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인간을 어떻게 몰아세우는가? _ 하이데거
(*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본질을 '몰아세움(Gestell)'이라고 하였다. 고전적 의미의 기술은 사물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돕는 역할을 했지만, 현대 기술은 자연을 닦달하여 에너지를 추출하고 저장하며 분배하는 도발적 요청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전환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틀을 변화시켰으며, 모든 존재자를 오직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대기하는 부품(Bestand)으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이데거는 효율 중심의 계산적 사유에서 벗어나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명상적 사유'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내맡김(Gelassenheit)'의 자세를 제안한다. 예술은 존재의 진리를 작품 속에 정립함으로써 기술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구원의 통로가 된다.)
현대 기술의 본질로서의 몰아세움(Gestell)과 존재론적 역운에 관한 심층 연구
서론: 기술에 대한 물음과 존재의 지평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후기 철학에서 현대 기술에 대한 성찰은 단순한 문명 비판이나 도구주의적 관점을 넘어선다.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이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이를 존재가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는 특정한 방식인 탈은폐(Entborgenheit)의 역사적 사건으로 파악한다.1 그에게 현대 기술은 인간이 임의로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서구 형이상학이 완성 단계에 이르러 도래한 존재의 역운(Seinsgeschick)이다.3 이러한 존재론적 지평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바로 몰아세움(Gestell)이다. 몰아세움은 현대 기술 시대를 관통하는 존재의 근본적인 명령이자,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주문하는 전체적인 강제 구조를 의미한다.3
현대 기술에 대한 하이데거의 물음은 "기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적 질문에서 출발하여, "기술이 어떻게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탐구로 이행한다.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e)에서 현대 기술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존재자가 비은폐성 속으로 들어오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한다.6 고전적 의미의 기술이 사물을 스스로 드러나게 돕는 산출(Poiesis)의 성격을 가졌다면, 현대 기술은 자연을 닦달하여 에너지를 추출하고 저장하며 분배하는 도발적 요청(Herausfordern)의 성격을 띤다.1 이러한 전환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틀을 변화시켰으며, 모든 존재자를 오직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대기하는 부품(Bestand)으로 전락시켰다.2
본 보고서는 하이데거가 제시한 몰아세움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기술의 본질을 분석하고, 이것이 인간의 사유 방식과 존재 양식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특히 몰아세움이 초래하는 최고의 위험과 그 안에서 싹트는 구원의 가능성, 그리고 인공지능(AI)과 데이터화로 상징되는 현대 디지털 문명에서의 몰아세움의 변용을 심층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기술 시대의 존재론적 위기를 진단하고, 새로운 사유의 길인 명상적 사유와 내맡김(Gelassenheit)의 의미를 복원하고자 한다.10
몰아세움(Gestell)의 어원적 기원과 철학적 정의
하이데거는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기 위해 일상적인 독일어 단어를 고유한 철학적 의미로 변형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몰아세움으로 번역되는 'Gestell'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독일어에서 Gestell은 선반, 안경테, 책꽂이와 같이 무언가를 받쳐주거나 고정하는 '틀' 혹은 '구조물'을 의미한다.2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 단어의 어근인 'stellen'(세우다, 놓다)과 집합적 의미를 나타내는 접두사 'Ge-'(모음, 집약)를 결합하여 독창적인 개념을 창출한다.2
이 개념적 구성에서 'stellen'은 단순히 사물을 물리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넘어, 존재자를 인간의 계획과 주문 아래로 '끌어다 세움'을 의미한다. 여기에 'Ge-'가 붙음으로써, 이러한 세움의 행위가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전체적인 '집약적 힘'임을 나타낸다.2 따라서 몰아세움은 인간이 사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주문하며, 활용하도록 강제하는 '도발적 요청의 총체적 구조'라고 정의할 수 있다.2 하이데거는 이를 통해 현대 기술의 본질이 장치들의 집합이 아니라, 존재자가 현시되는 특정한 '방식'임을 강조한다.2
| 용어적 구성 요소 | 일상적 의미 | 하이데거의 철학적 전유 | 존재론적 기능 |
| Stellen | 놓다, 세우다, 배치하다 | 닦달함, 주문함, 도발함 | 존재자를 부품으로서 고정함 8 |
| Ge- (Prefix) | 집합, 모음 (예: Gebirge) | 집약, 전체성, 운명적 보냄 | 기술적 탈은폐의 체계화 5 |
| Gestell | 틀, 선반, 구조물 | 몰아세움, 기획적 틀씌움 | 현대 기술의 본질적 지평 2 |
