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學而/토피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자들

by 변리사 허성원 2026. 5. 27.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자들

프라하 천문시계 600년 전설은 시의원들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더 좋은 시계를 다른 도시에 만들어줄까 두려워 인두를 든 것이다. 이 풍경은 훨씬 오래되었다. 방연은 동문 손빈의 무릎뼈를 도려냈고, 유방과 여후는 한신을 토사구팽했다. 인두를 든 자의 이름은 사라지고 손빈병법은 2200년 뒤 죽간으로 부활했다. 현대도 같다. 골드만삭스의 알레이니코프는 11개월 옥살이로 인생의 9년을 잃었고, 웬 호 리는 9개월 독방 끝에 판사의 사과를 받았다. 한국의 보청기 회사·SK하이닉스 협력업체 사건도 같은 결이다. 표적은 늘 가장 유능한 자이며, 인두의 진짜 목적은 한 사람의 파멸이 아니라 남은 자들에게 떠나면 너희도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다.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위험하다. 사악한 자는 드물고 합리적인 자는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인두는 6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I. 프라하 시청 앞 광장의 오래된 풍경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는 600년 된 천문시계가 있다. 1410년에 설치되었고, 매시 정각마다 죽음의 해골이 줄을 당기고 열두 사도가 차례로 창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안내원은 익숙한 목소리로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그런데 안내원이 잘 하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시계를 만든 장인의 눈을 멀게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설에 따르면 시계공의 이름은 하누슈였다. 그가 너무 훌륭한 시계를 만들자 프라하 시의원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른 도시에 더 좋은 시계를 만들어주면 어쩌나. 프라하의 자랑이 사라지면 어쩌나. 그래서 그들은 어느 밤 사람들을 보내 시계공의 작업장에 침입했고, 그를 붙잡아 뜨거운 인두로 두 눈을 지졌다.

눈을 잃은 시계공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신을 시계 앞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기계의 가장 깊은 곳을 더듬어 핵심 톱니바퀴 하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것을 멈췄다.

시계는 그 후 100년 동안 다시 돌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은 19세기에 만들어진 창작에 가깝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실제 시계공 하누슈가 눈이 멀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600년간 전해졌다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필요로 했다는 뜻이다. 무엇을 필요로 했는가. 재능 있는 자가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풍경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600년 전 프라하 시청의 비밀회의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어느 회사의 법무팀 회의실에서 같은 회의가 열린다. 인두 대신 영업비밀 침해 소장이라는 도구를 들고서.

II. 골드만삭스 vs 알레이니코프 — 1년 11개월의 인두

2009년 여름, 미국 뉴어크 공항에서 한 러시아계 미국인 프로그래머가 체포된다. 이름은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 마이클 루이스의 베스트셀러 『플래시 보이즈』(Flash Boys)에서 그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그가 누구였는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골드만삭스에서 고빈도 거래(HFT, High-Frequency Trading) 소프트웨어를 짜던 핵심 프로그래머다.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정교한 거래 시스템 중 하나를 손으로 만든 사람.

2009년 4월 그는 시카고의 신생 기업 테자 테크놀로지스(Teza Technologies)로 옮기겠다고 알렸다. 그가 받기로 한 연봉은 골드만에서 받던 것의 세 배였다. 골드만은 그를 잡지 않았다. 다만 그가 떠난 직후 조용히 무언가를 시작했다.

알레이니코프는 마지막 출근일에 자신이 그동안 작업한 코드 일부를 독일에 있는 서버에 업로드했다. 그가 나중에 주장한 바로는, 그 안에는 오픈소스 코드와 자신이 짠 코드가 섞여 있었다. 골드만의 진짜 핵심 자산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다.

골드만은 그를 민사로 다투지 않았다. 곧장 FBI에 신고했다. 7월 3일, 그는 시카고에서 테자 동료들을 만나고 뉴어크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체포되었다. 그의 가방에는 골드만 코드가 든 USB가 있었다.

여기서 두 번째 잔혹함이 시작된다. 검찰은 그에게 보석 불허를 구형했다. 이유는 그의 손에 있는 코드가 잘못된 손에 들어가면 시장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사법부가 시장을 조작할 수 있는 무기라고 표현한 그 코드를, 골드만은 입사 2년차 프로그래머에게 맡겨 두었던 셈이다. 마이클 루이스가 책에서 묻는 것이 그것이다. 코드가 그토록 위험하다면, 왜 골드만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보안 시스템을 손보지 않고 FBI를 부르는가.

