적용되는 경우이다.

 

 

**효빈(效嚬) _ 장자

 

효빈(效嚬) _ 장자

효빈(效嚬) (얼굴 찡그림을 흉내내다) 서시(西施)가 가슴에 병을 앓아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 마을의 추녀가 그녀를 보고 얼굴 찡그림이 아름답다고 여겨, 돌아가 자신도 가슴을 손으로 받

www.dotomari.com

 

** 이도다완(井戶茶碗)

우리나라의 막사발에 불과한 도자기가 일본에서는 일국의 성과도 바꾸지 않는 국보가 되어 있다.
투박하고 거친 이 사발에서 일본인들은 우리가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일본인의 미적 감각이 우리보다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에게는 그 형상과 모양이 너무도 흔하고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지금이라도 식탁에 올려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써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 혹은 길가의 팽개쳐진 개밥그릇으로 쓰이고 있어도 그럴려니 할 것이다.

"일본에서 '이도(井戶)다완'으로 불리는 정호다완은 국내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도(茶道)가 성행한 데 비해 도자기 제작 기술이 떨어졌던 일본이 임진왜란을 전후해 조선 찻사발을 싹쓸이해 간 탓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찻사발을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命)들에게 신임의 증표로 선물하는 '찻잔정치'를 폈고, 다이묘와 무사들은 권력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도다완을 헌납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수많은 조선 도공을 끌고 간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국보, 보물로 지정된 이도다완이 20여 점이나 되고, 민간에서 소장한 이도다완도 300여 점에 이른다. 도요토미의 차(茶) 선생이이자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승려 센노 리큐(千利休)는 조선 찻사발을 보고 "찻잔 안이 마치 작은 옹달샘을 보는 듯하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일본어로 우물이라는 뜻의 '이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이도다완(井戶茶碗), 일국의 성(城)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일본의 국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