하이데거의 몰아세움은 인간의 주관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역운(Geschick)에 속한다. 'Geschick'이라는 단어는 '보낸다'는 의미의 'schicken'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존재가 역사의 각 시기마다 인간에게 특정한 탈은폐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13 현대 기술 시대에 존재는 인간을 몰아세움이라는 길로 '집약하여 보낸다'. 인간은 이 보냄에 응답하여 자연을 도발하고 자원으로 변형시키지만, 정작 자신이 이러한 거대한 역운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8 따라서 몰아세움은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특정한 사유와 행동의 방식으로 몰아넣는 존재론적 강제력이다.10
산출(Poiesis)에서 도발적 요청(Herausfordern)으로의 전환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특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기술 개념인 테크네(techne)와 대비시킨다. 그리스인들에게 기술은 무언가를 '가져와-앞에-놓음'(Her-vor-bringen)인 산출(poiesis)이었다.6 이는 감추어져 있던 것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 통로를 열어주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목수가 나무로 의자를 만드는 것은 나무라는 재료가 가진 잠재적 형상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현존하게 하는 보살핌의 과정이다.6
그러나 현대 기술은 이러한 산출의 방식을 버리고 '도발적 요청'(Herausfordern)의 방식을 취한다.1 현대 기술은 자연이 스스로의 리듬에 따라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대신 자연을 향해 숨겨진 에너지를 내놓으라고 무리하게 요구하고 닦달한다.1 이러한 도발은 자연을 고유한 내적 목적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가공하고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의 저장고'로 탈바꿈시킨다.2 하이데거는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과거의 풍차는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다. 풍차는 바람의 에너지를 강제로 추출하지 않으며, 바람이 불 때만 그 힘을 이용한다. 즉,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방식이다.8 반면, 라인강에 세워진 수력 발전소는 강물을 가두고 수압을 조절하여 터빈을 돌린다. 여기서 강은 더 이상 스스로 흐르는 자연이 아니라, 전기 생산을 위한 '수압의 공급원'으로 도발된다.1 강은 발전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며, 그 고유한 존재론적 신비는 전력량이라는 수치 뒤로 은폐된다.1
| 탈은폐의 방식 | 산출 (Poiesis) | 도발적 요청 (Herausfordern) |
| 시대적 배경 | 고대 및 중세 (Pre-modern) | 현대 기술 시대 (Modern Technology) |
| 자연과의 관계 | 상생, 보살핌, 기다림 | 정복, 착취, 강요 1 |
| 에너지 이용 | 흐름에 맡김 (예: 풍차) | 추출, 저장, 분배 (예: 발전소) 8 |
| 존재의 지위 | 작품, 도구, 자립적 사물 | 부품 (Bestand), 자원 2 |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기술적 효율성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를 대하는 근본 태도가 '수용'에서 '지배'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몰아세움은 이러한 도발적 요청이 체계화되고 고착화된 상태를 의미하며, 이 틀 안에서 모든 존재자는 오직 인간의 '주문'(Bestellen)에 의해서만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8 존재자는 이제 인간 앞에 마주 서서 자신을 주장하는 대상(Gegenstand)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름에 따라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대기 상태의 자원이 된 것이다.8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과 현대 기술에서의 변용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Causa materialis, formalis, finalis, efficiens)을 소환하여 현대 기술이 이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전통적인 제작 행위에서 이 네 가지 원인은 사물이 비은폐성 속으로 들어오도록 돕는 공동의 책임 관계에 있었다.7 하이데거가 예로 든 은배(silver chalice) 제작 과정을 통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
- 질료인(Causa materialis): 은배를 만드는 재료인 은(silver).7
- 형상인(Causa formalis): 은배가 갖추어야 할 잔의 모양.7
- 목적인(Causa finalis): 제례용이라는 은배의 용도.7
- 작용인(Causa efficiens): 이 모든 원인을 조화시켜 은배를 완성하는 장인.7
전통적인 제작에서 장인(작용인)은 재료를 강제로 굴복시키는 지배자가 아니라, 질료와 형상과 목적이 한데 어우러져 사물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조력자였다.7 그러나 몰아세움이 지배하는 현대 기술의 맥락에서 4원인의 유기적 관계는 해체된다. 특히 '작용인'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현대 기술에서 작용인은 더 이상 사물의 본질을 보살피는 장인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원을 배치하고 제어하는 '기술적 시스템' 자체로 대체된다.4
현대 기술 하에서 질료인은 더 이상 고유한 성질을 가진 물질이 아니라, 교체 가능한 원자재나 에너지량으로 수치화된다. 형상인은 시스템의 표준화된 규격에 종속되며, 목적인은 오직 '무한한 생산과 소비'라는 시스템적 가용성으로 수렴된다.8 하이데거는 이러한 변용을 통해 현대 기술이 사물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Thing)이 아니라, 주문에 따라 생산되고 폐기되는 '현품'(Bestand)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2 기술적 질서 속에서 사물은 더 이상 독자적인 장소(place)를 갖지 못하고, 오직 효율적 흐름 속에서의 위치(position)만을 갖게 된다.8