2010년 12월, 그는 경제스파이법(EEA, Economic Espionage Act) 위반과 주간 도난물품 운송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형량은 8년 1개월. 마흔 살의 프로그래머에게 8년의 감옥.

그는 항소심을 기다리며 11개월을 복역했다.

2012년 2월, 연방 제2순회항소법원은 한 페이지짜리 명령으로 그의 유죄를 뒤집었다. 그가 가져간 코드가 경제스파이법이 정한 영업비밀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법조문이 그의 행위를 처벌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무죄여서가 아니라, 법이 그를 처벌할 도구를 못 갖추고 있어서. 그러나 어쨌든 그는 풀려났다.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연방 검찰청은 그의 컴퓨터, USB, 여권을 돌려주는 대신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넘겼다. 같은 사건을 주법으로 다시 기소하기 위해서다. 8월, 그는 다시 체포된다. 죄명은 비밀 과학자료 부정사용 및 컴퓨터 관련 자료 부정복제. 같은 행위로 두 번째 형사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2015년, 뉴욕주 1심 배심원단은 그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그러나 담당 판사 다니엘 콘바이저가 그 평결을 뒤집었다. 검찰이 그가 비밀자료를 유형적으로 복제했다는 사실과 훔칠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판사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사건의 쟁점들은 결코 쉬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형사법을 입법 절차를 통해 갱신한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어떤 행위가 처벌되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고 해서 피고인을 범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18년, 뉴욕주 최고법원이 다시 한 개 항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결국 이미 복역한 11개월을 형기로 인정받고 추가 처벌 없이 끝났다.

체포에서 최종 판결까지 9년. 그 9년 동안 알레이니코프가 잃은 것을 헤아려보자.

월스트리트 최고 연봉의 프로그래머 자리. 11개월의 자유. 변호사 비용으로 다 갈아 넣은 통장. 그를 채용하려 했던 테자는 그가 체포되자마자 채용을 철회했다. 그 후 9년 동안 그를 핵심 자리에 앉히려는 회사는 없었다. 그의 이름은 경제스파이법 사건의 피고인으로 검색 결과 상단에 영구히 박혔다. 결혼생활은 깨졌다.

그는 결국 자신의 변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기부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다. 한때 골드만삭스 최고 연봉의 프로그래머였던 사람이다.

알레이니코프 본인의 변호사가 항소심 후 한 발언이 모든 것을 요약한다. 알레이니코프에 대한 위헌적이고 악의적인 기소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재능 있는 직원 중 한 명이 회사를 떠난 것을 처벌하려는 영향력 있는 기업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과 잠재적 직원들에게 골드만삭스가 미국 형사사법체계를 자기 회사의 사적 집행기관으로 이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메시지다. 알레이니코프 한 명을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를 통해 나머지 모든 골드만 프로그래머에게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떠나면 너희도 이렇게 된다.

시의원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진짜 이유와 정확히 같다. 시계공 한 사람의 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장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III. 웬 호 리 — 9개월 독방의 인두

비슷한 시기, 미국의 다른 한쪽에서는 더 잔혹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1939년 대만 출생, 미국 국적의 핵물리학자 웬 호 리(Wen Ho Lee). 20년 넘게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에서 핵무기를 설계해온 과학자였다.

1999년 3월 6일, 뉴욕타임스가 1면 머리기사로 로스앨러모스의 어느 스파이가 미국 핵무기 W-88의 설계를 중국에 넘겼다는 폭로 기사를 실었다. 이틀 뒤, 같은 신문이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는 그날 즉시 연구소에서 해고되었다.

검찰은 그를 핵 스파이 혐의로 기소하려 했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결국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제한 정보를 비제한 시스템에 다운로드한 59개 죄목이었다. 백업 파일을 만든 행위였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인두였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23시간 독방 수감에 처해졌다. 하루 한 시간의 운동 시간에도 발에 족쇄를 채워야 했다. 비밀 누설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가족 면회 때 중국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환갑이 다 된 그의 어머니가 그를 만나러 왔을 때, 둘은 어머니가 모르는 영어로만 대화해야 했다.

이 상태로 9개월이 흘렀다.