이러한 4원인의 변용은 인간의 역할 역시 변화시킨다. 인간은 자신이 기술적 과정을 설계하고 원인을 제공하는 주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몰아세움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인자'로 편입되어 있다.8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상을 "인간이 이미 닦달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닦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현대 기술의 작용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존재의 역운으로서의 몰아세움임을 명확히 한다.8
부품(Bestand, Standing-Reserve)의 논리와 가용성의 독재
하이데거의 기술 철학에서 몰아세움의 직접적인 산물이자 현상적 결과물이 바로 '부품'(Bestand)이다. 영문권에서는 이를 'Standing-Reserve'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무언가가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중에 쓰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를 완벽하게 묘사한다.2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 시대에 존재자가 더 이상 우리 앞에 마주 서서 자신을 드러내는 '대상'(Object)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상은 여전히 자립성을 지니며 우리에게 맞설 수 있지만, 부품은 시스템의 부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자립성을 상실한 상태다.8
부품의 논리는 모든 존재자를 '가용성'(availability)과 '교체 가능성'(replaceability)이라는 잣대로 평가한다. 사물은 이제 그 나름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나 역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시스템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존재 의미가 결정된다.5 하이데거는 이러한 부품화의 과정을 몇 가지 상징적인 사례를 통해 고발한다.
- 에너지 원천으로서의 자연: 산은 더 이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지의 현현이 아니라, 목재 생산량이나 광석 매장량으로 환원된 부품이다.2
- 석탄과 전력: 채굴된 석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돌이 아니라, 열량을 공급하기 위해 저장된 에너지 뭉치다. 전기는 전선망을 통해 흐르며 언제든 스위치만 올리면 사용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전형적인 부품이다.2
- 운송 수단으로서의 비행기: 활주로에 대기 중인 비행기는 자율적인 기체가 아니라, 운송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특정 위치에 배치된 부품이다. 그것은 오직 운송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그 목적이 사라지면 즉시 폐기되거나 교체된다.2
| 존재 양식 | 대상 (Gegenstand) | 부품 (Bestand) |
| 특징 | 인간 주관에 맞서 자립적으로 현존함 | 시스템의 주문에 따라 대기함 8 |
| 가치 기준 | 본질, 형상, 고유성 | 효율, 에너지량, 가용성 5 |
| 인식의 틀 | 관조, 표상, 이해 | 주문, 제어, 저장 2 |
| 사례 | 횔덜린의 시 속의 라인강 | 수력 발전소의 에너지원으로서의 강 1 |
이러한 부품화의 논리는 '가용성의 독재'를 초래한다. 현대인들은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사용 가능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기다림이나 신비의 여지를 참지 못한다.5 몰아세움은 세상을 거대한 편의점이나 창고처럼 보이게 만들며, 그 안에서 사물들은 자신의 영혼을 잃고 오직 기능적 역할만을 수행한다.5 하이데거는 이러한 부품화가 극에 달했을 때, 인간 역시 이 논리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경고한다.8
인적 자원(Human Resource)과 인간의 부품화
몰아세움의 가장 섬뜩한 측면은 자연을 부품화하는 논리가 인간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다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인적 자원'(Human Resources)으로 불리는 현상을 기술 시대의 본질적 징후로 파악한다.6 과거에 노동은 인간의 인격적 활동의 발로였으나, 몰아세움의 체제 아래서 인간은 특정한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 단위' 혹은 '기능적 인자'로 간주된다.6
인간은 자신이 기술을 주문하고 통제하는 주체라고 착각하지만, 하이데거는 인간 또한 이미 몰아세움이라는 역운에 의해 '주문된 자'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질서가 요구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최적화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8
- 노동의 자원화: 기업의 인사 부서가 '인적 자원부'로 명칭을 바꾼 것은 인간을 가용 자산으로 보는 시각의 고착화를 의미한다.6
- 임상 시험의 자원: 의료 기술의 발전을 위해 인간의 신체는 실험 데이터나 생물학적 원료(현품)로 취급되기도 한다.8
- 자기 도발적 요청: 현대인은 휴가조차 '재충전'이라는 명목으로, 즉 나중에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부품 정비의 시간으로 활용하도록 스스로를 도발한다.5
이러한 인간의 부품화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마저 무너뜨린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지배하는 주체라고 믿지만, 그 지배의 논리인 몰아세움이 인간을 지배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지배하려 했던 부품들과 동일한 위상을 갖게 된다.7 인간이 모든 존재자를 부품으로 몰아세울 때, 인간 역시 몰아세움의 전체 구조 속에서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8 하이데거는 이를 인간 본질의 상실이자, 존재론적 고향 상실(homelessness)의 극치라고 진단한다.8
최고의 위험(Die höchste Gefahr): 존재의 은폐와 망각
하이데거는 몰아세움을 단순히 문명의 부작용이 아니라 '최고의 위험'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물리적 파괴(핵전쟁, 환경 파괴 등) 때문이 아니다. 진정한 위험은 몰아세움이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은폐한다는 데 있다.2
몰아세움은 탈은폐의 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탈은폐라는 사실 자체를 숨긴다. 즉, 기술적-계산적 시각이 세계를 보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위장하여, 인간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14 하이데거는 이 위험의 양상을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첫째, 몰아세움은 존재자를 오직 부품으로서만 나타나게 함으로써, 존재자가 가진 풍성한 의미와 신비를 말살한다. 시적, 예술적, 종교적 탈은폐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사장된다.10 둘째, 인간은 자신이 존재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자신이 존재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는 존재라는 본질을 망각한다.7 인간이 모든 것을 주문하고 배치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존재의 진리로부터 가장 멀어지게 된다.13
| 위험의 층위 | 내용 | 존재론적 결과 |
| 존재자의 위기 | 모든 존재자가 부품으로 전락함 | 사물의 고유한 현성(Thingness) 상실 8 |
| 진리의 위기 | 계산적 확실성만이 진리로 간주됨 | 탈은폐의 다른 가능성(예: 예술)의 차단 14 |
| 인간의 위기 | 인간이 기술의 부품으로 전락함 | 존재의 파수꾼으로서의 본질 상실 8 |
| 최고의 위험 | 위의 모든 사실이 은폐됨 | 존재 망각의 고착화 및 구원 가능성 차단 13 |
이러한 최고의 위험은 인간이 더 이상 "질문하는 자"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이미 기술적으로 답이 정해져 있으며, 인간은 오직 주어진 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기능인이 된다.18 하이데거는 이러한 사유의 정지 상태를 '사유 없음'(thoughtlessness)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현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실존적 위협이라고 경고한다.11
계산적 사유(Calculative Thinking)의 독재와 명상적 사유의 필요성
몰아세움의 지배는 인간의 사유 방식을 '계산적 사유'(rechnendes Denken)로 획일화한다. 계산적 사유는 현대 과학, 경제, 행정의 토대가 되는 사유로, 수치화, 효율성, 유용성만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한다.21 이 사유는 결코 멈추지 않으며,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한 계획과 조직에만 몰두한다.11 계산적 사유는 모든 것을 '문제'로 보고 그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데 급급하며, "왜 그러한가"라는 의미의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11
하이데거는 이에 대비하여 '명상적 사유'(besinnliches Denken)를 제안한다. 명상적 사유는 사물의 의미와 존재의 진리에 대해 숙고하는 사유이다.11 이는 현실을 도피하거나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주변에 현존하는 사물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이다.11 하이데거는 현대인이 사유의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명상적 사유를 방치하고 오직 계산적 사유에만 매몰되어 '사유로부터 도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11
명상적 사유는 "지금 여기(hic et nunc)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의 의미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11 기술적 장치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다.11 이러한 사유는 계산적 사유처럼 즉각적인 결과나 유용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부가 씨앗이 자라기를 기다리듯,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인내를 요구한다.11
하이데거는 계산적 사유가 현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사유의 유일한 표준이 될 때 인간은 존재론적 빈곤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0 진정한 사유는 계산을 멈추고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는 '내맡김'(Gelassenheit)의 자세에서 완성된다.10 명상적 사유를 회복하는 것은 기술의 독재로부터 사유의 자유를 되찾고,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11
21세기 디지털 몰아세움: 인공지능(AI)과 데이터화
하이데거의 몰아세움 개념은 21세기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중심의 사회 구조를 분석하는 데 있어 탁월한 선견지명을 제공한다. 오늘날의 '데이터화'(datafication)는 인간의 경험, 감정, 관계까지도 부품화하여 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몰아세움의 고도화된 형태이다.15 구글, 메타와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인간의 일상적인 온라인 활동을 '행동 잉여'라는 이름의 원료로 수집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6
이 맥락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기술의 사용자가 아니라 AI 시스템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데이터 가축' 혹은 '서서 기다리는 예비 자원'이 된다.15 AI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창의적 활동과 의사결정까지 대체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기술적 프레임 안으로 몰아넣는다.15 이는 하이데거가 우려했던 "인간이 자기 자신을 부품으로 취급하게 되는" 상황의 구체적 발현이다.15