결국 2000년 9월, 정부는 59개 죄목 중 1개에 대한 유죄 인정과 나머지 58개 죄목 취하로 형량 합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풀려났다.

석방 당일, 담당 판사 제임스 파커(James Parker)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이 사건 처리 방식은 우리나라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박사, 행정부에 의해 부당하게 구금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판사가 직접 사과한 사건이다. 그러나 사과가 그가 잃은 것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20년의 핵물리학자 경력. 9개월의 자유. 어머니와 영어로만 대화해야 했던 면회 시간들. 그리고 국가 안보의 위협자라는 이름표. 이 이름표가 신문 1면에 박힌 순간, 그는 다시는 미국의 어느 연구소에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회상록 『나의 조국이 나를 적으로 삼다』(My Country Versus Me)에서 한 가지를 짚는다. 나는 평생을 핵무기를 만드는 데 바쳤다. 그 무기로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그 나라를 위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웬 호 리 사건은 영업비밀의 영역이 아닌 국가안보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메커니즘은 완전히 같다. 재능 있는 자를 모호한 혐의로 묶어둔다. 진짜 영업비밀 침해 또는 진짜 스파이 행위인지는 부차적이다. 묶어두는 동안 그는 일을 못 한다. 풀려나도 그의 이름에는 영구히 의심의 그림자가 남는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가 표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대만계 미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로스앨러모스에는 같은 자료에 접근권을 가진 다른 과학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가장 약한 자가 표적이 된다. 시의원들이 시계공을 표적으로 삼은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다.

IV. 한국의 풍경 — 보청기 회사의 영업과장

미국 사례가 멀게 느껴진다면 한국으로 와보자.

2008년, 한 30대 영업맨이 독일계 보청기업체 한국지사에 입사했다. 영업부 과장까지 올라간 7년 차에 그는 퇴사를 결심한다. 함께 일해온 동료 5명과 같이 옮기기로 했다. 새 직장은 경쟁사 S사.

그는 퇴사 당시 자신이 관리해온 자료들을 USB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3개년 사업전략 파일, 매출액·영업이익·마케팅 예산 파일, 브랜드별·월별 매출액과 판매 단가 자료. 7년간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회사의 영업 자산이기도 했다.

전 직장은 그를 영업비밀 침해와 업무상 배임으로 형사 고소했다. 그뿐 아니라 함께 옮긴 동료 5명, 그리고 그들이 이직한 S사까지 모두 기소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결론은 갈렸다. 그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함께 옮긴 동료 5명과 S사에는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동료들이 가져간 자료가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았다.

이 판결의 어느 면을 봐도 합리적이다. 자료를 직접 가져간 사람만 유죄, 그렇지 않은 동료들은 무죄. 법리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무죄가 선고된 그 5명의 입장에서 사건을 다시 보자.

그들은 단지 같이 직장을 옮겼을 뿐이다. 자료 유출은 한 사람의 행위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의 피의자가 되어 경찰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 송치되었고, 법정에 섰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의 새 직장 생활은 어땠을까. 이직한 S사는 직원이 기소된 회사가 되어 사업적 부담을 졌다.

판결 한 줄로 무죄가 되었지만, 그동안 잃은 시간은 돌려받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S사가 그 후 이 업계에서 위험한 회사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이다. 인재를 영입하면 형사 사건이 따라온다. 다음에 보청기 업계에서 누가 옮기려 할 때, S사로 옮기는 것이 어떤 신호로 읽힐까. 떠나려는 자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알레이니코프 변호사가 한 말이 여기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떠나면 너희도 이렇게 된다.

V. SK하이닉스 협력업체 M사 — 10년 동반자의 변신

가장 미묘한 결의 사례는 SK하이닉스 협력업체 M사 사건이다.

2023년 9월, 1심 재판부는 M사의 연구소장, 영업그룹장, 품질그룹장, 기술팀장 등 다수에게 영업비밀 누설과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도 가볍지 않았다. 연구소장과 영업그룹장은 각 징역 1년 6개월에 벌금 3000만 원. 품질그룹장은 징역 1년 집행유예. 기술팀장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여기까지는 평범한 영업비밀 침해 사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은 M사가 어떤 회사였는가에 있다.

M사는 현대전자 시절부터 SK하이닉스와 10년 이상 함께 반도체 세정장비를 공동개발하고 납품해온 협력업체였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일본·미국 장비에 의존하던 시절, 국산화라는 목표 아래 두 회사가 손을 잡고 만들어온 파트너십이었다.