| 디지털 기술 요소 | 하이데거적 해석 (Gestell) | 존재론적 영향 |
| 빅데이터 | 인간 경험의 부품화 (Bestand) | 삶의 신비와 고유성의 정보화 15 |
| AI 알고리즘 | 계산적 사유의 자동화 및 최적화 | 명상적 사유의 기회 박탈 15 |
| 감시 자본주의 | 인간 행동의 도발적 요청 (Herausfordern) | 인간 주체의 시스템 종속 6 |
| 플랫폼 경제 | 가용성의 극대화 (On-demand) | 모든 존재자의 즉각적 부품화 5 |
디지털 몰아세움은 인간의 내면 세계까지도 정량화하고 조작하려 든다. 우리의 좋아요, 클릭, 체류 시간은 계산적 사유의 원료가 되어 우리를 다시 기술적 질서에 가두는 도구로 환류된다.15 하이데거가 경고했듯, 이 체제 내에서 인간은 자신이 시스템을 통제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의 주문에 따라 행동하는 부품으로 기능할 뿐이다.8 인공지능 시대의 몰아세움은 인간을 '데이터 세트'로 환원함으로써, 존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의 감수성을 메마르게 한다.15
인류세와 기후 위기: 대지를 향한 기술적 공격성
현대 기술의 도발적 요청은 지구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초래했으며, 이는 학계에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로 논의되고 있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인류세는 몰아세움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집어삼킨 시대적 결과이다.17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는 단순한 정책적 실패가 아니라, 대지(Earth)를 오직 인간의 성장을 위한 에너지 저장소(Bestand)로만 바라본 서구 형이상학적 존재 이해의 필연적 산물이다.8
하이데거는 기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기술적 장치들은 이미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프레임'(frame)화하며,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규정한다.15 이러한 '기술적 공격성'은 대지, 하늘, 신성, 죽을 자들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사방세계(Geviert)를 파괴한다.17 산은 더 이상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채굴 지구로, 숲은 탄소 흡수원이라는 기능적 부품으로만 취급된다.2
- 생태적 명령의 위반: 인간이 대지의 자립성을 무시하고 무한한 성장을 위해 에너지를 갈취하는 행위는 존재의 순리에 어긋나는 '도발'이다.1
- 기술적 낙관주의의 함정: 기후 위기를 또 다른 기술(탄소 포집 등)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몰아세움의 논리 내부에서 맴도는 것으로, 근본적인 존재론적 전환이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15
- 지구의 황폐화: 기술적 효율성은 증가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존재의 고향을 잃고 시스템의 부품으로 떠돌게 된다.8
하이데거는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구에 시적으로 거주하기'를 제시한다. 이는 대지를 부품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지가 스스로를 보존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태도이다.16 기후 위기는 기술적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존재와 맺고 있는 근본적인 관계를 '지배'에서 '공존'과 '내맡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존재론적 경고이다.10
구원하는 것(das Rettende)의 도래: 위험 속에서의 전회
하이데거는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하는 것 또한 자라난다"는 횔덜린의 시구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16 몰아세움이라는 최고의 위험은 동시에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한다. 구원은 기술을 폐기하거나 과거로 돌아가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본질인 몰아세움이 존재의 '유일한' 진리가 아니라,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주어진 '하나의 역운'일 뿐임을 깨닫는 사유의 전회(Kehre)에서 시작된다.4
이 전회는 인간의 계획적 행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자신을 다시금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고유 사건(Ereignis)이다.20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몰아세움의 위험을 철저히 자각하고, 기술적 질서가 가려버린 존재의 다른 가능성들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13 하이데거는 이러한 태도를 '내맡김'(Gelassenheit)이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기술 시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한다.10
| 구원의 단계 | 내용 | 인간의 태도 |
| 자각 (Awareness) | 몰아세움이 세계를 부품화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함 | 기술적 낙관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13 |
| 내맡김 (Gelassenheit) | 기술 장치를 사용하되 그것에 구속되지 않음 | '예'와 '아니오'의 동시적 견지 11 |
| 기다림 (Waiting) | 새로운 존재의 역운이 도래하기를 준비하며 기다림 | 명상적 사유의 유지 11 |
| 전회 (Kehre) | 존재가 스스로를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는 사건 | 고유 사건(Ereignis)에의 응답 20 |