10년이다. 10년 동안 M사의 엔지니어들은 SK하이닉스 이천 사업장 D램 제조라인을 자기 작업장처럼 드나들었다. 함께 회의하고, 함께 시행착오를 겪고, 함께 문제를 풀었다. 그 과정에서 SK하이닉스의 기술 정보가 M사 엔지니어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쌓였다. 나누어 받은 것인지 얻어낸 것인지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문제는 2017년 무렵 발생했다. M사가 중국 반도체 제조사와 컨설팅 회사에 세정장비 수출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SK하이닉스의 세정공정 양산 레시피가 함께 흘러갔다.

여기서 어느 한 시점에 동반자가 침해자로 바뀌었다. 10년 동안 신뢰 관계 속에서 흐른 정보가 어느 순간 영업비밀 무단유출로 분류된다. 그 경계가 어디였는지를 정한 것은 검찰과 법원이다.

M사 임직원들의 입장에서 보자. 그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기술이 어디까지가 자기 것이고 어디까지가 SK하이닉스의 것인지를 십 년 동안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일해왔다.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것은 SK하이닉스의 영업비밀이었다는 판결을 듣게 된다.

이것이 한국 산업 생태계의 특수한 인두다. 미국식 순수한 영업비밀 절도가 아니다. 협력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 모호함의 불리한 쪽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형사처벌을 받는다.

10년의 동반자였던 사람들에게 판결문은 묻는다. 너는 도둑인가, 아니면 함께 만든 자인가. 법은 도둑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그 답이 그동안의 10년을 부정할 수는 없다.

VI. 인두의 원형 — 손빈과 한신

여기서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계공 전설이 600년을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600년 전 처음 등장한 풍경이어서가 아니다. 훨씬 더 오래된 패턴의 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인두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도구와 명분만 시대마다 갈아입었을 뿐.

손빈(孫臏) — 방연이 자기 손으로 키운 적

전국시대의 손빈과 방연(龐涓)은 귀곡자(鬼谷子) 문하의 동문이었다. 방연이 먼저 위(魏)나라에 출사해 장군이 되었다. 그는 손빈의 재능이 자기보다 위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손빈을 위나라로 초빙했다. 함께 일하자는 명목으로.

위나라에 도착한 손빈에게 방연이 한 일은 무엇인가. 모함하여 *빈형(臏刑)*에 처하게 했다. 무릎뼈를 도려내는 형벌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형벌. 동시에 얼굴에 죄인의 표식을 새기는 경형(黥刑)까지 더했다.

방연의 계산은 정확했다. 죽이면 위나라가 인재를 죽였다는 평판이 천하에 돈다. 그러나 살려두되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면, 그는 영원히 위나라 안에서만 머문다. 자기 발로 도망갈 수 없고, 다른 나라가 데려가도 불구가 된 인재다.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시의원들의 계산과 정확히 같다.

그런데 손빈은 도망쳤다. 제(齊)나라 사신의 수레 밑에 몸을 숨겨서. 그리고 십여 년 뒤 마릉(馬陵) 전투에서 방연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방연은 그 자리에서 자결하며 한 마디를 남겼다.

遂成豎子之名(마침내 그놈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하는구나).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적힌 이 한 줄이 모든 것을 요약한다. 방연이 그날 손빈의 다리를 자르지 않았다면, 손빈의 이름은 천하에 떨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두를 든 자가 자기 손으로 자기 적을 만든 가장 완벽한 사례다.

2200년이 흐른 지금, 손빈의 병법은 *손빈병법(孫臏兵法)*이라는 이름으로 군사학 교재가 되어 있다. 1972년 산둥성 임기(臨沂)의 한 무덤에서 죽간으로 출토되었다. 무릎이 도려내진 사람이 쓴 책이 220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방연의 이름은 오직 손빈의 적으로만 남아 있다.

한신(韓信) — 토사구팽의 원형

방연-손빈이 동료 사이의 인두라면, 한신은 주군이 든 인두의 가장 유명한 사례다.

한신은 유방(劉邦)이 항우를 꺾고 한(漢) 제국을 세우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그러나 천하가 평정된 직후 그의 재능은 위협으로 바뀌었다. 그가 다른 진영으로 갈 가능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언제든 다른 진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유방은 그를 초왕(楚王)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켰고, 결국 여후(呂后)와 소하(蕭何)의 모의로 장락궁(長樂宮)에서 죽였다. 소하가 천거한 자를 소하가 죽인 사건이다. 한신이 죽기 직전 남긴 말이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원문이다.

狡兔死良狗烹 高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사냥개를 삶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며, 적국이 깨지면 모신은 망한다).

한신의 비극은 적에게 갈 가능성조차 아니다. 적이 될 가능성이다. 이쯤 되면 인두를 드는 동기가 두려움이 아니라 근본적 무능에 가까워진다. 자기보다 능력 있는 자와 공존하는 법을 모르는 통치자의 한계다. 능력 있는 자를 옆에 둘 그릇이 없으면 그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유방은 천하를 얻었지만 한신을 죽인 황제로 기억된다. 한신은 죽었지만 *국사무쌍(國士無雙)*과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그를 죽인 황후 여씨(呂氏)의 이름은 외척 발호의 시작으로만 기억된다.

두 인물이 가르치는 것

손빈과 한신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인두를 드는 자의 동기는 결국 자기 무능에 대한 자백이다.

방연은 손빈과 공동 작전을 짤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망가뜨렸다. 유방은 한신을 옆에 둘 그릇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죽였다. 골드만의 어느 임원은 알레이니코프에게 더 좋은 자리를 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형사 고소했다. 보청기 회사의 누군가는 영업맨에게 떠나지 않을 이유를 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기소했다.

머물게 할 능력, 함께 일할 능력, 옆에 둘 그릇. 이 세 가지가 없는 자가 인두를 든다. 그리고 인두를 든 순간 그는 자기에게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자백한다.

2000년 전에도 그랬고 600년 전에도 그랬다. 2009년 뉴어크 공항에서도 그랬다.

VII. 어리석은 경영자의 자백

이상의 사건들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첫째, 표적이 되는 것은 무능한 자가 아니라 유능한 자다. 손빈은 방연이 자기보다 뛰어남을 알았던 동문이었다. 한신은 유방이 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 자였다. 알레이니코프는 골드만 최고의 프로그래머였다. 웬 호 리는 20년 경력의 핵물리학자였다. 보청기 회사의 그는 주도적으로 동료들을 이끌고 옮긴 영업과장이었다. M사의 임직원들은 10년 동안 SK하이닉스가 신뢰한 협력업체의 핵심 인력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그 회사가 가장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인두가 든 것이다. 둔감한 자, 평범한 자에게는 인두를 들지 않는다. 떠난 자리가 비어도 표가 잘 안 나니까.

둘째, 회사는 잃을 게 거의 없다. 골드만이 알레이니코프 사건에서 잃은 것은 변호사 자문료 정도다. 한국의 보청기 회사가 잃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알레이니코프는 인생의 9년을 잃었다. 보청기 회사 동료들은 무죄였음에도 기소된 자로서 몇 년을 견뎌야 했다. 비대칭 무기다.

셋째, 진짜 영업비밀은 잘 다투지 않는다. 진짜 핵심 기술은 회사가 변론기일에 공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진짜 영업비밀에 대한 소송은 차라리 합의로 끝낸다. 정작 소송이 걸리는 것은 모호한 것들이다. 사업전략 파일, 매출 자료, 거래처 리스트, 함께 개발한 공정 노하우. 모호하기에 끌 수 있고, 끌리는 동안 표적이 망가진다. 회사가 원하는 결과는 그 망가짐이다.

넷째, 결과보다 과정이 형벌이다. 알레이니코프는 결국 두 번 다 무죄에 가까운 결말을 봤다. 웬 호 리는 판사가 사과까지 했다. 보청기 회사 동료들도 무죄였다. M사 사건은 협력관계의 미묘함을 법정에서 따져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은 모두 망가졌다. 진짜 형벌은 판결문이 아니라 판결까지 가는 시간이다.

다섯째, 가장 본질적인 사실. 인두의 진짜 목적은 그 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남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한신을 죽인 여후의 진짜 목적도 한신 한 사람의 제거가 아니었다. 그 후 다른 공신들이 공이 커도 황제에게 도전할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알레이니코프 변호사의 말처럼, 떠나면 너희도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 시의원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것도 정확히 같은 이유였다. 시계공 한 사람의 시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장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기서 어리석은 경영자의 자백이 드러난다.