구원은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라, 기술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더 이상 부품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현성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대하기 시작할 때 몰아세움의 독재는 균열을 일으킨다.16 하이데거는 이러한 전회가 일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시스템의 부품에서 '존재의 파수꾼'으로 자신의 본래적 자리를 되찾게 된다고 보았다.8
예술과 시적 거주: 진리의 보존과 자유로운 관련
하이데거는 몰아세움의 위험을 극복하고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통로로 예술을 제시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과 기술이 '테크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처럼, 예술은 존재자를 부품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그 본래의 모습대로 빛나게 하는 가장 순수한 탈은폐의 방식이다.6 예술작품은 사물을 효율적 도구나 소모품으로 환원하는 기술적 태도에 저항하며, 사물의 존재론적 진리를 작품 안에 '정립'(Stiftung)한다.16
예술의 본질은 '세계와 대지의 투쟁'을 드러내는 데 있다. 기술이 대지를 자원으로 소모하고 은폐해 버린다면, 예술은 대지의 견고함과 신비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이 보존되게 한다.16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이나 횔덜린의 시는 사물을 기능적 맥락에서 해방시켜, 그것이 가진 근원적인 존재의 울림을 듣게 한다.16 이러한 예술적 경험은 인간이 기술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존재와 '자유로운 관련'을 맺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1
- 진리의 사건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진리가 역사적으로 일어나는 실존적 사건이다.16
- 보존자(Preserver)의 사명: 인간은 예술작품이 열어놓은 진리의 지평을 지키고 그 안에 거주함으로써, 기술적 기능인에서 '존재의 목격자'로 변화한다.16
- 시적 거주의 회복: 예술을 통해 인간은 대지를 정복하지 않고, 대지 위에서 죽을 자로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며 평화롭게 거주하는 법을 배운다.25
하이데거는 "시적으로 인간은 거주한다"는 문구를 인용하며, 현대 기술 문명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기술의 폐기가 아니라 '거주 방식의 변화'라고 주장한다.25 예술은 몰아세움이 가려버린 사방세계(Geviert)를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온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 사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기술적 황폐화 속에서도 존재의 고향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다.20
결론: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론적 지혜
마르틴 하이데거의 몰아세움 개념은 현대 기술 문명의 화려한 성취 이면에 숨겨진 존재론적 공허와 위험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운명이며, 몰아세움은 그 운명을 지탱하는 강력한 프레임이다.2 이 프레임 안에서 자연과 인간은 모두 효율성을 위한 부품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존재의 진리는 계산적 확실성이라는 협소한 지평 뒤로 은폐되고 있다.8
그러나 하이데거의 통찰은 비관론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몰아세움이라는 위험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자체가 이미 구원의 시작임을 역설한다.16 우리는 인공지능과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몰아세움 속에서도, 계산적 사유의 독재를 거부하고 명상적 사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10 기술 장치를 도구로서 사용하되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내맡김'의 거리를 두는 태도, 그리고 예술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시적인 거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수적인 존재론적 지혜이다.11
우리의 과제는 기술적 효율성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파수꾼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몰아세움의 지배는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존재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새로운 탈은폐의 역운은 도래할 것이다.13 하이데거의 몰아세움에 대한 사유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시스템의 완벽한 부품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신비를 수호하는 질문하는 인간으로 거듭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응답 속에 기술 시대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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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 2026에 액세스, https://truththeway.tistory.com/242#:~:text=%ED%95%98%EC%9D%B4%EB%8D%B0%EA%B1%B0%EC%9D%98%20%ED%95%B5%EC%8B%AC%EC%A0%81%EC%9D%B8%20%EA%B0%9C%EB%85%90,%EA%B5%AC%EC%A1%B0%20%EC%A0%84%EC%B2%B4%EB%A5%BC%20%EA%B0%80%EB%A6%AC%ED%82%A4%EB%8A%94%20%EA%B0%9C%EB%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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