나는 저 사람을 머물게 할 능력이 없다. 그러니 떠난 자를 본보기로 만들어 다른 자들이 떠나지 못하게 하자.

머물게 할 능력이 있는 자는 본보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 더 좋은 문제를 주고, 더 좋은 동료를 붙여준다. 본보기를 만드는 자는 그 어느 것도 줄 수 없는 자다.

VIII. 600년 후에 남는 것

지금 프라하 광장 앞에 모인 관광객 중에 시의원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어느 가문이었는지, 어떤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그날 밤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남은 것은 시계뿐이다.

그리고 눈먼 시계공의 이야기뿐이다.

언젠가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 보이즈』가 한 세대를 더 살아남으면, 사람들은 골드만삭스의 분기 실적은 기억하지 못해도 알레이니코프라는 이름은 기억할 것이다. 웬 호 리 사건은 이미 미국 사법사의 한 장으로 남았다. 누가 그를 기소했는지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가 부당하게 9개월을 독방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만 남았다.

한국의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보청기 회사가 어느 영업맨을 기소했는지, M사 임직원들에게 누가 칼을 들었는지. 지금은 그 회사의 임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 부르고 있지만, 30년이 흐른 뒤 업계는 그들을 시의원의 후예로 기억할 것이다.

손빈의 무덤에서 출토된 죽간이 2200년 만에 손빈병법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한신의 토사구팽은 2200년이 지나도 공이 큰 신하를 죽인 군주의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로 살아 있다. 방연과 유방이 인두를 든 그 순간에는 합리적 결정이었을 것이다. 위나라의 군사적 우위를 위해서, 한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 그러나 2200년 후 후세는 그 합리성을 어리석음으로 다시 분류했다.

권력은 단명하고 작품은 길게 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권력이 작품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가장 길게 산다. 시의원들의 정치적 업적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비열함은 600년째 전해진다. 방연의 군사적 공적도 사라졌지만 그가 동문의 무릎뼈를 도려냈다는 사실은 2200년째 전해진다.

어리석은 경영자가 가장 모르는 것이 이것이다.

분기 실적은 한 분기를 간다. 영업비밀 소송의 승소 한 건은 그 분기 평가 자료에 한 줄로 올라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업계의 기억은 그가 그 자리에 있는 한 평생 간다. 한 명을 부당하게 다룬 회사는 그 한 명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오려던 열 명을 잃는다. 업계는 좁고, 기억은 길다.

IX.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인두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위험한 단어다.

프라하 시의원들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시계공이 다른 도시에 더 좋은 시계를 만들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을 막는 것은 프라하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다. 눈을 멀게 만드는 인두는 그 합리성의 결론이었다.

골드만삭스의 결정도 합리적이었고, 한국의 보청기 회사 결정도 합리적이었다. 코드와 매출 자료가 빠져나가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을 막는 것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다. 형사 고소는 그 합리성의 결론이었다.

모든 인두에는 결재란이 있다. 누군가 서명하고, 누군가 집행한다.

가장 차가운 진실은 이것이다. 인두는 사악한 자가 들지 않는다. 합리적인 자가 든다. 사악한 자는 드물고 합리적인 자는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인두는 6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시의원의 이름은 사라졌고 시계공의 이야기만 600년째 남았다. 인두를 든 자는 자기가 무엇을 후세에 남기는지 모른다. 그가 지킨 줄 알았던 도시의 평판은 그가 지은 건물이나 그가 거둔 세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가 떠나보낸 시계공이 만든다.

시계가 100년 동안 멈춘 것은 시계공이 그것을 멈춰서가 아니다. 그 광경을 본 다른 시계공들이 그 도시에 발을 들이지 않아서다. 인두의 진짜 비용은 청구서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600년을 간다.

당신의 회의실에서는 지금 누가 인두를 들고 있는가..

프라하 구시가지 시청 벽에 걸린 600년 된 시계의 모습. 아래쪽 큰 원반이 천문 다이얼로 해와 달의 위치, 황도 12궁을 동시에 보여주는 핵심 기구이고, 위쪽 작은 원반이 달력 다이얼이다. 매시 정각마다 위쪽 두 창이 열리면서 열두 사도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고, 오른편의 해골 인형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